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따스 수녀회 성소자 피정 강의(88. 9. 11)
청빈과 섭리
도입: 운전면허 시험장에서의 일. 운전면허증을 획득한 이후의 수녀님의 태도 변화
청빈: 국어사전에서 청백하고 가난함
청백: 청렴결백
가난: 살림살이가 딱하고 어려움, 또는 그런 상태. 빈곤 몹시 고되고 어려움
가난-불쌍하다. 짠하다, 곤란하다, 어렵다 -> 부정적, 피동적인 맛을 풍긴다.
청빈-가난하되 의연한 모습, 자유의지가 담겨있는 긍정적이고 의지적인 맛을 풍김.
청빈과 가난은 같은 말, 동의어는 아님.
수도자에게 적합한 말은 가난보다는 청빈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가난과 청빈의 개념상 구분없이 같은 말로 들어주시면 됩니다.
로마의 휴일:
공주는 기자인 그레고리펙에게 돈을 빈다. 기자는 돈이 없어서 남에게 빌어서 빌려준다.
이 두 사람 중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무엇을 가난이라고 하는가?
가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말해보자.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말해보자.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복음서에서 가난한 사람들 -
* 경제적,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1. 거지들 : 병들고 무능해서 일을 하여 벌어먹을 수 없건만, 부양해줄 수 있거나 부양해주겠다는 친척이 없어서 구걸에 의지해 오던 사람들 = 소경,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앉은뱅이, 나병환자들.
2. 고아와 과부 : 부양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다 생계를 벌 길도 없음.
그래서 독실한 신심단체나 성전금고의 희사에 의존하는 사람들.
3. 자주 일거리가 없이 지내는 기술 없는 날품팔이,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들, 노예.
4. 나그네, 이방인
*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전적으로 남들의 선심에 의존하고 살아간다. 이런 일은 대단히 치욕적인 일이다. 위신이나 명예가 음식이나 생명 자체보다도 더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과 권력과 학식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이든 관계없이)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독립하여 남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므로 위신과 지위를 얻게 해 준다. 그래서 자기가 남에 의지하고, 남이 자기에게 의지하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며,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다. 위신도 명예도 없는 사람은 거의 사람도 아니다. 사람 취급도 안 해 준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 집 강아지 두 마리에 대한 나의 관심,
남루한 차림의 걸인과, 말쑥한 신사형의 걸인에 대한 나의 태도
* 사회적, 정신적, 종교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죄인 ->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 : 죄스럽거나 부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 창녀, 세리, 강도, 목자(좀도둑), 고리대금업자, 도박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늘 사회적인 누명을 달고 다녔다. 죄인들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탈출구도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창녀도 세밀하게 규정된 참회, 정화, 보속 절차에 의해 다시 깨끗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돈이 들어야 하는데, 나쁜 방법으로 번 창녀의 돈, 더러운 돈이 그 목적에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세리도 그 직업을 버릴 것이 요망된다. 그러자면 자기가 손해를 끼친 모든 사람에게 그 액수에 1/5을 가산해서 보상을 해야한다.
무식한 사람들로서는 우선 자신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교양을 쌓는 데만도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고통은 좌절과 죄의식과 불안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들은 존귀한 분들의 축에 들어가기에는 영영 글렀다고 생각하여 절망.
그들이 무엇보다도 아쉬워하는 위신과 명예, 사회적 존경이 그들에게는 거부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되라고 하신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부자와 나자로의 이야기(루가 16,19-31),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가난해야 하는가? 가난의 영성, 청빈서원은 왜?
-가난한 사람들의 이상적인 모습-
· 가난(청빈) - 겸손 – 순종 – 신앙(믿음) - 사랑(밥)
· 부자 – 교만 – 지시(명령) - 자신을 믿음(돈,권력) - 탐욕.
1.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들, 연줄이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빽이 없는 사람들.
온갖 사무실, 접수실에서 언제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통과할 수 없는 사람들.
2. 언제나 듣기만 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듣기만 한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며 들어주는 이 없다. 그저 듣기만 해야한다. 말을 할 수도 없고,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3. 오직 하느님께만 호소하는 겸손한 사람들.
가난한 이들과 억눌린 이들은 정신적 성향과 마음 자세에 있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통을 받고는 있으나 자신의 힘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해 결국은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기 자신보다는(인간 재물, 권력) 하느님을 향해 있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루까 18,9-14)
스님 -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자 순간적으로, ‘오메! 하느님!“
가난한 자들에게 연줄(빽)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뿐이다. = (하느님께 신뢰를 둠)
가난한 자들이 말할 수 있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 뿐.
그러기에 가난한 이들은 자신들의 궁극적인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있다.
(면허증 취득 이후 – 운전 솜씨(면허증)를 믿느냐, 하느님을 믿느냐?) 바로 이것이다.
가난한자 되어야 함은, 가난을 살아야 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움, 포기는 – 돈,권력,재능이 아닌 다른 것(하느님)으로 채우기 위함.
절약 – 모아서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주기 위해서 절약함. 그때 의미가 있다.
이냐시오 성인의 가난의 영성.
가난이란 재물에 대한 외적 포기와 하느님께 대한 내적 귀의이다.
가난을 사는 것이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일이며,
자기의지를 하느님께 넘겨주는 일이다.(실제적 가난, 실천적 가난, 영신적 가난)
가난한 자의 대표 : 예수 그리스도(필리 2,1-11)
사람이 되신 하느님(인간의 말을 듣기 위해서), 나자렛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
세례를 받으신 예수, 죄인들의 벗이 되고 끝내 죄인이 되신 예수, 밥이 되신 예수(성체)
크리스챤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 되시고, 가난하게 살았기에 그를 따르는 크리스챤은 당연히 가난한 자 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베들레헴의 ’예수 성탄 성당‘의 문이 낮은 이유는 ?
=>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는 겸손(가난)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