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31일 월요일, 5월의 마지막 날 입니다. 누구든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낸 건지, 시간이 난 건지 정확하지는 않아도 차분히 오전 시간을 시간 때우기 해도 되는 시간입니다. 5월을 넘기지 않고 글 하나를 더 쓸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대단한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오늘 글과는 상관이 없지만 고향 명소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 글에 여러 번 언급되기도 했던 공세리 성당인데, 주간 사진이 아니라 야간 사진입니다. 말 그대로 "공세리 성당의 야경" 되겠습니다. 5월 29일 토요일 오후 8시 30분경에 찍었습니다. 글로만 채우기보다는 볼거리 하나를 제공하면서 생각도 하고 휴식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이기 때문에 더 좋은 사진은 못 찍지만 그래도 가볍게 한 번 보시면서 감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공세리 성당에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찍어서 올리는 사진들이 본당 정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날은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러니까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인지 사진은 오히려 더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사진 외쪽에 빛나는 부분은 성모님 상입니다.
성모님 상인데 형체, 그러니까 전체적인 윤곽만 어슴푸레 나오고 얼굴 모양 등 자세히 구분할 수조차 없네요. 그래도 분명히 예쁜 성모님 상입니다. 그리고 야간에 찍은 사진으로 보니, 성모님 주변 여러 풍경이 좀 멋있네요. 오른쪽으로 성당 본당 건물이 역시 어렴풋하게 보이시지요.
지난번부터 고민하던 것이 합리(合理) 와 화리(和理)였습니다. 뜸을 들이는 것처럼 생각이 되시겠지만 사실 많은 생각을 해 봤지만 잘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생각으로 이해해 보기를 바랍니다. 굳이 관심이 있으시면 말이에요.
합리(合理)는 사전적으로 “논리나 이치에 합당함”인데, 合은 “합할 합”이지만, 그 외에도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다."라는 뜻도 있고, 理는 “다스릴 리”이고 “구별하다, 다스려지다, 사람이 순행(順行) 하는 도리”의 뜻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치에 맞는가?” 또 한 번 말하자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떤 문제 하나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자꾸만 쪼개고 쪼개면서 옳고 그름을 그러니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말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갈등이 자꾸만 확산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정말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래에는 수학에서의 대소 관계를 나타내는 것과 선택이론(選擇理論, choice theory)의 선호도 관계를 나타내는 것을 구분해 봤습니다. 사람들은 수학적 기호는 수학을 잘 하든 못하든 그리고 그 내용을 알든 모르든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숙하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선호도 기호는 선택이론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기호는 경제학에서의 효용이론(效用理論, utility theory), 소비자 구매 분석 그리고 행동과학적 의사결정론(behavioral decision theory) 등 생각 보다 많은 영역에서 사용되는 기호입니다.
뭔가 어렵거나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아주 간단히 예를 들어 보는 것으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무료 여행권 3장이 있는데, 그중에 순서를 정하라고 했습니다. 약간 비현실적일지 모르지만 여행권은 누구나 잘 아는 국내 여행지로 제주도(120만 원, 3박 4일), 울릉도(110만 원, 3박 4일), 청산도(100만 원, 3박 4일)입니다.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으로서는 돈을 기준으로 하면 수학적인 기호로 표현할 때는 “제주도 > 울릉도 > 청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선호도는 합리성을 지킬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경제적 기준과 같이 선호 순서도 “제주도 ≻ 울릉도 ≻ 청산도”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모두가 이런 결정을 할 것일까요?
제주도를 이미 2번을 다녀온 사람의 경우의 예는 가령 “울릉도 ≻ 청산도 ≿ 제주도”가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주도를 한 번 도 안 갔더라도 “울릉도 ≿ 제주도 ≿ 청산도” 또는 “울릉도 ≿ 제주도 ∼ 청산도”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제주도 ≿ 청산도” 또는 “제주도 ∼ 청산도”인 경우,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합리적이다” 라든가, “합리성을 가지고 무엇을 한다."라는 것이 “약간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표를 만들고 수학기호니 선호도 기호니 설명하고 등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결론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인간이 모든 정치-경제활동의 기본 가정이 바로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 일 것인데, 그 합리성이라는 게 대부분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참 문제라고 생각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합리성과 관련이 아주 깊은 게 일관성(一貫性, consistency)인데, 이것도 한 평생이 아니라 살다 보면 일정한 기간 그러니까 한 10년 정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 등을 손바닥 뒤집 듯이 쉽게 자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어려운지는 모르겠지만요. 다만 하나 정도 추측해보면, 얼마나 될는지 모를 이익 때문이겠지요. 금전적 이익은 하수이고, 정치적 이익은 상수일까요? 그냥 오십보 백보의 수이겠지요. 이 세상에 상수는 그것보다는 더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단순히 개인의 어떤 이익이 아니라, 그 구성원도 포함된 공동체의 이익이라고 할까요.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때, 당사자들의 합의로 무엇인가를 결정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거기에 제3자가 합세하면 문제가 복잡해지겠지요. 우선 뭐가 복잡할 까요. 제3자가 공정하거나 공평하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한 쪽에 기울어졌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겠어요. 이건 요즘 많이 돌아다니는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겠지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 놓인 사람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당하게 되면, 그 억울함의 정도가 단순히 배가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하는 것 이겠지요.
