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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법(筆法)
이 필법은 계해년 2월 임천 이이(李吏)의 집에서 지으신 것으로서
앞으로 되어질 일과 사업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수이성어필법(修而成於筆法)하니 기리재어(其理在於)일심(一心)이라
이(而)..말이을 이, 어(於)...어조사 어..... 을.를...에
닦아서 필법을 이루니 그 이치가 한 마음에 있도다.
의역:닦아서 글씨 쓰는 법을 이루니 그 이치가 한 마음에 있도다.
.상오국지목국(象吾國之木局)하니 수불실어삼절(數不失於三絶)이라
상(象)..형상 상, 수(數)..운수 수
우리나라는 목국을 상징하니 삼절의 수를 잃지 말아라
의역:우리나라는 목국을 상징했으니 운수가 삼절 운을 잃지 아니 하니라.
*목국(木局).. 옛날 역학을하는 사람들이 육갑과 오행으로 풀이해서 우리나라의 상을 木局이라고 했는데 그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
*삼절(三絶)..목국에 따라 다니는 세 번의 절운
.생어사득어사(生於斯得於斯) 고이위선동방(故以爲先東方)이라
사(斯)..이 사, 고(故)..그러므로 고, 이(以)..써 이
여기서 나서 여기서 얻었는 고로 동방부터 먼저 하느니라.
의역:여기에서 나서 여기에서 도를 받았으니 동방부터 먼저 하느니라.
*사(斯)..이 곳, 동방인 우리나라.
.애인심지부동(愛人心之不同)하여 무이표어작제(無裏表於作制)하라
이(裏)..속 이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을 어여삐 여겨 글을 쓰는데 안팎이 없게 하라.
의역:사람의 마음이 서로 같지 않음을 어여삐 여겨 글을 쓰는데 있어서 안과 밖이 없이 쓰니라.
.안심정기시획(安心正氣始 )하니 만법재어일점(萬法在於一點)이라.
마음을 편안히하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획을 시작하니 모든 법이 한 점에 있느리라.
의역: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글씨 획을 쓰기 시작하니 모든 법이 하나의 점을 찍는데 있는 것이니라.
*시획(始 )
획을 긋기 시작한다.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전기 유어필호(前期柔於筆毫)하고 마묵수두가야(磨墨數斗可也)니라
먼저 붓끝을 부드럽게 할 것이요, 먹은 여러말을 가는 것이 좋으니라.
의역 : 먼저 붓 털을 부드럽게 하고 먹을 갈고 글씨 쓰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 좋으니라.
*전기(전기)..먼저, 처음으로 유(柔)..부드러울 유
*필호(筆毫)..붓 털
*마묵(磨墨)..먹을 간다. (磨)갈 마 (墨)먹 묵
*수두(數斗)..글씨를 헤아린다. 글씨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헤아린다. (數)..헤아릴 수 (斗)...글씨 두
.택지후이성자(擇紙厚而成字)하니 법유위어대소(法有違於大小)라
종이는 두터운 것을 택해서 글자를 쓰니 법은 크고 작음에 다름이 있도다.
의역: 종이는 두텁운 것을 택해서 글씨를 쓰니 법은 크고 작음에 다른 것이 있나니라.
.선시위이주정(先始威而主正)하니 형여태산층암(形如泰山層巖)이라
먼저 위엄으로 시작하여 바르기를 주로 하니 형상이 태산의 층암과 같으니라.
의역: 먼저 위엄있게 시작해서 바른 것을 주장하니 형상이 태산의 층층바위와 같으니라. *암(巖)..바위 암 -포덕145년9월16일-
기리재어일심(其理在於一心)
경전 [필법]에서 보면 "마음을 가다듬고 글씨를 쓸려고 할 때에 그 이치가 일심에 있다(수이성어필법 기리재어일심 修而成於筆法 其理在於一心)"고 하시고
그 다음 구절에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기운을 바르게 하고 획수를 쓰기 시작하니 일만가지 법식이 한 점을 찍는데 있다.
