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은평 녹색당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감은빛(김원국)
음 '멘탈 붕괴'라는 말 알아요? 최근에 알게된 단어예요. 이렇게 말하면 나이들어 보이지만, 요새 젊은 친구들이 주로 쓰는 말인것 같아요. 처음 알게 된 건 아마도 서울시당 창당대회날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발제를 해주셨던 이안홍빈님께서 고맙게도 창당대회 1부와 2부의 요약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려주셨어요. 저는 입구쪽에서 다른 일을 하느라고 그날 행사 진행내용을 하나도 보지 못했던 터라, 나중에 이안홍빈님께서 요약해주신 내용을 읽으며, 서울시당 창당의 감동을 뒤늦게 혼자 곱씹고 있었죠. 그런데 2부에 한창 사람들의 주장이 엊갈리고, 시간이 지체된 시기에 이안홍빈님의 속마음을 살짝 표현해주셨더라구요. "(...휴.. 멘탈 붕괴될뻔)" 이란 표현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멘탈 붕괴'라는 인지하게 된 듯 해요. 신기하게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냥 읽는 순간 그 뜻을 알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멘탈 붕괴(줄여서 '멘붕') 란 말을 알게는 되었지만,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상태인 건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던데, 대체 뭐가 멘붕이라는 건지 잘 몰랐어요. 그냥 좀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을 말하는가보다 싶었죠.
어제 비로소 멘탈 붕괴라는 말의 뜻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바로 얄리언니(이기순)와 감은빛(김원국) 두 사람이 어제 저녁에 겪은 일이예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면 다시 한번 더 과거로 돌아가야해요. 3월 12일 쯤이었죠. 서울시당 차원에서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 각 지역별로 수량과 게시할 지점을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플래카드는 하나에 8천원. 설치를 직접하지 않고, 업체에 맡긴다면 설치비용은 1만8천원이라는 정보와 함께요. 은평지역에서는 논의를 통해 직접 설치하는 것보다 전문가가 높은 곳에 눈에 잘 띄게 걸어주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총 10개를 걸고 싶었고, 그래서 설치비용을 십시일반 모으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서울시당에서 수량을 조절하여 은평에는 8개의 플래카드가 걸렸어요. 은평당원들의 참여로 제법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설치비를 보내고도 훨씬 더 많은 돈이 남았죠. 그런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걸었던 플래카드가 조금 아쉬웠어요. 무엇보다 색깔이 너무 연하게 나와서 멀리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별로 녹색당이란 느낌도 안드는 듯 했죠. 한 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대다수의 은평 당원들이 그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게다가 걸려있는 곳이 전부 바닥에 깔려있는 거예요. 우리는 전문가가 사다리를 이용하여 높은 곳에, 잘 보이도록 달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돈을 모아서 보냈는데, 바닥에 깔아 놓을 거라면 우리가 달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얄리언니가 설치기사님과 통화를 했어요. 기사님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더라구요. 처음에 기사님도 높은 곳에 달려고 했는데, 8천원짜리 플래카드의 나무 지지대가 너무 약해서 당겨서 걸면 부러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테이프를 갖고 보수해가면서 달았고, 나중에는 아예 높은 곳에는 달지 못하고, 낮게 낮게 달수밖에 없었다는 거지요. 실제로 비바람에 늘어진 플래카드를 보수하러 다녀보니 우리 플래카드의 나무대가 유난히 얇긴 하더라구요.
그래서 은평당원들은 다시 한번 뜻을 모았습니다. 모금한 돈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추가로 플래카드를 더 만들어서 달아보자. 이번에는 색깔도 선명한 녹색으로 해서 눈에 잘띄게, 높은 곳에 달도록 하자! 이야기만 나눠도 신났습니다!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마침내 어제(27일, 화) 비록 늦긴 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플래카드를 걸었습니다. 선명한 녹색에, 녹색당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문양도 넣구요. 이전 것과 다르게 튼튼해서 설치기사님께서 높은 곳에 아주 멋지게 걸어주셨어요. 얄리언니가 기사님과 함께 돌아다니며 수고를 해주셨구요.
얄리언니가 멋진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는 모습을 카카오톡과 은평녹색당 카페에 공유했을 때, 많은 분들이 함께 기뻐해주셨어요. 어느 당원은 너무 좋다며, 돈을 더 걷어서 몇 개 더 달자는 제안도 해주어요. 이제서야 우리 동네에서 제대로 녹색당을 알릴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서로가 뿌듯한 느낌을 가졌어요.
