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評 (계간 [문학과 창작] 기고)
함부로 쏜 화살 같은 사랑의 열정
--김은경 장편소설 [치명적인 사랑] 영언문화사--
이 원 규/소설가. 동국대 겸임교수
이 소설은 삼십대 여성의 사랑을 향한 일탈과 반란을 중심 모티브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치명적인 위험과 아픔의 자각을 감수성 깊은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인 나(유미연)는 대학에 출강하는 지성과 감성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 여성편력이 심했던 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기억, 결혼하여 아기까지 낳은 뒤에 작은외할머니가 데리고 들어온 이복 오빠와 사랑에 빠져 자기 운명을 엎어버린 이모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녀와 남편 준기와의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이 벌써부터 실종되어 있다. 오직 수태를 위한 섹스를 나누며 어떤 감정과 신뢰의 교환도 없는 소통부재의 관계를 무미하게 이어 간다.
어느 날, 출강하는 대학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낸 인연으로 그 대학에 출강하는 강사인 박민재를 만난다. 알고 보니 그는 그녀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그의 차를 같이 타고 출강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져든다. 그는 알고 보니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사생아 출신이다. 어머니가 미혼모로서 아들을 자신의 아버지의 아들로 입적시켜 놓고 결혼한 것.
그런 가운데 옛날에 말썽 많았던 이모의 부음을 접하고, 누군가에 의해 불륜을 적시하는 이메일이 오고,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불안 속에 거듭 섹스를 나누며 그녀는 임신한다. 그녀는 선선히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맞는다. 그리고 박민재와의 짧고 비겁한 사랑이 끝났다고 다짐하며, 자신이 살아 있음과 언젠가 또 누구를 만날 것임을 생각한다.
스토리 라인을 보면 이 시대에 많이 등장한, 기혼여성의 일탈적 사랑을 담은 소설들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신선한 상상력의 착상을 통해 차별화의 언덕을 거뜬히 넘어선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제사(題詞)로 붙인 프랑스 작가 애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사랑> 작가의 말의 한 단락이다.
어렸을 때 나는 사치라고 하면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 대해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게 사치가 아닐까 생각 한다.
애니 에르노는 누구인가. ‘나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자기 소설을 소설이 아닌 진실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면서 소설과 자전의 경계를 무너뜨려 버린 작가이다.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거침없는 묘사와 서술로 그려냄으로써 프랑스 문단에 충격을 던진 작품이다.
작가는 왜 그 작품을 끌어다 붙인 것일까. 그것은 작가의 계산인가. 그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는 ‘뭔가 이 안에 있군’하면서 끌려들어가고, 에르노를 아는 독자는 ‘선정성이 매우 진한 자전적인 불륜 이야기이겠군’하며 끌려들어간다. 독자를 붙잡기 위한 유혹의 갈고리였든, 작가 스스로 이 소설의 집필을 시작하면서 에르노의 소설을 전범으로 삼았기 때문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열정>의 아류가 아니며 그것을 모방적으로 답습하지 않았다. 그 소설처럼 지나치게 선정적이지 않고 한국 정통 현대소설의 중심 흐름을 충실하게 이어받으면서 새롭게 창조했음을 선명한 특장(特長)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1인칭 화자를 내세워 고백과도 같은 과감한 진술에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와 화자간의 거리 두기에 성공한 것이 그것을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도입부에 나오는 발목에 깃이 달고 허공을 날며 남자를 만나는 여인의 이야기도 작가가 선택한 포맷의 새로움이다. 이 몽환적 모티브는 화자의 무의식 심층을 엿보게 하는 효과를 거두면서 적절히 소설 구조 속에 녹아든다. 이 소설의 핵심을 차지하는 주인공의 내면묘사와 어우러져 빛을 발하며, 1인칭 사소설이 갖는 단조로움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이 소설의 가장 탁월한 점은 뭐니뭐니해도 감수성 강한 문체, 그리고 현학으로 독자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지성과의 결합이다.
고양이는 밤눈이 밝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먹물 같은 어둠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단호 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가 매력적인 것은 몸 곳곳에 지뢰를 감추어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94쪽)
지난 수개월 동안 나는 함부로 쏘아댄 화살 같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들은 무작정 앞 을 향해 날아갔을 뿐 결코 뒤돌아보거나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젠 풀숲을 헤치며 떨어진 화살들을 주워모을 시간이었다. 내가 쏘아댄 많은 화살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212쪽)
위에서 말한 에르노의 서문 제사와 발목의 날개 상상력, 그리고 유려한 문체가 없었다면 이 소설은 우리시대에 범람하는 무수한 불륜소설의 한계 안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도입부의 그런 두 가지 장치와 문체가 가진 서정, 전체를 이끌어가는 외로움의 정조, 적절한 지성적 사유는 이 소설의 격조와 품격을 끌어올려 놓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작가의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은밀한 사랑에 빠졌으면서 남편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극심한 자아 내부의 분규나 양심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직핍하여 말해버린다.
결말부에서 작가는 화자인 미연을 시켜서 말한다. ‘금강석의 실체가 원소기호 C인 탄소덩어리이듯이 사랑의 실체 또한 파티를 위한 풍선처럼 화려한 밤이 지나면 쓸모없어지는 소모적 감정’이라고.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남성 중심주의 사회의 여성의 숙명이라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인습적인 사유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반부의 여고 동창들의 이야기, 이모의 죽음이 전체 구조에 좀 더 응집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단편만을 발표해 온 여성 신예작가의 첫 장편으로서 이 소설은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매혹을 가지고 있다.
첫댓글 빨리 읽고 싶군요. 김은경 씨 첫 장편 축하해요! 선생님께서 든 몇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감수성 강한 문체와 현학이 느껴지는군요. 다시 한 번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