(안심정기시획 만법재어일점 安心正氣始 萬法在於一點)"고 하셨습니다.
글씨를 쓸때에는 그 사람의 정신과 기운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서 한 획씩 그어가야 하고 최후에 한 점을 찍어서 한 글자를 이루어 놓을 때에 비로소 성공의 쾌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세상의 만리만법이 그러한 이치로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 일심과 수심 [一心 vs 守心]
이와 같이 도를 닦는 사람에게는 오직 그 도를 위한 일심이 있을 뿐이요, 그 밖에 사심이나 잡념이 있으면 그 닦는 도가 바른 도가 될 수 없으며 그 닦는 마음이 옳은 마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원래 일심이라는 말은 우리 경전에만 독창적으로 쓰여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글이나 옛말에도 이와 통하는 글과 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려 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선생께서 지으신 시조에 보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하였는데 여기에도 일편단심이라는 구절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한번 마음을 허락한 남편 이 몽룡을 위해서 변 사또의 권력과 부귀를 준다하는 회유와 협박에도 오직 일편단심으로 이 몽룡을 향한 마음을 지켜 정절을 지켜 나아가고자 하였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사(敎史)에 보면 대신사께서 해월신사에게 도통을 전수하실 때 [용담수류사해원 검악인재일편심 龍潭水流四海源 劒岳人在一片心]이라는 법문을 주셨는데 여기에도 일편심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법문에서 용담물이 흘러가서 네 바다의 근원이라 하신 것은 대신사의 심법이 이와 같이 온 세상의 지도원리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요, 검악에 사람이 있어 일편단심으로 지킬 것이다 라고 한 것은 해월신사께서 이 도법을 지켜서 이 세상에 전하게 될 것이라는 심법전수의 암시인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일편단심이나 일편심이나 모두 한 목표를 향하여 마음을 바친다는 거룩한 마음가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살펴 볼 때에는 천양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은의 일편단심은 군주를 위한 신하로서의 충성심이요, 또한 한 지아비를 섬기기 위한 아내로서의 수절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신사께서 해월신사에게 주신 이 일편심은 한 사람의 스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극대도인 人乃天主義를 세계만방에 전파하기 위하여 한 마음으로 지키고 가꾸어서 후천 오만년동안 영원히 전수하라는 교훈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월신사께서는 이 교훈을 높이 받들고 甲子 3월10일에 참형당하신 대신사의 뒤를 따라 순절하지 않으시고 30여년 동안 강원도 태백산. 소백산을 두루 숨어 다니면서 이 道와 이 主義를 위해서 일심으로 지켜 3세교조 의암성사에게 심법으로 전수하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 일편심을 보아서 순의 순절(順義 順節)하는 일편심과는 크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일심과 정심 [ 一心 vs 正心 ]
도를 닦는 사람에게는 一心이 중요하지만 또한 正心이 없이는 도성덕립을 얻을 수 없으며 도를 믿는 자에게는 경외지심(敬畏之心)이 없이는 신앙이 확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팔절에서 '도가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나의 믿음이 한결같은가 헤아려 보라' 하셨습니다. 나의 믿음이 굳굳하지 못하면 항상 의심이 따르게 마련이니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이 설 수 없는 것이며 내 마음에 한울님이 계시다는(시천주;侍天主)믿음이 흔들리는 곳에 경외지심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경외지심이 없으면 수심정기(守心正氣)가 될 수 없으니 수심정기가 되지 못하면 도성덕립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팔절에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든 죄 없는 땅을 죄 있는 것 같이 하라' 하셨으니 '죄 없는 땅은 즉 한울님의 바른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이 한울님의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기 때문에 때와 장소가 있을 수 없으며 일시라도 이 마음에서 이탈된다든지 어긋남이 없이 지극한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정심수도하여야 비로소 도를 믿고 도를 닦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도덕가에서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 바 천지라도 경외지심 없었으니 아는 것이 무엇이며 천상에 상제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 아닐런가' 하시어 한울님이
높은 천상에 계시다고 믿어온 무지한 세상 사람들을 경고 하시었습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 크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심학이라 하는 것입니다.
