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중국ㆍ러시아ㆍ알래스카에서 무사히 번식을 마친 많은 철새들이 월동지로 이동하며 한국을 통과하는 시기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번식하는 제한된 새들만 보아왔던 탐조인들은 그동안 기다리던 다양한 통과철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을에 가볼 만한 탐조지는 어느 곳일까? 가을과 겨울에 찾아볼 만한 대표적인 탐조지로는 갯벌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산만이 있다.
아산만은 이름 그대로 바다와 갯벌이 펼쳐진 곳이다. 게다가 아산만은 아산호와 삽교호, 두 개의 큰 저수지가 함께 위치하고 있어 바다와 호수의 멋진 경치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아산호와
논병아리.
중대백로
왜가리보다 약간 작으며 여름철새다. 몸길이 68㎝.
삽교호를 탄생시킨 아산만방조제와 삽교방조제 위를 달리다 보면 거대한 호수와 길게 뻗은 방조제로 인해 가끔 방조제의 어느 쪽이 바다인지 혼란스럽다. 거대한 방조제가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장관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산만방조제는 1973년에 충남 아산시 인주면과 그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길이 2564mㆍ높이 8.5mㆍ폭 12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방조제로, 경기도와 충남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삽교호는 충남 당진군과 아산시 인주면 사이로 흘러드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아서 만든 호수다. 삽교방조제는 길이 3360mㆍ높이 12~18m에 달하며, 1976년에 착공하여 1979년에 완공되었다.
아산만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최근에 개통된 서해대교다. 서해안고속도로의 핵심구간이며, 최대의 난코스였던 서해대교는 1993년 11월에 착공해 장장 7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서해교역의 관문이 될 아산만을 통과하는 국내최대의 교량이고, 전체 길이가 7310m로 세계에서 9번째로 긴 교량이다. 아산만을 가로질러 서 있는 거대한 이 다리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발에 대한 집념과 능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른 곳에서는 하나도 보기 어려운 거대한 구조물들이 이 아산만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여러분들은 ‘도대체 이런 곳에서도 새를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과거 아산만이 가지고 있던 자연스런 모습은 이제 더이상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에게 삶의 터전을 넘겨주고 만의 한쪽 구석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만, 새들은 아직도 아산만을 찾고 있다.
찾아오는 새의 종류는 아직까지 무척 많다. 지금쯤 호수와 갯벌에는 왜가리ㆍ중대백로ㆍ쇠백로ㆍ해오라기와 같은 백로류가 한창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한 곳을 응시하거나, 긴 목을 쭉 빼고 천천히 걸으며 공격대상을 물색하는 중대백로의 모습은 영락없는 전문 사냥꾼의 모습이다. 또한 호수 가장자리, 수로, 갯벌에서 먹이를 찾던 백로들이 해가 질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로 이용하는 인근 숲으로 무리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호수에는 논병아리가 열심히 잠수하며 먹이를 찾고, 청둥오리는 한가롭게 잠을 자거나 얕은 곳에서 머리를 물 속에 집어넣고 먹이를 찾는다. 논병아리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수초들을 모아서 물에 뜨는 둥지를 만든다. 이런 지혜로 인해 다른 물새들과 달리 수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에 잠기지 않는 안전함을 확보할 수 있다.
만조시간이 가까워지면 갯벌에서 새를 관찰해야 한다. 갯벌의 중앙에서 작은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면 아마도 민물도요일 것이다. 날면서 방향전환을 할 때마다 흰색의 몸 아랫면이 상대적으로 진한 몸의 윗면과 대비되며 갯벌 위로 반짝이는 카드섹션을 벌인다.
갯벌의 가장자리에는 먹이를 찾는 중부리도요가 활발히 움직일텐데 주로 게를 잡아먹는다. 중부리도요와 함께 붉은부리갈매기와 괭이갈매기도 만조가 되기 전에 주린 배를 채우려 열심이지만, 옆에서 중부리도요나 다른 도요류가 잡은 먹이를 빼앗아 먹는 얌체 갈매기들도 있다.
