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꽃상여...
초상이 나면 마당 귀퉁이에 큰 화톳불을 지펴 놓고
멀리서도 그 불꽃을 보고 초상집임을 알고 외지 조문객들이
찾아 오곤 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초상집 가까이 올수록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다가 이어지는
들으면 들을 수록 가슴 밑바닥까지의 슬픔을 다 끄집어 낼듯한
애절한 상여소리와 곡소리..........
어~~어~~ 어허~~허~허~~에~~~♬
어허~~~~ 어허~~어~~어에~~~~~~~~♬
이제에~~ 가며~~언~~ 은제~~오오나아~~ 어허~~허~어어에~~~♬
딸랑 딸랑~~~~~~~~
꽃상여 맨 앞에 서서 요령같은 종으로 박자를 맞춰 가며
앞소리를 메기는 소리꾼이 먼저 소리를 메기면
상여를 멘 유대꾼들이 뒷소리를 애절하게 따라 한다.
간다아 간다아~~ 아~~~ 나느~~으은~~ 가안~~다아~~~~~~~~
그리고 뒤이어 유족들의 애끓는 듯한 곡소리가 이어지고..
아이고오~~ 오~~~~ㅜ.ㅜ 아이~~이~~ 고오~~~~ㅜ.ㅜ
지금은 초상집에서 곡소리 마저 흘러 나오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 삼키는 듯한 읍소리만...........ㅜ.ㅜ
1977년 9월.... 그러고 보니 올해가 꼭 30년 되는 해입니다.
울 아버지가 돌아 가신 날..
당시.. 상여 나가는 장면 이모 저모를 자익형님의 친구 한분이
찍어 두었던 것을 차례로 나열해 봤습니다.
우리아버지 장례식 광경이기 전에
바로 우리마을의 오래전의 장례 풍습을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여겨
망설이다 여기에 올려 놓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신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며..
역시 지금은 중장년이 되었을 당시의 꼬마들..
본인들이 보면 알겠지만... 누군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당시 우리 마을의 30년전 길목 모습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30년전으로 되돌려 보겠습니다.
<사진 1>
※ 1977년 9월 16일(금)<음 8월 4일> 아버지 장례식 광경
당시 외항선원였던 형님은 외국에 체류중여서 아버지의 임종은
물론 장례식도 볼 수 없었다.
형님 친구인 백선기 형님이 장례식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 준 덕
분에 나중에 형님은 사진으로나마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
을 볼 수 있었다.
<사진 2> 아버지의 관이 상여에 실리고 있다.
45세 젊디 젊은 나이에 지아비를 마지막 떠나보내는
어머니(오른쪽)의 절규와 몸부림이 애간장을 다 녹일것만
같다.
<사진 3> 꽃상여가 덮여지며 우리 가족과 동네 사람들 그리고
조문객의 애끓는 곡소리가 한층 고조되고..
당시 중학생였던 빡빡머리 자원이와 자생이..
변성기에 꺽꺽대며 슬픔을 녹이던 모습이 지금도 내 가슴귀퉁이
에 퍼런 멍자욱으로 남아 있다.
<사진 4> 상여가 집을 떠나기전 아버지의 마지막 하직 인사 광경
마당과 건너편 동산에 까지 가득 채운 조문객들의 슬픈 전송과
함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집을 떠나고 있다.
<사진 5> 대문을 막 나서 동네 한바퀴를 마지막으로 돌며 곳곳에
하직 인사를 하기 위해 아랫뜸길로 향하고 있다.
영정 사진을 사촌인 자복이(당시 18살)가 모시고 있다.
<사진 6> 아버지가 평생을 마셨던 동네
공동우물가 (오른쪽 보이지 않음) 곁을 지나고있다.
사진에 보이는 저 꼬마들이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으리라..
<사진 7> 지금의 아랫뜸 여성회관자리... 맨앞 삼베만장을 든
내 친구 재홍(캐나다 거주)이네 집앞을 지나고 있다.
뒤 명정은 와야(왠말) 사는 친구 정규순이 들었다.
(앞에 엊그제 나이 40 다 되어 장가간 (류)재정이 모습이 보인다^^)
<사진 8> 아버지가 동네 어른들과 함께 쉬곤했던 모정(茅亭)앞.