교훈가에서 '열세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심학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하였어라. 현인군자 될 것이니 도성덕립 못 미칠까'하여
수심정기의 심학은 오직 열세자 주문을 독공함으로서 현인군자도 되고 도성덕립도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수덕문에서 '대저 이 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나니라.
믿을 신자를 풀어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른 말이 있는데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버리되 거듭 생각하여 마음에 정하라. 마음을 정한 후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 이라고 하신 것을 보아도 저간의 진리를 알 수 있는 갓입니다.
녹용을 발견한 포수의 눈에는 검산도수도 보이지 않는 것이며 대하장강도 장애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은 오직 저 녹용이라는 목표물에만 그 마음과 그 정신이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번 옳다고 마음에 작정한 뒤에는 이런 저런 감언이설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일심이요 정심인 것입니다.
우리 천도교의 백오십년사를 통해서 신성사님들을 위시하여 수십만 선열들이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홍모(鴻毛)와 같이 버리고 오직 대도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정신과 육체를 바친 것도 오직 지향하는 주의와 목적구현을 위한 일편단심에서였던 것입니다. 홍모..큰 기러기의 털/가벼운 사물
3. 일심과 번복지심 (一心 vs 飜覆之心)
우리는 앞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나 도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은 마음과 경외지심을 지켜서 오직 정성과 공경으로 수심(守心)과 정심(正心)을 가지고 일심으로 믿음을 바로 가질 때 비로소 도성덕립의 경애(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심이 참으로 재사심정하여 마음에 작정한 후에 이런 저런 말을 듣지 않는 정심과 일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수도자의 요결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탄도유심급에서 지적하기를 '한갓 마음이 지극해서만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바른 마음을 가지는데 있느니라(비도심지 유재정심 非徒心至 唯在正心)'하셨습니다.
일심은 물론 도를 믿는데 있어서 지극한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도를 믿기 위해서 우선 도에 귀의하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그 믿는 진리와 닦는 도가 바르고 참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이 되지 못하고 어떤 사심이나 물욕지심을 가지고 도에 들어오면 그 믿음이 아무리 지극하다해도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이 사회와사람들에게 해독을 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전율케 했던 백백교(白白敎)나 인천교(人天敎)나 오늘날 사회에서 지탄받는 수많은 사교(邪交)들이 바로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신앙하는 마음이나 교주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그 점을 볼 때 그보다 더한 지극한 마음과 정성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도덕적면에서 법률적면에서 볼 때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행위를 저질러 놓은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백백교 [白白敎]*
요약
동학(東學) 계통의 백도교(白道敎)에서 파생된 유사종교.
본문
조선 후기 철종(哲宗) 때 최제우(崔濟愚)가 유(儒) ·불(佛) ·선(仙) 삼도(三道)의 교리를 종합 ·절충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는데, 이 동학에서 많은 유사종교가 파생되었다. 백도교는 그 중의 하나인데, 나중에 백도교가 다시 분파하여 인천교(人天敎)와 백백교로 갈라졌다. 1923년 차병간(車秉幹)이 경기도 가평(加平)에서 퇴폐한 민심을 교화하여 광명세계를 실현한다면서 포교(布敎)를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뚜렷한 교의(敎義)나 깊은 사상적 근거를 갖지 못한 사이비종교로서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었다.
