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가 지나 컴퓨터를 끄고 일어난다.
바람이 차다. 두꺼운 장갑을 챙기고 얼굴을 덮은 목도리도 한다.
비럭 뒤를 지나며 동곡 송형호의 묘비를 본다.
누군지 모른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홍골입구의 송채만씨의 비석을 지나 지게지고 오르내렸던 길을 오른다.
그때는 좁아 지게지고 오르는데 비틀거렸지만 지금은 넓어졌는데 칡넝쿨과 가시가 많아 걷기도 힘들다.
논밭들은 모두 잡초목에 우거졌고 건너 두채 있던 집은 대나무만 흔들거리고 있다.
난 얼마 살지 않았지만 세상이 이리 잘 변하는 걸 지켜보는 사람이 되었다.
꼭대기엔 여산송씨 묘지가 많다.
지난 가을 벌초를 해 두어 걷기 편하다.
죽헌 송계문의 비석을 본다.
호계 돌 위에 새겨진 죽헌독서대의 주인공일까?
몇개의 묘를 지나며 이백순과 송재영의 찬을 읽어보지 못한다.
송담 이백순 선생의 글이 보성 고흥부근에 많다. 아마 광주전남에 많을 것이다.
송재영 선생은 누구일까?
위원군수송공의 묘를 지나 골여신씨의 묘가 있는 산끝으로 가 본다.
과의교위신공지묘와 한증할아버지의 묘를 본다.
맨 아래 기식공은 아마 광수의 할아버지인 듯하다.
차분히 읽어보지 못하고 사진만 찍는다.
봉두산성 흔적을 오른쪽으로 보고 내려가 봉두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앞에 선다.
응달이어서인지 하얀 눈이 살풋 깔려 있다.
길도 서릿발이 솟아있어 미끄럽지 않다.
고개를 쳐박고 오르니 어느 순간 땀이 나고 개간을 하고 있는 연못에 닿는다.
와 본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밭은 모양이 더 커졌다.
고운 흙 사이에 부서지는 마사성의 돌덩이가 모여있기도 한다.
봉두산 정상은 여전히 멋이 없고 조망도 없다.
제석사로 내려가는 쪽까지 가시를 헤치고 가 보지만 여전히 안 보인다.
조망을 얻으려면 금당체육공원쪽으로 내려가며 가파른 칡넝쿨 구간에 가야겠다.
바보의 퇴근 시각을 짐작하며 서둘러 내려간다.
대서면의 조망은 그리 맑지 않다. 화수원팔경에서 언급된 서호반도를 본다.
송림마을은 길게 벋어 오른쪽까지 이어진다.
반도가 아닌 서호반도도 그렇고 중학교 교가에 나온 송림만 푸른물결은 흔적도 없다.
달리듯 임도를 내려와 금당회관을 지나 지난번에 공사로 갈 수없었던 저수지 앞으로 걷는다.
공사는 거의 마무리중으로 걸어갈 수 있다.
바람이 차 버스가 다니는 길로 내려가 바보를 기다리지 않고 마서로 계속 걷는다.
덕촌동네로 들어서도 바보는 오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주유하고 조금 늦는단다.
쓰레기 수거장에 내어놓은 어머니의 여름물통을 다시 차에 싣고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