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호주 한호일보에 기고한 저의 글입니다.
세월호 4주기를 맞아 고찰해보는 '스텔라데이지 호'
들어가는 글
필자는 지금도 노란색 세월호 리본 뱃지나 악세사리를 항상 몸이나 가방에 지니고 다닙니다. 이걸 본 몇몇 분들은 “지긋지긋한 세월호, 그만 좀 해라”, “아니,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세월호 타령인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시비도 걸어옵니다. 며칠 전엔 필자의 차에 부착된 세월호 스티커를 누군가가 몰래 뜯어내 버리기도 했습니다.
필자도 되묻습니다.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확실히 아시나요? 당신의 자녀가 그 배에 있었어도 이러실 겁니까? 혹시 스텔라데이지호라고 들어보셨나요? 소중한 목숨들이 또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가려져서 반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그만 하라고요?”
왜 세월호 리본이냐고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사랑하는 조국 땅에서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안 생기도록 계속해서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며 나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스텔라데이지 호의 침몰, 국가의 침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채 3년도 안 되어 남대서양에서 ‘제 2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2017년 3월 31일, 공교롭게도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해 뭍으로 올라온 날,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큰 배 한 척이 또 침몰한 것입니다. 이름은 스텔라데이지호. 한국인 8명. 필리핀인 16명, 도합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으나 구조된 것은 필리핀 선원 두 명, 나머지 22명은 가장 가까운 뭍으로부터 3000 km나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실종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탄핵정국이었고,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대책본부엔 역.시.나. 정부는 없었습니다. 하긴 탄핵된 대통령의 권한대행이 자기 책상 명패 만드는 일부터 하고, 탄핵된 대통령 관련 문서 파기에만 주력하고 있었으니 뭘 더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고 소식을 전한 것도, 실종자 가족들이 모일 자리를 마련한 것도, 선사였습니다. 그러나 선사가 자신들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명확하게 밝혔을 리가 없지요. 해경과 외교부가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것도 침몰사고 후 이미 십수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에 건조되어 유조선으로 쓰이다가 2009년에 (주) 폴라리스 쉬핑이 사들여 기름보다 더 무거운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된 후, 바다 위를 항해했던 25년이나 된 노후선입니다. 대한민국에는 폐선시켜야 할 노후선박이 27척이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약 1000명 정도 되는 선원들이 배가 언제 침몰할 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생명을 담보로 근무를 하고 있지요.
스텔라데이지호는 세월호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노후선박에 대한 안전불감증, 관련부서의 무능하고 미진한 대응 등 세월호와 동일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장이 선사에 보낸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는 ‘2번 포트에 물이 새고 있다’ 였고, 생존 선원도 ‘출항할 때 배는 이미 기울어져 출발했다’ 라고 증언했습니다. 더군다나 이 배가 출항한 브라질 구아바 항은 사설항구로서 안전검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인원도 따로 두고있지 않았음이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도 제 2, 제 3의 스텔라데이지호가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배에 결함이 있다는 게 증명되면 될수록 선사가 불리해지기 때문에 선사는 계속 자연재해가 원인이라는 주장만 합니다. 폴라리스 쉬핑의 김완중 회장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황천항해를 했다” (황천에 갈 만큼 굉장히 힘든 항해) 라고 표현을 하며, 날씨가 워낙 안 좋아서 생긴 해상사고였음을 주장했죠. 그러나 기상 사이트, 기상 전문가들은 그 날 그렇게 나쁜 날씨가 아니었음을 밝혔습니다.
‘바다에서 사고가 날 경우 인접국가가 구조활동을 총지휘한다’는 국제해상기구(IMO)의 규정에 따라 우루과이가 이 침몰사고의 구조주체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조능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우루과이는 미군에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죠. 작년 4월 8일, 정찰 임무를 담당하는 미군의 초계기가 구명정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기름띠일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 보고서 내용 하나에 근거해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은 ‘기름띠 사진으로 확인됐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그 주장을 사실인양 그대로 확정보도함으로써, 사실상 우리 정부의 수색은 그 시점부터 중단되었습니다.
