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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리asnlove 원문보기 글쓴이: (이근창)사무국장
모두진술서
이명국목사님 강제연행
재판에 앞서 이러한 진술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사건당일 붙잡힌 사진을 보아서도 알수 있지만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는 듯한 인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학생까지 강제연행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최목사가 강하게 항의를 하자 그를 먼저 붙잡고 바로 옆에 있던 저마저 강제연행을 당하였기에 당시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서대문경찰서에서 일대일로 날이새로록 조사를 받을 때 담당형사에게 왜 나를 붙잡았냐고 계속해서 그에게 답변대신 말했지만 그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계속타자를 치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음날 목회자들이 면회를 오고 구금시간이 다되어 오자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고 싶어서인지 조서 맨끝에다 서대문서 수사과장이 와서 잡힌곳이 어디죠? 도로위죠 하고는 그것을 적고 얼마있다가 유치장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판장님 재판에 앞서 사실여부와 함께 저의 삶과 사연을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설명하는 것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이 춘수 님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 났지만, 6세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으며, 중학교 2학년때, 의정부시에 새로 개척된, 동광교회에서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영접 하였습니다. 당시 동광교회의 담임 이셨던 홍순자 목사님은 저의 영적 스승으로써, 저로 하여금 성령을 체험하게 하셨고, 성령의 능력을 저의 삶에 성육화 하는데 있어 커다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후 저는 서울의 경신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이때부터 주님의 종으로서 저의 삶을 헌신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저에게는 제일 먼저 저의 가정을 인가귀도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저의 의도는 집안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부모님과 형님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 함에도 불구하고, 예배의식에 참여하는데 있어서 어색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1986년에 입학한 이후에도 인가귀도 시키지 못한 저의 죄책감은 항상 저를 쫓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저의 일차적인 기도의 목적은 제가 최초로 목회 한다고 생각한 ‘인가귀도’였습니다. 또한 감신대에 입학한 이후 “매일 첫시간과 마지막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 시간에, 항상 인가귀도와 그에 따른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북한에서 홀로 월남하셔서, 친척하나 없으셨던 아버님은, 이 낯선 땅에서 온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시느라고 고생만 하시다가, 지병으로 고생하시게 되었고, 그 병증이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고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의 인가귀도를 위해서 기도하던 저는 오히려 아버님의 병환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언제 돌아가실 지도 모르는 아버님의 모습은 언제나 저에게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또다시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였습니다. 그것은 가장의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들은 오히려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하루 전, 주님을 영접하였고, 가족들은 슬픔속에서 예수님을 그들의 진정한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슬픔이 오히려 주님이 들어오시는 문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진솔한 눈물이 모두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이명박대통령이 취임하였습니다. 제 주위에 많은 분들 특별히 자식들을 걱정하는 저희 어머님을 비롯한 동네 어머님친구분들은 경제를 살린다고 말하고 747정책을 말하던 이명박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 동네 어른신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말들은 이제 앞으로 뭘 말하든 믿지를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느나라의 대통령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대선과 총선 때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들이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로 이명박 후보나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것은 기복주의적 정치행위였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된 쇼를 벌였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시대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붙들고 좋아했던 쇼였습니다.
사실 저는 어르신들이 너무 옛날에 못살았던 추억이 하도 많아서 이제는 좀 나아보자는 생각을 가진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성서적으로 볼때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먹을 것으로 사람을 통제합니까? 성경에서도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너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돈(떡)이냐 정의(말씀)냐? 이후 이명박정부가 잘못될 것 같은 징후가 분명하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들은 정부의 쇠고기 협상 때문에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졸속, 굴욕 쇠고기 협상에 어이상실한 국민들은 연일 계속해서 촛불문화제로 모여서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고, 당황한 정부는 고시연기와 대통령의 사과성 담화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해결이 아닌 눈속임에 국민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급기야 국민들은 보다 더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고, 촛불문화제로 모인 시민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청와대행진을 하였고, 경찰의 봉쇄에 맞서서 거리밤샘시위로 정부의 각성을 촉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심히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소통을 거부하고 명박산성을 쌓고, 폭력으로, 강제진압으로 시민들의 요구를 짓밟았습니다.
