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년 파리에서 출생한 프랑스의 화가. 부친은 그림 수집에 상당한 조예를 지녔던 미술 애호가이며 은행가였다. 그는 처음에 부친의 뜻에 따라 법률을 전공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얼마후에 집을 떠나 궁핍한 다락방 생활을 하면서까지 화가를 지망하였다. 1855년 미술학교에 들어가 루이 라모트의 교실에서 배웠다. 스승을 통해서 앵그르의 예술을 배워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듬해인 1856년에는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르네상스의 작품에 심취했던 결과 그는 고전적인 엄정을 존중하면서 1860년 부터 1865년까지 몇 점의 역사적인 소재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 후 귀국한 뒤에는 인상파전에 참가하면서부터 돌연 화법에서라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로부터 다루어지는 소재의 선택에서 철저한 변혁이 이루어졌다. 그 시대의 사상과 생활을 뒤흔들었던 운동(자연주의 문학 운동)에 휘말려들어 마침내 현실 생활의 주제에 전념하게 되었다.
1862년에는 마네와 알게 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1874년 인상파 제1회전에 참가한 후 제2, 제3회전에도 계속 출품하였다. 그가 인상파의 편을 든 것은 동료들과 사상 및 이론이 완전히 합치되었기 때문이라기 보다 오히려 인상파 화가들의 방침으로서 살롱에서 제외된 그 당파성에 대한 항의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특히 외광이라든가 <색조 분할법>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인상파 취향과 결부되는 것은 대상의 동적인 순간의 모습을 즐겨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서 드가는 그의 예민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생동적 활동에 흥미를 가졌던 화가로서 상식적인 구도를 버리고 생각한 장면의 절취 방법을 생각해냈고 또 상하로부터 올려다보는 또는 내려다보는 구도를 취하여 그것과 동시에 실내에 있어서의 빛도 자연 광선이 내는 여러가지 작용을 끌어들여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묘사는 새로운 각도 에서 생겨난 것으로, 이제까지 전혀 없던 적확과 신선미를 낳고 있다.
더구나 데생은 엄격하였는데, 이러한 의미에서는 인상파 속에 속하면서도 고전주의적인 입장을 잃지 않은 화가였다. 이러한 화풍에 따를 작품의 화면에는 무희들이 수없이 나타나 있는데, 그는 뻔질나게 극장을 출입하면서 무대 위 또는 연습실이나 음악실 안의 무희들의 거동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댄스 걸의 아라베스크, 리듬, 운동의 가장 진실한 해석자가 되었다. 또 버라이어티나 카페의 정경,경마장,욕녀,모자 가게나 세탁소 여인의 모습 등을 즐겨 그렸다. 더구나 드가에게는 겉모양이나 허구의 베일을 벗겨보려고 하는 신랄한 욕망이 있었다. 스케치 화가로서의 탁월한 재능도 지녔던 그는 정확한 것과 음미를 거친 진실 등에 의존하지 않고는 못견디었다. 그가 남긴 파스텔이나 판화 작품에도 수작이 많다. 만년에는 눈병에 몹시 시달린 나머지 시력이 거의 감퇴되었으나 예민한 촉각이 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서 이전에 손을 댄 적이 있었던 조각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밀랍으로 다수의 소조작품(무희,나체,말 등)을 제작하였는데 굉장히 약동하는 작품이었다. 회화에 있어서 대표작은 <압생트>,<프리마 발레리나>, <부인 모자점>, <오페라좌의 댄서 대기실>, <댄서들> 등이다. 1917년 사망. (텍스트 자료 출처 : 미술 인명 용어 사전-미술도서편찬연구회/신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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