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books'가 마련한 '마니아 서재', 그 첫 번째인 칼럼니스트 최원택의 '슈퍼히어로 특집' 코너가 연재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싣는 네 번째 글에서는, 최근 개봉한 <어벤저스>의 모태인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을 만나 봅니다.
앞서 게재된 ①슈퍼맨이 배트맨을 절대 이기지 못하는 이유 ②원더우먼이 슈퍼맨의 연인? 그린 랜턴의 정체는? ③'19禁' 슈퍼히어로, 그 끈적한 혹은 짜릿한 세상을 아십니까? 세 편의 글도 확인하세요! '마니아 서재'는 2주 후에도 계속됩니다. <편집자>
슈퍼맨과 배트맨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을 다루었다. DC 코믹스 못지않은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을 이제야 소개하려니 마블에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마블의 경우 DC에 비해 많이 영화화 되었고 그만큼 한국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외국인들이 팔아치운 중고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구하기 위해 외국어 중고 서점을 돌아다녔던 1990년대 중반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스크린에서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의 히트작이 이어지면서 마블 코믹스 히어로들은 한국에서도 공중파 TV 방송 프로그램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언급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일상의 대화 소재로까지 안착했다.
그래서 DC 히어로를 다룬 비중에 비해 마블 히어로의 비중이 적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의 세상을 살펴보자.
마블 코믹스의 험난한 스크린 입성기 그리고 <어벤저스>
마블 히어로들이 한국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매체는 영화였다.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면 역시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했던 <엑스맨>(2000년)이 한국뿐 아니라 미국 관객에게 마블 슈퍼히어로가 영화에 등장해도 유치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준 작품이다.
DC의 경우 슈퍼맨과 배트맨은 일찍부터 훌륭한 흥행 성적과 함께 대중들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마블의 히어로들은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영상으로 옮겨질 때마다 여러 면에서 쓴맛을 보아야만 했다. 예산이나 만듦새 면에서 제대로 된 영화도 없었다. 비디오로 직행한 1990년대에 만들어진 <캡틴 아메리카>나 아예 개봉조차 하지 못했던 1994년 <판타스틱 4>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엑스맨>의 성공 이후 다른 마블 히어로의 영화화가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 2002년의 <스파이더맨>과 <블레이드>가 대표작이다. <블레이드>의 경우 국내에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이 소개된 바 없어 한국 관객에게는 영화로만 인식되었지만, <스파이더맨>은 과거 TV 애니메이션과 TV 영화 <왕거미>(이 작품은 세대를 가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등을 통해 이미 한국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캐릭터였다.
그래서 <왕거미>나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도 영화 <스파이더맨>이 개봉하기 전에는 미국 대중과 비슷한 걱정을 했다. 과연 영화 속의 스파이더맨이 먼저 성공을 거둔 <엑스맨>처럼 유치하지 않고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과거 TV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의 스파이더맨이야 어린 시절에 즐겼던 것으로 매체 자체의 성격과 예산의 제한에 따른 유치함을 오락 차원에서 감내하고 즐길 수 있었지만 <엑스맨>이 선보인 신선함과 개연성을 <스파이더맨> 역시 성공적으로 이어받을 수 있을지, 스파이더맨을 아껴온 골수팬부터 그럭저럭 알고 있던 이들까지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영화 <스파이더맨>을 기다렸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이후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은 과거의 굴욕을 만회라도 하듯 스크린으로 몰려왔다. 2003년에는 <데어데블>, <헐크>, <엑스맨 2>. 2004년에는 <스파이더맨 2>와 <퍼니셔>. 2005년에는 <엘렉트라>(<데어데블>에서 등장한 여성 히어로)와 <판타스틱 4>. 2006~2007년에는 <엑스맨 3 : 라스트 스탠드>, <고스트 라이더>, <스파이더맨 3>, <판타스틱 4 : 실버 서퍼의 위협>이 이어졌다.
이들의 흥행 성적과 평단의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2008년 <아이언맨>이 확고부동한 성공을 거두자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삼는 영화는 하나의 대세가 되었다. 한국에서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정식 계약을 통해 번역 소개되기 시작한 시기도 이 시기였다. 무엇보다 그 동안 여러 영화사에서 제작되었던 마블 코믹스 원작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이언맨> 이후 마블 코믹스 소속의 마블 스튜디오스(Marvel Studios)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것도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마블 코믹스는 오래전부터 산하에 영화 관련 부서를 마련해 놓고 있었지만 주로 영화사에 마블 히어로 캐릭터 사용권을 판매하는 부서로 기능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스크린 속 마블 히어로들의 활약은 종이에서의 활약에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마블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는 싸구려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1993년에 꾸려진 마블 필름스가 TV 애니메이션에서 점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실사에서 구현해내기 힘든 코믹스의 분위기와 불가능한 장면 연출이 애니메이션에서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화사들은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을 스크린으로 소환해 내었다.
