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부/사랑은 영원히

[물칭이]

부부

오늘도 우리 부부는 아파트 뒷산을 오른다. 산을 타거나 공원을 걷는 우리의 운동법이다.
오가는 등산객이 뜨음해지고 평지가 나타나면 그이는 자신의 18번곡을 뽑아낸다.
이태리 민요 ‘오 솔레미오’, ‘ 돌아오라 쏘렌토로’, 한국가곡 ‘선구자’, ‘그리운 금강산’,
대중가요 조영남의 ‘제비’…. 수목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고 어느 덧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등산객이 노래를 엿듣고 만다. 짝짝짝 터지는 박수. 나는 속으로 말한다.
‘목청 하나는 좋다. 옥은 옥이로되 갈고 닦지 않은 옥이로다.
앞서가는 남편에게 소리친다.
“ 이봐요! 당신은 전공을 잘못 선택했어. 성악가가 되어야 하는 건데.”
남편 한성규(韓性奎). 올해 68세. 본관은 청주(淸州). 난공(시조 위양공) 33대손이다.
시아버님 한관섭(韓觀燮)씨는 1947년 재단법인 한국대학 (우리나라 최초의 야간대학.
지금의 서경대학교 전신)설립자이며 초대학장이셨다.
해방 전후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했으며, 불교계 효봉, 탄허, 구산, 월산 스님 같은
고승대덕과, 유진오, 안호상, 김법린, 황산덕, 홍진기, 박종홍 같은
석학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영향으로 양복 차림을 한복으로 바꾸셨고, 시어머니께서는
김구 선생님의 한복을 지어 올리셨다.
남편은 동국대학교 물리학과와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군 복무 후 명성여자중학교(지금의 동대사대부속여중)에 첫 발령을 받았으며
후에 장안동 소재 동국대학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장으로 퇴임했다. 성격은 원만하나
다소 다혈적인 기질이며, 뽀얀 피부에 똥그란 눈과 둥근 얼굴,
키는 작달막하나 체구는 당당하다.
남편과의 인연은 이러하다.
나 또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대학 시절에 총학생회 차석부회장 겸 여학생회장이었던 공로로 1972년에 연지동 소재
동국대학교부속중학교(지금의 동대사대부속중학교)에 발령받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고
명성여중에 있던 한성규라는 남자 총각선생이 이 학교로 전근해 온 것이다.
애초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편감은 다른 직업을 가진 자로 하겠다고 작심하고 있어서이다.
그런데 부처님 인연인가. 어느 날 교법사님과 함께 종로 대각사 법회에 참석했다.
앞자리에는 새로 전근해 온 한성규 선생이 떠억하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나보다 오래전에 이 법회에 나오고 있었던 신심이 돈독한 불자였다.
교사 외의 다른 모습을 본 이후 법회가 끝나면
여럿이 차 한 잔을 하면서 조금씩 그의 존재를 의식하였다.
한선생도 마찬가지로 애초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여자는 분명 여잔데 무슨 여자가 투박한 경상도 발음에다가
생김새도 남자 같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 조례를 하려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에서 남학생들이 내지르는 우렁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급훈!”하는 반장의 선창에 이어 전체 학생이 “급훈!”하며 복창하고, 이어서 반장의
“참되게! 선하게! 아름답게! ”라는 선창에 이어 “ 참되게! 선하게!, 아름답게!”라는
학생들의 복창 소리, 그리곤 “차렷! 경례!”하는 반장의 소리. 그 때 그가 놀란 것은
자신도 조례 때면 학급의 급훈을 학생들에게 선창, 복창시키고 있어서이다.
한 선생 반의 급훈은 이러하였다. “ 적극! 긍정! ” .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을 지니고 액자 속 급훈을 생활화하는
개성적 학급경영방식의 우연한 일치에
그는 나를 새롭게 보았다고 한다
종교가 같고 보수적인 가치관, 투철하며 곧은 사상, 고지식한
사고방식 등 여러 동질감에 1년 후에 결혼을 하였다.
살다보면 다 좋을 수는 없었다. 성격이 썩 달랐다. 남편은 착하고 겸손했으나,
화를 낼 때는 불 같았다.
타고난 그 큰 목소리로 길길이 노염을 토하면 나는 견디지 못해 기름을
퍼붓게 되고 결국은 둘다 시커멓게 가슴이 타버렸다.
오죽하면 송광사 구산(九山) 큰스님께서
남편을 앞에 두고 즉석으로 써 주신 휘호에 참을 인 ‘忍’자가 들어갔을까!
내 성깔도 어디 보통인가. 완벽을 지향하고 까다로웠다.
상담 연수 때 나의 성격이 남달리 항상 ‘왜?’
