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지금으로부터 10 여년 전에 혼자서 기운영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이글을 쓰려고 보니 그때로부터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알고는 새삼 다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어제도 건강의 문제로 상담을 받으시는 분께서 몇년이나 공부했는가를 물어오셨습니다.
간혹 이러한 질문을 받을때마다 느끼는 것은 스스로 공부한답시고, 혹시나 도포자락 때만 묻히고 다닌것은 아닌가 하고 뒤돌아 봅니다만, 한편으로는 상담받으시는 분께서 안심하고 신뢰할수 있을정도의 공부를 하였는가를 시험받는듯한 불편한 느낌을 가지기도 합니다.
상담자의 신뢰기준이 공부한 햇수로 평가할수야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다른방법으로 측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상담내용보다는 상담자의 경력에 더욱 신뢰하는 현실이다보니 그러하겠습니다만, 이럴때마다 제가 드리는 대답은 도포자락 때만 묻혔다는 말로서 대답을 피하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공부한 햇수에 대해서 무관심하여 누가 묻는다면, 별관심 없이 지난 햇수에 대해서 한참이나 기억을 떠올려 계산해야 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예전에는 많은이가 도포자락 때만 묻도록 햇수만 보내는데 대해서, 전혀 무시하고 관심밖이었는데 이제 돌이켜보는 제 스스로가 도(道)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뻔질나게 도문(道門)만 들락날락 거리며 도포자락에 때만 묻히며, 세월만 지나오지는 않았는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라서 몇해전의 일인가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려다보니, 이렇게 또 많지도 않은 햇수를 다시 계산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드리려고 하다보니 서론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10 여년전의 가을로 기억이 됩니다.
그해의 전에부터 공부중에 기운영을 다녀와야 한다는 반복되는 정보를 접하여, 세부적인 기운영 조건에 대해서 점검을 해 보았습니다.
조건은 혼자가야 하며, 장소는 인천이며, 시간과 또다른 조건의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때나 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다음해가 되는 지금으로부터 10 여년이 지난 가을날 시간을 내어 수요일날 창원에서 출발을 하여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스승님의 곁을 떠나서 스스로 오직 공부만 하면서, 배우려고 찾아온 분들을 모아서 제가 살던 작은 아파트에서 공부를가 르치면서 살던 때였습니다. 인천을 다녀오려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므로, 당일날 다녀오기는 어려워 배우는 분들이 오지 않는 날짜를 정해서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예정을 하고, 우선 인천에서 총각으로 혼자 살고있는 친구에게 기별을 하였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를 오랫만에 만나 서로 기쁨을 나누며, 둘이서 인천의 어느 바닷가에 즐비한 횟집에 들러서, 간단한 술과 푸짐한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밤늦도록 서로의 삶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늦게 친구의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전에 기운영에 대한 점검을 했습니다.
내일 혼자서 부천역으로 기운영을 하라는 정보를 다시 접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서며, 직장으로 향하는 친구와 아쉬운 작별과 고마움을 전하고서는 택시를 타고서, 택시기사분에게 부천역으로 가지고 했습니다.
택시 기사분은 나의 말이 경상도의 억양이 많다며, 출장을 온것인가를 물으면서 부천역은 철길을 중심으로 남역과 북역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어느역으로 가야하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잠깐 점검을 하고서는 남역으로 가지고 하였습니다.
잠시후, 택시는 허름한 낡은 건물의 입구에 차를 세우면서, 택시기사분이 나에게 하는 말이 "부처님 여깁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깜짝 놀라며, '아니! 이분은 내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택시기사분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택시에서 내리기는 하였습니다만 낮선곳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며, 부천역을 찾았습니다.
당시는 부천역은 철길을 중심으로 역사가 육교처럼 남쪽과 북쪽의 입구가 서로 통하게 만들어졌습니다만 새로운 역사를 짓는다고 부천역의 건물로는 남역과 북역이 서로 통행하지 못하게 막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천 남역에 도착한 나는 혼자서 택시기사가 했던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표가 없는 나에게 어찌하여 부처님이러 했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아하! 그렇구나. 하고는 혼자서 빙그시 웃었습니다.
