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개념이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세상에 널려있어도 눈이 열리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뭇사람들이 이런 국면과 마주친 적이 왜 없겠는가. 공교롭게도 이 디카시는 12월24일 성찬 전야에 게시판에 올라왔다.
언젠가 성당에서 미사 중에 바로 저런 구조로 이미지가 포착되었다. 스탠드 그라스를 통과한 빛이 대리석 바닥에 그림을 반영하여 그림자로 내려왔다. 벽 위에는 대형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성령의 현존함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상징적으로 그날의 현상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던 차 이 디카시를 만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하고 반가웠다. 푸른 색을 띈 열린 문이나 투명창은 같은 의미이고 빛이 비추지 않는다면 벽의 반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타일을 붙이면서 생긴 교차 백선이 마치 십자가인 양 곁을 지키고 있으니 성탄 전야에 오신 아기 예수의 현대판 구유가 된다.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 춥고 헐벗은 나무를 집안에 들이시러 오신 셈이다.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 한 성가가사가 시인의 언어로 바뀌어 시에 등장하였다.
가슴이 뛰고 행복해졌다.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따뜻한 저 빛의 영상과 임재란 제목이 내게 온 공감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