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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기행기 **
<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
(2002. 12. 27 - 2003. 2. 4) --40일간
- 김 성 미 -
12월 27일,
그러니깐 8년전부터 무던히도 그리워 했던 곳...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던 그 동경의 땅...
아프리카는 내겐 어쩜 유토피아였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 땅에 첫발을 내디딘다. 꿈인지 생시인지... 장시간 항공여행으로 몸은 지쳐 있지만 온 영혼은 환희에 차 있다.
동행(쌤-부산대 의대 교수님, 석하-33세의 인천교대 학생) 구하기, 항공권 예약, 정보 구하기, 루트 짜기. 물품 사기 등 그 동안의 여행 중 가장 많은 준비를 한 셈이다. 여행기간은 40일... 암튼 동반자는 주님께서 보호하사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같아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닌 듯 싶다.
12월 28일, 드디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오후 3시에 도착했다.
잠시 케냐( 및 나이로비)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케냐가 ‘야성의 왕국’이라 일컬는 이유는 혜택받은 기후와 지형, 즉 풍부한 대자연 덕분이기도 하고, 일찌감치 자연 보전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빈부격차가 심하나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풍요롭고 안정된 나라라고 한다.
동아프리카의 모든 중심지인 나이로비는 여행지의 안식처이자 출항지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얼굴과 유럽의 구식민지라는 얼굴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영국이 케냐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사바나를 흐르는 나이로비강 연안에 공사용 켐프로 건설된 것이 바로 나이로비, 참으로 역사가 짧은 도시다. 그런데 나이로비가 세계적인 위험도시로 된 것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무직자들이 많아지고 현정권의 부정부패의 심각성 때문이란다.
인천에서 여기까지 중간 기다린 시간 합해서 무려 25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석하랑 내 배낭이 홍콩서 딴 곳으로 증발되어 내일 오라는 것이다. 이 황당함... 하지만 어쩌랴... 주저앉을수도 없고... 택시를 타고 예약한 파나프리 호텔로 향한다. 숙소는 비싼 편이라 비교적 양호하고 주위 전경도 꽤 평화롭다. 비행기에서 먹은 음식으로 인해 소화 불량이 온 것이다. 그래서 안하던 비행기 멀미까지 하고... 첫날부터 걱정이네... 굶고 자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기에 계속 자고 또 잔다.
12월 29일,
새벽부터 쌤과 석하는 부지런히 여행 루트를 의논하며 부산을 떤다. 그 와중에서도 어제 먹은 멀미약 때문인지 끊임없이 잠만 잔다. 7시에 겨우 일어나 샤워를 한다. 꼬박 하루를 굶어서 힘은 없지만 두통이 싹 가셔서 얼마나 평화로운지... 하나님 감사 ^*^
어제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한 루시가 숙소 로비에 방문한다. 오늘 하루 시내 투어를 한참 토의하여 3명에 63$로 타결을 본다. 근데 또 문제가 겹친다. 다시 숙소 룸에 오니 공항에서 전화가 왔는데 우리 배낭 두 개가 또 하루 더 delay 된다는 것이다. 으악!!! 이 무슨 이런 일이... 그래도 오늘 투어는 그대로 하기로 한다.
처음 장소로 오늘 주일이라 석하와 의견을 내어 교회에 가는데 10분이 걸린다(비크리스챤인 쌤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11시 예배를 보는데 아프리카인들만이 창출해낼수 있는 강한 믿음의 열정과 자유분망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처음부터 계속 일어나 찬양을 주로 하고 간간이 짧은 기도 시간과 20-30분의 설교시간이 있다. 이 곳 나이로비 크리스챤들은 정말 긍정적이고 순수한 듯하다. 찬양 뿐 아니라 목사님의 설교시간에도 무지 은혜롭고 열심히 예배에 참여한다. 표현이 습관화 되어서인지 매사에 낙천적인 사고를 가져서인지는 모르겠다.