<엑스맨>을 시작으로 마블 히어로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자 2009년, 월트 디즈니가 마블의 본체라 할 수 있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0억 달러(한화로 약 4조5480억 원)에 인수한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 히어로들 중 가장 대표적인 히어로들로 구성된 팀인 <어벤저스>의 영화화에 착수했다.
마블 스튜디오스는 첫 제작한 영화 <아이언맨> 1편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소품으로 등장시켜 <어벤저스> 영화화에 대한 암시를 곳곳에 배치했다. 마블 코믹스의 골수팬은 이를 알아차리고 <어벤저스>의 영화화를 예상하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마블 스튜디오스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아이언맨> 이후 '어벤저스'의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을 속속 발표했다.
<헐크>(2003년)의 후속작 <인크레더블 헐크>와 <토르>, <캡틴 아메리카>를 제작했다. 이 영화들은 각각의 히어로를 주인공 삼은 독립된 영화인 동시에 <어벤저스>의 프리퀄이기도 하다. 마블 스튜디오스는 이들을 영화화하면서 과거 각각 다른 영화사에서 영화화되면서 제각각이었던 마블 히어로들의 색채와 분위기를 조율하고 재조정하여 한 편의 영화(<어벤저스>)에 이들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게끔 준비했다.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어벤저스>는 그동안 마블 스튜디오스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몇 편의 영화로 쌓아온 포석이 무엇보다 재미 면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마블 코믹스 영화의 결정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벤저스'와 닉 퓨리
1963년 9월에 <더 어벤저스> 1권으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어벤저스는 데뷔 당시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앤트맨(헨리 핌 박사), 와스프(자넷 반 다인), 토르, 헐크(브루스 배너)로 구성되었다. 영화 <어벤저스>(2012년)의 구성인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와는 사뭇 다른 구성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어벤저스는 코믹스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에서 조금씩은 다른 구성원들을 선보였다. 그래도 어벤저스를 언급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이들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다. 그래서 마블 스튜디오스는 <어벤저스> 개봉 이전에 각각 이들에 대한 영화를 제작 상영하여 <어벤저스>의 포석으로 마련했다.
2012년 상반기 화제작이라고 감히 예상하는 영화 <어벤저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래픽 노블을 꼽으라면 올해 2월에 출간된 <얼티미츠 Vol.1 : 슈퍼휴먼>(마크 밀러 지음, 브라이언 힛치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을 꼽을 수 있다. 2002년도에 첫 출간된 <얼티미츠>는 향후 영화화될 마블 히어로들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그래픽 노블이다. 영화 기획이 이 작품에 반영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어벤저스(작품 내에서는 '얼티미츠'로 불린다) 팀을 꾸린 주체인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S.H.I.E.L.D)'의 국장 닉 퓨리가 흑인이라는 점이다.
닉 퓨리는 1963년 5월에 출간한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화 <닉 퓨리 하사와 그의 울부짖는 코만도 대원들(Sgt. Fury and his Howling Commandos)>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백인이었다. 하지만 2002년에 출간된 <얼티미츠>의 닉 퓨리는 2008년 <아이언맨>에 닉 퓨리로 첫 등장한 새뮤얼 잭슨을 꼭 닮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향후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별도의 세계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작품이기에 10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영화 <어벤저스>와 함께 보기에 가장 좋은 작품이다.
<얼티미츠>에서 어벤저스 멤버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다면 어떤 배우가 우리를 연기할까"를 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대서양 빙하 속에서 70년 만에 깨어난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에게 닉 퓨리가 "어이. 자넬 영화화 한다던데, 들었나? (…) 캡틴 아메리카 영화 세 편은 벌써 브래드 피트랑 협의 중이라더군" 하고 운을 떼자 스티브 로저스는 뚱한 표정으로 "브래드 피트가 누구죠?"라고 되묻는다. '장군님 역할은 누가 맡을 것 같냐'는 질문에 닉 퓨리는 "당연히 새뮤얼 잭슨이지. 논란의 여지가 있나?"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닉 퓨리는 "토니 스타크에 적격인 사람도 한 명 있지. <프롬 헬>의 조니 뎁"이라는 의견으로 다른 어벤저스 멤버 와스프(영화 <어벤저스> 미등장)와 가벼운 논쟁을 벌인다. '좀 더 괴팍한 인물을 쓰겠다'는 와스프에게 "아이언맨 슈트를 입히고 에드우드를 연기하게 하면 영락없이 영화판 토니 스타크가 될 걸"이라고 조니 뎁의 아이언맨 캐스팅을 고집한다.