"부천 남역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빠르게 말하면 "부천남역입니다."가 되고, 내게 "부처님여깁니다"라고 들렸던 것입니다.
혼자서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며 천천히 기의 흐름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5분 정도 천천히 기의 흐름대로 걸음을 옮기다가, 길가의 은행에 들러 1만원권을 1천원권으로 '환전'을 하고 나오는데, 바로 앞엔 부천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간단하게 표시하여, 길가에 세워둔 작은 게시판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시내의 작은 약도가 그려진 게시판을 보며, 기운영을 해야하는 코스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부천 남역에서 출발하여, 부천 북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기운영의 마무리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에 그려진 약도에 따라서 부천 남역과는걸어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철길 아래의 굴다리를 통해서 'U 자 모양'으로 부천 북역으로 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습니다.
여기의 철도 굴다리의 이름이 소명교였습니다.
부천 북역으로 가는길 중에, 어느 3층건물의 유리창 간판글에 "경매" 라는 크고 붉은 글이 지금도 기억 날만큼, 아주 선명하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계속하여 걸음을 옮기며, 어느 기독교 전문 서점에 들어가서 환전된 돈으로 간단한 용품을 하나 구매를 하고 나와서는, 이윽고 부천 북역의 광장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도착을 하고보니 부천 남역보다는 북역에서 먼저 새로운 역사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으며, 광장에는 분수였는지는 기억이 희미합니다만, 그 중앙 광장에는 아주 크게 조각된 돌로된 물레방아가 있었습니다.
그 물레방아의 모양이 불교에서 깨달음을 의미하는 '지혜의 수레바퀴'와 같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불교에서 의미하는, 둥근 모양의 수레바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공사중인 역사를 바라보며, 오늘의 기운영이 마무리 되었는가를 점검해보니, 아직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기의 흐름을 찾아서 걸음을 옮기며, 역광장 옆에 있는 줄지어 지어진 허름한 2층 건물의 찻집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찻집의 간판에 걸린 상호는 "재미나라" 였습니다.
조용한 자리를 찾아서 휴식을 취하며, 평소엔 즐기지 않는 우유를 한잔 주문하고는 오늘의 기운영이 마무리 되었을을 알고서, 조용히 기를 정돈하고서야 인천 기운영의 마무리가 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인천(사람이 하늘이다), 부처님 여깁니다, 환전, 소명교, U자형 행로, 경매, 새로운 역사, 지혜의 수레바퀴, 재미나라. 이렇게 이어진 10 수년전에 있었던 기운영을 예전부터 글로 정리하려고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글로 정리하게 되는 것은, 그날의 기운영이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금에까지 그 작용이 너무나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지금도 어렵게 마음공부에 정진하시는 후배님들을 위해서 이 글을 전합니다.
밝은몸 드립니다.
첫댓글 기운영도 재밌겠어요.
기운영을 가는것보다 기운영 해석하는게 더 어렵네요~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구요.. 저도 대전 기운영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데 조~금 감이 잡히기 시작하네요
기운영을 여행쯤으로 생각했었을때, 저두 연태님이랑 비슷한 시기에 대전으로 기운영을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아무때나 혼자서 다녀오라고 하셨어요...그땐 점검도 할줄 몰랐고, 가라고 하니 가야겠지 하고 갔었어요. 대전을 지나 유성에 서방님이 있어 서방님도 만날겸해서 대전으로 갈땐 빠른 KTX를 탔었고 부산으로 돌아올땐 왜 그랬었는지(차비가 아까워서 그랬나잘 모름) 대구를 지나 영천,울산으로 돌아서오는 무궁화호기차를 탔었어요...빙 돌아서 오는것임을 모르고(바부탱이) 탔었던거죠.. 그래도 거운 여행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