거의 2시간의 예배시간을 끝내고 카렌블릭센 박물관에 간다. 덴마크 여성 작가로 처음으로 이 곳에 커피농장을 만들었다는데 훌륭한 인물로 추앙 받아 그녀의 저택(1917년부터 1931년까지 삶)이 박물관까지 된 것이다. 그때의 가구류와 책, 그녀가 쓰던 물건들이 있다. 뒤쪽에 넓은 정원이 있고 그 당시 커피를 가공했던 기계도 유물처럼 전시되어 있다. 후손들에게 보여 줄려고 잘 보관해서 관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존경스럽고 우리가 본받을 점이다.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임을 물론이고 훌륭한 관광상품이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다음으로 국립 박물관(1930년에 개관)에 간다. 인류의 선조들의 화석과 동식물의 컬렉션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2층에는 부족의 그림과 민속품들이 꽤 많이 전시되어 있다.생각보다 전시품들이 경직되지 않아 식상함이 없어 좋다.
컨퍼런스 센터는 28층으로 중심부가 원통 모양이고 1973년 시티 스퀘어에 국제회의장으로 건립되어 전망대에 오르니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한 쪽은 건물들이 빽빽한 도시풍이고, 다른 한 쪽은 푸른 초원과 아담한 집들이 예쁘게 조화된 시골풍의 분위기다.
마지막 스케줄로 저녁을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기사님과 헤매다 결국은 숙소와 가까운 이태리 식당에 도착한다. 다행히 음식이 그런데로 괜찮아 맛있게 먹는다. 거리에는 케냐의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행렬이 열광적인 환호성과 함께 계속된다. 국민들의 열광의 배경은 이렇다. 전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장기집권을 하여 국민들의 원망을 산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은 국민들이 대부분 희망한 바람직한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험이 과거에 있어서 그 상황과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사진을 찍을려는데 기사님이 사진기 도난 우려가 있다고 찍지 못하게 한다. 책의 경고처럼 진짜 도둑이 많은 모양이다. 심지어 택시에 타도 바깥으로 내민 팔에는 시계도 차지 못하게 한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그럴까... 이해도 된다. 밤에는 특히 위험하다고 하여 숙소로 그냥 들어와서 쉰다.
12월 30일,
아침 일찍...아니나 다를까 바지런들께서 먼저 일어나 소란스럽다. 덕분에 덩달아 일찍(6시 40분경)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 어제와 똑같은 메뉴지만 빵종류와 과일종류는 여전히 맛이 있다. 잠시 나와 거리의 전경을 구경한다. 여전히 어제 당선된 대통령으로 인해 거리 행진은 계속된다. 호텔 정원의 낙엽을 쓰는 종업원이 보여 운동도 할겸 잠시 도와 준다. 남을 도와 준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당연히 지녀야 할 공동체 의식임과 동시에 더 큰 요인은 어쩜 자기 만족일지도 모른다. 구지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것은 타인은 또 다른 나이기에■■.
마지가 거리의 교통체증(새 대통령 당선 축하행진)으로 숙소에 늦게 도착한다. 사무실에 가서 사파리 일정을 예약한다. 5일간 일인당 무려 450불... 내 수준에 대량의 출혈이다. 첫날부터 비싼 숙소에.. 비싼 식사(더우기 아침식사도 포함되지 않는 나쁜 호텔)에,. 사파리까지... 여행 때마다 항상 그래왔듯이 우린 큰 돈에는 의연하고 작은 돈에는 목숨을 거는 것이 아이러니한 통념이 돼 버렸다.
오후에 여행사의 알선으로 680호텔로 오니 원룸에 30불이다. 3시에 공항에 가서 짐을 찾으면서 마지의 코치대로 남아공 항공사에 찾아가서 석하가 이틀간의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니 우리 돈으로 2명에 십만원 넘게 환불해 준다. 그것도 따져서 받아냈지만 암튼 이 곳 수준으로는 최선을 다한 꽤 양심적인 처사이다.
택시기사의 소개로 재래 시장에 들러 과일과 채소들을 산다. 왠 시장엔 거의 다 청년들만 보여 우리네 시장과는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다. 파장 분위기로 물건들도 싱싱한 것보다 시들한 것들이 많고 시장거리는 온통 쾌쾌한 냄새와 지저분함의 극치이지만 인도나 베트남 같은 분위기와 너무 흡사해서 오히려 정감까지 느껴진다.
