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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벨리코 카디예비치 참모총장 블라고예 아지치
연방군은 1990년 4월부터 시작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두 지역 방위군에 대한 무장 해제 작업 때부터 사실상 전쟁 계획을 수립했다. 이때부터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각 공화국은 절저한 정보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는 취약한 민병대와 경찰 예비대의 무장을 서두르는 한편 연방군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 부대 조직을 대폭적으로 확대했다. 연방군도 이에 대항해 대크로아티아 공작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양 조직의 활동이 지방 조직 선상에서 계속 유혈 충돌을 불러 일으켜 분쟁을 가속화시켰다.
연방군은 이와 함께 전쟁시 발생할지도 모를 내부 분열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군대 내의 공산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 활동을 금지시켰다. 또 군 지도부는 특별 지시를 내려 군부가 유명무실해진 군 내부의 공산주의자 연맹(공산당)을 대체하는 ‘유고슬라비아 운동’이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모든 장교들에게 가입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유고 연방군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유지하는 데 최고의 목적을 두었으며 전쟁시 이탈 세력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 1월 말 발간된 연방군 정치 강령집의 첫머리는 이렇다.
“유고 인민 해방군(연방군)의 최우선 과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사회주의를 재수립하는 것이다. 특히 ‘유고슬라비아 운동’은 앞으로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세력이 될 것이다.”
연방군 정치 강령집에 나타난 연방군 지도부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연방군은 사회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체제를 존속시키는 데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으며, 연방군 지도부는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세르비아측의 측면 지원을 받아 전쟁을 수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둘째, 군부는 공산당을 대체하는 ‘유고슬라비아 운동’이라는 정치 세력을 통해 민간 정치에 노골적으로 간섭을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연방군의 선택은 1991년 3월 19일 발표된 6개 항의 ‘유고 인민 해방군 최고 사령부 성명서’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1. 연방 헌법에 따라 합의에 도달하지 않은 모든 국경선의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2. 내전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하지 않는다.
3. 민족 간이든, 공화국 간이든 혹은 정당 간이든 어떤 집단 간의 무력 행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4. 연방 헌법에 따라 연방 예산의 군할당, 지역 방위군의 연방군 부속 등의 기본적인 조건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5. 연방 대통령 위원회는 지역 방위군의 무장 해제를 단행하라는 연방군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연방군은 유고슬라비아 여타 지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불법적인 무장 사태에 대해 책임이 없다.
6. 연방군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연방의 미래에 대한 정치적 협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성명서에 담겨진 연방군의 의도를 분석해 보면, 첫째 조항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할 경우 무력으로라도 응징할 것임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이례적으로 군에 대한 예산 문제를 거론한 넷째 조항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군의 조합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 성명서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있게 봐야 할 대목은 다섯 번째 조항이다. 이 조항은 연방군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불법 군대 조직을 분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연방 대통령 위원회에 건의했지만, 연방 대통령 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각 공화국 간 이견으로 사실상 대통령 위원회는 마비 상태에 있었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아닌 다른 지역(세르비아를 분명히 지칭)에서 무장하는 경우에도 연방군은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명시화하였다. 연방군은 벌써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세르비아 민병대를 조직해 무장시키고 있었으며,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책략의 하나로 다섯 번째 항목을 제시하였다.
성명서가 나온 직후 연방군은 다음과 같은 별도의 서한을 대통령 위원회로 발송했다. “군부는 연방 내에서 문제의 소지가 많은 충돌이 발생한 경우 이에 대처하는 군부의 작전을 스스로 결정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 서한은 결국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군부의 대응책은 연방군 최고 사령관인 연방 대통령(혹은 대통령 위원회)의 지시와는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결국 군부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서한은 당시 군부 내 온건 그룹을 이끌고 있던 국방장관 카디예비치(V. Kadijevic) 장군과 강경파인 참모총장 아지치(B. Adzic)를 정점으로 하는 대결에서 그 무게 중심이 강경파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결국 이 서한은 군부가 더 이상 군 최고 사령관인 연방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직접 무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군부 쿠데타인 셈이다. 서방 언론들은 이 사건을 군부의 ‘소프트 쿠데타’로 명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