그러던중 피고인은 연행되기 전 주말에 보도된 기사를 보고 놀라움을 금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정부가 일을 저질렀구나 바로 촛불로 정부를 항의하던 국민들을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피고인은 이 땅에서 목회를 하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그곳에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신학생때부터 이미 목회자로 살기로 결심한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목회자로 사는 것일까? 고민하였습니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삶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으로 함께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깨달음이 왔습니다. 밖에서 주님을 찾아 헤메이며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 까지 가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것이 목회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피고인는 이 중요한 현실을 민족의 역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최목사와 함께 청계광장에 가보았습니다. 거기서 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맞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위정자들은 귀 기울여야 하고 민의를 반영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그날 피고인은 당당하게 거리에서 앞장서서 깃발을 들고 서지 않고 그들의 구경꾼이었습니다. 청계광장에서 우리는 보도위에 않아서 민초들의 작은 함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왜 내가 촛불을 들게 되었는지를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그러함에도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한채, 잘못된 정책을 잘못되었다고 의사표현하는 것까지 협박하고, 연행하고, 벌금처분하고, 연행하는 나라가 과연 민주공화국인지 반문을 던져봅니다. 집회가 시간이 오래되어도 끝나지 않아 저녁식사도 못해서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가자고 청계광장을 떠나 종로로 나왔습니다. 이윽고 촛불의 행령이 거리를 뒤덮은 것을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 보았습니다. 촛불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2008년 촛불은 어느 특정인에 의해 만들어진 행동이나, 행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은 민의였습니다. 단순한 행동이 아닌 국민들의 요구요, 국민들의 의사표현인 민의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연행하고 구속하는 것은 명백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일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여학생은 붙잡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에 항의를 하자 저놈도 잡아라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 『신의 도시』에서 “정치 체제는 정의가 없다면 조직화된 범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힘이 정의가 되는 세상이야말로 가장 각박하고 위험한 세상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세상의 실상을 고발하고, 그런 강고한 세상에 틈을 만들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모세는 고대 이집트 제국의 폭력적 억압에 시달리고 있던 히브리 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어 자유의 역사를 펼쳐내기 위해 최고 권력자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모세의 마음속에는, 히브리 인들이 자유를 얻고 인간대접 받게 하라는 신의 명령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나일 강에 스미자, 그 강물은 핏빛으로 변한고, 이집트 제국의 거대한 부와 위세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히브리 노예의 피를 고발하고 제국의 권세와 풍요의 진실이 폭로되었고, 이 사건 이후 바로는 히브리 인들을 자유하게 하라는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하다가 온갖 미물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이, 파리, 개구리 등의 공격은 말하자면 파리 목숨처럼 여겼던 미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던 존재들의 반격을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고, 이런 반격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체제는 마치 난공불락처럼 버티고 있었다. 흔히 "10가지의 재앙"으로 표현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그러나 사실상 바로 체제의 폭력적 권력을 허물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바로는 권력을 굳게 잡았고, 이제 히브리인들이 거의 기진맥진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사실은 바로는 결과적으로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었고, 저항이 진압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그 권력의 기반이 어느 사이에 총체적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이 된 것을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이와 같은 것이었고, 오천년 한반도의 역사가 또한 같은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촛불의 진실을 알아보는 이들은 오늘의 현실이 결코 암담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꺼진줄로 알았던 촛불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민족의 가슴에 여전히 켜져 있고, 이곳저곳에 옮겨 붙고 있다. 끈질기게 확산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촛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일어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독교가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리에 서 있었던 촛불 그것은 바로 예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 내 가족을 지키기기 위해서 어떠한 물리적 폭력도 없이 바람불면 꺼져버리는 촛불을 들고 서있는 연약한 촛불, 그러나 거기에 예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2천년전 질병으로 기득권의 권력에 눌린 이땅의 민중에게 주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주셨습니다.
마치 주님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끓는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로마권력에 맞서 나간것처럼, 주님의 로마의 기병대의 상징인 마굿간의 구유에 오신것처럼 당당히 나가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겼습니다. 이 성스러운 대열에 경찰은 물대포와 경찰 특공대투입을 통해 과잉진압을 시도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6월 1일 새벽에는 서울대음대 여학생 이 모씨는 경찰 군홧발로 머리를 수차례 짓밟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한신대학교 조한철 학생은 전․의경의 방패에 맞아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어 시력이상 유무의 검사를 받고 있고, 또한, 취재 중인 KBS 신봉승 기자와 촬영보조원은 “기자고 나발이고 다 죽여 버려”를 외치는 전․의경들에게 맞아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선진 민주국가의 경찰들에 의해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불상사가 소위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한사람의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의 잘못으로 국민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우리의 소리를 들으라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더 이상 잘못된 권력이 이땅에 드리우지 못하게 국민들이 직접 거리에 나왔습니다. 과거 학생일 때 저는 6월항쟁을 보았지만, 그때보다도 더 순수한 어린학생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사실 이모든 죄악의 근원을 물어야 합니다. 설령 정의보다 돈을 택한 국민들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진짜 이 법정에 설 사람은 바로 진짜 촛불의 배후세력인 행정부의 이명박대통령입니다. 이미 그의 죄가 과중합니다. 민주적 선거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그가 국민들을 억압하고 짖누르고 탄압을 하고 있으므로 그는 파쇼인 것입니다.
또한 세계패권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도시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미국에게 조공을 바친 매국의 죄가 있습니다. 7·4·7 운운하며 거짓말로 민심을 얻더니 이내 한국경제를 망쳐가고 있는 허위사실 유포죄가 있습니다.
5월22일 ‘정부가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국민여러분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 지금까지 부국정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해놓고 국민다수의 뜻인 전면재협상을 끝까지 거부하고 국민을 탄압한 국민기만죄가 있습니다.
6월19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다시 사죄를 해놓고는 촛불을 불법시위로 몰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배은망덕한 죄가 있습니다.