2002년도에 코믹스 <얼티미츠>에서 예언된 캐스팅은 닉 퓨리 역의 새뮤얼 잭슨만 들어맞는다. 새뮤얼 잭슨은 영화 <아이언맨> 1, 2편을 거쳐 <토르>,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 <어벤저스>에 이르기까지 닉 퓨리를 맡았으며 앞으로도 마블 코믹스 영화에서 한동안 닉 퓨리를 맡을 예정이다.
이렇게 어벤저스 팀은 <얼티미츠>를 비롯한 제2차 세계 대전에 군인으로 첫 등장했던 닉 퓨리가 장군이 되어 조직한 슈퍼히어로 팀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기반 작품에서는 새뮤얼 잭슨을 반영하여 흑인으로 등장하지만 그 외 작품인 <시빌 워>(마크 밀러 지음, 스티브 맥니븐 그림, 최원서 옮김, 시공사 펴냄)와 <시크릿 워>(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가브리엘 델 오토 그림, 최원서 옮김, 시공사 펴냄), <시크릿 인배이전>(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레이닐 유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같은 작품에서는 백인으로 등장한다.
이런 구성이 낯설 수도 있는데 여러 작품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런 기획된 다양함은 마블 코믹스의 멀티버스 구성 덕이다.
어벤저스의 지도자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아이언맨>은 (조니 뎁이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배우와 함께 한국 대중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슈퍼히어로의 아이콘이 되었다. 백만장자 바람둥이에 자기 중심적인 성격이지만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하여 이과생들의 로망이기도 한 토니 스타크는 이미 예전부터 코믹스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이제는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사랑과 지지를 받게 되었다.
초능력을 지니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기존 슈퍼히어로들과 다르게 토니 스타크는 과학기술과 마블 코믹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답게 '돈지랄'(자본)의 힘으로 슈퍼히어로 노릇을 한다. 원작 팬들에게는 별로 놀라울 것 없지만 영화 1편에서 시원하게 "나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라는 사실을 시원하게 까발려 영화로 처음 아이언맨을 접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과 적대자들에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해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핵심을 찌르는 독설을 일삼는 토니 스타크는 어벤저스 소속의 다른 히어로들에게도 공평하게 그 독설을 안겨준다. 내부 분위기가 좋을 때는 그럭저럭 농담 차원으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토니 스타크가 분위기가 험악하다고 독설을 멈출 위인이 아니다. 그의 '싸가지' 없는 화법 때문에 팀 내의 불화가 야기되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슈퍼히어로라는 자가 저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해도 되나 싶을 지경이다.
DC의 슈퍼맨과 배트맨도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에 따른 견해 차이로 갈등하지만 영화 <어벤저스>에서 시시콜콜한 트집을 잡아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해 다른 히어로들을 모욕하고 도발하는 아이언맨을 보면 히어로에 대한 고정 관념이 무너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토니 스타크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또 정의와 대의를 위해 움직이니 영웅이라 할 만하다.
사실 아이언맨의 활약을 지켜보는 쾌감은 여기에서 나온다. 마치 스포츠카를 자랑하듯 강철 슈트의 성능을 사람들과 적에게 과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장치한 아크 원자로(arc reactor)에는 그만의 아픔과 순정 그리고 정의감이 불타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중심적으로 돌변하는 귀여운(?) 모습은 만화책 읽는 독자와 영화 보는 관객 모두를 사로잡는다.
참고로 토니 스타크는 영화 <에비에이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실존했던 괴짜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1905~1976년)를 모델로 하고 있다. 미남에 바람둥이인 그는 토니 스타크처럼 군수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였고 영화와 비행에 집착하여 자기만족을 위해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쏟아 붓기도 했다. 영화 <에비에이터>나 하워드 휴즈 관련 도서를 접하게 되면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를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매사에 자기중심적이지만 결정적일 때는 냉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아이언맨이기에 그는 닉 퓨리가 부재한 <시빌 워>와 같은 몇몇 작품에서는 쉴드의 국장을 맡기도 한다. 슈퍼히어로이자 한 기업의 소유주이기도 한 토니 스타크가 쉴드라는 조직을 총괄한다면, 실제 각개 전투시 어벤저스 멤버들을 지휘하는 히어로는 군인 출신인 캡틴 아메리카다.
