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월 하늘 아래 떠나는 파주
저긴데, 바로 저긴데...
통일로에서 임진각으로 진입하는 입구, 이정표에는 개성·판문점으로 가는 1 번국도 표지 위에 커다랗게 가위표가 그려져 있다. 더 이상 북상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 그립고 더 호기심이 인다. 만감이 그렁그렁한 눈망울들이 철책 너머 북쪽 땅을 향하는 것이다. 이 6 월의 하늘 아래, 북쪽이 코앞인 땅, 파주로 떠나는 주말 여행.
임진각 풍경
그 임진각에서 정성춘(56)씨는 근 30 년째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내 고향도 저긴데”하며 정씨는 철조망 너머를 본다. 지난해 경의선 철도 연결식에 이어 올 초 한국전쟁 당시 포로교환을 위해 만들었던 자유의 다리가 재건됐다. 그래서 망배단에 한정됐던 정씨 활동공간도 50 여m 북상했다.
정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망배단 앞에서 울던 노신사가 인상깊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마침내 주저앉아 울더니 자진하더라고 했다. 북녘에 둔 아내가 하도 그리워서 통곡하는 신사를, 남쪽에서 결혼한 아내가 얼굴을 어루만지며 함께 울더라고 했다. “그 해에 돌아가셨어요. 철책 앞에서 영혼 결혼식을 했답니다.”
눈에 띄게 줄어든 실향민들은 이제 자녀들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로 늙어버렸고, 임진각은 이제 외국 관광객들과 젊은 연인들의 ‘이색공간’으로 변신중이다. 철책 너머에서는 철도 공사가 한창이다. 방문객들이 걸어놓은 통일 희구 글귀들이 만장처럼 철책 위로 흩날렸다. 삭막한 철조망과 초소, 그리고 공사장에서 날리는 먼지…. 절경은커녕 볕 피할 곳도 변변찮지만 임진각에 가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임진각에서 안보관광지 순환관광 패키지 프로그램이 있다.
화석정
임진각에서 강따라 난 37 번 국도를 타고 적성 방면으로 가면 5 분이 채 안돼 화석정 이정표가 나온다. 급하게 산속을 진입해야 한다.
화석정 하면 모르지만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야반도주를 할 때 활활 타오르는 정자를 보고 피란길을 제대로 찾아갔다는 정자”하면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율곡 이이가 그 야반도주를 예견하고 미리 기름을 발라뒀다는 일화가 있다. 정자 자체는 볼거리가 못되지만 정자에 서면 임진강이 한눈에 보인다.
정자를 관리하는 신동균(66)씨는 “정사에는 기록이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했다. 신씨는 율곡 선생 어머니 신사임당의 13 대손이라고 했다.
자운서원
자, 이번에는 자운서원이다. 파주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를 기리는 서원이다. 서원에서 긴장감을 푼다. 아이들 뛰놀기에 좋은 숲과 그늘, 그리고 역사공부를 겸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화석정에서 나와 직진하면 자운서원 이정표가 두 군데 있다. 두번째 이정표에서 좌회전해 가면 3 ㎞ 전방 왼쪽이다.
서원이라기보다는 아주 큰 공원이라 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터가 넓어 가족 나들이에 딱 알맞다. 율곡과 어머니 신사임당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잠들어 있다.
서원과 가족묘로 가는 오솔길은 어둑어둑할 정도로 거목들이 우거져 있다. 율곡 부인 노씨는 선생 사후 시종 둘과 함께 무덤을 지키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목숨을 잃고 선생 묘지 위쪽에 버려졌다고 한다.
전쟁 뒤 그 세 주검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 함께 아들 묘 위편에 합장했다. 사임당도 이곳에 묻혀 있다. 임진각의 긴장은 간 곳 없다. 기념관에 사임당과 율곡 자료를 전시중이지만 조악한 복사본뿐이라 실망스럽다.
서원에서 나와 2 ㎞를 더 가면 문산~적성 310 번 도로다. 좌회전해 법원사거리가 나오면 다시 좌회전. ‘두루뫼 민속박물관’ 가는 길이다.
1.5 ㎞ 전방 왼편 주유소 옆길로 들어가면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민속생활용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작은 정원에 들꽃도 하나 가득 피었다.