12월 31일,
680 HOTEL에서 아침을 맞고 탄자니아에 들어가는 (여행사가 픽업해 주는) 차를 기다리는데 약속시간보다 40분이상 기다린다. 후진국일수록 시간 개념이 없다고 하더니 인도 여행 때도 여러 번 경험한 것처럼 과연 그 말이 적당한 표현이다. 기다림이 지겨워 쌤이랑 제기차기, 말잇기 등을 한다. 드디어 차가 온다. 배낭을 넣고 출발... 5시간 가량 걸려 11시경쯤 되니 국경이 나온다. 케냐에서 나오는 절차, 철문 하나를 통과하니 탄자니아 비자를 1600실링에 발급한다.
탄자니아에 대해 잠시 살펴보면,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등 세계유산이나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 유산을 지닌 잔지바르나 유적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고 있고, 기후는 일교차가 심하고, 국민은 120개 부족(반투족 흑인이 97.6%)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는 이슬람 교도가 31%, 기독교도가 25%에 이른다고 한다.
다시 차를 타고 무진 달린다. 길거리에는 차를 세차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곳 사람들이 대체로 부지런함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차들도 그렇지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건물안과 밖의 거리(거리에 쓰레기 더미는 간간이 있지만)들이다.
살아 꿈틀거리는 입체적인 구름들과 하늘의 조화, 끊임없이 펼쳐지는 푸른 대평원, 한가하게 풀을 뜯어 먹는 소들과 양떼들, 거기다 양치는 소년들까지... 드문드문 아프리카인을 상징하는 의상을 입은 빈민층들의 사람들을 본다.
드디어 여행사에서 예약한 아루샤(메루산 산록에 자리잡고 있고, 인구 약 20만 명의 고원도시로 교통의 요지)의 플래민고 호텔에 도착한다. 경영은 듬직하게 잘 생긴 이 집 주인의 아들이 하고, 딸인 Vickey라는 어린 아가씨가 방까지 안내하면서 여러 시설의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참 착하게 보이고 feel이 통해 안고 피부를 만지니 친근감이 더욱 느껴진다. 이런 여동생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TV에서 전에 했던 월드컵 경기 중 한국 4강 진출 경기를 방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심 신기해 하면서 자리를 잡으니 여자 써빙우먼이 손을 씻으라고 주전자와 대야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아이 황송해라...
오후엔 석하랑 거리구경도 할겸 숙소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시장거리에는 여러 가게가 있는데 밖에서 수작업으로 쌀을 분리하는 아줌마,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남자들, 이 곳도 우째 아가씨들은 밖에서 잘 볼수가 없다. 집안에서 다들 무얼 하는지... 가게 앞 인도에서 재봉틀에 앉아 옷을 만드는 아줌마, 수선하는 아줌마들의 고생하는 모습이 안 돼 보인다. 소수의 아줌마들 빼고는 주로 청년들이 온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청년들이 동양인들의 생김새가 신기한지 뚫어지게 쳐다보는 습관은 인도인들과 흡사하다.
1월 1일,
2003년 새해가 밝았다. 여지없이 시간은 흘러 한 살을 더 먹는다. 마흔이 처음 되던 해 작년에는 정신적으로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젠 제법 의연해진 모양이다. 별다른 동요가 없이 무덤덤하니 말이다. 하기야 첫날이라 단정짓기는 시기상조겠지..
새벽부터 닭 짖는 소리와 이슬람 교도들의 예배 소리에 도저히 잠을 더 잘수가 없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면서 오늘부터 5일동안의 사파리를 상상해본다. 야생의 대자연속에서 나를 잊고 푸욱 자연에 빠져 보자...