캡틴 아메리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비밀 부대 하이드라에 대항하여 진행된 슈퍼 솔져 프로젝트에 의해 창조된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
영화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위험천만한 인체 실험을 통해 슈퍼 파워를 얻은 히어로다.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체력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를 갖추었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다른 슈퍼히어로들에 비해 초능력과 체력 부분에서 약하다고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과 가치는 그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서 비롯한다.
'미국 대장'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DC의 슈퍼맨보다 더 노골적으로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반영한 별과 줄무늬로 구성된 복장을 입는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3월 첫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영화 <퍼스트 어벤저>에서처럼 나치 독일을 때려눕히고 미국의 승리를 독려하는 명백한 정치 프로파간다 만화의 주인공이었다.
최근의 영화와 코믹스에서는 사고를 당해 대서양 빙하 속에 갇혀 있다가 깨어나 시대착오적인 옷차림과 현대 사회와 첨단 기술에 대한 무지로 쏠쏠한 유머를 선보이고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0~60년대에도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는 계속 출간되어 나치 잔당과 공산주의자 등 미국을 위협하는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미국의 영웅으로 쭉 활동해왔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새롭게 등장한 슈퍼히어로와 세대를 맞추기 위해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실종되었다가 2000년대 이후 미국 첩보 기관에 의해 빙하 속에서 발견되어(둘리?) 다시 활동한다는 설정을 얻게 되었다.
성조기를 그대로 반영한 복장과 이름 때문에 그는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무장하고 미국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슈퍼히어로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과거의 작품에서는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미국에서는 코믹스 역시 사회 변화와 그에 따른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퍼스트 어벤저>와 <어벤저스>에서처럼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타고난 품성이 선량하고 애국심에 투철한 인물이지만 맹목적인 애국심에 휘둘리기만 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애국심은 정의에 대한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어 아무리 국가의 명령일지라도 그 신념에 위배되는 명령은 거스르는 강직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록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실용적인 노선을 종종 택하는 아이언맨의 태도와 종종 충돌한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첫 만남부터 불화를 일으킨 것은 이런 캐릭터 간의 서로 다른 기질 때문이지만 그 갈등 깊숙이에는 서로 다른 신념 체계 역시 자리 잡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은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게 부각되지만 국내 소개된 그래픽 노블 중에서는 마블 슈퍼히어로 간의 내전을 다룬 <시빌 워> 시리즈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를 막론하고 정체를 감춘 채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슈퍼히어로들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목소리는 슈퍼히어로들을 은인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목소리만큼 크다. 이들이 악당들을 물리치기도 하지만 이들 때문에 악당들이 활개를 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시빌 워>에서는 한 무리의 슈퍼히어로 팀이 악당들의 아지트를 급습하다가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일으킨다. 피해자 중에 어린아이들까지 끼어있자 슈퍼히어로들을 정부의 통제 하에 둔다는 내용의 '초인 등록 법안(Superhuman Registration Act)'의 발효가 가시화된다. 이를 두고 마블 슈퍼히어로들 간에 의견 차이가 불거진다.
반대파였던 토니 스타크는 지지파 쪽으로 돌아서고 지지파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 반대파의 우두머리는 캡틴 아메리카. 슈퍼히어로들 간의 내전(civil war) 중에 아이언맨과 직접 '맞짱'을 뜨는 히어로도 캡틴 아메리카다.
<시빌 워>에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캡틴 아메리카의 애국심'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비록 캡틴 아메리카 자신은 국가 기관인 쉴드 산하의 조직 어벤저스에서 활동하지만 정부 관리 바깥에서 홀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슈퍼히어로를 인정하지 않는 '초인 등록 법안'에 강렬히 저항한다.
