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장 풍경
이 한 재
3일이 설날이니 2일에 서는 장은 대목장이다. 설을 쇠려고 어머니가 계시는 기장(機張)에 갔다가, 어머니와 함께 대목장을 구경하려 나섰다. 요즘은 제수(祭需) 용품도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사는 사람이 많아 특별히 붐비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나처럼 명절 앞의 재래시장에서, 대목의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잃어버렸던 옛날을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동해 남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해운대와 송정을 지나면 나타나는 기장은 동해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어 그 동쪽 끝을 맡고 있다. 바다와 산골을 동시에 끼고 있어 시장에는 다양한 농산물과 수산물이 나오고, 또 싱싱하고 값싼 상품을 찾아 원근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처음에는 오일장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상설시장이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기능 외에도 횟집과 대게 집 같은 특별한 맛 집이 많아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예부터 기장은 멸치와 갈치와 미역이 유명한 곳이다. 봄 멸치, 가을 갈치는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았지만, 많은 사람은 사철 나는 미역을 오히려 더 위로 친다. 인근 청정해역에서 갓 건져 올린 미역을 살짝 데쳐 먹거나, 소금에 문질러 씻어서 초장에 찍어 먹을 때의 그 맛은 마치 한 접시 봄나물처럼 입안을 상큼하게 해준다.
시장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건어물, 젓갈류 가게와 더불어 생선가게들이 계속 이어지고 중간 중간에 골목으로 들어가면 횟집도 여럿 있다. 왼쪽으로는 새롭게 기장 명물로 자리 잡은 대게 집이 줄지어 있고, 잇달아 싸전을 거쳐 채소 가게들이 나타난다. 대게 집 수족관에는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대게가 책을 쌓아두듯 층층이 포개져 있어 대목장이 아니라도 관광객이나 미식가들이 줄을 짓는다. 그러나 기장시장의 참모습은 길 가운데 무질서하게 벌려놓은 좌판이다. 기장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회는 건물에서, 선어와 해산물은 좌판에서.’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할머니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은 마치 시골 장을 보는 것 같다.
대목장은 입구부터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또 이쪽저쪽에서 호객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어머니와 함께 조심스럽게 걷지만 많은 사람 틈에서 서로 밀리고 부딪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탓하거나 시비 걸지 않고 웃으며 지나가니 모두가 명절 기분에 취한 것인가. 입구에서 머잖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고소한 냄새도 난다. 들여다보니 전(煎)을 부치는 곳이다. 명절 기분은 전 부치는 냄새에서 시작되는데 요즈음은 그것도 다 시장에서 사다 쓰는 모양이다.
“어머니 올 설엔 전 안 부쳐요?”
“네 동생이 몇 가지 해 올 거야. 난 이제 그런 것도 할 힘이 없어.”
탄식하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릿해진다. 어릴 때는 고구마 전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생선이나 굴 전을 더 좋아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떠밀려 가는데 그 틈에서도 언제 보았는지 단골 생선 가게 아줌마가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리 마음먹은 듯 갈치를 몇 마리 사신다.
“우째 제사상에 올릴 것은 한 개도 안 사고 서울 아들 줄 것만 사능교?”
“죽은 조상보다야 산 자식이 훨씬 더 중요하지.”
붙임성 좋은 아주머니가 빠른 손으로 토막을 내고 소금을 치면서, 자기도 얼른 팔고 들어가 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수다를 떤다. 그리고 서울 단골 왔다며 값도 조금 깎아 준다. 뒤에서 노점상 할머니의 호객 소리가 들린다.
“오징어가 세 바리(마리) 만원.”
“한 바리 사가 가이소.”
돌아보니 물이 담긴 커다란 플라스틱 통마다 각종 생선이 헤엄치고 있다. 그 옆으로 생미역, 톳나물, 모자반 같은 싱싱한 해조류를 파는 할머니가, 또 그 옆으로 붕장어의 껍질을 벗기고 있는 아줌마도 있다. 그리고 홍합, 굴 등 조개류가 있는가하면, 해삼, 전복, 소라, 문어도 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수산물이 크고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가득가득 담겨져 있다. 8도 수산물 중 없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배따주까? 그냥주까? (배를 따 줄까? 그냥 줄까?)”
생선을 사려는 젊은 여자에게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다 입가에는 웃음이, 눈에는 정이 흐르고 있다. 원래 친한 사이일수록 퉁명스레 대하는 경상도 특유의 말투임을 알기 때문이다. 억세고 걸걸한 사투리가 오히려 삶에 활력을 주는 것 같다.
싸전에는 평소에 없던 한과와 강정이 잔뜩 쌓여 있고, 한쪽에서 쌀을 튀겨서 강정을 만들고 있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이, 물건은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 옥수수나 쌀을 튀기는 냄새는 그리움의 냄새다. 이 사람들도 그리움을 찾아, 추억의 냄새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 아닐까? 이렇게 많은 가게와 좌판이 펼쳐져 있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옷가게나 신발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옛날의 대목장에는 반드시 있었는데…….
