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 한 분이 ‘아무도 모른다’의 후기를 써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아픈 기억을 되살린다.
내가 일본에 살았던 1988년 일어났던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나는 동경대 앞 홍고 산쪼매에 살았고, 그 사건은 바로 옆 ‘스가모’에서 일어났다.
그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인들은 경악했다.
나는 경악을 넘어서서 거짓말인 줄 알았다.
히로가즈의 영화가 나왔지만 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히로가즈의 영화는 주로 결핍된 가족의 이야기다.
경제가 성장하고 복지가 탄탄하면 할수록 결핍된 가족은 늘어난다는 역설.
사회 불평등은 커져만 간다.
삼성전자가 아무리 일본 기업을 이겨도 심해져 가는 현실이다.
내가 살았던 그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기였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복지라는 말을 했던 일본이었다.
유학생이었던 나는 ‘스가모 사건’이 일어났던 그해에 첫 아이를 낳았다.
돈이 넘쳐났던 일본은 유학생이었던 나도 도와주었다.
아이를 낳을 때 병원비도 무료였다. 낳자마자 아이를 위한 유아용품들이 배달되어 왔다. 매달 돈도 나왔다.
산모를 위한 우유도 구청에서 배달되고 한 달에 한 번 공무원이 방문했다.
40년 전의 ‘스가모 사건’은 지금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것 뿐만아니다.
그 당시의 ‘히끼꼬모리’ ‘오다꾸’ ‘연쇄살인’ ‘변태성범죄’ ‘가스라이팅 범죄’ ‘스토킹 살인’ 등 셀수도 없는 많은 일들이 지금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런 범죄들을 두고 프러파일러들은 오로지 범죄자 개인의 잘못으로만 이야기 한다.
이런 범죄들은 사회적 범죄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가 망해간다는 증거다.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프로파일러들은 이 사실을 도외시 한다.
‘아무도 모른다’ 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히로가즈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결핍된 가족들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사회는 혈연만으로는 도저히 가족을 만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 도저히 살아 갈수 없는 사람들, 방치된 아이들, 독거 노인들,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점점 결핍이 되어 간다.
국가의 복지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정책이라는 것은 섬세 할 수 없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자가 겸손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자기의 능력이 자기의 우수한 유전자와 노력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혁명을 꿈꾼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생각한다.
히로가즈 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