'정부에 등록되면 정식으로 훈련도 시켜주고 월급도 준다는데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느냐'며 등록 거부 히어로들을 체포하라는 쉴드 요원의 명령에 캡틴 아메리카는 "자네들은 매일 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체포하라고 말하는 거다"라고 거절한다. 캡틴 아메리카에게 애국심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쉴드 요원이 "아니. 난 당신에게 미국 국민의 의지에 따르라고 하는 겁니다, 캡틴" 이렇게 말하자 캡틴 아메리카는 "나를 상대로 정치 놀음 따위는 집어치워. 슈퍼히어로는 정치권의 개입을 받아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정부에서 슈퍼 빌런(악당)을 지정해 주기 시작할 테니까"라고 대꾸하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비록 미국 정부의 계획으로 탄생하여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에 성조기 테마의 복장을 입고 싸우지만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의 명령은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정부에 대한 인식은 <시빌 워> 시리즈 중 하나인 <시빌 워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마이클 스트라진스키 지음, 론 가니 그림, 최원서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초인 등록 법안'을 지지하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제안에 따라 대중들 앞에 피터 파커라는 정체를 드러낸 스파이더맨은 반대파들과 싸움을 벌이면서 토니 스타크의 독선적인 태도에 점점 질리게 되고, 급기야 '초인 등록 법안' 자체를 회의하게 된다. 스파이더맨의 입장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초인 등록 법안'을 지지하는 판타스틱4의 리더 '미스터 판타스틱' 리드 박사(같은 판타스틱4의 휴먼토치는 반대파에 가담한다)와 '초인 등록 법안'에 대해 나눈 대화 때문이다.
영화 <판타스틱4>(2005년)에서는 영국 배우 이안 그루퍼드가 맡았던, 온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리드 박사는 어린 시절 자신을 각별히 대해주던 테드 숙부에 대한 이야기를 피터 파커에게 들려준다. 작가였던 테드 숙부는 의원 매카시와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 非美活動委員會)로부터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위원회에 소환되어 공산주의자 혐의에 대한 추궁을 받고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지인들의 이름을 댈 것을 요구받는다. 테드 숙부는 비미활동위원회에서 "지옥에나 가라" 저항하고 결국 작가로서의 경력이 끝장나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리드 박사의 이야기를 들은 피터 파커가 "당신 숙부는 매우 용기 있는 분이었던 것 같군요"라고 위로하자 리드 박사는 "내 얘기의 핵심을 잘못 짚었군, 피터"라고 운을 떼면서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논지를 편다. 사랑했던 숙부를 잃은 슬픔 때문에 법과 신념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 사로잡힌 리드 박사의 모습을 보고 피터 파커는 '초인 등록 법안' 반대의 입장에 서기 위해 토니 스타크를 떠나 캡틴 아메리카를 만난다.
캡틴 아메리카에게 스파이더맨은 "국가 그 자체인 사람(캡틴 아메리카)은 그 국가가 다른 길로 가려고 할 때 어떻게 반응하죠?"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읽었던 마크 트웨인의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애국관과 신념을 피력한다.
"공화국에서 국가란 누구인가? 지금 안장 위에 올라타 있는 정부인가? 아니, 정부는 임시 하인에 불과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가, 누가 애국자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정부)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의 기능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가'란 누구인가? 그것(국가)은 신문인가? 그것(국가)은 교회 설교단인가? 아니, 그것들(신문과 교회 설교단)은 국가의 일부에 불과할 분이지 그것의 전체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명령권이 없으며 명령권의 아주 일부만을 차지할 뿐이다.
군주제에서는 왕과 그의 가족이 곧 국가이다. 공화국에서는 민중의 평범한 목소리가 국가가 된다. 여러분 모두는 자신을 위해, 자기 스스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것은 엄숙하고 무거운 책임감이며, 교회, 언론, 정부의 괴롭힘 또는 정치인들의 공허한 캐치프레이즈 따위에 가볍게 내던져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이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떤 길이 애국적인 것이고 어떤 길이 그렇지 않은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를 회피한다면 남자라 할 수 없다.
스스로의 신념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기 자신과 조국 모두에 자격 없고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가 되는 일이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렇게 낙인지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만약 온 나라 전체에서 당신만이 한 방향의 길을 택한다면, 그리고 당신의 신념이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조국에게 임무를 다한 것이다. 머리를 꼿꼿이 들어라. 부끄러워 할 게 없다."
캡틴 아메리카가 인용한 마크 트웨인의 글은 국내에도 <지구로부터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Letters From The Earth>의 'Papers of the Adam Family'에 실려 있다. 마크 트웨인의 글에 캡틴 아메리카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언론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정치인이나 군중이 뭐라고 하던 상관없어. 온 나라 전체가 그릇된 것을 옳다고 하고 있더라도 상관없어. 이 나라는 다른 것보다 이 한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세워졌네. 승률이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믿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 대중과 언론과 전 세계가 자네한테 저리 비키라고 한다면, 자네의 임무는 진실의 강 옆에 스스로를 나무처럼 굳건히 뿌리박고, 온 세상에 이렇게 말하는 거야. '싫어. 네가 비켜.'"
