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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는 새떼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철새관광 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보는 것이 조류 인플루엔자 파문을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철원평야의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은 마치 올 철새관광을 자포자기한 것 같아 씁쓰름하다. 민통선 군검문소 길바닥에 생석회를 뿌려놓는 정도로 '특별방역'을 하고 있다는 현지 소식이다. "생석회가 길바닥에 깔리는 정도만 돼도 소독효과가 있다"는 관계자의 해명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조류 인플루엔자와 철새관광은 그런 물리적 관계에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역만리에서 찾아오는 철새떼가 어느 날 갑자기 '인플루엔자 폭탄'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감성적 관계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충남 서산의 '천수만 세계 철새 기행전'을 본받으라고 권장하고 싶다. 관광객들이 방역 약품이 잔뜩 묻어나는 부직포를 밟고 탐조대에 오를 수 있도록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저기 새까맣게 앉아 있는 게 철새로 보입니까? 제 눈에는 전부 다 보물로 보입니다"란 안내자의 너스레가 믿음으로 다가온다고 봐야 한다. 그곳에서도 올 철새관광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수만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렇다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80㎏ 한 가마에 15만5000원 하던 서산 쌀을 '기러기 오는 쌀'로 브랜드를 달고 가마당 18만8000원에 내놓고 쌀값 고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철새를 '돈'으로 바꿔놓은 곳은 철원평야가 원조라고 봐야 한다. 철원 오대미가 밥맛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명품이 된 게 아니다. 두루미, 재두루미는 철새 중의 철새인데, 그 길조가 아무 데나 내릴 턱이 없다. 농약, 폐수로 오염된 논에 두루미의 먹이인들 깨끗할 리 없다. 그 까다로운 새가 오염된 논에서 먹이를 찾지 않는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 바로 '청정쌀'이었고, 그것이 철원 오대미의 주가를 높여 국제선 기내식으로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유독 철원평야에서만 벌어지는 철새 모이주기 운동이나 철새가 맘놓고 내리도록 생산성 저하를 무릅쓰고 추경(秋耕)을 하지 않는 미담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낸 성공 사례라고 할만 한 것이다.
철원평야는 지금 가치 있는 자랑거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칫 두루미가 내리는 청정지역이 두루미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 잠재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는 찰나에 직면해 있다고 봐야 한다. 팔을 걷어붙이고 이 위기를 극복할 사람들이 과연 누구이겠나. 철새 도래지에서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