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Pythagoras, BC582? ~ BC497?]
그리스의 종교가 ·철학자 ·수학자.
국적 : 그리스
활동분야 : 종교, 철학, 수학
출생지 : 그리스 에게해(海) 사모스섬[島]
에게해(海) 사모스섬[島] 출생.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에서 비밀교단을
결성하고, 그 후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당시의 밀의종교(密儀宗敎)의 형식에 따라 절제 ·질박(質朴)·심신의 단련을 목표로 하고, 신들과 양친 ·친구 ·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信實)과 자제 ·복종을 설파하였다. 그의 종교적 교의는 윤회(輪廻)와 사후의 응보로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육식을 금하였다.
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一絃琴)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數比例)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과를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또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을 1이라 할 때 √2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 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多面體)’로 불리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중외비(中外比)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星形五角形)을 그의 교단의 휘장(徽章)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그의 영향은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球形)임을 확신하고, 또 중심화(中心火)의 주위에 지구와
태양 및 기타 행성이 원궤도로 회전한다는 일종의 지동설을 제창하였으나, 다른 학자들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가 종교단체 겸 학술단체를 창립하고, 당시 종교부흥 운동에 학문을 결부시키려 했다. 당시의 밀의종교(密儀宗敎)의 형식에 따라 절제·질박(質朴)·심신의 단련을 목표로 하고, 신들과 양친·친구·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信實)과 자제·복종을 설파하였다. 그의 종교적 교의는 윤회(輪廻)와 사후의 응보로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육식을 금하였다.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금욕과 계율에의
복종을 중히 여기고, 원시적 타부(taboo)의 흔적을 나타내는 계율, 아폴론(Apollon)
숭배의 주요 관념인 결신등을 믿었다. 그들은 이 영혼을 진정시키는 음악과 영원 불변의 진리를 가르티는 수학의 연구에 전진한 것이다.그에 의하면 수는 만물은 근본물질이며 원형이고, 만물은 수의 관계에 따라서 질서 있는 코스모스를 만든다고 했다. 우주를 장식이라든가 질서의 뜻을 가진 코스모스라 이름 지은 것도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수학을 영혼의 정화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기하학, 수론, 측량술, 계산술의 단계를 넘어서 이론에 까지 발전되었다. 수를 만물의 원리로 삼은 것은 수학, 천문학 발달에 좋은 자극이 되었으나, 한편 너무 조급히 수 및 그 관계를 가지고 모든것을 설명하려 하여, 무의미한 수의 신비주의에 빠져 버린 결과가 되었다. 이 학파는 수학적 법칙이 우주를 관철하고 있음을 주장하여, 수학을 실용수학 영역에서 이론수학으로까지 높인 점에서 불멸의 공적을 남겼다. 그의 "피타고라스 정리"는 유명하다. 특히 이 학파의 일원은 자신이 발견한 사항이나 교의를 외부에 발설하는 것을 일체 금하였으며, 모든 발견은 피타고라스의 공으로 돌렸다. 이 학파의 생활은 매우 검소하고, 엄격한 교의에 따라
정진하였으며, 신비한 의식을 행하였다.
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一絃琴)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數比例)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과를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또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을 1이라 할 때 ?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 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多面體)’로 불리는 정사면체·정육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중외비(中外比)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星形五角形)을 그의 교단의
휘장(徽章)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
그의 영향은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球形)임을 확신하고, 또 중심화(中心火)의 주위에 지구와 태양 및 기타 행성이 원궤도로 회전한다는 일종의 지동설을 제창하였으나, 다른 학자들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