<시빌 워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초인 등록 법안'을 들어 1950년대의 매카시즘 광풍뿐 아니라 9·11 테러 이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무슬림들에게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일명 '애국자법(Patriot Act)'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legislation)에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그 비판의 선두에 선 캡틴 아메리카는 종종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정부주의자라고 매도당하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마크 트웨인의 글처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캡틴 아메리카의 신념에 찬 모습 때문에 미국의 코믹스 팬들은 촌스럽고 유치한 이름과 복장에도 불구하고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 여전이 그에게 큰 사랑과 열광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상황과 실리에 따라 가변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아이언맨과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2002년에 발표된 코믹스 <얼티미츠>는 시대 배경을 당시인 2002년의 미국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는 부시 행정부의 미국에서 깨어난다. <얼티미츠>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조지 W. 부시와 그에게 경례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복잡 미묘한 심경을 안겨준다. 과연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캡틴 아메리카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전2권으로 완결되는 <얼티미츠>는 현재 1권만 나온 상황이기에 다음 권에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캡틴 아메리카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에드 브루베이커 지음, 스티브 엡팅 그림, 최원서 옮김, 시공사 펴냄)은 <시빌 워> 시리즈 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살해되고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배트맨의 로빈과 같은 단짝 동료)인 버키가 캡틴 아메리카의 행적과 신념을 되새기며 2대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통제 불가능한 존재들 : 헐크와 토르
헐크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킨 슈퍼 솔저 프로젝트는 캡틴 아메리카의 실종 이후 맥이 끊겨 버린다. 새로운 초인 병사를 탄생시키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던 물리학자 브루스 배너는 감마선을 이용한 연구를 하다가 감마선에 오래 노출되고 그 결과 지극한 스트레스를 느끼면 녹색의 거인 헐크가 되는 저주받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초인 병사 연구 중 부작용으로 헐크가 되었다는 설정은 코믹스 <얼티미츠>와 영화 <어벤저스>에서 공유하는 설정이다.
비록 어벤저스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헐크는 히어로라기보다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통제 불가능하고 위협적인 존재다. 단지 녹색의 거인으로 변한다고 해서 브루스 배너 박사가 헐크로 변신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변신하는 순간 이성을 잃고 피아 구분 없는 무차별적인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브루스 배너 박사가 헐크를 저주하는 진짜 이유다.
헐크가 주인공이거나 선한 편에 속하는 작품들에서는 헐크가 난동을 일으킬 때 민간인들에게 입힌 피해가 의도적으로 축소되거나 무시되는데 <얼티미츠>에서는 닉 퓨리의 입을 통해 헐크가 '시민도 수십 명 살해'했다는 피해 보고가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어떤 작품에서는 식인도 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리고 헐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어벤저스 멤버 모두가 달려들어 때려눕히고 겨우 브루스 배너로 되돌린다.
현실적인 색채를 유지하며 슈퍼히어로들의 좋게 말하면 인간적인 부분을, 나쁘게 말하면 지질한 면을 가감없이 부각하는 <얼티미츠>에서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신하게 된 이유 역시 지질하다. 헐크를 다룬 여러 작품에서 브루스 배너는 헐크로 변신하는 자신을 혐오하기는 해도 브루스 배너 자신에 대한 자존감까지 부족한 인물은 아니다. 영화의 브루스 배너들 역시 꽤 훈남들이다. 2003년 <헐크>의 에릭 바나, 2008년 <인크레더블 헐크>의 에드워드 노튼, 2012년 <어벤저스>의 마크 러팔로 등은 꽃미남까지는 아니어도 훈남이라 할 만한 배우들이다.
하지만 <얼티미츠>에서 브루스 배너는 한마디로 '안습'이다. 서로를 어떤 배우가 맡을지를 농담처럼 주고받던 자리에 어벤저스들은 자리에 없는 브루스 배너를 누가 맡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기를 놓고 우디 앨런, 스튜어트 리틀(사람도 아니고 생쥐!), 스티브 부세미 등의 배우를 언급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고 삐친 배너 박사는 거리로 뛰쳐나가고 헤어진 옛 여자 친구 베티가 잘생긴 남자 배우 프레디 프린즈 주니어(실존하는 배우다)와 데이트한다는 소식까지 듣자 그야말로 '열폭(열등감 폭발)'하여 원조 슈퍼 솔져인 캡틴 아메리카의 혈청을 자신에게 주사하고 헐크로 돌변한다.
