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피나는 로마 황제 칼리쿨라(재위 37 ~ 41)의 누이동생이자, 폭군 네로의 어머니이다. 14살 때 아그리피나는 오빠인 칼리쿨라와 관계를 맺는데,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에는 오누이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 었던 모양이다. 아그리피나는 15살 때 크리스푸스라는 귀족과 결혼했으나 얼마 못 가 남편이 죽었으므로, 이번에는 아헤노바르부스라는 명문과의 귀족과 결혼하였다. 아헤노바르부스라와 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네로이다.
그러나 네로가 3살 때 아그리피나는 다시 과부가 되었고, 이후 그녀는 오빠 칼리쿨라가 총애했던 미남청년 레피두스와 관계를 맺은 뒤, 그를 부추겨 오빠인 황제의 암살을 꾀했다. 그러나 하지만 사전에 음모가 발각되어 레피두스는 처형되었으며, 아그리피나는 칠레이아 해의 섬으로 유배를 당했다.
41년 칼리쿨라 황제가 이집트 병사에게 암살당하자, 아그리피나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가 제위에 올랐으며, 이때 아그리피나는 죄를 용서받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된다. 클라우디우스는 역사학에 조예가 깊고, 에트루리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학문을 좋아한 황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무서운 대식가였을 뿐 아니라 술과 여자를 지독스레 밝혔으며, 형장에 나가 죄인들의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그는 제위에 오른 뒤 세 번째 아내를 맞이했는데, 그녀가 바로 창녀왕비로 소문난 메살리나이다.
메살리나에게는 네 번째 결혼이었다. 황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클라디우스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여, 매일밤 뒷골목의 매춘가로 나가 남자들을 사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신은 남자 사냥을 하면서도, 황제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메살리나는 결코 용서치 않았다. 따라서 궁정의 미녀들에게는 매섭고 엄한 감시의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죄를 용서받아 칠레니아 해의 섬에서 돌아온 아그리피나에 대해서도 메살리나는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메살리나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는데, 바로 브리타니쿠스와 옥타비아였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자객이 아그리피나의 침실로 숨어 든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아그리피나는 방에 없었다. 또 다른 자객이 네로의 침실을 습격했던 일이 있었다. 자객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자신은 황비인 메살리나에게 네로의 암살을 부탁받았노라고 실토했다.
메살리나에게 있어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였으며, 네로는 장래 자신의 아들인 브리타니쿠스의 제위 계승을 위협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살리나는 아그리피나와 네로 어느 쪽도 죽이지 못한 사이, 나르키스라는 환관의 손에 의해 죽고 마는데, 나르키스는 메살리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었으나, 메살리나의 사랑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간 것을 보고는 질투를 참지 못해 끝내 그녀를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내의 죽음을 듣고도 "그래?"라고 말했을 뿐 특별히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황후가 죽자 환관들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자신과 관계가 깊은 여성을 새로운 황후로 천거했다. 격심한 경쟁 끝에 환관 파룰라스가 천거한 아그리피나가 황후의 지위를 얻었다.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의 조카였다. 숙부와 조카의 결혼은 로마의 혼인법상 금지돠어 있었으나,파룰라스는 황제와 모의하여 혼인법을 개정하였다. 황후가 된 아그리피나는 파룰라스가 쥐고 있던 정치 권력을 이용하여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아그리피나는 파룰라스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황후가 된 후에도 그를 공공연한 정부로 삼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함께 국사를 간섭했으며, 원로원 회의에도 참석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카르푸르니아라는 귀부인이 있었다. 아그리피나는 황제가 그녀의 미모를 칭찬하는 말을 듣자, 당장 그녀를 잡아다 황제를 유혹했다는 죄목을 씌어 나라 밖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또 파울리니아라는 귀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황후 간택의 최후의 경쟁자였다. 그녀를 살려두었다가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녀는 파울리니아를 처형시켜 버렸다.
형이 집행된 뒤에, 잘린 파울리니아의 목을 자기 방으로 가지고 오게 한 후 그녀는 시체의 입을 벌려 치열의 특징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아그리피나의 아들인 네로는 클라디우스 황제에게 있어서는 남이었다. 메살리나와 사이에 낳은 브리타니쿠스야말로 진짜 자신의 아들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그리피나에게 있어 그러한 점이 장래에 대한 불안의 싹이었다. 그리하여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졸라 메살리나가 낳은 딸 옥타비아와 네로의 혼인을 허락받음으로써, 네로를 황제의 양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네로를 황제의 양자로 만든 아그리피나는 54년 10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일 축하연에 거대한 버섯요리에 독을 넣어 황제를 살해하려 했으나, 클라우디우스가 그 요리를 먹고 토해 독기운이 몸 안으로 퍼지지 않자 아그리피나는 시의(侍醫)인 크세노폰에게 눈짓을 하자, 시의는 황제에게 좀 더 토하라고 하면 깃털을 목 안에 밀어넣었다. 그 깃털에는 맹독이 묻어있었다. 황제는 몸부림을 치며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네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몇 년 동안은 선정을 베풀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황제 네로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의 정부인 파룰라스가 선제 때와 마찬가지로 방자한 태도를 보인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네로는 마음을 굳게 먹고 파룰라스를 추방하였다. 아들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분노한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저주하며 "너 따윈 황제 자격도 없어. 정통한 제위 계승자는 브리타니쿠스라고!"라고 발악하듯 외쳤다.
그후 네로는 브리타니쿠스의 존재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마참내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죽인 방법을 모방하여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아그리피나는 갑자기 네로를 겁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로 네로를 유혹하려 했고, 네로는 곧 생모의 성의 포로가 되었다.
백주대낮에 벌이는 모자의 추행을 보고 환관들이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네로가 곧 싫증을 느끼고, 또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네로는 아그리피나를 팔라티누스 언덕에서 로마 시내의 안토니아 궁으로 옮겨가게 했으며, 그후로는 만나기를 거절했다.
안토니아 궁은 이윽고 네로에 대한 불평분자들의 집회장이 되었다. 과거에는 아그리피나를 미워했던 옥타비아(네로의 첫번째 부인) 도 네로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었기에 그 곳을 드나들었다. 네로는 그 무렵 포파에아라는 미녀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포파에아는 네로의 남색 상대인 오토의 아내였으나, 오토는 네로가 아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이혼하여 그녀를 양보했던 것이다.
네로의 정부가 된 포파에아는 옥타비아를 누르고 황후가 되려고 기도했다. 그런데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는데 옥타비아보다 오히려 아그리피나가 더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포파에아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네로를 부추겨 아그리피나를 없애도록 충동질 했다. 59년, 네로의 심복인 아니케토우스가 부하들을 이끌고 안토니아 궁전을 습격했다. 그때 아그리피나는 "내 아들이 날 죽일리 없어!"라고 말했으나, 병사들은 그대로 아그리피나를 칼로 찔렀다.
그러자 아그리피나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 병사들을 향하여 자신의 자궁이 있는 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를 찔러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로가 바로 여기서 나왔으니까!" 그리하여 그녀는 칼로 무수히 배를 찔린 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