초계기가 찍었다는 그 사진은 우루과이 정부가 공개를 지연 또는 거부함으로써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왜 공개를 거부하는 걸까요? 공개가 되면 불리해지기라도 하는 어느 단체나 국가의 압력이 들어간 것일까요? 다행히 우루과이 내에서 시민단체들이 일어나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당면한 과제와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첫째, 실종자들을 수색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구명벌에는 비상식량과 낚시도구, 생존키트가 들어 있어서 실종 선원들은 적어도 100일은 넘게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16년 12월에 그리스 선박에 화재가 발생해서 선원들이 구명정으로 탈출했는데, 무려 14개월동안 표류했는데도 끄덕이 없었던 케이스가 존재합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남대서양의 기후는 폭풍우가 적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다른 지역보다 높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둘째,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합니다.
사고 후, 1년이나 넘게 지난 이 시점에 그들이 아직도 생존해있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현재 실종자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원하는 건 ‘진실규명’일 것입니다. 사고의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는 배와 함께 심해 3000m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수색해서 건지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게 사실이죠. 한 예로, 프랑스 정부는 심해 3000~6000m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하기 위해 2년 동안 4천만 달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블랙박스 회수를 위한 심해수색 장비투입이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올해 예산이 전액 삭감 되었습니다. 블랙박스로 확실하게 진실규명을 하고 침몰 원인을 밝혀내야 또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선사를 수사해야 합니다.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은 아직도 “황천항해” 였다는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선사를 압수수색하고 철저히 조사하여 책임을 묻고, 징계를 하고, 더 나아가 다시는 이런 사고가 생겨나지 않도록 노후선박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담당할 기관과 제도가 완비되어야 합니다.
넷째, ‘한국선급’을 개혁해야 합니다.
한국선급은 대한민국의 화물선 안전 점검을 도맡아 하는 곳입니다. 세월호도 이곳에서 점검을 받았다죠. 치명적인 문제는 이곳의 사외 이사들이 선박회사의 회장들이란 점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니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구조를 개혁해야 합니다.
다섯째, 미군 초계기가 찍은 사진을 받아내야 합니다.
만약 이 사진이 단순 기름띠 사진이라면 공개가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사진이 공개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 사진을 확보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나가는 글
문재인 정부 제 1호 민원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침몰원인이 무엇인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8명의 한국인 선원들을 포함한 22명의 선원이 아직 실종상태에 있으며, 이들은 구명벌에 의지해 지금도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두 대의 구명벌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종자들 모두가 산전수전 다 겪은 항해 전문가들이고, 구명정에 구비된 충분한 생존키트 때문에 아직도 그들의 생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색이 멈춰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의미’가 부여된 세월호 리본이 노란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기다림의 의미’가 부여된 스텔라데이지호 리본의 색은 주황색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할 바로 ‘그 구명정의 색’입니다.
곧 세월호 4주기입니다. 대한민국 선박들의 항해와 승선한 사람들의 목숨은 안전해졌나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글: 한준희
첫댓글 참...안탑깝다는 말 이외에는...세상 왜 이런가요...박사님 응원합니다.
세상은 아직 바뀐게 거의없죠... 힘들고 지칠만두 하실텐데 박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두 반성한번 하구가네요... 응원하구 고맙습니다.
저두 좋은세상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힘보테려구요... 너무나 작은힘이지만
박사님 홧팅!!!
저도 이런 거 안 해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은데...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한 세상이라, 힘들지만 시간을 쪼개어 활동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전선에서 애쓰고 있으신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힘내시길 응원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경쓰고 관심 가져야 할 일들이 참 많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세월호 지겹다는 말에 대한 말씀이 공감이 많이 갑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이제 얘기 안해도 되는게 아니죠. 왜 그랬는지 문제에 대한 원인 파악과 해결이 이뤄졌을때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는거죠.
4년이 아니라 40년이 지나도 말씀하신 것처럼 바뀐게 없다면 내려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매버릭45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아직 회사에서 수습이라.. 출근할 때 마다 눈치보느라 세월호 리본 가방에서 떼는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 다른데 세월호 리본 뗐다고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