"베티! 돌아와!"를 외치며 뉴욕시를 초토화시키다가 어벤저스 멤버들의 활약으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배너 박사는 자기가 헐크로 변신했기에 어벤저스가 하나가 되어 싸울 수 있었다며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제발 자기를 때리지만 말아달라고 캡틴 아메리카에게 애원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점잖게 배너를 안심시킨다.
"내가 왜 당신을 때리겠소. 당신은 우리 편이오. (…) 얼굴에 난 상처와 멍을 확인하려는 거요. 머리 들어 봐요. 볼에 상처 좀 보게..." "그런데 볼엔 아무 상처도 없는데." "퍽!" 기절한 배너 박사를 내려다보며 캡틴 아메리카가 말한다. "지금 생겼군요."
코믹스 <얼티미츠>에서 배너 박사도 헐크도 다소 지질하지만 그 엄청난 파괴력만큼은 확실하다. 영화 <어벤저스>에서도 마찬가지. 영화 <어벤저스> 예고편에서 악당의 우두머리 로키(톰 히들스턴)가 "우리에겐 군대가 있다"라고 위협하자 토니 스타크가 "우리에겐 헐크가 있지"라고 응수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슈퍼히어로와 반신, 외계인 모두의 넋을 쏙 빼놓을 정도로 강력한 헐크는 그러나 분노에 가득 찬 괴물이기에 <어벤저스>처럼 항상 우리 편에게 유리하게 움직이지만은 않는다. 몇몇 작품에서는 악당을 해치우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우리 편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이런 파괴력과 난폭함 때문에 <헐크 : 플래닛 헐크>(그렉 박 지음, 카를로 파굴라얀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는 마블의 히어로들에 의해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행성으로 유배된다. 하지만 원래 목적지인 무인 행성이 아니라 인간형, 곤충형 종족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사카르 행성에 떨어져 노예 검투사 신분에서 사카르 행성의 지배자가 되는 모험을 겪는다.
이 플롯은 과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했던 고대 액션 히어로 영화 <야만인 코난>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속편인 <헐크 : 월드 워 헐크>(그렉 박 지음, 존 로미타 주니어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 사카르 행성을 떠나 다시 지구로 돌아온 헐크는 자신을 우주로 추방했던 마블 히어로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복수의 난동을 벌인다. 헐크를 막기 위해 어벤저스뿐 아니라 온 마블 히어로들이 총출동하지만 이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다.
토르
북구 신화의 신으로 주신 오딘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 토르는 마블 코믹스에서는 외계로 설정된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에서 온 외계인이자 신인 슈퍼히어로이다.
1962년 첫 등장한토르는 신이기에 인간 세계의 권력 따위에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인류를 보호하고 탐욕 때문에 서로를 해치려 드는 인간들을 꾸짖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 인류에게 가해질 때 그는 기꺼이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힘을 합친다. 토르가 어벤저스 팀의 원년 멤버로 합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어벤저스가 처음 구성되는 시점을 다룬 코믹스 <얼티미츠>와 영화 <어벤저스>에서는 처음에는 자신이 왜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팀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2002년의 미국과 세계 정세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얼티미츠>에서 그 회의적인 태도는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노르웨이까지 찾아와 어벤저스에 합류하라고 제안하는 닉 퓨리에게 토르는 이렇게 응수한다.
"세계 무역 반대 시위를 했다고 체포하러 온 건 아니겠지, 장군? 당신의 언론사 따까리들, 평화 시위 왜곡하는 짓은 여전하더군."
이렇게 어벤저스 합류를 거절했던 토르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을 비롯한 어벤저스들이 헐크의 난동을 저지하는데 어려움을 보이자 천둥 번개와 함께 뉴욕에 강림한다. 어벤저스와 함께 헐크 사태를 종식시킨 토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벤저스 합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닙니다. 스턴 씨(실존 언론인). 얼티미츠(어벤저스의 또 다른 이름)를 돕는 거지 부시의 슈퍼 특공대가 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토니 스타크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토르는 스티브 로저스가 "우리(인류)가 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질문하자 현대 문명에 잠식된 인류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깨우러 왔다고 대답한다. 그 메시지를 전하는데 얼티미츠가 좋은 토대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토니 스타크의 질문에 토르는 "아니, 얼티미츠에 들어가는 건 당신(토니 스타크)에게 돈을 안겨다 주는 군산복합체의 악행을 모조리 용인하는 꼴이 돼. 돈, 명예, 슈퍼스타 같은 삶을 누리는 대신 부
패한 지배 계급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는 제안? 난 관심 없어.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한 진짜 문제가 생기면 그냥 전화만 해"라고 응수한다.
