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고 해서 송파(松坡)라 불리웠다.
한강연안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선사시대부터 신석기인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고대국가성립과 함께 고조선의
생활무대가 되기도 하였고, 백제의 시조 온조왕부터 21대 개로왕까지 약 493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곳으로, 4세기 후반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7세기 후반까지 한강유역은 백제(하남위례성 및 한성), 고구려(남평양성), 신라(한산주, 남한산주, 한주)의 세력다툼이 치열하였던 지역이다.
조선왕조 초기 세종때 왕명으로 지금의 잠실지역에 뽕나무를 심고 동잠실이라 불렸다. 지금의 석촌호수에 있던 송파나룻터는 고려와 조선왕조에 이르는 1천년 동안 한성, 충청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상업의 교통로였으며, 송파장은 전국 각 지방의 산물이
집산되는 중심지로 5일장이 아닌 상설점포가 일찍부터 형성되었으며, 조선시대 15대 장터중의 하나였다.
송파사거리 동쪽 모서리 도로 공원에는 이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송파유래비'를 건립하였다.
그 송파유래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긴다.
송파유래비 건립취지
한강은 억만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강유역 지금의 롯데월드 중심지역에서
선사시대부터 송파진에서 270여호가 삶의 터전을 잡아 살았으며 삼남(충청 영남 호남)과
서울(한양)을 이어주던 조선후기의 송파나루터로도 유명하다.
송파 5일장은 전국에서 우마가 줄지어 모여들어 도성의 문물을 실어날으느라고 분주하였고
한강에 황포돗배는 줄을 지어 오르내렸고 정월과 7월이면 보름달 아래 송파장에서 백중놀이가무를
즐기는 멋을 알았으며 송파산대놀이 무형문화재 49호로 지정받아 지금의 한국가면극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송파장에서 주도하기도 하였으며
1925년 을축년 7월 대홍수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가락리 410번지 일대로 이주하여
면소재지로 크게 번창하였고 1947년 4월 송파인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적산가옥을 인수하여
광서중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지금의 일신중학교로 개명하여 운영 중에 있으며
송파 5일장과 우시장이 전국에 널리 알려져 명성을 날리며 풍요롭게 살갔으나
조국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 지역이 번창하자 정든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 인근지역에 흩어져
우리 후손들은 고향을 잃은 아쉬움을 달래려 작은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세워 보존하고자 하니
후손들이 찾더라도 자신의 짙은 뿌리를 실감하여 더욱 성실한 일꾼으로 보람차게 살아 가기를 기대하노라
2008년 12월 27일 건립
송파대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