더구나 전해룡(全海龍)이 교주(敎主)가 되면서 백백교는 하나의 범죄단체화하여, 우매한 민중을 현혹하여 그들의 재물을 편취하고 여신도(女信徒)들을 속여 간음을 자행하였다. 전해룡은 일종의 변태성욕자로서 많은 여신도들이 보는 가운데서 정사(情事)를 벌였으며, 이를 신(神)의 행사라고 하였다. 이 같은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비밀을 누설할 염려가 있는 자들을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끌고 가서 가차없이 죽여버렸는데, 이 일을 책임진 자를 벽력사(霹靂使)라고 하였다.
백백교에 들어가 재산은 물론, 딸까지 바친 신도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백백교의 범죄행위를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그들의 악행이 백일하에 드러나 당시의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경찰에 쫓긴 전해룡이 자살함으로써 끝장이 났는데, 그들에게 피살된 시체만도 48구(具)가 발견되었으며, 그 밖에 시체마저도 나오지 않은 희생자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전해룡의 두개골은 범죄과학연구소에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서 보관되어 있다.
*사건으로 본 한국의 종교 - '일제하 사교집단' 白白敎 *
재산뺏고 정조뺏고 배교땐 목숨까지…父子 2대에 걸쳐 살인-사기행각
백백교(白白敎) 사건이라면 지금도 으스스 몸을 떨게 한다. 일제시대 수많은 사교집단-사이비종교-이단종파들이 판을 쳤지만 백백교처럼 오랫동안 베일에 덮혀서 수백 명의 신도를 살해하고 여성신도들을 간음하면서 교세를 유지한 사교집단도 흔치 않다.
살인광마 사교집단인 백백교는 1900년 평안남도 영변군 근산면 화현동의 가난한 농사꾼으로 동학교도였던 전정운(全廷雲)이 백도교(白道敎)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다가 25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3년동안 도를 닦아 천지신령의 도를 터득하였다고 주장하며 함경남도 문천군 운림면 마양동에 백도교를 창설했다. 교명을 백백교로 고친 전정운은 1904년 6월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전 인류가 멸망하지만 백백교를 믿으면 동해바다에 새로 생길 신선의 땅으로 피난하여 불로장생하게 된다면서 신도를 끌어 모았다.
전정운이 감언이설로 신도들을 미혹시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을 넘으면 바다가 있고 거기에 아름다운 섬이 떠 있는데 거기는 사철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일하지 않아도 농사는 저절로 되어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후는 항상 따뜻하여 눈도 비도 거의 없고 꽃 향기만 그윽하니 사람들은 수백년을 예사로 산다. 그 섬의 소유는 백백교이다. 잘 개간된 토지 위에 궁궐같은 집들을 이미 잘 지어 놓았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므로 이 이상향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백백교에 들어오라. 이 신선들의 세계에서 돈 따위는 필요치 않고 다만 보화만을 기준으로 삼으니 속세에서 사용하는 돈 따위는 모두 버리고 들어오라"
대부분의 종말론들이 그러하듯 백백교의 경우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1904년 6월이 지나도록 천재지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동해의 유토피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도들이 동요하자 반발하는 신도들을 죽이고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으로 본거지를 옮겼다가 다시 근동명 오성산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신도를 모은 전정운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60명이 넘는 첩을 거느리고 호사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1919년 51세의 나이에 본거지를 새로 옮긴 가평군 화악산 기슭에서 병사하였다. 그동안 첩 4명을 생매장하고, 장인이자 수제자인 우광현(禹光鉉) 등과 함께 신도 최인상 최인혁 형제 가족 8명을 살해하는 등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교주 전정운이 죽자 장남 용주(龍株)와 차남 용해(龍海) 사이에 재산싸움이 벌어졌다. 전용해는 재빨리 외할아버지 우광현과 결탁하여 재산을 차지하고 차병간을 백백교의 새교주로 내세웠다. 이에 패배한 전용주는 별도로 인천교(人天敎)를 만들어 교주가 되었다.