어벤저스가 인류를 위협하는 규모의 사건과 맞닥뜨리면 그때 합류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렇게 토르는 다른 슈퍼히어로들이 인간의 입장에서 인류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과는 다른 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그래서 헐크와는 다른 의미로 토르 역시 인류 입장에서는 통제 불가능한 슈퍼히어로이다.
<토르 : 천둥의 시대>(매트 프랙션 지음, 패트릭 저쳐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는 북구의 신이 마블 코믹스의 세계에 슈퍼히어로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 마블 코믹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토르라는 캐릭터의 형성 과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어벤저스>의 객원 멤버들과 엑스맨
이 밖에도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은 사건에 따라 작품에 따라 자유롭게 어벤저스와 함께 움직이거나 어벤저스의 일원이 된다.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인 스파이더맨 역시 종종 어벤저스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어벤저스>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스파이더맨의 참여를 기대한 팬들도 적지 않았으나 스파이더맨의 영화 쪽 저작권은 마블 스튜디오스가 아니라 2002년에 <스파이더맨>을 제작했던 소니 픽쳐스에 여전히 속해 있다. 소니 픽쳐스와 마블 스튜디오스 사이의 대승적인 합의 없이는 스크린에서 어벤저스의 멤버로 활약하는 스파이더맨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마블 코믹스에서는 어벤저스와 엑스맨이 공통의 적을 두고 힘을 합쳐 맞서 싸우기도 하지만 어떤 특정 사안(이를테면 '초인 등록 법안' 같은)에 따라서는 갈등을 빚거나 심지어는 전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국내 소개된 작품 들 중 <시크릿 워>, <시크릿 인베이전>이 전자에 속한다면 <시빌 워> 시리즈는 후자에 속한다. DC와 마찬가지로 마블 코믹스 역시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하나인 마블 유니버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들에는 어벤저스와 엑스맨뿐 아니라 마블 코믹스의 거의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다.
그런데 이 마블 유니버스도 사실은 단 하나의 세계가 아니다. 멀티버스(Multiverse)에 메가버스(Megaverse), 옴니버스(Omniverse) 등의 여러 평행 우주들이 산재해 있고 각각의 우주는 저마다 다른 설정들을 갖고 있어 하나의 슈퍼히어로도 그 우주에 맞는 다른 변주가 존재한다. 덕분에 영화와 한데 엮여 기획된 <얼티미츠> 시리즈에서는 새뮤얼. 잭슨을 꼭 닮은 흑인 닉 퓨리가 <시빌 워> 시리즈에서는 원래의 전통적인 백인 닉 퓨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어벤저스>를 비롯한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로 어벤저스를 비롯한 마블의 슈퍼히어로 그래픽 노블에 입문하는 독자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슈퍼히어로들의 세부 설정에 조금 느슨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영화와 그래픽 노블이 조금씩 다르고 그래픽 노블 역시 각 작품마다 세부 설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체와 작품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설정들은 오히려 각 히어로들의 성격과 특징을 더욱 풍성하게하고 더 많은 2차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큰 틀에서는 동일한 설정을 유지하지만 세부에서는 조금씩 다른 세심함은 미국 슈퍼히어로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더욱 재미를 가져다주는 요소다.
한국의 대중들은 미국의 코믹스 팬들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슈퍼히어로에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로 익숙해진 뒤 코믹스를 통해 슈퍼히어로와 친해지는 이 경로도 썩 나쁘지 않다. 결국 물줄기가 어디에서 시작되든 간에 일단 흘러 흘러 가다보면 하나의 큰 바다로, 아니 마블 유니버스에서 모두 만나게 될 것이다
/최원택 칼럼니스트·<미드의 성분> 저자
첫댓글 각각의 영웅의 특징,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영웅들, 어려움 앞에 그들의 연합 등등 많은 생각할 거리와 시원한 액션씬으로 무장한 영화 어밴져스에 관한 칼럼입니다.^^(저는 어제 봤는데 볼만 했습니다.)
영화 엑스맨씨리즈랑 영화 왓치맨이 생각납니다.
잼있겠는데요ㅎ 보러 다녀오겠습니다 ㅎ
도라에몽 자료실 봐주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