9시경쯤, 이 곳 여행사 직원이 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한 다음, 한참 지나니 우리와 함께 할 운전기사 아메와 요리사 아이작이 우리를 픽업하러 온다. 둘 다 젊은 청년이라 조금은 걱정은 되지만 잘들 하겠지... 경험도 있을 테고 또 오히려 젊음이 장점도 될 수 있으니까... 드디어 두 청년들과 우리 셋 해서 다섯 명이 사파리로 향한다. 관광객들이 탄 차들은 중간에 내리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아마도 커미션 관계도 포함되었으리라)
원래 사파리는 사람이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동물한테 선뵈러 가는’ 동물원과 반대의 생각을 해야 한다. 동물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관찰하고, 자연의 체계가 사람 손에 파괴되지 않도록 하려면, 지정된 통로를 벗어나지 말고 동물한테 너무 가까이 가지 말도록 해야 한다.
타렝게티라는 동물보호구역으로 들어간다. 처음부터 타잔에 나오는 거대한 숲들이 시작되면서 야생 동물들이 간간히 보이면 아메는 차를 세워 설명을 한다.
동물로는 가까운 곳에서 혼자 있거나 서로 무리지어 몰려있는 코끼리들, 멀리서 평화롭게 자거나 쉬고 있는 사자들, 제법 많이 무리 지어 서식하는 검은 코뿔소들(Black Rhinoceros:체중 1-2톤 뿔 두 개), 버펄로(초식동물 중 가장 성질이 사나움), 귀엽게 뿔을 쫑긋거리며 다니는 톰슨가젤(긴 뿔을 갖고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아름다움)들, 혹 멧돼지(Warthog-얼굴에 두 쌍의 혹이 나 있음), 고상하고 우아하게 노니는 이쁜 임펠라들(소과에 속하고 뿔은 수컷에만 있으며, 엉덩이 부분에 줄이 내천자-川-로 되어 있고 수컷 한 마리에 암컷 수십 마리가 무리지음), 겁이 많다는 딕딕(Dikdik-크기가 30cm정도로 작음), 암컷에는 뿔이 없는 워터벅(Waterbuck), 호로호로새(guinea-Fowl-닭만한 크기의 메추라기 종류, 날개에 에메랄드빛 무늬가 박혀 있고 수컷의 벼슬이 예쁨), 붉은 배찌르레기(Superb Starling), 이집트거위(Egyptia Goose) 등이 있고,
식물로는 소시지같은 열매(먹으면 안됨)가 축 늘어져 달려 있는 덩치 큰 소시지 나무과 셍떽쥐 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예쁜 바오밥나무가 많이 있다.
대평원과 환상적인 하늘, 그리고 군데 군데 평화롭게 노니는 야생동물들의 조화로움,,, 이들의 창조주인 신의 위대함을 누가 반박하리요... 좁은 땅덩어리에서 좁은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정서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음식 재료도 별로 없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만드는지 요리사 아이작은 5년의 경력가답게 예술처럼 음식을 만들어 온다.
타렝게티 캠프장에서 거기다 예전이나 자보던 텐트안에서 사파리의 첫날밤을 지새운다.
1월 2일,
6시 30분에 기상해서 어제 갔던 타렝게티를 다시 가는데 어제와 길은 다르다. 처음으로 나오는 동물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사슴이 바로 가까이서 목을 뽐내며 버티고 서있다. 코끼리도 길에서 어제보다 더 가까이들 있다. 이튿날이라고 이젠 이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Giuinea는 차를 친구로 생각하는지 길쪽으로 계속 걸으며 길을 막으니 차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전히 바오밥 나무는 많고 어제 별로 없었던 아카시아 나무가 많이 있다. 점심때 부터는 일본인 교사(시게키-역사 전공)와 동행한다. 영어는 서툴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거의 이루어진다.
마사이 부족들이 운영하는 한 달만에 연다는 장날이 열려서 운좋게 구경하게 된다. 사진은 찍으면 안된단다. 주로 파는 것은 빵, 고구마, 감자와 같은 음식들이고 더 들어가니 안쪽에 동동주 같은 술을 판다. 쌤이 대표로 술 한 바가지를 사서 우리 모두 번갈아 가며 맛을 본다. 우리 동동주처럼 곡식류와 바나나 등 과일들을 섞어서 만든단다. 정제되지 않고 조금은 강하며 시금털털하다.