백백교와 인천교는 각기 포교활동을 통해 신도 수를 늘려가는 한편, 여신도 간음과 재산탈취 등을 예사로 하였다. 1923년 전용해가 형을 내쫓고 인천교까지 장악하여 가평의 본거지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대교당을 짓게 된 것은 그만큼 갈취한 신도들의 재산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사이비 교리에 민중들 현혹돼 백백교의 중심 교리는 '한 사람(교주)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하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것으로, 이는 유불선 3교가 모두 성쇠를 거듭하며 3천년을 흐르는 동안 그 본질이 쇠퇴하고 거죽만 남았으므로 새로운 종교가 요구되고 그 것이 바로 백백교라는 것이다.
그들은 신도들에게 백백교를 믿으면 살아서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가게된다면서 우매한 민중을 끌어 모았다. 입교식은 돈 1원을 내고 행하는데 먼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 후 맑은 물 한 그릇을 정히 떠놓고 세번 손을 들었다 놓은 후 "제불자 제불자 천혼도우 제여자 제여자…" 운운 하는 괴상한 주문을 7번씩 세차례 외는 것이었다.
신도는 성별에 따라 평상시에도 늘 주문을 외워야 한다. 성인 남자의 경우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따위다.
전용해는 1923년 7월 조선총독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포교허가를 받아 3대 교지를 만들었다. 첫째는 '백백교는 유불선 3교를 종합한 것이며 교조의 결박한 심령으로 세도인심을 결백하게 하고 이를 믿으면 몸과 마음이 다 결백해지고 일체중생은 모두 선남선녀가 된다'. 둘째는 '전세계는 얼마 지나지않아 신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한다. 그러나 백백교도만은 정감록에서 구인백백(求人白白)이라고 한 것 같이 구원을 받는다'. 셋째는 '30척 이상의 대홍수 재앙이 있은 후에 동해에 새로운 섬이 생겨나는데 이곳은 기린과 봉황이 춤추고 불로초가 있어 양식걱정이 없고, 교도는 질병과 재앙이 없어 불로장수하여 극락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자식없는 사람은 자식을 두게된다'는 허황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면서 희망없는 삶을 살고있던 가난한 농민들과 어리석은 민중에게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줄기 구원이고 복음이었다. 거기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대회당은 믿음을 주었다. 백백교에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은 교주에게 헌상되었다. 남자들은 산너머 이상향의 목적지에 보낸다면서 모두 죽여 없앴다. 교주 전용해는 아버지 전정운의 잔인함과 음란함을 보고 배운 뒤에 더 흉악한 간계를 보태어 무려 14년간이나 비밀을 지켜오며 음란과 살인극을 자행하였다.
총독부 경찰, 초기에는 묵인
교주 전용해는 학식이 없는 무지한 인간이었지만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마음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총참모격인 이경득과 문봉조 등 간부들을 각도에 보내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뒤 그 딸을 전용해의 시녀로 바치게 하여 정조를 유린하였다. 전용해는 이렇게 끌어들인 젊은 여성 4∼5명 씩을 항상 첩으로 거느리다가 살해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이런 속에서도 백백교의 교세는 늘어나 가평소재 일본인 경찰서장이 인사를 오기도 했다고 한다.
1930년 전 교주 전정운이 첩 4명을 생매장한 사실이 뒤늦게 발각돼 백백교 간부에 대한 일제검거령이 내렸으나 전용해 등은 교묘하게 잠적하여 검거를 피할수 있었다. 해마다 거액을 일경에 바쳤던 터라 경찰에서도 애써 잡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용해는 부하들에게 외조부이자 늙은 교주인 우광현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 명실상부한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전용해는 금광개발을 한다면서 탄광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 광산은 금을 캐는 것이 아니라 화약폭발음 소리에 맞춰서 백백교도들의 살인장소로 이용되었다.