(지금의 마을 회관 앞)
동네를 한바퀴 돌아 생전에 아버지 특기였던 사물놀이 장구를
신명나게 두들기며 동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셨던 자리..
그 모정앞을 지나며 상여소리꾼 아저씨의 애절한 매김소리에
유족들의 가슴찢는 애통한 호곡소리가 절정을 이룬다.
사진속 조문객들의 표정에서 애통함의 깊이가 읽혀진다.
중1였던 어린 자생이의 설익은 사춘기 울음과 고등학생였던
정순이의 기진하듯 토해내는 울부짖음이 지금도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사진 9> 아버지 생전의 흔적이 가장 많았던 자리여서일까?
상여가 모정앞에서 선뜻 떠나질 못하고있다.
지금은 없어진 동산곁 대밭과 점빵뒷편 소나무밭이 이채롭다.
<사진 10> 마을을 완전히 벗어난 새고정골 입구 4거리다.
아버지가 48년의 세월을 살아오신 마을을 마지막으로 떠나시며
상여을 걸상하고 마지막 노제를 지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11> 상지원 입구쪽을 향하고있다.
상여는 동네를 한바퀴 돌고도 또 먼길을 돌아 돌아 장지를
향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발걸음은 그렇게도 무거웠고 미련과
아쉬움을 떨쳐낼 수 없는 젊은 나이의 갑작스럽고 억울하고
애통한 죽음이었다.
<사진 12> 마을을 벗어난 상여가 벌판 중간에 서서 멀리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며 소리꾼의 애절한 마지막 매김소리로 하직인사를
하고 있다.
상여는 이 하직인사를 마지막으로 돌고 돌아온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빠른 보폭으로 재촉하며 선산 장지로 향했다.
<사진 13>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은 앞시당의 가느다란 논뚝길을
아슬아슬하게 건너 온 상여가 우리 종산 기슭에 자리한
아버지의 장지 입구에 도착해 마지막 소리매김을 하고 있다.
어~~ 어~~~어어에에~~
어 어~~어어에~~~~~~~
<사진 14> 이하 하관 광경
<사진 15> 차디찬 선산 기슭에 아버지는 이렇게 누우셨다.
석관으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16> 사진을 찍어 준 선기형네들과.................
<사진 17> 5남매중 형님의 자리는 비어 있다.
결국 삼우제를 지낸 후에 외국에서 돌아온 형님은 이미 땅속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 뒤 늦은 불효의 눈물을 흘리며
못다한 장남의 도리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 했다.
일주일도 채 못되는 짧은 시간였지만 식음을 전폐한 눈물겨운
간호로 밤잠을 하얗게 세며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애절한 바램과 달리 너무도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앞에
그만 그 건강하던 당신의 육신을 지켜낼 힘을 다 쏟아 부으셨는지
그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어 70이 넘은 지금..
노환까지 겹쳐 힘겨운 노후를 서럽게 서럽게 보내고 계신다.
[아버지 생전 모습 사진]
<사진 18>
당시 월남참전군인 신분였던 막내 외삼촌(07년 현재 62세)이
휴가 나놔서 찍어 드린 사진이니까 약40년전 사진이다.
아버지 연세 39세에서 41세 정도 되셨을 당시 사진으로 보인다.
새마을운동의 일환였던 지붕개량 전였는지 초가지붕 그대로다.
맞은편으로 호밀다발을 쌓아 온 누리 더미가 보이고,
아버지는 학독을 뉘어 놓고 밀치기(개상기질이라 했다. 표현이 맞는지..)를 하고 계신다.
당시 우리 생활상이 그대로 엿보이는 귀중한 사진이다.
모퉁이로 단감나무가 살짝 보이고, 모퉁이곁에 문이 열려 있는 닭장이 보인다.
싱싱한 젊음이 엿보이는 아버지의 여유로운 미소가 퍽 인상적이다.
볼수록 눈뿌리가 시큼거린다.
다시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미소다.
첫댓글 가슴시린 추억이네. 올만에 예전 사진 보면서 칼바람보다 더 시린 시간을 그려보았다네요.