내 어릴 때 고향의 장날은 오일장으로 3자와 8자가 들어가는 날에 섰다. 즉 매 3일, 13일, 23일과 8일, 18일, 28일이 장날이었다. 그 중에 설이나 추석에 가장 가까운 날이 대목장이다. 대목장이 되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함께 장에 가셔서 평소에 사지 않던 많은 것을 사오셨다. 여러 종류의 생선과 과일, 그리고 설 치레나 추석 치레인 옷이나 신발 등이다. 신발과 달리 옷은 언제나 조금 큰 것을 사서 마치 ‘병아리 우장 쓴 것 같다’고들 했지만 그래도 그 옷을 자랑하려고 입자마자 이집저집으로 돌아다녔다. 지금은 대목장에서 옷을 사고 신발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가 보다. 대목장을 기다리던, 또 동구 밖에서 대목장에 가신 어머니와 할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던 그때 그 모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대목장은 한마디로 무질서의 세계다. 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에서, 좌측통행도 우측통행도 없이 밀치며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표준말과 사투리가 뒤범벅되어 마치 다투는 것 같은 말에서도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물건 값도 엿(?)장수 마음대로 더 받기도 덜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질서의 바닥에는 인정이 흐르고 있다. 부딪치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고, 큰 소리로 싸우는 것 같은 말소리에 정겨움이 있다. 덤을 얹어 주거나, 값을 깎아 주는 것도 다 이 인정 때문이리라.
질서가 아름답고 또 살기에도 편리하지만, 때로는 무질서의 인정스러움이 더 그리운 것은 나이 탓인가? 세월 따라 변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 탓인가? 오늘 내가 이 대목장을 찾는 것도 옛날의 추억을 찾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점점 메말라가는 인정을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1.2.21)
첫댓글 지난 설에 어머니가 계시는 기장에 갔다 와 써 본 글입니다.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의견을 구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인정'을 좀더 강조하라는 화요반 동료들의 지적이 있었는데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여러분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SOS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장날에 장에 가시면 어서 오시기를 얼마나 기다렸던지요.
먹을거리보다는 새 먕말이나 새 옷을 신고 입을 수 있다는 설레임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대목장을 보시는 장노님의 모습을 그려보니 참 행복하셨을 듯합니다. 덕분에 저도 옛 고향의 장날을 떠올리며 즐거운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드신 어머니와 함께 대목장을 돌아보았지만 행복하기 보단 안타깝고 허전했습니다.
지금보다 부족한 것이 훨씬 많았던 그때가 오히려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우리세대가 보는 안타까움이 너무 많지만 인심과 정서가 살아있는 재래시장은 한산한 데 백화점은 주차장 멀리서부터 줄 서있지요. 사치와 허영에 허투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안타까울 뿐 이지요, 욕심을 낸다면 호수물결에서 파도가 이는 바다로 나아가셨으면 어떨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도 대목장이라 그런지 재래시장도 한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추억도 만나보고 인정도 느껴 보았습니다. 그리고 "호수 물결에서 파도가 이는 바다로 나갔으면" 이란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저는 우울하거나 힘겨울 때 복잡한 시장에서 활력을 얻습니다. 정감있는 풍경 속을 같이 거닐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문장을 다듬어야 될 것 같습니다. 첫 문장에도 어머니가 겹쳤으며, 두 번째 단락의 첫 문장도 '부산에서 출발한 동해 남부선 완행열차는 해운대와 송정을 지나 기장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동해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부산 광역시에 포함되어 그 끝을 맡고(지키고) 있다' 등...
좋은 지적 정말 감사 합니다. 한 문단에 같은 말이 두번 씩이나 사용되었군요. 좋은 말로 바꾸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골의 대목장에서 같이 부대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요즘 차례상을 차리는 이야기와 어머님과 같이 장을 둘러보시는 모습도 정겹고 글에 현장감을 더해줍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장노님의 글, 어떤 계단을 훌쩍 넘어 선 것같아 부럽고 셈이납니다. 말미에서 대목장을 무질서하다는 표현은 좀 다른 말이 없을까요?
대목장의 인정을 강조하려고 무질서를 내세웠습니다. 무질서한 것을 인정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면 달리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 드립니다.
저도 전에는 큰 재래시장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며 슬며시 옛 기억들이 떠올려지네요. 집 안 행사나 손님 초대할 일이 있으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좌판에 앉아 순대도 사먹고 2층 포목점 구경도 하고... '대목'이란 말이 한자어인가 하고 사전을 찾으니 순 우리말이군요. 제목이 '대목장 풍경'이어서 혹시 목장에 다녀오신 글인가하고 착각했었지요. 현장 스케치를 겸한 글이라 의미화하기는 어렵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드네요.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셨다니 감사합니다.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려워 도움을 얻고자 글을 올렸는데 그냥 슬쩍 넘어가시네요.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 마시고 좋은 생각이 떠 오르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