전용해와 백백교 간부들은 신도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호화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살인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전용해는 1935년 서울 신당동으로 거소를 옮기면서 자신의 살인마각을 알고있는 이복동생 전잡비와 그의 여동생까지 살해하는등 인면수심의 만행을 거듭하였다.
백백교의 범죄사건은 '사소한' 일로 희대의 사교 교주의 죄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부친이 백백교에 빠져 여동생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고 전재산을 빼앗긴 유혼룡이란 청년이 교주 면담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흑막이 폭로되었다. 건장한 청년신도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나타난 전용해가 유혼룡에게 거액의 헌금을 강요하자 유혼룡이 이를 거부하면서 백백교를 성토하자 전용해는 칼을 빼들고 격투가 벌어졌다. 싸움판이 벌어진 곳은 바로 동대문경찰서 왕십리주재소 옆이었다. 싸움소리에 놀란 모리야 순사부장이 순사들을 이끌고 급히 달려와 이들을 체포하였다. 이 틈에 전용해는 애첩 등을 데리고 양평군 비밀장소로 도주하였다.
경찰은 8개월에 걸쳐 전용해의 아지트와 전국 각처의 백백교 비밀장소에서 346구의 시체를 발굴했다. 전용해는 몇 달후 용문산 도일봉 능선 솔밭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세간에는 신출귀몰한 전용해가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잡아다가 자기의 옷을 입히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고 도망쳤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1941년 1월에 마무리된 백백교사건의 선고공판은 혼자서 170명을 죽인 김서진, 167명을 죽인 이경득, 127명을 죽인 문봉조 등 살인마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십수명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희대의 살인마 사교사건은 막을 내렸다.(<신시(紳市)>, 1992년 11월호, '역사에 누락된 백백교사건의 진상'등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김 삼 웅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수덕문에서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도성덕립)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게 있거늘(있느니라) 혹자는(혹은) 떠돌아 다니는(떠도는) 말을 듣고 도를 닦노라고 하며(닦으며) 혹자는(혹은) 흘러다니는 주문을 듣고 주문이라 외우고 있으니(떠도는 주문을 듣고 외우니) 이 어찌 잘못이 아니며 감히 민망한 것이 아니겠는가(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며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도성덕립 ∨재성재인∨ 혹문유언이수지 혹문유주이송언 기불비재 감불민연
道成德立 在誠在人 或聞流言而修之 或聞流呪而誦焉 豈不非哉 敢不憫然
하시어 일부 제자들의 탈선된 수도방법을 크게 경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정심과 일심에서 크게 경계하여야 할 마음을 대신사님께서는 번복지심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번복지심은 우리 천도교의 사대계명의 하나입니다.
[번복지심두게 되면 이는 역시 역리자]
어떤 도와 진리를 믿는 자로서 한번 작정한 마음을 뒤집는 것은 그 도와 진리에 대한 최대의 죄악이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최대의 불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 종단만이 아니고 어떠한 국가 사회에도 금물이니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같은 도와 진리를 신봉할지라도 스승님께서 가르치신 정도정법(正道 正法)을 바로 체행하지 않고 자기의 사견이나 사념에 사로잡혀 정도를 어겼을 때에는 그 믿는 마음이 아무리 일심이요 정심이라고 하더라도 한울님의 정안(正眼)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정리정법(正理正法)에 어긋나는 번복지심이 되는 것이며 역리자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상가나 정치인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 종교인들 중에도 자기들의 처음 먹었던 지조를 사리사욕에 사로 잡혀 헌 신짝처럼 차버리고
동가식서가숙하는 무절조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변절자라고 지탄합니다.
그리고 종교인이나 신앙인으로서 아집아착(我執我着)에 사로잡혀 종문을 난립하거나 파벌을 일삼는 예를 우리는 종종 보고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 정심과 일심에 어긋나는 번복지심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떤 수도자나 신앙인이나 사상가. 정치인. 종교인을 막론하고 자기가 지향한 그 주의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초지일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을 일심이요 정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