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이 모신 법당에서 신부님과 목사님, 스님이 한데 어울려 수담을 나누는 광경,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
명지대에서 바둑학과를 만들 때 어떤 교수는 신문칼럼에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고스톱학과도 만들지 그러냐.” 60~70년대까지만 해도 조남철 선생이 동네를 지나가면 아낙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저기 노름대장 지나간다.”
지금은 어엿한 두뇌스포츠로 양궁 태권도 못지않게 세계를 제패하며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바둑이 한때는 이렇듯 패가망신의 도락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한들 과하여 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모든 건 모름지기 쓰기에 달렸다. 바둑을 두면 시간이나 노닥거릴 뿐이라는 인상은 편견이다. 바둑의 가치와 효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과거의 선입견에 매달려 저지르는 오해다. 조치훈과 조훈현, 이창호 같은 바둑한류스타가 등장하기까지 바둑은 다른 종목에 비해 유독 이러한 억울함을 당했다.
종교계의 바둑에 대한 시선이 그랬다. 목사나 스님, 신부님 중에는 바둑을 즐기는 이가 적지 않다. 고수도 많다. 그럼에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목회나 수행을 게을리한다는 눈총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스님이라고 종일 염불만 할 것이며 목회자라 하여 불철주야 기도만 하며 지내야할까. 김수환 추기경도 말년에 인터넷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성직자들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바둑을 즐길까, 궁금했다. 종교와 종파의 경계를 뛰어넘어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담(手談)을 나누는 날이 있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충남 서산의 서광사(瑞光寺)에서 이러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스님 신부님 장로가 법당에 모여 수담을 나눈 날
제1회 종교․문화예술인 바둑축제가 20일 대한불교 조계종 서광사에서 열렸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를 대표하는 종교인과 문화예술계의 바둑애호가 40명이 선수로 참가했다. 무엇보다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바둑대회를 연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목사와 신부가 법당에 앉아 바둑판을 마주하고 수담을 나누는 광경은 신선했다. 예전 같진 않다고는 하나, 열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아니고선 선뜻 용기를 낼 수 없는 걸음이다.
바둑을 통한 화합과 소통을 주제로 한 대회이기에 종교 구분 없이 섞어 10명씩 자비, 사랑, 평화, 예술 4팀으로 나눠 기력별 치수제로 총3라운드의 대국을 벌였다. 김인 9단과 유건재 8단이 기꺼이 심사위원으로 달려왔으며 이완섭 서산시장과 성완종(선진통일당) 의원을 비롯해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마음을 더했다. 승부를 가리는 게 무의미한 대회이긴 하나 우승은 20승1무9패를 기록한 사랑팀이 차지했으며, 4등까지 주어지는 상금 전액은 조계종단의 자비나눔단체인 ‘아름다운 동행’에 기부했다.
종교인의 바둑축제를 기획하고 주최한 서광사 주지 도신스님은 “종교인들부터 한국사회에 만연한 갈등에서 벗어나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대회를 준비했다. 그런데 드러내고 하는 행사여서인지 스님들 모으기도 너무 힘들었다. 이번은 준비기간이 짧아 섭외에 미진한 바 있었지만 금년 초석을 발판으로 내년에는 더 많은 성직자들을 모실 생각”이라며 아쉬움과 의욕을 보였다. 앨범을 6장이나 낸 ‘노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도신스님은 아마6단의 고수로서 서광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둑템플스테이와 각수삼매배라는 바둑대회를 여는 사찰이다.
▲ 부춘산 기슭의 울창한 송림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서산 시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광사는 일주문(一柱門)이나 불이문(不二門)을 볼 수 없는,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 포교당(布敎堂)이다.
수덕사의 말사인 서광사는 일찍이 신라 경순왕 2년에 대경선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1984년 법장스님이 재건했다. 법장스님이 2006년 제자인 도신에게 주지를 맡겨 성역화 불사를 잇게 한 것은 ‘노래하는 스님’으로 대중과 친밀도가 높은 도신스님에 대한 기대와 역량을 읽게 하는 대목인데, 우리에겐 예전부터 바둑을 무지 좋아하는 스님으로 더 친근하다. 전영선을 비롯한 프로기사들과 교류하며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그답게 과연 세계에서 유일한 ‘바둑템플스테이’를 선보이는가 하면 ‘각수삼매배’라는 사찰 바둑대회를 매년 열고 있다. 이번 종교예술인바둑대회도 변변한 외부지원도 없이 독자적으로 개최해 그의 뜨거운 바둑사랑을 실감케했다.
