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세대 인테리어디자이너 박재봉 그의 공간속으로 09_ '가전' (1979년 作)
박재봉(1939년 生/헨디환경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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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9년 2월 경북 경산군 하양에서 도목수의 3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정이 많아 집의 사과를 몰래 다리 밑 거지들에게 나눠 주기도하고 친구들을 따라 투전판을 다니며 물주노릇을 하기도 한다. 이런 유년기시절을 보내던 그를 아버지는 항상 엄하게 대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일하시던 틈틈이 손수 깎아 만든 예쁜 나무칼 한 자루를 주셨는데 이것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최초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당시 신기할 정도로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있었던 칼 손잡이는 나무를 만지시던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하나의 숙명같은 바통이 아니었나고 회상한다.
1959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년 서라벌예대 회화과를 졸업한다. 64년부터 68년까지 하양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사표를 쓰고 고추, 콩 장사를 하면서 영주, 단양, 제천 등 시골장터를 떠돌다 대구로 나오게 된다.
당시 대구는 6,25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대구역 앞을 중심으로 향촌동과 화전동, 동성로1가 등에 신문화(新文化)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다방과 음악감상실, 고고클럽을 중심으로 한 낭만적 문화가 번성하였고, 회화나 초상화, 무대장치, 간판, 상업미술 등에 재능을 발휘한 분들이 중심이 되어 정립된 개념 없이 타고난 미적 감각으로 손으로 그려진 간략한 스케치 몇 점으로 공사를 행하던 시기였다.

<그림1> 1970년대 대구 중구 화전동일대 모습
그는 1969년 대구 중구 포정동에서 《금맥다방》을 시작으로 71년 대구 로얄호텔 《Sky Lounge》와 일식당 《길조》, 72년 부산 광복동 《새마당 클럽》, 73년 대구 향촌동 《판 코리아 고고클럽》 을 작업한다. 또한 동성로1가 《심메마니 스낵》공사에서 서울 (주)헨디디자인 손석진 대표와 인연이 되어 같은 회사상호로 ‘헨디환경디자인 (Human ENvironment Design Institute)’을 포정동에 설립한다. 그 후 《JUN》, 《목마》, 《예몽》, 《거목》, 《로즈가든》, 교동시장근처 《맥심》, 대구백화점 11층 《맥심클럽》, 《동방 커피숍》, 대구 미도백화점 5층 《무랑루즈》를 작업한다. 특히 74년에 동성로2가 《가야백화점》 신축공사현장에서 인테리어공사 청사진도면을 포함한 견적서, 공정표를 접하게 된다. 이즈음 대구에도 인테리어디자인의 정확한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고 서울디자이너와의 교류도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늘 용도가 파기되거나 그 자리에 있는 그래서 잊혀진 돌처럼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담배창고나 정미소를 찾아다니며 날 때부터 자연은 아니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어쩌면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된 건축, 그리고 조형물들에서 작업의 근간을 찾고자 하였다.

<그림2> 묵직하고 두터워 땅과 하늘을 넉넉히 포용하면서 주변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황토빛 담배창고는 그의 디자인을 이해하는 주요한 미학적 기호가 된다. <사진제공 / 헨디환경디자인연구소>
1977년 홀 중앙에 로툰다(Rotunda)구조의 원을 중심으로 대형 난로에 둘러앉는 좌석배치와 호박돌과 회벽, 서까래, 등나무가 조화를 이룬 레스토랑 《오토》를 비롯해 79년 커피숍에 바 기능을 강조하여 만든 《가전》으로 1984년 4월 하얏트호텔 리젠시 볼룸에서 열린 KOSID 1회 협회전에서 지방인이자 상업공간 최초로 협회작품상을 수상함으로써 전국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당시 김석철, 강명구, 배만실, 윤도근, 한도룡, 조성렬 6인이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총 46 점 출품작 중 김원(건축연구소 광장)의 《P수도원 개축》과 이병호(다다디자인)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서울지점》과 더불어 박재봉(헨디디자인)의 《가전》이 협회작품상을 수상한다. 이후 서울업체의 수많은 스카우트제의에도 불구하고 대구를 지키며, 그의 작업변화와 재료의 실험적인 방법에 따라 지역 인테리어디자인계도 발전을 하게 된다.

<그림3> 레스토랑 《가전 / 1979년 作》의 수작업 평면도와 파샤드 (면적 116㎡ / 시공기간 1979, 3∼5) <사진제공 / 헨디환경디자인연구소>

<그림4> 대구 중구 포정동 2층 공간의 《오토 / 1977년 作》(좌)와 중구 공평동 1층《가전 / 1979년 作》(우)의 내부 모두 호박돌과 회벽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사진제공 / 헨디환경디자인연구소>
첫댓글 대구미도빌딩(79년 당시 대구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으며, 국내최초로 주차리프터가 도입된 빌딩이었음) 5층에 파리의 역사적인 카바레인 '무랑루즈'를 모티브로한 차와 경양식, 생음악을 곁들인 레스토랑 《무랑루즈》를 작업한다. moulin은 풍차를 의미하고 rouge는 빨간색을 의미하므로 '빨간 풍차'라는 의미가 되는데, 박재봉선생님은 Moulin과 Rouge의 가운데 철자인 u자를 교차하여 풍차의 날개를 표현한 로고를 작업했다한다. 당시에는 실내건축을 주업으로 하더라도 간판, 로고, 성냥갑, 메뉴판 등 각종 디자인관련업무의 역량과 상공간의 전략적 마케팅이 인테리어디자이너의 차별화된 자질 중에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