잠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 마지막 목적지 초릿골로 간다. 아침에 떠났다면 늦은 점심부터 귀가 때까지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법원사거리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좌회전해 1㎞를 가서 왼편에 ‘초릿골’ 작은 이정표가 나오면 이정표쪽 샛길로 진입한다. 길 끝 오른편에 초호쉼터가 있다. 파주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꽤 알려진 쉼터다.
초릿골 토박이 우능제(43)씨가 주인. 낚시터를 연못으로 개조했고 돌로 지은 카페를 냈다. 아이들은 연못가에서 진귀한 새들을 구경하고 어른들은 카페 야외에서 술 한 잔. 본채에서는 평안도 요리인 초계탕을 들 수 있다. 겨자 푼 육수에 잘찢은 닭고기를 넣어 먹는 별미다.
족구장, 수영장에 규모는 작지만 번듯한 잔디축구장이 있어 가족나들이, 단체 야유회에 적당하다. 산자락에는 작은 오두막이 9 채 있어 주말 단체들을 받는다. 주말에는 미리 예약을 한 단체들이 와서 밤새 머물며 ‘마음껏’ 술·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우씨에게 김신조부대 이야기도 들어보자.
1·21사태 때 김신조부대는 초릿골로 은신했다가 우씨네 친척들에게 들켜서 일망타진됐다. 임진왜란에서 한국전쟁까지 전쟁 이야기, 그리고 가족들의 조용한 휴식까지 다 끝났다. 그럼? 주말 오후면 늘 그러하듯, 만만치 않을 귀갓길을 각오하시라. 초릿골에서 서울로는 통일로 1 번국도나 자유로 이정표를 보면 된다
화석정 앞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신동균(66)씨는 신사임당 13 대손이다. 1989 년 공직에서 은퇴한 뒤 1995 년부터 이곳 화석정을 관리하고 있다. “제 선조의 손길이 깃든 곳이라 해서 와봤더니 엉망이더라구요.” 꽃과 돌이 어우러졌다는 이름이 무색하게 쓰레기 천지에 잡초가 무성했다. 그래서 매일 찾아와 청소하고 돌 고르고 하다가 아예 눌러앉아 이곳을 일터로 삼게 됐다. “내가 화석정을 관리할 터이니 매점이나 하게 해 달라”고 파주시에 요구했다고 한다.
정자까지 오르는 고갯길을 자기 돈 들여 포장하고 퇴직금을 몽땅 퍼부어서 화석정과 자운서원 안내 팸플릿도 만들었다. 파주 문화재에 대해 해박하게 설명하는 가이드 역할도 한다. “아침 일곱시 반에 나와서 저녁 일곱시 반에 돌아갑니다. 다람쥐랑 놀아요.” 신씨네 매점 옆에는 ‘다람쥐밥’이라 적힌 그릇이 놓여 있는데, 글 모르는 다람쥐 일곱 마리가 어떻게 자기네 밥인 줄 알고 와서 포식을 하고 간다. “먹이가 많이 부족한가 봐요. 사람들도 안 무서워하구요.” 가을 빼고는 일년 내내 먹이를 준다고 했다.
▲추천 코스: 자유로(통일로)~임진각~화석정~자운서원~두루뫼박물관~초릿골
▲가는길(서울 기준) ①임진각:1 번국도(통일로)나 자유로를 타고 북상하면 이정표가 나온다. 버스는 불광동에서 909 번이나 명동 미도파 앞에서 좌석버스 922 번 탄 뒤 문산터미널에서 임진각행 버스. 손수운전은 통일로, 자유로 종착점. 임진각 안보관광 패키지는 월·공휴일 휴무.
②화석정:임진각에서 경의선 공사길따라 적성 방면 37 번 국도 5 분 거리.
③자운서원:화석정 앞 사거리에서 직진. 이정표 2 군데.
④두루뫼박물관:자운서원에서 나와 법원리 방면 한성슈퍼 삼거리에서 좌회전 법원사거리에서 다시 좌회전, 1.5 ㎞ 전방 왼편 주유소 옆길.
⑤초릿골 초호쉼터:법원사거리에서 의정부 방면 1 ㎞ 간 뒤 길 건너 ‘초릿골’ 작은 이정표 난 샛길. (031)958-0029. 족구장, 수영장, 간이 동물원 및 잔디축구장. 초계탕·막국수 및 차·주류. 주중 20인 이상 식사, 바비큐, 주류 및 음료 무한정. 일인당 3만원. 주말에는 5인 이상 오두막 숙박 및 식사, 바비큐, 주류, 음료 무한정.
발췌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