사파리 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피곤한 일이다. 차만 타는 것도 피곤한데 악조건 길의 차안에서 일어나(사파리 짚차는 지붕이 오픈되어 있어 대부분 거의 일어나서 관람함) 온몸으로 대자연을 만끽하려니 피곤할 수밖에...
오늘의 잠자리 조건도 별로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제의 텐트보다는 나은 게스트 하우스와 비슷한 곳에서 잠을 잔다.
1월 3일,
사파리 3일째로 몸은 찌부둥거리나 자연속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피로가 조금은 가신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출발하여 시게키를 픽업하러 간다.
웅고르고로 자연보호구에 들어간다.
이는 크레이터 바닥에 있고 동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화구원 내의 호수에는 플라밍고(흰색에 몸길이가 1.4m)가 무리를 짓고 하마가 서식하는 등 화구벽으로 둘러싸인 자연의 낙원 같은 곳이다.
한참을 가서 큰 나무 둥지가 있는 곳에 내려 점심으로 아이작이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이 있는 도시락을 먹는다.
다시 구불구불 곡선길을 한참 달려 마사이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한다. 추장이 먼저 나와 우리를 맞이하고 영어로 안내말을 하는데 구경하고 사진 찍는데 처음엔 50달러를 부르는데 우린 4명이니 계산하기 쉽게 40달러로 해줄라며 흥정을 해서 결국은 10불을 깎는다. 처음 안으로 들어가니 전통춤을 추며 우리를 반긴다. 외국인에게 관광 상품으로 짜여져 있는 춤인 듯 싶다. 사진을 찍고 모델도 되어 준다. 집들은 소똥으로 거의 만들어져 있어 가까이 가면 냄새가 지독하다. 아이들은 소똥이 완전히 절친한 친구요, 가장 좋은 장난감이다. 추장이 우릴 자기집으로 안내하는데 처음에는 컴컴해서 난감했는데 조금 있으니 작은 호롱불같은 것을 켜주어 대충 보인다. 음식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어디서 자는지 거의 웃지도 않고 위엄있는 얼굴 표정이지만,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권위가 필요가 위치라 그런지 풍기는 이미지가 매우 프라이드가 강하고 품위있게 느껴진다. 추장은 나이가 40으로 부인이 둘이라는데 둘 다 일하러 갔단다. 이곳에는 남자들은 거의 하는일 없이 집에서 놀고 여자들이 일을 전부 한단다. 막연히 추장 부인을 부러워 했던 환상이 깨어진다. 역시 여기도 남녀 차별이 심한 불평등한 곳이구나... 심한 충격은 아니나 꿈에 그리던 땅인 유토피아가 깨어지는 순간이다. 길게 늘여진 나무 물건대에는 주민들이 만든 주로 여성들의 장식품들이 있는데 추장을 비롯해서 사라고 졸졸 따라 다니면서 피곤하게 권유를 한다. 구경을 다 하고 마을 밖에 나와 배웅 나온 아이들과 재밌게 논다. 우리 동요 산토끼를 가르쳐 주면서.. 어떤 녀석은 제법 발음을 비슷하게 따라 한다. 아이들과 놀 때는 무아의 세계에 빠질 수 있어 그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가장 행복하다.
다시 차를 탄다. 대평원의 정경... 무수한 누(소과로 몸이 전체적으로 거무튀튀함)들이 평화롭게 거닐고 있다. 그 옆에 톰슨가젤이 공존하고 있고 아울러 간혹 하이에나 몇몇이 누워 있으며 혹은 어슬렁 거린다. 멀리 바위틈에 있는 하이에나는 쌤이 가져온 망원경으로 확대해서 본다. 준비성이 철저한 알뜰하신 쌤... 비포장 도로를 무던히도 달린다. 저녁해가 지기 시작하자 점심때 들렀던 텐트 캠프장에 도착하는데 벌써 다른 관광객들(거의 유럽쪽의 서양인들)이 많이 와 있다. 아이작은 그동안 우리를 기다리면서 텐트도 쳐 놓고 음식을 마련해 놓는다. 식사 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비가 그칠 생각을 않는다. 텐트 안은 비에 젖어 습기가 많고 바람은 불지만 그래도 바깥보다는 덜 춥기에 텐트에 가서 파카를 꺼내 입고 잠자리에 드니 다행히 어느새 잠이 든다.
