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저널 12월호 ‘사서 생각’ 송내중앙중학교 사서 양효숙>
투쟁 ON
지켜본다는 것과 지켜준다는 게 뭘까. 가만히 지켜보다가 누군가는 해야만 할 것 같아 2년 전 전국교육공무직노조 경기지부 동두천양주지회 초대 지회장을 수락했다. 뭣 모르고 까불 때가 좋을 때라고 교육공무직 처우개선을 위해 뛰었다. 교육감 직고용 24개 직종을 아우르려 품새 확장공사도 했다. 내 직종 사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지 않은데 다른 직종 사람들과 만나며 공감하기 바빴다. 공유와 공감이 동시다발적으로 숨 가쁘게 일어났다. 숲과 나무를 같이 보려고 안간힘을 쓴 탓에 지회장 전과 후로 나뉠 만큼의 변화가 있다. 서로 의지하며 든든하다는 동지애도 맛보고 리더로서의 고뇌라는 것도 해봤다. 이제 임기를 내려놓는 순간이 다가왔는데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전국학교도서관사서협회(전학사협)동두천양주 초대지회장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초대라는 공통점과 함께 노조와 협회를 아우른다. 몫의 소리를 내는데 두 가지 길이 생겼고 이원화와 일원화 작업방식으로 성취도를 높인다. 교육공무직 사서라면 노조 가입과 함께 협회 가입이 이뤄져야 한다. 전학사협이 민간단체로 최근 등록됐고 사단법인으로 가는 중이다. 한꺼번에 내던 연회비도 CMS방식을 조만간 도입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생각이다.
제3회 정책토론회가 9월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었다. 조응천 국회의원과 전학사협이 공동주최했고 학교도서관 역할과 사서의 위상에 대해 나눴다. 학교사서 정규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고 패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사서들로 토론회장은 인산인해가 돼 서로 마주보며 놀랐다. 사서들도 하면 되는구나! 스스로 역동을 일으키는 주체라는 인식과 함께 토론회 여운을 짙게 남겼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시도로 진통을 겪은 가운데 장기파업이 유보되는 사태도 있었다. 영양사들이 뒷감당하느라 힘들었다는 목소리가 안타깝게 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주관과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주최로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10월 31일 세 직종이 모였다. 사서·영양사·전문상담사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로 함께 했다. 교사직군이면서도 참담한 임금차별에 대한 해소방안과 실질적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현장 탄원서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직종 상관없이 비정규직이라는 애환이 하나 되게 했다. 정보공유와 함께 진솔한 얘기가 오갈 때마다 같이의 가치가 구현됐다.
누군가 떨어진 낙엽으로 투쟁이란 글자를 썼다. 투쟁만이 살 길처럼 보인다고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움직이지 않고 울지 않으면 하나도 되는 게 없다고 하면서 물기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고 외친다. 그 흔한 사랑, 우정 등의 쓸 말이 많을 텐데 나뭇잎으로 투정 아닌 투쟁을 쓴다. 나뭇잎에 꿀을 발라 벌레가 그 모양대로 글자를 쓰게 했다는 일화도 스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굴러다니는 낙엽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투쟁이고 밟혀도 되살아나는 소리 또한 투쟁이다. 일상이 그야말로 투쟁스럽게 흐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그 노래에 담긴 의미와 현실을 바라볼 때 먹먹한 뭔가에 이끌려 차도를 마냥 걸어 나간다. 조직하고 집회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조직하라면 조직하고 집회하라면 다른 약속 취소하고 우선순위를 두고 참석했다. 다이어리가 너덜거리고 나이스 복무도 만만찮도록 뭔가를 적고 또 적으며 적자생존한 시간들이 내게도 있다.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으로 간다면 힘들어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젠 누군가 바통터치해 주길 바란다. 관할경찰서 정보과에 집회신고를 하고 합법적으로 움직이다보니 정보과 담당자와도 친밀해졌다. 초록 모자와 초록 조끼를 입고 길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줄 세워 심어놓은 배추포기처럼 보인 모양이다. 사람인데 배추포기 취급하며 도매로 떠넘기고 인건비가 아닌 목적사업비로 급여를 준다.
정권이 바뀌면서 노조 할 권리가 확산되고 노조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달라졌다. 교섭과 협의를 통한 문제 해결의 통로가 있다. 아직도 색깔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는 하나 그러려니 지나간다. ‘그래서, 투쟁!’이라는 외침도 깊이 있게 와 닿으며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에 의미부여하며 오늘도 나아간다. 무임승차하는 사람들마저 포용하며 환하게 웃는 이들 앞에서 그만 고개가 숙여진다. 전태일 정신이 뭔지 그들이 온 몸으로 가르쳐준다는 것도 알았다. 전태일은 갔어도 전태일 정신은 계승돼 살아 숨 쉬고 노동의 가치와 노동운동의 역사가 매일 조명된다. 사람 존중 정신과 노동의 가치가 동급으로 간다는 것도 세상에 드러난다.
노동조합 소식으로 하루를 여닫는다. 무음 설정을 해놓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카톡방 울림이 많다. 이 방 저 방 드나들며 헷갈리지 않도록 방마다 명패를 달아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걸어 다니는 노조이기도 하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가야할지에 대한 능력이 생기고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이 일어난다. 문제가 터졌을 때 무조건 노조부터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다 안 됐을 때 최후의 카드처럼 꺼내든다.
일상에서 투쟁은 언제나 OFF가 아닌 ON상태다.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는 들풀이 다시 보인다. 어느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인다. 이심전심 동병상련 누군가에게로 매일처럼 다가가고 다가서려 애쓴다. 한여름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초록 조끼 입고 혼자서는 앉아있기 힘들다. 내 옆에 동지가 있기에 연대감으로 그나마 버티는 것이다. 만능열쇠처럼 보이는 게 있을 뿐 결코 만능열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며 연약하고 힘없는 B급에 대한 관심이 많다. 투쟁으로 인사하고 움직이며 숨을 쉬기까지 얼마나 고달팠을까. 어쩌다보니 간부가 됐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너나없이 웃는다. 웃는데도 슬프다는 뜻으로 생긴 웃프다는 신조어가 여러 상황을 아우른다. 삶이 계속되는 이상 투쟁의 유통기한은 없어 보인다. 경기도교육청 안에 천막을 지어놓고 계절의 경계선마저 넘나들며 천막 잠을 자는 사람들이다. 집 밥과 집 잠이 불러도 천막 안으로 때가되면 들어 가야하는 간절한 요구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릴레이 피케팅을 끈질기게 하는데 나 몰라라 외면하는 이들에게 시선이 간다. 그 따가운 시선이 사회적 요구로 확산되고 파급효과로 이어질 때 감당할만할까. 피케팅 문구와 피켓을 든 이의 표정이 한 권의 책처럼 읽힌다. 보이는 책만 책이 아니고 내 옆 사람을 책처럼 읽어야 한다. 보이는 책도 읽지 않고 옆 사람 마음도 몰라주니 소통부재의 알람이 경고음처럼 울릴 수밖에 없다.
지켜본다는 것과 지켜준다는 게 뭘까. 다시 되묻기 좋은 시점이다. 사서니까 사서로서 가슴 뛰는 일에 몰입하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을 지켜보고 지켜주는 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사람은 옳은 사람을 따라가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을 따른다는 ‘미생’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면서 이기는 싸움을 하려한다. 이길 때까지 하니 이기는 싸움일 수밖에 없다. 배추는 배추포기를 만들지만 초록모자와 초록조끼 입은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도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