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각박해질수록 사람의 정이 그리워진다. 그러다보니 모든 일의 으뜸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간절히 하게 되는 요즘이다. 제 아무리 빼어난 자연이라 해도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 음악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장맛비가 그칠 듯 그치지 않는 8월의 둘째 주 토요일, 물어물어 경주시 외동읍 석계1리 산 173의 1번지에 위치한 석문사(石門寺)를 찾았다. 참 소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 도량은 마을사람들이 그저 ‘앞산’이라고 부르는, 제법 높은 산자락에 터를 잡고 있다. 예쁘장한 자연석에 힘이 넘쳐나는 글꼴의 표지석 아래 논 가장자리를 다듬어 조성한 손바닥만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새소리 정겨운 산길을 10여분 올라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힐 즈음 어디선가 개울물 흐르는 소리 졸졸졸 들려온다.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플라스틱 대야를 모자처럼 쓰고 있는 항아리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섰다. 여간 생뚱맞은 게 아니다. 산길에 왠 항아리인가 의아해하는 사이 상상력이 풍부한 나그네는 ‘일주문 대신 놓아둔 것’쯤으로 해석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 멈춘다. 갈래 길이 아니어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지 않아도 되건만 절집 주인은 오는 이가 혹여 길을 잘못 들어설까 항아리에게 길라잡이 소임을 맡겨놓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사람에 비긴다면 시쳇말로 S라인이라고 할 자태를 뽐내는 항아리 옆에는 고비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사이로 네모반듯한 화강석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라고 하지만 쓰임새를 따지자면 없어도 그다지 불편함이 없으련만 절집 사람은 흔하지 않은 방문객을 위한 배려로 굳이 보폭을 넓히지 않아도 좋을 산골짝 개울에 화강석 다리를 놓았다. 그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장맛비로 티끌 하나 없이 말간 얼굴의 화강석 다리 또한 자연의 일부로 고비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 나그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10여분 올랐을 즈음 흐릿한 글씨의 ‘운아전통사찰음식연구원’이라는 현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작은 현판은 눈을 한껏 뜨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풍상을 겪었지만 그 자체로 정겹다. 미리 약속이 돼 있었던 만큼 인기척 드문 산사에 발걸음 옮기는 소리가 들렸는지 유난히 눈이 맑은 운아 스님이 넓지 않은 마당까지 마중을 나와 반겼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해맑은 얼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처럼 맑은 눈의 스님은 나그네를 위해 스님의 표현대로라면 은사 스님 것을 ‘째벼’ 온 차를 정성스레 우려 내놓았다. 3시간여 담소를 주고받는 사이 차는 ‘째빈’ 차에서 철관음까지 무려 세 종류의 차를 맛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곳 석문사는 석계마을이 한 눈에 바라다보는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도량으로 무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운아 스님은 “도량 바로 뒤에 범굴로 불리는 자연동굴이 하나 있어 범이 마을을 잡아먹는 형국으로 50년 전 어느 스님이 마을을 살리려면 굴 앞에 절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며 “석문사는 이 스님의 말을 귀담아 들은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직접 지은 절집”이라고 소개했다. 워낙 터가 센 곳으로 그 사이 오래 머문 스님이 별로 없는 가운데 불국사 성타 스님의 도반인 노봉우 선사가 중창, 저술활동과 함께 포교활동에 전념하다 2001년 4월 7일 입적했다. 이 같은 선사의 공을 기리기 위해 도반인 성타 스님의 제의로 세운 공덕비가 도량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운아 스님이 스스로 토굴이라고 하는 이곳에 온 것은 노봉우 선사 입적 후 2년이 지난 2003년께로 어느덧 7년째 생활하고 있다. 스님은 그저 기도정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운아전통사찰음식연구원을 꾸려 절집 음식을 대중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어지간히 큰 절의 산신각 정도에도 미치지 못할 도량이지만 장독대가 제법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솔바람이 무시로 머물다가는 이곳 장독대에는 매실이며 된장 등 발효음식들이 맛의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전국 각 사찰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TV, 동국대학교 등에서 전통사찰음식 만드는 법을 강의하고 있는 운아스님은 “허기질 때 조청 한 숟가락만 먹으면 바로 회복이 된다”며 “이처럼 발효음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또 “음식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들고 또한 먹느냐에 따라 효능이 달라질 수 있다”며 “그저 먹는 음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환을 치유할 수 있어야 사찰음식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어느 시기가 되면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대신 사찰음식을 직접 만들고 또한 체험과 기도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이 차방으로 사용하며 어쩌다 찾아오는 나그네를 맞이해 차를 대접하는 법당 옆 작은 방에는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과 제비를 소박하게 조각한 자그마한 찬장 그리고 벼루통 등 작아서 더욱 정이 가는 세간이 스님과 벗하며 지내고 있었다. 석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지만 종단에 입적이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스님은 “도량이 위치한 ‘앞산’이 개인소유여서 절집을 지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껏 종단에 적을 올리지 않은 것 같다”며 “노봉우 선사께서 주석하신 적 있는 불국사에 입적하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님 스스로 토굴이라고 할 정도로 좁은 도량이지만 산사의 고즈넉함에 취할 수 있는 석문사는 행정구역상 경주시에 위치해 있지만 다운동에서 20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어 한 나절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한편 운아 스님은 9월 7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정광사에서 관심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통사찰음식 강좌를 진행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