최근 M.B악법파동으로 국민들은 불안해 하며 국회를 주목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국가를 이지경까지 끌고가는 잘못된 리더를, 이 죄가 많은 사람을 긴급체포하여 법정에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피고인은 어이없게도 사건당일 죄없이 끌려가는 여학생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저놈도 잡아라는 소리와 함께 연행을 당해습니다. 죄가 없는데도 조서를 작성하는 경찰들은 모두가 당신 아고라회원이지라며 연행온 사람들을 모두 특정집단으로 매도할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당당한 피고인들을 역이용하여 교묘히 우회적으로 공소유지를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공소이유서를 보면서 너무나 황당하였습니다. 공소대로 사실이라면 저는 차라리 촛불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잡을테면 잡아라? 하고 외쳤을 것이고 처음부터 경찰조서도 응했을 것이고 제 주장을 펼쳤을 것입니다. 잡혀서 때리면 맞고, 고문을 하면 당하고 이것이 이땅 한반도의 아픔이라면 당당히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그 자리에까지 가지 못한 신앙적 양심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괴감으로 인해 서대문유치장에서 3일동안 구금상태에서 금식을 하며 주님앞에서 저 자신의 무력감과 나태함을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소위 챙피하게 잡혀와서 무어라 말하수도 없었고, 단지 이 사실을 경찰들이 알면 곧 나가겠지 하며 자위하였습니다. 이때 피고인이 잡혀있던 유치장도 너무나 불결해서 바닥에 구토물이 까만때가 되어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벽은 온통 끈적끈적한 것으로 되어서 이것이 유치장이 아니라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목사로서 최소한의 공적인 수요예배를 결국 인도하지 못한 사실 때문에 유치장은 그야말로 스올이었습니다.
또다른 공소사실은 도로교통방해라합니다. 정말 제가 도로를 막았습니까? 저는 그동안 촛불에대해서 보고 듣고 하였지만 국민들이 도록를 막은 것이 아니라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경찰이 명박산성을 쌓고 도로를 차량으로 막고 경찰병력으로 막은것을 직접보고 뉴스로 보고, 확인을 하였습니다.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국민들이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이러한 촛불은 한국 협상 대표단에게 유리한 점을 주었습니다. 즉 촛불시위 사진 등을 미국 협상 대표단에게 보여주면서 미측을 압박하였고, 촛불집회로 인해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경찰폭력으로 인해 1500여명 이상이 자의적 구금을 당했고, 약2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와 포럼아시아(Forum-Asia) 그리고 아시아인권위원회 등이 한국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하였고, 그 결과 경찰에 의한 과도한 무력사용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재판장님 본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의 일부는 인정하나, 피고인은 교통방해의 범의가 전혀 없었고, 실제로 당시 상황이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상황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촛불집회 상황을 보고 싶었고 수많은 민중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동료 목회자들과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그현장을 외면하지 않고 뛰어들어 어린 여학생을 잡아가지 말라는 항의를 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건현장은 무분별하게 국민들을 붙잡았습니다. 같이 먼저 연행당한 분중에는 너무나 어이없게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화장을 간다고 나왔는데 거리에 차가 안다녀서 길로 나왔다가 연행을 당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학상은 연신 연행된 버스안에서도 전의경을 보고 “오빠 잘생겼다”, 유치장에서는 “아저씨 투니버스틀어주세요”라고 하는 학생을 정말 잡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와 같은점만 보도라도 경찰이 과도한 대응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의사표현과 항의를 하였음에도 이처럼 부분별하게 체포하는 상황에서 피고인도 현행범인 체포대상인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이나, 미란다 원칙의 고지 등 최소한의 적법절차 요건도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마구잡이식이로 체포가 되었습니다. 이같은 마구잡이식 체포는 현장의 경찰지휘관의 명령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공권력에 의한 대표적인 위법부당한 행위로, 이에 대해 6월 26일 경찰청 인권위원회 전원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사퇴하기도 하였을 정도입니다.
최재봉목사님
재판장님 저는 촛불을 통해서 또다시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고도 움지이지 않는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권력의 힘이도 굴복하지 않은 수많은 민중을 보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촛불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이 새도록 어떻게 하면 명박산성을 넘어 소통이 부재한 이명박대통령에게 올바른 사실을 전해줄수 있을까? 이미 이들이게 있어서는 공권력의 공포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피고인이 고통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고, 가족들도 슬픔속에서 예수님을 그들의 진정한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처럼, 또한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인류에게 희망이 되었듯이, 이제 촛불은 이 한반도의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통속에 있어야 할 촛불이 오리혀 주님이 들어오시는 문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진솔한 촛불이 모두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을 새롭게 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마도 요즘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있는 시기인가 봅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푸른집 신도가 이글을 읽어야되는대 소ㅡㅡㅡ망하는 교회 출신은 우쩌 눈과 귀에 말뚝을 박았나.....
이명국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과 전과 14범이 믿는다고 쇼하는 하나님은 분명 다른 신이다.
종내에는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명박아 기다려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