1월 4일,
어제 밤엔 정말 힘든 고비였다. 아침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쾌하게 기분좋은 아침이다. 산 아래엔 구름인지 안개인지 금방 산신령이 나올 것만 같이 환상적이고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비갠 후의 햇살은 더 예쁘고 고맙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구름과 햇살을 담은 하늘아래에서 4일째의 사파리가 시작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들어간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국립공원으로 무수히 펼쳐진 초원과 거기에 서식하는 누 무리, 그들의 대이동에서 자연의 웅장함을 실감할 수 있다.
세렝게티에 사는 약 300만 마리의 초식동물 가운데 약 3분의 1이 누란다. 누는 4-8월에 북쪽 케냐에 갔다 12월-1월에 세렝게티로 돌아온단다. 그래서 지금 누가 무진장 많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인가.
코뿔소와 얼룩말(Zebra)들이 무리지어 걷기도 하고 어떤 녀석들은 흙에 몸을 비비면서 샤워를 하기도 한다. 나뭇가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원숭이와 혹멧돼지, 하이에나들도 제법 자주 보인다. 사자들은 멀리에도 있고 아예 차들을 벗삼아 길 옆에 있는 부부 사자도 있다. 관광객 짚차들이 여러 대 모여서 구경하는데 조금 있으니 암컷 사자가 차 그늘에 누워 버리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숨 쉬는 상태가 정상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남편 사자가 옆에서 걱정이 되는 양 보초를 쓰고 있다. 사람과 같이 부부애를 보니 이쁘기도 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멀리 엘런드(Eland) 영양도 많이 있다. 수컷은 표범과 용감하게 싸우기도 한다는 부시벅과 톰슨가젤도 여전히 많이 보인다. 죽은 고기를 먹는다는 독수리(Vulture)는 멋있게 나뭇가지 위에 서 있다.
세렝게티와 웅고르고르의 전경이 많이 흡사하다. 하늘의 구름들은 어찌 그리 웅장하고 매력적인지... 평생 하늘만 보고 있어도 행복할 만큼...
1월 5일,
사파리 5일째 마지막 날이다. 여름날이라 햇볕은 쨍쨍하지만 청명한 아침으로 느껴져 좋다. 피곤은 여전히 축척되어 있지만 수면을 취하고 나니 그런대로 버틸만 한다. 넓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마냐라호 국립공원을 마지막으로 구경한다. 이에는 삼림, 초원, 호수로 이루어진 복잡한 환경으로 풍부한 동식물이 있다.
나무 위 여기저기에 물새 둥지가 있고, 가지에는 원숭이들도 제법 보인다.
Jambo campsite 에서 점심밥 먹고 아루샤로 향해 출발한다. 도착해서는 전에 묵었던 플라민고 호텔에 다시 온다. 아이작과 아메와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룸에 올라가 잠시 쉰다. 버스 주차장 사무실에 가서 모시 가는 차 예매를 하고 인터넷 사무실에 가서 한국에 메일을 쓴다. 시게키를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간다. 밖에서 뷔페식으로 음식이 있는 식당인데 양, 소, 닭을 바베큐하고 있고, 여러 종류의 야채 반찬이 맛깔스럽게 펼쳐져 있다. 1인당 4불로 푸짐하게 나오고 고기는 좀 짜지만 매너있는 주인의 성의를 봐서 맛있게 먹는다. 시게끼와 우리 숙소에 와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비키가 친철하게 시중을 들어준다. 비키가 며칠 안 본 사이에 갑자기 머리를 삭발을 했는데 우린 영문을 몰라 깜짝 놀란다. 자세히 이유를 말하지 않아 더 이상 묻지는 않지만,.. 몇 년 전 무던히 삭발을 하려던 기억들이 스쳐 비키가 남 같이 않고 더 친근감있게 느껴진다.