▲ 서광사는 3층 구조의 사찰이다. 바둑행사는 1층 인곡수련원(교육관)에서, 요사채로 쓰이는 2층 팔정도수련원은 바둑템플스테이 참가자가 묵는 숙소인데 깨끗한 샤워시설을 갖춘 것도 눈에 띄었지만 길게 늘어선 누마루 위 방문마다 바둑판과 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풍경이 확 눈길을 낚아챘다. 3층은 법당이다. 바둑종사자의 눈에 서광사는 사찰이라기보다 마치 사찰기원 같은 인상이 들어 감격스러웠다. 도신스님에 대한 세간의 평은 분분할지 모르나 바둑계에 그는 분명 고마운 귀인이다.
우리나라 신부님 중 바둑이 가장 센 신부님
진주 하재동성당의 이재열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바둑이 가장 센 신부님으로 알려져 있다. 짱짱한 아마5단인 그는 왕년의 아마바둑 맹장 이해범 7단과 박성균 아마국수와 연이은 석점 지도기를 가뿐하게 이겨 허황한 명성이 아님을 보였다. “우리 교구에도 바둑을 좋아하는 신부님들이 많은데 함께 가자고 했더니 약한 실력으로 어찌 나가겠냐며 고사했다. 처음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달려왔더니 역시나네.” 혹시 바둑두는 신부님이 참여했을까 싶어 기대하고 왔는데 아무도 안보여 실망(?)했다며 웃는다.
▲ 개심사 혜산스님과 대국하고 있는 이재열 신부. 치수를 맞춰주고 있는 박성균 7단은 이 대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진행을 맡았다.
97년 바둑TV 명사대국에 도신스님과 종교맞수로 출연한 바 있는 그는 이러한 인연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15년 만에 재회한 두 성직자가 서로의 손을 포갠 채 한참을 반겨한다. 마산에서 사제생활을 할 때는 박진열 사범을 찾아가 많이 배웠다는 이 신부님, 한달에 한번은 바둑이 두고 싶어 로만칼라를 떼고 기원을 찾았다. 그런데 당시의 기원은 내기바둑 아니면 안둬주는 때라 주머니에 20만원쯤 준비해 갔다고. 사제가 내기바둑 두는 것도 좀 거시기한데 과연 땄을까? “어떻게 따…, 그 사람들 돈을….” 바둑인들이 성당을 찾았다 그냥 돌아서면 어김없이 하는 말, “그냥 가게? 바둑두고 가야지.”
바둑선교회, 들어보셨나요?
기독교에 바둑선교회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경기도 용인의 한우리선교원의 윤여탁(동양화가, 아마5단) 집사가 이끄는 바둑선교회는 캄보디아나 라오스 버마 같이 아직 바둑이 보급되지 않은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바둑을 알리려 하고 있다. 백대현 집사(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기사 백대현)도 선교회원이라 한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바둑에 대한 마인드가 있다면, 하고 아쉬워하는 윤 집사의 목소리는 젊은이보다 쩌렁쩌렁했다.
“2007년 바둑선교회를 만들 때 장로들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하지만 가요, 춤 등도 선교활동으로 수용하면서 바둑은 안된다는 건 편견이다. 신학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다룰 가치가 있는 게 바둑이다. 한우리 신도 5000명 가운데 바둑선교단 50명은 적은 듯 보여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아직 불교나 천주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기독교계의 바둑에 대한 인식은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는 이유로 긍정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교회의 담임목사의 마인드에 따라 수용 정도가 다르고 기독교신문에서도 바둑은 아예 다루지조차 않고 있는데, 이번과 같은 행사가 언론에 자주 나온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이날 '사랑'팀으로 출전한 윤여탁 집사는 3전 전승으로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대표로 시상식에서 우승상금 보드를 받았다. 맨 오른쪽.
윤 집사의 인도로 6명이 기독교 신자와 2명의 불도가 함께 왔다. 오던 날(금요일) 저녁 밤늦도록 수담을 나눈 것도 부족해 이튿날 식전부터 바둑돌 난무하는 소리에 이들의 건넌방에 묵었던 기자는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 출가했다 지난해 환속한 서운거사가 혀를 내두르며 귀띔한다. “인터넷 7단을 두는 제가 인터넷 5단을 둔다는 노친네들한테 된통 혼났습니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바둑돌을 집은 채 뭉툭뭉툭 착점하는 폼이 완전 동네바둑 같아 보였는데, 이거 기력이 장난이 아니시더라고요.”