사진을 보니 아는 얼굴이 보이네요, 3번째 사진 좌측위로 건쓴 분이 자광이 아저씨 같고, 그 뒤로 용호 형 모친 5번사진 상여맨 재숙이 삼촌, 모자쓴 승준이 아저씨, 뒤통수 보이는게 재곤이 같은데(귀로 보아) 8번째 가운데 쯤 정현이 형 모친, 호숙이 모친이 보임 12번째 만장과 상여 사이 큰키에 구부정이 걸어가는 분이 선엽누나 부친 같은데 맞나요???????
명섭이 기억력 채점 : 자광씨 (O), 용호 모친(O), 재숙씨(X)=재옥씨임^^, 승준씨(O), 재곤이(X)=재은이, 정현 모친(O), 호숙 모친(O), 선엽 부친(△)=인식불가, ============ 점수 : 8개중 정답 5개, 오답 2개, 반답 1개^^ 총68.8점.
그외 알수 있는 얼굴들.. <사진3> 자옥 모친, <사진4> 내친구 진선이(분홍색 체크남방), <사진5>재실 부친 사열씨(상여 앞소리꾼), 재호(승준씨 뒤), <사진6>재신형(중앙), 재영형(재신형 바로앞), 재걸형(상여 맨뒤 모자쓴 이), <사진7>재정이(맨 앞), <사진8>구순옥(본석이 누나, 울고 있는 정순이 부축), 자복 모친(맨앞), 구미례(자생이 뒤, 자옥이네 큰누나), <사진9> 류순선(상여 맨이 앞에서 두번째 모자쓴 이),
30년전의 얼굴들.... 그 중에도 이미 고인이 되신 분, 시집가서 타지에 사는 사람, 직장따라 객지에 나가 있어 얼굴 안본지 오래인 사람.. 지금은 4~50나이의 어른이 된 사람.. 이미 할머니가 된 사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네요..ㅡㅡ;;
저는 상여 사진들을 2시간이나 보면서 30년전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을 했답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것도 있고 사진이 흐려 판독되지 않는 것도 있어 안타까워 오늘도 다시 보았답니다 귀한 자료 올려주신 자정이 형님 고맙습니다
ㅋㅋㅋ~~ 계속 숨은 그림 찾기 해 보삼^^
ㅎㅎ....가슴이 찡해오네요 아저씨의 장구솜씨는 제 기억으로도 최고였던거 같은데.........저 사진속에 제가 있었나요.......함찿아봐야지...........저때가 내가 10살 였다니........!!!!
근데 내가 어데나오지롱.....................................? 암찿아도 없네..............
암만찿아도 내는 없는데...........
ㅎㅎㅎ~~~ 재은아 5번 사진 오른쪽 끝에 뒷 모습... 그게 너여.. 동네 유일한 '바작귀'가 증명허자녀 ㅎㅎㅎ~~
추억이 돼버린 가슴서린사진 >>>>>4번째사진 얼룩무늬 손옆구리에댄자,5번째사진승준이형 반대편 뒤로가는 얼룩무늬남방, 7번째사진 빨간만사 얼룩무늬남방,11째사진고개숙인 얼룩무늬남방, 12번째사진 빨간만사옆 얼룩무늬남방 >>>>>>>> 이사람이 류재 강 이여 내가이때 돌아가실때처음부터 산소입관할때까지 전부보았지""""""""
헉~! 형님.. 저눔 제 친군디요^^ 이리고등학교 동창(앞에 삼베 만사 든 재홍이랑) 친구 인디요..ㅡㅡ;; 형님이 착각 하신듯 합니다 ㅎㅎㅎ~~ 기억을 더듬어 보시지요^^ 형님이 그때 만사 들 군번도 아니었잖습니까? ㅎㅎ~~
%%글쎄????????내가 잘못생각했나!!그런것같은디..남방도 내그런남방이 있었구,,@@어쩟든 훌륭한 사진이야 오래오래 간직하면 <<<진품명품>>kbs출장감정 신청하고 """"영원히 팔지못하는가문의 명품이야""""""""ㅎㅎㅎㅎ^^^ 후세에대단할끼야~~안녕
ㅎㅎ~~ 예^^ 오래 간직해야지요^^ 지금도 이런 풍경은 다시 보기 어려우니까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