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나는 내가 진격 명령을 내렸을 때의 부하들의 함성을 잊을 수가 없어. '진격!' 나는 그들의 나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의지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 나는 대열에 섰을 때의 그들의 사기를 느낄 수 있었어. '우리는 당신을 따르겠소. 조지, 우리는 당신을 따르겠소. 우리는 당신을 따르겠소..' 아, 그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말을 충실히 지켰는가! 그들은 나를 따라,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내 명령을 따라 전방으로 , 죽음을 향해 나아갔어.
아, 하느님! 나는 더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어. 나의 부상당한 부하들의 신음소리와 죽은 자의 눈빛은 나의 영혼을 슬픔으로 마비시켰어. 그리고 부하들이 믿었고, 부하들을 이끌었던 나는 그들을 죽음의 벌판에 버려둔 채 홀로 서있어."
- 게티즈버그 후 이틀 뒤, 피켓이 애인에게 쓴 편지에서.
이제 게티즈버그 전투는 끝이 났다. 마지막 날의 대공격이 처참한 실패로 끝남으로써, 이제 남부는 빅스버그의 함락과 함께 리의 주력군의 패배라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 이로써 북부를 상대로 주도적인 공세를 펼칠 기회도 사라져버렸다. 이 후 전투에서 북버지니아군은 상처입은 사자처럼,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는 있지만 적을 공격할 능력은 사라져버렸다.
불세출의 전략가 잭슨이 죽은 이후, 그 후임이 된 두명의 군단장 이웰과 힐, 특히 힐은 이 전투에서 너무도 실망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하를 믿고 위임하는 형태의 리의 리더십은 잭슨처럼 열정적인 부하들에게 적합하였지만, 이웰과 힐은 잭슨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데 적응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리의 신사적인 지휘에 방만해졌을 가능성이 특히 힐에게는 농후했다.
7월 3일 밤, 막사에 돌아가는 리 장군. 너무도 초췌해 보인다.
하지만 리에게는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릴 수가 없었다. 리는 남군의 최고사령관으로서 부하들을 감독해야하며, 작전의 전체 맥락도 리의 머리에서 나왔다. 따라서 처참한 실패의 결과도 엄연히 리가 져야하는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리가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지 않는 모습에 감탄했지만, 그것은 처참하게 살육된 부하들에 대한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기간 동안, 이러한 치명적인 패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북군의 프레데릭스버그 전투, 그랜트의 콜드하버 전투, 후드의 프랭클린 전투 등은 10분 20분 사이에 6,7천명이 사상된 엄청난 전투 들이었다. 이들 전투는 비단 그 전투로 인한 손실 외에도, 부하들의 지휘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경우가 다분하여 지휘관은 해임되거나 부하들이 공격을 두려워하게 된다. 콜드하버 전투는 북군에게 '콜드하버 신드롬'이라는 일종의 공포가 형성된다. 프레데릭스버그는 번사이드를 해임시켰으며, 프랭클린의 패배는 연이은 내슈빌 전투와 함께 후드의 군을 와해시킨다.
하지만 리의 군대는 게티즈버그에서 그토록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어도, 그들의 리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였고, 그들의 전투력은 여전히 최강이었다. 게티즈버그에 이어 윌더니스에서 그랜트 군과 전투했을 때, 핸콕의 군단의 돌파로 리의 사령부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롱스트리트의 부하들이 도착했다. 이에 리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려고 하자, 부하들이 말고삐를 잡으면서 뒤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 부대는 3분의 2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증원군이 도착하기 까지 버텨냈다. 만약 게티즈버그의 패배에 그토록 깨끗하게 자신의 책임을 시인하지 않았으면 과연 부하들의 신뢰와 사랑이 유지되었을까?
마지막으로, 남군과 북군의 리더십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7월 3일날, 2시간의 사전 준비포격 때, 북군 군단장 핸콕과 남군 군단장 롱스트리트는 모두 말을 탄 채 포연 속을 누비면서 부하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다. 어느 북군 대위가 핸콕 군단장에게 포격을 피할 것을 부탁하자 “지금은 군단장의 생명을 돌볼 때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핸콕의 절친한 친구였던 남군의 아미스테드 여단장은 수천명의 북군과 백여문의 포대가 있는 적진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수십미터 앞에서 이끌었다. 가네트 여단장, 캠퍼 여단장은 피켓 사단장이 적의 사격을 피하기 위해 말에서 내리라고 명령하였음에도 부하들에게 더 잘보이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선두에서 이끌었다. 이들은 모두 죽거나 중상을 입는 속에서도 부하들을 선도하였으며, 부하들은 장교들이 모두 죽었음에도 돌격하였고, 후퇴하라는 명령에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남군 아미스테드 장군이 전사한 자리에 있는 비석
남북의 이러한 리더십은 결코 이 전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남군은 안티탐 전투 단일 전투에서만 9명의 장군을 잃었으며, 전쟁 기간 중 3명의 군단장이 전사한다. 게티즈버그 전투에서도 북군 군단장 레이놀드가 적진에서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최전선에서 저격당했다.
남북전쟁에서의 리더십, 특히 리 장군의 리더십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항복 직전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부하들의 ‘조국 그자체’로서 남아있었던 그의 리더십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훌륭한 지휘관 밑에서 임한 부하장군들의 리더십을 통해 그 일부를 알아보자면, 리더십의 비밀은 ‘부하들을 앞에서 이끄는’ 것이라 생각한다. 뒤에서 명령하지 말고 앞에서 인도한 아미스테드의 리더십이나, 모두가 포연 속에 엄폐하고 있는 속에서 말을 타고 적진을 바라본 핸콕 군단장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리더십의 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하들보다 더욱 위험한 길을 몸소 앞장서는 그런 리더를 바라며 이 긴글을 마친다.
"지금은 군단장의 목숨을 돌볼 때가 아니다"
- 북군 2군단장 윈필드 핸콕
첫댓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가장 화려하기에 가장 참혹했던 전투가 끝났군요
7월3일저녁 리는 과연 무슨생각을 했을까요 돌격을 명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을까요 아니면 돌격의 후속이 잘 이루어지지못한것에 대해 아쉬워했을까요
아마 후자일 겁니다. 리는 자신의 결정이 잘못됬다고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날 저녁, 말에서 내리면서 "나는 피켓 사단만큼 용맹한 공격을 그 어떤 전장에서도 본 적이 없다. 만약 늘 하던데로 지원만 받았다면 오늘은 우리의 날이 됬을 것이다. 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는 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현 한국군과 비교해볼만한 가장좋은예가 미국의 남북전쟁인것 같습니다. 한국군뿐만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대해서 말이죠 "돌격,앞으로!"가 아닌 "나를 따르라!"로 대한민국이 변하기를 기대해봅니다...
ㅎㅎ 포위될 거 같자 부하들을 버려둔 채 헬기타고 날아가 버리신 분도 계셨죠~,~ 전에 전작권 환수반대 집회때 나오셨던 걸 보니 아직도 생존해 계시던데;;;
정말 이러한 리더쉽은 본받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