북면온천에서 문학의 밤
북면온천에서 펼쳤던 시와늪 문학의 밤 행사에 다녀왔다. 태풍 다나스(danas)가 밉살스럽게 밀려오던 지난 토요일(7월 20일)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이어진 행사였다. 행사 장소인 북면온천(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천추로 1173번지 14-17)은 P시인이 마금산온천지구에서 운영하는 온천의 상호(商號)로서 스파(spa)*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첨단 설비공사를 끝내고 최근 재개장해 고급호텔을 능가하는 고급 시설이다. 한편 마금산온천지구는 1454년 조선 왕조 실록(세종실록 편)이나 동국여지승람 등에 온천의 존재가 기록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이곳은 창원 도심에서 20분쯤이면 닿는 거리에 자리해 접근성이 매우 양호하다. 그런가 하면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자리하고 있어 북면온천으로 불리기도 한다.
행사 장소는 북면온천의 단체 세미나실인 201호실로써 50여명이 행사를 치러도 너끈할 정도로 너른 공간과 시설(마이크, 노래방 기기, 냉난방기, 공기정화기, 냉장고, 조명, 사물함 수십 개)을 위시하여 네 개의 침실과 화장실 두 개 그리고 열대여섯이 동시에 온천이 가능한 욕실이 딸려있었다. 그 외에도 어른들을 따라온 아이들을 위해 유명 만화책이 수많은 서가에 가득 꽂혀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 대형 행사장에 서른 안팎의 문우들이 길게 펼쳐진 원목 탁자에 둘러앉았다. 그랬더니 기껏해야 한쪽 공간을 겨우 채운 꼴로서 왠지 꽉 찬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택일을 잘 못했던가? 오래전에 ‘계간 시와늪 44집 여름호 출판 기념회’와 ‘2019년 소통과 공감을 위한 하계 문학의 밤’ 행사가 계획되었다. 한데, 돌발변수인 태풍 다나스(danas)가 우리나라로 진로를 틀면서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에 남해안 내륙으로 상륙하면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태풍의 중심권에 포함된 때문에 빗줄기는 물 폭탄에 가까워 참여율이 낮아질 개연성을 걱정해야 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태풍의 훼방 때문에 먼 지역에서는 거의 불참했다. 그럼에도 영남지역의 문우들이 예상 외로 많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줬다.
토요일 오후에 시와늪문학관에서 출판 기념회를 마치고 이른 저녁식사를 한 뒤에 귀가할 경우는 총총히 떠났다. 그리고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문학의 밤 행사에 참여할 문우들은 행사장인 북면온천으로 이동했다.
문학의 밤 행사는 주연(酒宴)을 겸한 가벼운 대화의 장으로 서막을 열었다. 주류파(酒類派)를 위해 소주와 맥주를 비롯해 막걸리, 비주류파(非酒類派)를 위한 음료수와 안주가 풍성히 준비되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C시인이 어느 방송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획득한 통닭 20마리를 행사장으로 시간을 맞춰 보내줘 더더욱 풍성했고 뜻 깊었다. 그런데 주당은 하나도 없고 아마추어들뿐인지 잔을 돌리거나 취기를 앞세우는 문우가 없던 까닭에 술이 설자리를 잃은 셈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시들해질 무렵에 예고되었던 3행시(三行詩) 짓기에 돌입했다. 즉석에서 제시된 시제(詩題)는 “마금산”이었다. 주류파의 경우는 한두 잔 걸친 때문에 불콰해진 모습이지만 진지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하지 않던가. 술을 한 잔해 도도한 상태였음에도 걸작들이 속속들이 탄생하여 모두를 흐뭇하게 했던 순간이었다. 모두 참여 했으나 나는 경연에 참여하지 않고 메모만 했었다. 그 내용에 약간 손을 보탠 내용이다.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는 글밭지기들의 모꼬지에
금지된 외박의 현장인 북면온천 201호실에서
산더미 같은 문학의 담론이 쌓일까 핑크빛 사연이 싹틀까
3행시 짓기를 마치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3분 스피치(speech)’ 시간이 주어졌다. 말이 3분이지 형식이나 주제 혹은 내용에 제한 없이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영원히 숨기고 싶었던 실패의 아픔을 진솔하게 들려주는가하면, 꿈과 희망을 모두 잃은 채 이승과 등지려 했던 암울한 기억의 저편을 가감 없이 펼쳐 보이는 문우들이 무척 믿음직스러웠다. 또한 끝없는 도전과 성찰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사연에서는 가슴이 뭉클했다. 스물 안팎의 고백을 들으며 많이 깨닫고 느끼며 공감했다. 그러고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누구나 나름대로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게 마련이지 싶었다. 그러다가 밤 11시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노래자랑 마당이 펼쳐졌다. 나는 애국가도 부를 때마다 다르게 부르는 푼수라서 아예 뒷전으로 물러서 지켜보는 구경꾼으로 남았었다. 그러다가 자정을 넘길 무렵 가장 으슥한 방으로 스며들어 잠을 청했다. 하지만 방문 밖에서 마이크를 타고 쿵쾅대는 노랫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조용히 눈을 감고 빨리 끝나기를 빌 뿐이었다. 아마도 새벽 1시 반쯤에 마무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뒤척이며 뜬눈으로 고상고상하다 새벽녘에 깜빡 잠들었다가 5시 정각에 눈이 떠졌다.