1년 만에 3단에서 7단까지 급상승한 정견스님
이날 큰 아쉬움이라면 기독교계에서 장로 집사 권사는 여럿 걸음했는데 목사가 한분도 참석하지 않은 거였다. 종교인바둑대회 뉴스를 보고 해미에서 올라오시겠노라 신청한 목사가 한분 계시긴 했지만 급한 일로 다음 기회로 미뤄야했다. 대신 사찰에서 첫 대회를 여는 만큼 가사를 걸친 스님이 다섯 분이나 참석해 분위기를 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소문난 서산 개심사의 주지 동덕스님과 수좌 혜산스님, 태안 태일사 주지 흥법스님과 괴산 화타선원의 주지 정견스님은 하나같이 유단자였다.
이 중 정견(正見)스님은 박성균 아마국수와 함께 기거한다 하여 호기심을 자아냈다. 화타선원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는 괴산과 문경의 경계지점인 쌍곡계곡에 있다. 3년전 아마초단인 동료 스님이 바둑두는 것을 보고 뒤늦게 배웠다는데, 지금 오로7단 기력이라니 놀랍다. 작년 봄 괴산군 바둑협회 사무실에서 박성균 7단을 만나 여름부터 동거했는데 1년 만에 인터넷3단에서 7단까지 급상승했다. 사이버오로가 지난해 개최한 웅진루카스배에서 32강에 입상해 30만원의 상금도 받았다 하니 틀림없는 말이다.
“고수가 될수록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자기만의 바둑을 창작해야 발전할 수 있는데 이러한 창의성이 곧 선(禪)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정견스님과 나눈 이야기는 글이 길어질 듯하여 추후 인터뷰기사로 따로 한번 소개할 참이다.
바둑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계층간 세대간 소통의 매개체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둑의 별칭이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수담(手談)이다. 이날 김인 9단의 축사에는 최초로 열린 종교예술인 바둑대회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은 힘들지만 한번 물꼬를 트면 다음은 한결 수월해진다. 종교나 종파가 달라도 바둑 한판이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듯 이 대회를 통해 나눔과 사랑, 자비의 길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말!말!말!>
▲ 심사위원장으로 걸음해 대회를 빛낸 김인 국수. 오후2시 대회 전 도착하여 도신스님과 다담(茶談).
내기바둑은 곤란하지요!
(김인 국수) “예술인바둑대회에 갔다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만났더니 그 분도 내기바둑 무지하게 좋아하는 거 같더군요.”
(도신스님) “내기바둑 아니면 바둑을 좋아하는 게 아니지요.”
(김인 국수) “하하. (스님이) 그러시면 안되지요. 음식내기 정도는 괜찮겠군요.”
종교인대회니까 치석 문제는 없겠군요
(김인 국수) “예전에 신문기자바둑대회에 초청받아 갔는데 이런 대회는 또 상받는 재미가 쏠쏠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치석(置石)에 대한 신경전이 벌어져 고재희 사범이 한국기원 기력사정을 하게 되었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도저히 할 수 없어 결국 총호선으로 결정했더니 아무 말썽이 나지 않더군요. 오늘은 종교인들이 화합을 다지는 대회니까 치석으로 인한 문제는 없겠군요.”
▲ 개심사 주지 동덕스님의 대국을 서광사 주지 도신스님이 관전하고 있다.
고승에 고수네요!
(이완섭 서산시장) 축사를 마치고 대회장을 돌며 참가자들과 악수를 나누다가 “동덕스님도 바둑 두시는 거예요?”
(동덕스님) “나 고수여!”
(이완섭) “고승에 고수네요!”
자비를 베풀려고 해도 베풀지 못하게 하네
자비팀으로 출전한 대구 동화사 법사 조창희 씨가 일찍 대국을 끝내고 법당 밖으로 나오자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어, 이렇게 빨리 바둑이 끝난 걸 보니 자비팀이라 자비를 베풀었나보군.”
(조창희) “자비를 베풀려고 해도 상대가 자꾸 베풀지 못하게 하네 그랴.”
[ 글 | 정용진/사이버오로 이사 ]
▲ 화타선원의 정견스님이 예술문인 인사로 나온 왕년의 아마바둑 맹장 이해범 7단과 석점대국을 펼치고 있다. 아쉽게 패배.
▲ 이번 대회 홍일점(유일한 여성)인 기독교인 이성죽 씨. 아마2단의 만만치 않은 기력으로 관심을 모았다.
▲ 전국장애인바둑협회 현명덕 회장도 참가해 조치훈의 휠체어대국에 버금가는 투혼^^을 보였다.
▲ 서예가 김창동 선생은 예술문인계 주장으로 출전해 3전 전승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른아침 부인과 부춘산 등산을 다녀온 뒤 기념작품을 쓰는 모습.
▲ 60~70년대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양완규 7단은 전주 늘푸른선교복지센타에서 노인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73세의 나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청년의 얼굴이었다. 바둑을 두면 이렇게 늙지 않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