추수가 끝날 때쯤이면 큰기러기, 황오리, 청둥오리도 아산만을 찾는다. 주로 낮에는 갯벌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밤이 되면 논으로 날아가 벼 낟알을 먹는다.
해오라기
머리꼭대기에서 뒷목까지 검은색이며, 등은 녹색을 띤 검은색이다. 몸길이 57㎝.
논병아리
논병아리류 중 가장 작은 종으로 호수, 하구, 해안에 서식한다. 몸길이 26㎝.
중부리도요
머리꼭대기 양쪽에 두 개의 어두운 갈색 줄이 있다. 유사종인 마도요는 부리가 길다. 몸길이 43㎝.
붉은부리갈매기.
큰기러기.
청둥오리.
큰기러기는 큰 덩치로 인해 멀리 갯벌에서 쉬고 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부리 끝에 주황색 점이 있어 다른 기러기류와 구별된다. 육중하게 생긴 튼튼한 부리로 수초, 식물의 잎과 뿌리, 벼 낟알 등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운다. 또한 황오리는 온 몸이 주황색을 띤 아름다운 대형오리인데, 국내에서는 한강하구, 천수만, 아산만과 같이 주로 경기도와 충남지역에서만 관찰된다.
아산만을 찾는 귀중한 손님 중 하나는 가창오리다. 90년대 초까지 경남 창원시의 주남저수지에만 찾아오던 가창오리는 90년대 초 대규모 간척지가 널려있는 서해안으로 이주했는데, 그 첫번째 정착지가 아산만이었다. 물론 이 가창오리가 겨울 동안 생활하는 무대는 서해안 전역이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지역들 중 굵직한 곳들도 아산만, 대호, 남양만, 천수만, 금강, 논산 탑정저수지, 해남 간척지와 같이 경기도에서 전남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먹이나 서식상황, 기후 조건, 밀렵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좋은 곳을 찾아 장거리 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매년 예외 없이 아산만에서 짧은 기간이라도 지친 날개를 쉬어가고 있다.
아산만의 갯벌 중앙에는 웬만큼 수위가 높지 않으면 만조가 되어도 잘 잠기지 않는 섬이 있다. 만조 때 많은 새들의 휴식장소이며, 아산만방조제를 건너지 않은 경기도 쪽에서 가까운 곳인데, 이곳은 주로 횟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만조가 되길 기다리며 회나 바지락칼국수를 맛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추위가 더해지면 찾아오는 철새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데, 수만 마리의 철새가 아산만을 찾는다. 그러나 강추위가 찾아와 호수가 얼기 시작하면 먹이를 찾기 어려워지고 보다 따뜻한 곳을 찾아 더 남쪽으로 이동하며 새의 수가 줄어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개발의 역사가 끊임없이 진행되었던 아산만. 이곳에선 아직도 도요새, 오리, 기러기, 백로가 살아가고 있다.
그림 출전 : 야외원색도감 「한국의 새」
큰기러기
부리는 검은색이며 끝에는 주황색 띠가 있다. 몸길이 85㎝.
가창오리
군집성이 강한 소형오리로 큰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몸길이 40㎝.
청둥오리
오리류 중 가장 대표적인 겨울철새이며 일부는 번식도 한다. 몸길이 59㎝.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평택에서 빠져 나와 안중을 거쳐서 가는 길이나 서울 방향에서 올 경우 오산IC에서 빠져나와 오산~발안~안중~아산만으로 가면 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서평택에서 빠져나오면 아산만으로 10분이면 연결된다. 평택시나 아산시에서 아산만방조제까지 버스도 수시로 있고 30~40분 소요된다.
아산만에서 30~40분 거리에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이 자리잡고 있어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휴식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또한 온양민속박물관, 충무공 묘소, 현충사, 외암리민속마을, 맹사성 고택 등을 돌아보는 역사탐방도 권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