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에는 400여만명의 만주족이 있다. 만주족은 한때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淸)을 세워 신해혁명(辛亥革命) 때까지 중국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여 년에 걸친 중국 지배기간 중 절대다수의 인구와 높은 문화수준을 가진 한족(漢族)에 동화되어 고유의 풍속과 언어를 잃고 한족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의 만주족은 청의 지배기간 중 만주지방에 남아 있던 자들의 후손이다. 현재의 만주족도 만주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민족의 정체성 조차 사라져 버린 민족이 되었다. 이들 만주족은 우리 민족과도 가장 가까운 이웃 민족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만주족이라 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적어도 고조선 이래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민족이다. 때로는 방관자로 있었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민족을 침입하여 약탈하고 빼앗고 점령했던 적도 있었으며, 때로는 우리 민족에게 복속되어 함께 국가를 이루기도 한 민족이다.
‘만주족’은 우리에게 숙신족,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면서 우리 민족 곁에 있었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시기에는 함께 한 국가를 이루었지만, 우리가 중화사상으로 중원과 가까이 지내면서 이들을 오랑캐라 여기며 멸시하였다.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큰 화로 작용되었다. 고려시대 금나라, 조선시대 청(후금)으로부터 우리 국토가 얼마나 유린당하였는가? 기실 만주족은 기원적으로 우리의 형제 민족이었다.
만주족의 근원지는 두만강과 압록강이다. 그리고 이 강들의 발원지인 백두산을 그들은 발상지로 여겨 성지(聖地)로 생각하고 있다. 백두산 밑으로 두만강 발원지에서 약 700미터 우측 지점에 있는 원지(圓池)를 그들은 발상지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1677년 중국 대륙을 통일한 강희제는 백두산을 청조 발상의 영산(靈山)이라 하여 제사를 올리게 하고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1천여 리에 달하는 지역을 ‘용흥지지(龍興之地)’(용이 흥하던 땅)로 규정하여 봉금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이처럼 발상지가 우리 민족과 겹치는 것은 민족의 기원신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백두산에서의 곰과 호랑이 등의 동물은 토템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알다시피 곰은 우리민족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호랑이는 어느 민족과 관계가 있을까? 바로 만주족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과 머리 강인 두만강 압록강이 만주족에게도 똑같이 여겨지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즉, 만주족은 계통적으로 우리 민족과 가장 가까운 형제 민족인 것이다.
비록 우리 역사에 있어서 만주족은 병자호란 등의 뼈아픈 기억을 남겨다 주었지만 만주족 자체는 재평가를 해야 한다.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겉으로는 청나라를 무서워했지만 속으로는 늘 깔보았던 흔적들이 많다. 북학파가 일어나 청나라를 실제적으로 본받자고 했지만 늘 만주족을 오랑캐라 하여 깔보았던 것이다. 실사구시, 실용주의, 역사를 현실 속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상황 인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이다. 몽고족에 대해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후 많이 알려 졌지만 만주족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역사의 평가가 아직 인색하다. 청나라의 강희제와 건륭제는 칭기스칸을 넘어서는 대단한 황제이다. 이들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군함을 제조하며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만주족은 몽고족과 아울러 동양사에 가장 빛나는 민족이다. 고대사와 중세사에 만주를 호령하였던 우리 고구려족, 조선족의 후손된 우리는 이 점을 중시해야 한다. 몽고족이 중세를 호령하고, 만주족이 중,근세를 호령했다면 이제 현세는 고구려족(조선족,한민족)이 호령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