자로 사물을 대하는 유형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은 어려서 궁 밖으로 나가셔서 삶의 고통을 두루 보셨다.
그 사문유관(四門遊觀) 때 ‘왜 사람들은 태어나고 왜 늙고 왜 병들고
왜 죽는가(生老病死)?’라는 의문에 봉착하고 출가를 결심, 정진수도 끝에 득도하신 분이다.
그러나 나 같은 평범한 생활인에게는 그 ‘왜?’라는 까칠한 사고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도
심적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잘난 점은 있는 법, 남편 자랑은 온 바보이지만 온 바보가 기꺼이 되어 본다.
우리 부부는 30년 가깝게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왔다.
그이는 어머니에 대해서 절대 불종이었다.
살다 보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노엽게 하거나 신경질이나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런데도 그이는 어머님의 어떤 경우, 어떤 말씀에도 온화한 얼굴로 무조건 “
예, 어머니 ”로 모셨다.
유교 경전『효경』의 가르침을 딱히 실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볼 때는 타고난 성품 같았다.
친척들은 ‘효자 아들’이라는 평을 서슴지 않았다.
이제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노년에서
서로의 성질은 껌처럼 부드러워지고
늘어난 고무줄처럼 느슨해졌다.
부부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많이 사랑하고
가장 많이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란다.
얼마나 오래오래 쌓이고 쌓인 애증의 승화인가.
부부, 69억 모래 중에서 딱 만난 2개의 모래. 이 인연으로 두 사람은 땅 속에 묻힐 때까지
한 지붕에서, 한 이불로, 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너와 나는
동심결(同心結)로 일심동체로 살아간다.
묶어 놓은 매듭에 구속을 느낄 때가 하 많지 않았던가?
묶어 놓은 매듭을 풀고 싶었을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파 뿌리 같은 머리가 땅 속에 묻힐 때까지 그 인연을
이어가는 일편단심 일부종사자가 대한민국에 천지이니 귀신이 놀라고 하늘이 놀랄 일이다.
청춘남녀에게 사랑의 이미지는 열정, 환희이다.
결혼과 더불어 같이 사는 부부에게 사랑의 이미지는
인욕, 헌신, 용서, 신뢰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인생의 수레바퀴를
긴 세월에 걸쳐 돌리고 또 돌린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이마에 골이 깊어지고 치아가 망가지고
허리가 굽어지는 노년에 가서야 서로가
귀한 존재임을 알아차린다. 네가 죽고 내가 살면 홀어미요,
내가 죽고서 네가 살면 홀아비가 되는 사이임을
늦게야 깨닫는다. 이렇게 철들자 죽음의 이별은 서서히 다가온다.
눈물겨운 시어로 부부애를 북돋아주는 서정주 님의 ‘푸르른 날은’이란 시를 좋아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처럼 너와 나의 엇갈린 생사를 물음표 ‘?’로 상상해
보이면서 살아 있을 때 한껏 사랑 하라는 가르침에 가슴이 절절해진다.
결혼생활 36년째.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되어간다.
파 뿌리가 땅 속에 묻힐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경남 수필집 "내 영혼의 뜨락" 중에서=

수필가 김경남 님의 숨김없는 우리모두의 살아온 인생사와 공감하는 내용의
사생활을 공개한 듯하여
작가님의 양해를 얻어 게제하였습니다
October.26.2013 深谷 입니다·´·´˝"`˚♣♡♨深谷 姜文學印

    사랑은 영원히

봄날에는 꽃안개
아름다운 꿈속에서
처음 그대를 만났네
샘물처럼 솟는 그리움
 오색의 무지개되어
드높은 하늘을
물들이면서
사랑은 싹텄네
 
아지랑이 속에
아롱젖은 먼산을 보며
뜨거웠던 마음

여름시냇가 녹음속에서
반짝거리던 그눈동자여
 
 낙엽이 흩날리는
눈물어린 바람속에
나를 남기고 떠나야하는
사랑이여 내사랑이여
 떠나기전에 다시한번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사랑이여 안녕히
 
낙엽이 흩날리는
눈물어린 바람속에
나를남기고 떠나야하는
사랑이여 내사랑이여
떠나기전에 다시한번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사랑이여 안녕히 
 
=패티김 노랫말 중에서=
  
    

 
 
설악산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