그런데 기쁨도 잠시, 어렵게 달아놓은 플래카드를 모조리 떼어내게 되었어요. 바로 플래카드에 사용한 문구가 문제가 되었죠. '4·11의 선택, 녹색투표용지에는 11번 녹색당'이라고 썼는데요. 선거법에는 특정 정당에 투표하라는 문구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네요. 물론 그 내용을 예전에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플래카드 문구를 놓고 고민할 당시에는 이 문구가 선거법 위반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11일과 11번, 녹색용지와 녹색당이라는 절묘한 상황을 잘 담아낸 멋진 문구라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최근 발표한 녹색당의 선거 슬로건도 '정당투표는 녹색당'이라고 했으니, 슬로건을 잘 표현한 문구라고 생각했죠. 그 순간에는 선거법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어쨌거나 어제 여러 통의 전화를 받고 또 걸었습니다. 전국사무처와 서울사무처 그리고 얄리언니와 통화하느라고 전화기는 몸살을 앓았을 겁니다. 처음 선거법 위반에 대해 전화를 받았을 때, 이미 얄리언니와 기사님은 설치를 다 끝낸 시점이었어요. 은평에서는 이 문구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몰랐다. 이미 걸었는데, 그리고 이제 막 걸었는데, 다시 철거하는 것은 너무하다 등의 입장을 전달하며, 그냥 걸어두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자문변호사를 통해 의견을 받아보니, 이 사안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그냥 걸어두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지금이라도 빨리 철거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결국 저녁에 있을 '은평 살림의료생협'의 '탈핵드라마 공동체 상영' 행사에 당원들이 참여하는 동안, 얄리언니와 감은빛은 둘이서 플래카드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사다리를 구할 곳이 없어서 오전에 설치해주셨던 기사님께 사다리를 빌렸어요. 둘은 차로 이동하면서 계속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아까 낮에 멋지게 달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다른 당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수다를 떨었어요. 첫번째 장소인 구산역에 도착했어요. 구산역에 걸린 플래카드가 제일 높아서 조금이라도 더 밝을 때 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불과 6시간 전만해도 멋지게 걸려있던 플래카드가 없어요. 얄리언니가 찍은 사진을 놓고 비교해보니, 분명히 거기에 있어야 할 플래카드가 없어졌네요. 누군가가 먼저 떼버린 것이죠. 왜? 누가 떼버렸을까? 고민도 잠시 시간이 없었으니, 우린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정신없는 감은빛은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을 허비하고도 하구요. 구파발 역에 도착해서 사다리를 펴고 접느라 잠시 씨름을 하기도 하면서 플래카드 하나를 수거했죠. 이어 은평구민체육센터 앞에 있는 것도 무사히 수거했어요. 다음은 녹번역. 여기도 플래카드가 없어요. 역시 얄리언니가 찍은 사진을 높고 비교해봤죠. 다른 정당 플래카드들은 다 잘 걸려있는데, 왜 녹색당 것만 사라졌을까요? 다음 이마트 앞으로 갔어요. 또 없네요. 이쯤되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거예요. 마지막 응암역 앞으로 갔어요. 역시 여기도 또 없네요. 총 6개의 플래카드를 걸었는데, 수거한 것은 겨우 2개. 나머지 4개의 행방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머리가 복잡해지고, 정신이 멍해졌어요. 기사님께 빌린 사다리를 돌려주러 가는데, 우린 둘 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었죠. 그야말로 멘탈 붕괴 상태에 빠져버린 겁니다. 정신없는 감은빛은 또 길을 잘못 들어서 시간을 잡아먹었구요.
사다리를 돌려주고 나서 당원들이 모여있는 '은평 살림의료생협'으로 돌아오니 대략 2시간 반이 걸렸네요. 나머지 당원들은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위로주나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은평 당원들은 멘탈 붕괴를 맥주로 씻어내러 갔습니다.
**
은평 당원들의 모금액으로 추가 제작한 6개의 플래카들을 걸고, 무척 좋아했건만, 불과 6시간만에 다시 철거하러 다녀야 했던 참 이상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더 힘빠지는 일은 6개 중에서 2개만 수거하고 나머지는 행방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긴 글을 끄적였습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읽고 있으니 눈물이... 으허엉... 엉엉엉엉엉엉엉... ㅠㅠ
얄리언니 님.. 울지마세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얄리언니 님과 은평당원 여러분의 노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젯밤에 은평당원 두 분과 함께 있었어요. 얄리언니 님도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다시 힘 내시고요.. 은평녹색당 화이팅!!!
아우! 밤새 술마시고, 잠 한숨도 못자고 바로 출근했더니 미치겠네요. ㅠ.ㅠ
내 답글 밑에다 바로 그렇게 달아버리면 꼭 나랑 밤새 마신것 같잖아..(그랬나?? -_-)
ㅜㅜ....
감은빛 님, 긴 글 잘 읽었습니다.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군요. 사라진 4개의 플래카드는 정말 이해가 안되고요...
서울녹색당도 향후 법률적 자체 판단을 위한 자문변호사를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맘 상하지 말고, 기운내서 예전과 같은 활발한 활동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은평 당원들의 열정과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 그리고, '멘탈붕괴', 뭐 이런말 참 새롭군요. 갠적으로 다음에 꼭 써먹을 일이.. 아.. 없기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