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호무역주의의 파괴적 영향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것(FT 편집국)
O 요즘 경제나 통상 관련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보호무역주의의 위험성과 냉전 후 세계화 시대의 종말에 대한 경고가 어김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와 관련된 경고 중 일부는 과장된 경향이 없지 않음.
- 특정 기업이나 부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산업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는 추세와 관련하여 최근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서도 사업정책이 갖고 있는 왜곡적인 잠재력에 대한 우려가 표명되었음. 특히, 녹색경제 구현을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많은 정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나, 미국이 단행하고 있는 일련의 무역 및 기술 제한 조치들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상황임.
- 하지만 이러한 우려 중 일부는 과장된 것임. 왜냐하면 산업정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효율적이거나 왜곡적이라는 법은 없기 때문임. 미국의 탈세계화 기조는 선진국 중에서는 이례적인 데다, 지난 30년 간 세계가 겪은 수없이 많은 충격 속에서도, 상품, 서비스, 투자, 인력, 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은 꿋꿋이 살아남았음.
- 물론, 산업정책 등 정부 개입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 것은 확실함. IMF와 글로벌트레이드얼러트(GTA)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2500건이 넘었고 이 중 2/3 이상이 무역 왜곡 정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음. 하지만 그 전체적인 영향은 불분명함. 소규모의 지출이나 약간의 규제조치들은 수백 개가 동시에 취해져도 그 영향력은 미미함. 또한 GTA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왜곡적인 개입정책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무역은 성공적으로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음.
- 사실 전기차 등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부문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선점우위 효과와 탄소배출 감축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딱히 놀랍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음. 미국의 IRA도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뒤늦게나마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의의가 있음. 반면, 이 분야와 관련한 다른 국가들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함. EU에서는 프랑스가 범EU 차원의 대규모 녹색기금 창설을 제안했으나, 독일의 회의론에 부딪혀 좌초되었고, 일본은 반도체 산업 재건에 막대한 지금 투입을 계획하고 있으나, 전 세계적인 고부채부담 추세 속에 재정 지출 능력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됨.
- 한편, 미국의 전면적인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대한 여타국의 반향 역시 크지 않음. 물론, EU가 역외보조금규정 등 불공정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정책 수단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정책들이 공정하게 적용되어 결과적으로 공정한 경쟁의 장 실현에 기여한다면 결단코 보호무역정책으로 치부될 수 없을 것임. 게다가 EU당국은 역외보조금 규정 등의 정책 수단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일례로, 중국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 결과에 따라 고려 중인 상계관세율도 EU 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을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점쳐지고 있음.
- 또한,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을 병적으로 기피하는 현상도 미국 외 다른 국가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움. 아시아태평양지역내 국가들만 해도 미국이 중도 포기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기 위해 앞다퉈 줄을 서고 있음. 최근 중국이 수출주도 경제성장기조로 선회하고 있는 가운데, 왜곡적인 정책 개입과 무역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으나, 이 역시 보호무역주의로 보기는 어려움.
- 언제나 그렇듯, 세계무역을 위한 최선의 방어책은 구속력 있는 글로벌 규범이겠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역할을 해내기엔 역부족임. WTO의 현 규정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규제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고, 미국은 WTO 분쟁해결시스템의 진정한 개혁보다는 전복 쪽에 더 열중하고 있는 상황임.
- 따라서, 국제무역시스템의 강력한 법적 틀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보호주의 요소가 포함된 정부개입주의의 급증을 야기하는 환경은 지속될 수밖에 없음. 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화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식의 잘못된 경보가 수차례 있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아직까지 없음.
출처: 파이낸셜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