이 곳 밤길도 위험하다고 하여 시게키를 호텔까지 에스코트를 한 후 숙소에 와서 비키에게 배낭에 넣어 온 북이 있는 열쇠고리를 선물하니 그 정에 감동하여 어쩔줄을 모른다. 나도 정에 약한 편인데 이 아가씨도 감정이 민감함을 금새 알수 있어 동질감을 느낀다.
1월 6일,
플라민고에서 5시에 기상이다. 어제 비키 오빠가 예약해 준 콜택시를 타고 어두운 새벽을 헤치며 버스 주차장에 간다. 모시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예약한 숙소에 가서 짐을 풀어 놓고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식빵과 물을 산후 킬리만자로산(아프리카의 최고봉-적도에 있는 산이면서도 빙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함) 등반을 위해 콜택시(25불)를 타고 1시간 가량을 마랑구 게이트까지 간다. 가이드가 꼭 동반해야 한다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같이 간다. 가이드는 다리 장애인이지만 걷는 속도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나이는 석하랑 동갑(34세)이고, 아이가 하나인 가장으로 왠지 얼굴에는 삶의 무게가 많이 느껴진다. 이들이나 포터들은 걷는 것과 짐 드는데 이력이 나서 모두들 도가 트인 전문가들이다. 포터들이 너무나 무거운 짐을 머리에 힘겹게 이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잠보’라고 인사는 하지만 그 인사를 건네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만다라 헛(2720m)까지 가서 점심으로 빵을 간단히 먹고 킬리만자로산 정상(우후루 피크-5895m)이 보이는 곳까지 더 올라간다. 잠시 지나니 안개가 이동하여 정상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히말라야의 안타푸르나 생각이 난다. 일년내내 거의 흐려 있어 정상을 볼수 있는 때가 별로 없다더니 여기도 그런 모양이다. 이 또한 자연의 오묘한 섭리인가!!
내려오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리고 지겨운 오솔길이 계속된다.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여 오후 4시 30분까지 등반했으니 7시간이 걸린 셈이다. 무릎 관절이 또 무리를 해서 통증이 온다. 몇 년 전부터 하산할 때마다 나타나는 증상이다. 계속된 육체적인 피로가 겹쳐 옛날어른들 표현처럼 몸이 천근만근이다. 숙소 룸은 트리플... 예쁘게 만들어진 모기장 치고 잠자리에 든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쌤과 같은 방에 자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도 신경이 안 써여 지는 것은 다들 연륜 때문인가... 신뢰감 때문인가... ■■■
1월 7일,
다르에스살람으로 가기 위해 버스 주차장에 가는데 도중에 체중계 하나 달랑 땅에 놓고 돈을 버는 아이, 멍석을 깔아 놓고 동냥을 하는 할머니가 눈에 띈다. 세상에는 돈을 버는 형태도 각양각색이겠지만 노약자와 어린이가 직업 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은 보기에 정말 안쓰럽다. 8시 50분에 다르살람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데 7시간이란다. 버스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다 자국민인 듯하다. 중간 시간에 정차를 하며 점심시간이 10분이란다. 화장실이 좀 특이하고, 쌤은 자두를.. 석하는 사모사(만두와 흡사함)를 사온다. 다시 버스는 출발하고 도중의 풍경중에 시장이 보이는데 많은 청년들이 여러 가지 장사를 한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끊임없이 몰려와 물건을 팔려고 애쓰는 청소년들... 안 돼 보임에 앞서 한편으로는 그 생활력과 건전함이 부럽다. 저들은 적어도 타락된 문명의 이기들에 헤매이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가는 도중의 전경들이 다양하고 소담스럽다. 아담한 지평선의 연속,. 한적한 오솔길 분위기도 나오고 방대한 나무들이 있는 대평원.. 산, 하늘, 구름의 조화.. 도로 상태는 의외로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사고난 트럭을 처음 발견한다. 몸체가 완전 두 동강이 나 있다.
