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1980년대 초창기의 작업 또한 재료에 대한 탐색과 실험성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81년 《애천》을 비롯해 레스토랑 《이탈리아노》, 82년부터 84년에는 커피숍 《2.2.3》, 레스토랑 《한가람》을 작업한다.
《이탈리아노》의 박청강(77·여) 대표는 대구 다방시대를 커피숍시대로 물꼬를 터준 대구 다방문화의 산증인이자 지역 경양식 업계에서 대모와 같다. 헨디환경디자인과의 사업적 연은 1981년 《이탈리아노》에서 시작하여 《늘봄 1, 2》뿐 만 아니라 《풀 하우스》까지 이어진다.
애천_1981년作
이탈리아노_1981년作
2.2.3_1982년作
83년에는 중구 교동 옛 국세청 뒤 대구의 첫 원두커피전문점 《늘봄》작업에서는 지하공간에 수만장의 적벽돌을 도면작업과 현장수정작업을 병행하며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아름다운 3원 아치를 구현하였다. 《늘봄》은 68년에 미주산업이 유통시킨 드럼통커피 MJC를 납품받아 사이펀 기술자까지 고용하여 늘 ‘사이펀(Syphon)식’으로 커피를 추출했다. 사이펀 장치는 유리로 된 실험기기처럼 알코올램프의 열기를 이용해 수증기압으로 물을 올려 역삼투압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70년대로선 획기적 커피추출기였다. 당시로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 같은 연출이었고 《늘봄》의 상업적 대성공은 《늘봄2》로 이어진다.
대구 동성로1가 지하 231㎡ 면적의 《늘봄 / 1983년 作》에서는 수만장의 적벽돌로 아름다운 3원 아치를 구현한다. <사진제공 / 헨디환경디자인연구소>
또한 중구 공평동 53-13에 위치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건물전체의 인테리어를 수주해 당시 대구 인테리어계의 라이벌인 박현기 선생(1942∼2000)에게 2개층(1, 4층)을 나눠줘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국내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고(故) 박현기 선생은 1942년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이 되자 대구에 정착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함께 공부한 후 1970년대 초 대구로 낙향하여 큐빅디자인 대구지소로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번 돈을 모니터와 카메라를 사서 비디오아트 활동을 하는데 쏟아 부었다.
한옥을 리노베이션하여 지중해 스타일을 접목한 83년 10월에 착공한 《반줄》에서는 석회, 백토, 가는 모래 따위를 섞어 전통적인 방법으로 끓인 다음 벽에 발라 두껍고 부드러운 회벽질감으로 표현하였고, 인공폭포와 자연의 계절변화를 도심 속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중정을 두었다. 당시 이와 같이 연출된 인공의 자연은 전원의 삶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80년대에 경제성장과 더불어 유행하던 그린인테리어와 짝을 이루게 되고, 국적불명의 이국문화와 전통문화를 기형적으로 혼용한 키치(Kitsch)문화를 양산하기도 한다.
삼덕동 좁은 골목길에 긴 벽면처리를 통해 지나가는 이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사로잡은 레스토랑 《반줄 / 1984년 作》 <사진제공 / 헨디환경디자인연구소>
1983년 7월에 착공한 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66㎡ 규모의 한옥을 리노베이션한 카페 《황토 / 1986년 作》 에서는 잊혀져가는 주변의 일상용품이나 풍경 속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이끌어내 소박한 한국적 아름다움과 편안함으로 고객과의 소통을 꾀한다.
글_김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