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 또는 교계 차원에서 현실적, 실질적으로 결코 작을 수 없는 문제와 위기의 상황이 되었을 때..
다른 그 누구보다 그들 중 제일 앞에 서 있고 가장 큰 권한을 받은 자들부터 최고 우선적으로 그 자신과 공동체를 돌아보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들을 내려 놓고서라도 그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로 더욱 더 작정하고 결단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결국은 약과 단련이 되고 오히려 성숙과 흥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론적으로는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그것이 참으로 마땅하고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참으로 기도라는 것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의 약속된 것들을 위해, 또한 말씀대로의 믿음을 위해, 특히 말씀이 정말 말씀이 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이고, 그와 함께 실제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실제와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정말 말씀 그대로 누리게 되고 생생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으로 사실 기도의 근본과 본질도 말씀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단순하게 다시 정리하면 그 당시의 가장 앞에 선 것일 뿐 아니라 많은 것을 맡았던 사도들부터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전적으로 말씀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와 함께, 실상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그렇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울수록 더욱 더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또한 본질적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께서, 그리고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으로 그렇듯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되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웠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치와 원리들은 오늘날에도, 이 시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에 있어서도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내 안에, 내 가정에,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더 나아가 교계에, 나라 전체에 있어서, 심지어는 열방 전체에 있어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때, 특히 심각한 상황과 위기들의 때에야 말로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진정 가장 앞에 서 있고 가장 큰 은혜를 받았으며 가장 많은 권한 가운데 있는 자들부터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전적으로 말씀으로 돌이키며 결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더군다나 그러한 문제와 위기들이 죄악들로 인한 것이라면 더더욱 다른 그 무엇보다 가장 최우선으로, 참으로 즉각적으로 자복하고 참회하며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와 반대로 심각한 상황과 위기들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부터가 아닌 다른 대상들이나 현상들에 주목하고 우선하며 시선을 돌리게 하고 앞서서 정죄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공격적으로 시도한다면, 게다가 가장 앞에 서 있고 가진 것들이 많은 자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기 힘들고, 오히려 더욱 위태하게 될 수도 있게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모순과 가중이 되는 것이고, 다른 그 누구보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진노와 가증스러움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날의 교회들이, 특히 가장 앞에 서 있고 가장 많은 복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교회들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영성이나 교회들의 건전함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사회적 현상들이나 불신자들의 죄악들에 우선적으로 분노하고 정죄하기에 열심을 낸다면, 무엇보다 현재 어떤 대형 교단에서는 총회장에 있어 불륜의 정황이 명백하게 드러난 참람한 상황이 있고, 그 전에는 수많은 것들을 파괴하면서 세습을 자행한 초대형 교회들도 있으며, 또 다른 교단들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세상적으로 최고가 되려 했던 일도 있었고, 교회의 재산을 실질적으로 사유화하는 등과 같은 심히 참담하고 애통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악들, 사실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세속화들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현실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무섭고 위험천만한 악행들은 숨기고 함구하면서 심지어는 저들이, 또는 그 동류들이 앞서서 더욱 더 자신들이나 교회들 내부가 아닌 외부로 시선을 향하게 하고 최일선에서 싸우는 분위기를 만들며 온갖 방법들로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커녕 반대가 될 수 있고,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에 있어서의 여지조차 없애는 것이며, 하나님의 세계나 교회 공동체들이나 순수한 성도들을 이용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따지고 보면 가장 간악함이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당연히 말씀이신 하나님 안에서 영적 원리 상 그로 인한 결과도 결코 좋을 수 없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대사회적으로 빛과 소금이 되고 정화 운동도 필수이며 여러 모양의 개혁들도 시급한 것이지만 그러나 순서가 있는 것으로 그것보다 더더욱 위급한 것은 우리 스스로부터 돌아보는 것이고, 먼저 각성하는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불신앙들의 자복과 통회와 참회와 돌이킴이 최우선 중의 최우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동시에 가장 우선적으로 말씀과 기도로 무기 삼으면서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비된 은혜와 역사들, 응답과 이적들, 역전과 흥왕들 등이 결코 작을 수 없는 것인데..
이제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특히 가장 많이 받고 가장 앞에 선 자들일수록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을 갈망하고 덧입음과 함께 그 자신들은 그리 큰 잘못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다시피 하면서 그 스스로부터 먼저 돌아보며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그 무엇보다 최우선이자 최고, 최대의 것으로 말씀과 기도로 결단했던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의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고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행전6:1~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5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