도저히 다시 잠을 청하기 어려워 옆에 잠든 일행들이 깰세라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옷을 찾아 입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넓은 회의 장 바닥에 띄엄띄엄 이불을 덮고 웅크린 채 잠든 문우들을 피해 밖으로 나와 일 층의 로비로 향했다. 밖엔 여전히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을씨년스럽지만 우산을 받쳐 들고 뒷산 고개 마루에 자리한 온천구름다리(흔들다리)를 찾아가 건너보기로 작정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북면온천의 정문을 나서 왼쪽 산비탈 오르막으로 개설된 좁다란 자동차 길을 따라 걸었다. 미지의 길에 초행이라서 걱정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는데 대략 20분 남짓 터덜터덜 걸었더니 온천구름다리가 자리한 사거정 고개에 다다랐다. 그곳에 2층의 카페가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이른 새벽 시간이라서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따라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동화책 속의 카페일 따름이었다.
낭패였다. 사거정 고개 마루에 도착하니 다리로 다가가는 접근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 마루 양쪽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오가며 찾아봐도 접근로는 오리무중이었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작은 팻말에 온천구름다리 진입로는 올라갔던 사거정 고개 마루에서 반대편으로 130미터(m) 정도 내려가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접근했는데 폭우 때문에 230미터의 접근로가 도랑으로 변해 빗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물길을 피해 엉금엉금 낑낑대며 어렵사리 찾아간 온천구름다리는 길이 70미터이고 폭 1.2미터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이 안내에는 2010년에 개통되었으며 마금산(280m)과 천마산(370m)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개설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상태에서 온천지구 쪽의 너른 들과 반대편의 조붓한 분지가 한 눈에 아득히 들어왔다.
비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돌아왔다. 그때까지 모두가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방에 붙어있는 욕실에서 사워를 하고 나와서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패잔병처럼 널브러져 잠에 빠졌던 문우들은 기상과 동시에 지하의 싸우나와 대중 온천탕으로 향했다. 내가 사용했던 욕실도 무척 넓을 뿐 아니라 뜨거운 온천수가 펑펑 쏟아지는데 철저히 외면당했다. 모두가 온천욕을 마친 뒤에 두부 전문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서둘러 마산의 돝섬을 향해 출발했다. 그 무렵 거짓말처럼 비구름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다. 마산만(馬山灣)의 내만(內灣)에 자리한 돝섬을 한 바퀴 돌아보며 담소를 나누다가 마산의 복국거리에서 점심으로 복국을 들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으로 일정의 대미를 대신했다.
가볍게 나선 1박2일 나들이였다. 그런데 젊은 문우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을 통해 많이 돌아보고 생각하며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음이 쏠쏠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태풍으로 어수선하고 세찬 비가 내리는 꼭두새벽에 고개 마루의 까마득한 흔들다리 중간을 서성이며 난간을 부여잡고 오락가락하는 내 모습이 어쩌다가 지나가던 운전자의 눈에 띄었던가보다. 작은 트럭인 포터를 운전하다가 길가에 잠시 정차한 채 나를 예의 주시하는 것 같았다. 혹시 내 행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는 께름칙한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휘휘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알았다는 듯이 다시 운전하며 유유히 떠나던 이의 따스한 모습이 여태까지 내 뇌리를 뱅뱅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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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spa) : 마사지나 물의 열, 부력 따위로 온몸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피부를 관리하고 몸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놓은 가게.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첫댓글 즐거운 문학의 밤을 보냈군요 같이 참석했더라면 교수님의 덕담과 노래도 한곡 뽑고 재미가 있었을 터인데 참석을 못하여 죄송합니다 마금 온천은 역사가 깊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을 가기도 하였지요 거리상으로 약 이십리 정도 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오래 오래 시와늪을 빛내 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님의 수필 북면온천에서 문학의 밤
웃으며 읽다가 본문에 가서는 울컥 했어요.
그러다 빗속 산책 길에 길을 잃어 헤메는 부분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동화같고요.ㅎㅎ
전개가 재미있게 흘러 갑니다.
몇년전 봄 교수님과 시와 늪 도반들과 같이
돝섬 둘레길 걸었던 생각도 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의 덕분에 문학의밤 행사가 즐겁고 알차게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모든 회원님들께서 서로에게 배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기 때문에 단합된 분위기에 웃음꽃이 피웠지요. 언제나 교수님이 계시기에 든든하고 힘이 났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