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어김없이 스크린에 실린 기사를 무단으로 제가 다시 올립니다...
이번에는 불멸의 스포츠 명승부가 등장하는 영화 50편이군요...
일일이 글을 타이핑 해야 하는 것도 곤욕이지만 영화에 맞는 사진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군요.
1. 분노의 주먹
몽환적이기까지 했던 아름다운 섀도우 복싱이 끝난 후, 링은 복서들이 쏟아내는
피와 신음으로 얼룩진다.
영화 속 슈가 레이 로빈슨과의 마지막 일전, 운무가 피어오르는 링 위로 로빈슨의
주먹이 하늘로 치솟는다.
로프에 등진 제이크 라모타가 라이트의 후광에 번뜩이는 그의 글러브를 바라보는
찰나 무시무시한 난타가 쏟아진다. 어떤 복싱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무자비하고
잔혹한 링에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했듯, 일상의 그 또한 누구에게서도 구원 받지
못한다.
말년에 코미디언이 된 그가 관객들에게 풀어놓는 말들은, 자신을 패배시킨 슈가
레이에게 내뱉었던 그 옹색한 억지와 변명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아둔했던 그에게 깊은 연민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링에서 내려운 그의 처연한 어깨에, 경기가 끝난 후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타월을 돌려주고 싶었던 건 나만의 심정을가?
2. 록키
록키 발보아는 애초부터 아폴로 크리드를 감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기
전날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채 애이드리언에게 고통스럽게 속삭인다.
"난 그를 이길 수 없어, 하지만 증명하고 싶은 거야,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결전의 날, 록키는 용케 아폴로의 주먹을 견뎌낸다.
그뿐이 아니다. 아폴로의 몸을 사정없이 내리쳐 늑골을 박살내 버린다. 15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공이 울리자, 록키는 울부짖으며 애이드리언을 찾는다.
무승부로 챔피언이 타이틀을 방어했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밀아 울리지만, 애이드리
언을 포옹한 록키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기뻐 환호하는 아폴로와 상관없이, 록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를 힘껏 껴
안고 있었다.
3. 불의 전차
1924년 파리 올림픽, 그곳엔 진정한 '스포츠 정신' 이 있었다. 신과 조국 그리고
순수한 도전정신을 위해 달리는 러너들.
경기에 또렷이 집중한 채, 자신 앞에 뻗어있는 트랙을 열심히 박차고 나가는 그들의
레이스는 경건하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특히 오프닝 신에서 반젤리스의 음악과 함께 해변 위를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좀
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표정을 지울 수 있을까?
4. 슈팅 라이크 베컴
프리킥의 묘미는 그 앞을 빽빽이 가로막은 수비 장벽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있다.
키커가 찬 공은 적당한 스피드로 수비 장벽을 피해 골키퍼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
로 비행한다.
18살의 인도계 소녀는 이 부드러운 프리킥의 원리를 그녀의 삶에 이용한다.
인습과 규범, 편견과 차별에 맞선 그녀는 그 견고한 장벽들을 허물어 뜨리지 않고
유연하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라스트 신, 그녀가 쏘아올린 공은 베컴의 킥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모든 장애물
을 넘어,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는 골문에 안착한다.
5. 꿈의 구장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승부조작사건)로 야구계에서 영구 제명된 조셉 제퍼슨
잭슨을 비롯한 8명의 시카고 화이트 삭수 선수들.
특히 베이비 루스가 스윙의 모델로 삼았다던 잭슨에 대해 미국인들이 갖는 향수는
각별하다.
케빈 코스트너가 계시를 받고 옥수수 밭을 갈아엎어 만든 야구장에 잭슨의 영혼이
찾아온다.
그로부터 사라지고 잊혀졌던 8명의 선수들은 하나둘씩 옥수수 밭으로 모여들어,
1919년 이후 그라운드에 설 수 없던 오랜 아쉬움을 털어낸다.
지금도 사면되지 않는 그들의 가슴 아픈 과거를 씻김하듯, <꿈의 구장>은 오직 야구
에만 몰두했던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을 따뜻한 시선으로 재현해낸다.
6. 허슬러
폴 뉴먼과 '미네소타 팻' 과의 첫번째 대결 신.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잿빛 당구
장, 무표정한 도박사들이 끊임없이 연장되는 그들의 승부를 지켜보고 있다.
폴 뉴먼의 현란한 큐가 끊임없이 포켓 안에 공을 집어던지지만, 환호도 박수도 상대
방의 탄식도 들리지 않는다.
무덤과도 같은 내기 당구판 위에 일말의 희망도 불길함도 없다. 차갑고 무겁게 굴러
가는 공들은 끝네 폴의 승리를 외면하고, 그는 당혹스러워할 사이 없이 서둘러 수렁
으로 빠져든다.
감탄할 만한 당구 기술과 냉정한 승부사들의 모습이 숨가쁘게 교차 편집된, 그들의
첫 번째 대결 신은 영화의 황량한 분위기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폴 뉴먼이 승리하는 그들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승부는 무섭도록 비정했던 첫 번째
대결의 강렬함을 뛰어넘진 못했다.
7. 19번째 남자
수잔 서랜든, 케빈 코스트너, 팀 로빈스는 야구를 통해 새로운 삶을 발견하는 사람들
이다. 야구를 떠나서는 한시도 살아본 적이 없는 세 사람에게 야구는 인생의 모든 은
유가 담겨있는 탈무드이자 성경이다.
야구가 그들에게 메이저리그로 가는 티켓을 준 적도, 마이너리그의 자리를 확실하게
보장해 준 적도 없지만, 그들은 끝까지 야구를 믿고 사랑한다.
"난 야구라는 종교를 믿어요. 염주에 108개의 구슬이 있는 것처럼, 야구공의 실밥
또한 108개에요."
이 말을 한 수잔 서랜든은 그녀가 출연한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사랑스럽고 섹시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