여자들의 머리 모양은 너무 예술이다. 털어 올려 왕관 모양처럼 한 머리(마치 우리 60년대 여배우들의 머리를 연상케 함), 가늘게 줄을 지어 정교하게 땋은 머리, 아예 삭발을 한 아가씨, 예쁜 모양의 가발을 쓴 아가씨,,
드디어 다르살람(아랍계 사람들이 이용하던 천혜의 항구)에 도착한다. 숙소를 찾는데 2번째로 들른 Econalege Hotel 로 결정하고 짐을 푼다.
1월 8일,
아침 식사후 환전하고 잔지바르섬으로 출발하는 배를 타러 간다. 지역간의 이동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다. 배멀미 증세가 보여 멀미약을 바로 먹고 졸려서 밖의 전경을 뒤로 한 채 스르르 잠이 든다. 1시간이 좀 지나 잔지바르에 도착한다.
잔지바르는 파란 바다와 하늘, 하얀 산호초와 짙푸른 녹음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섬으로 예전 아랍 지배자의 궁전터나 노예무역시대의 유적이 섬 전체에 산재하는 유적의 보고이기도 하다.
픽업하러 온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어 따라 가서 차를 탄다. 한참을 가니 우리 시골집 같은 부부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처음으로 이 곳 버스라는 작은 차를 재밌게 타고 내일 SPICE TOUR 예매를 한다. 점심을 먹는데 서민적인 값싼 식당이지만 음식맛은 제법이다. 우리의 기사식당처럼...
아랍 FORT(1710년경 아랍인들이 수비대를 위해 세운 초기 요새, 1754년 아랍의 공격을 받아 파괴-안이 개방되어 있지 않음)와 박물관(개방시간이 지남)은 밖에서만 보고 이리 저리 배회하니 어느새 어두워져 저녁 식사 시간이다. 저녁 바다 전경이 멋지게 보이는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다. 앞줄에 남자 넷, 뒷줄에 여자 넷이서 민속춤을 정열적으로 춘다. TV에서 간혹 본 터라 이상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1월 9일
Spice tour(10불)가 10시에 시작된다. 인원은 15명 정도다. 경력이 오래된 듯이 보이는 가이드로 영어 발음은 나름대로 훌륭하다. 가이드 보조하는 착해 보이는 청년도 있다. 주로 이 지역에 잘 알려진 식물(나무) 있는 곳으로 다니면서 설명을 한다. 코코낫 나무, 바닐라나무, 진저나무, 말라리아 방지하는 나무, 파인애플 나무, 젝 플롯, 카르몬, 케나, 립스틱 나무, 크롭 등등... 코코낫 나무는 동남아 쪽에서도 많이 봤는데, 다른 나무들은 거의 처음 보는 나무들이다.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여 신의 다양한 솜씨에 또 감탄!!
향신료로 쓰이는 잎의 향기는 매우 진하게 난다. 파인애플 열매 큰 것을 따서 우리들에게 조각내어 준다. 따서 바로 먹으니 싱싱해서 훨씬 맛있다. 코코낫 열매는 여기 자그마한 청년이 두발목을 끈으로 묶어서 고정시키더니 높은 나무에 원숭이처럼 잘도 올라간다. 묘기대행진을 보는 것같다.
점심시간이다. 우린 인도 부부와 함께 합석을 하는데, 지금은 영국에 거주하고 있단다. 두 분 다 인텔리로 사이가 무척 좋은 부부같다. 가이드와 보조 청년과 운전 기사는 우리가 식사를 다 한 후에야 식사를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모양인데 이유를 모를 일이다. 대접의 뜻인지 차별의식에서 유래한 것인지... 암튼 느낌에 올바르지 못한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골든 가든 로찌에 숙소를 45불에 정하고, 중국식당에 저녁식사 하러 간다. Fish 두 종류와 Vegetable 두 종류와 또 맥주를 주문한다. 하루도 맥주를 안 마시면 서운한 쌤과 석하,,, 많이 안 마시고 한두 병이니깐 마음 넓은 내가 특별히 봐준다... ■■
쌤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다. 사람마다 사고와 가치관, 관점과 이론 정립이 다른지라 우리처럼 평행선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리라... 식당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위해 자제를 하고 그만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