이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적절한 예를 들어 억울한 사람 편에 서야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서민들의 사기 사건,, 근로자들의 근로환경 임금체불 복지 등은 모두 국가의 공평하고도 공정한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말이 적합한지 모르겠으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이런 말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요즘 보면 돈의 논리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거의 같은 의미로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라는 말도 될 것 같아요.
최근 땅 투기 문제를 보면서 또 하나 억지로 만들어 보면 “유정보무빈, 무정보유빈(有情報無貧 無情報有貧)” 그러니까 “정보가 있으면 가난할 수 없고, 정보가 없으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로 해석되나요. 한자가 맞는지 해석이 올바른지 모르겠으나, 써 놓고 보니 이 말이 맞는다면 제가 엄청난 말을 썼습니다. 왜냐? 현재 4G, 5G라는 말이 쓰이고 동시에 6G라는 말도 쓰이잖아요. G는 generation(세대, 世代)을 나타내는 말로 눈알이 휙휙 돌 정도로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게 바뀌어가고 있잖아요. 그것들 대부분이 정보의 흐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흐름 일부분을 이해하는 것도 일정 정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재부터 가까운 미래는 물론이고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정보(情報, information)가 권력도 되고, 명예도 되고, 결국은 돈이 되고 마침내 재미까지 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정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거나 알아도 정보를 이용할 정도로 모를 경우 여러 혜택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합리성을 말하다가 너무 많이 빗나간 것 같습니다만, 여하튼 인간의 생각과 활동에서 합리 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점을 말하려고 합니다. 합리에는 괘 큰 이기심(利己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니까요. 합리적이라면 지나친 개인의 이익을 인정하는 이기적인 것도 함께 얼버무려 넘어갈 것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비합리적인 별별 일들이 수도 없이 그러면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에 비해 화리(和理)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만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라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利益), 조화 와 균형(調和 와 均衡, harmony and balance)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노장사상(老莊思想, 老子: BC 580 - 480 와 莊子: BC 370 - 280) 그중에서도 특히 장자(莊子)의 사상이라고도 하고,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의 화쟁(和諍)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노장사상에 대해서도 모르고, 원효스님의 화쟁도 뭔지 잘 모르고, 그리고 화리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라고 하고 다만 화리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합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글자로만 읽어보면 한글-한자-영어 각 단어들이 뜻하는 것이 대충 뭔 말인지 알 듯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함께 잘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글자대로 읽고 이해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동서남북과 상하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이 충돌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사적 영역과 겹쳐지는 부분의 공동체의 이익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개인이 주변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인데, 개인의 이익은 합리(合理)에 따라서 그리고 전체의 이익은 화리(和理)에 의해서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어설프게 말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글은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께서 성균관대 명예교수님인 김정탁 교수님과의 2021년 5월 14일 자 "모범답안을 가지고 인생을 살지 말자.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진정한 자신을 잃게 된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터넷을 통해 여러 신문기사를 읽고 등등 별짓 다해서 쓰기는 했는데, 한 마디로 뭐가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 솔직한 말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여러분 각자 잘 조사해서 그리고 잘 이해하셔서 생활하시면 합니다.
산다는 게 결국은 인생무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 맞는, 꼭 맞는 것은 아닐 게고 대충 맞겠지만요, "젊은 어느 날처럼"이라는 시 하나 올립니다. 모든 분들 이 정도면 한 10여 분 시간 때우시는 데 문제가 없겠지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랄게요.
젊은 어느 날처럼
5월 마지막 날을 막 보내려고 하니 서운한가? 아니 막 돌아올 6월을 맞이하는 기분이 좋으니... 매일과 매일도 이렇게 보냈고 매달과 매달도 이렇게 보냈고 연년이 매번 그러했는데 괜히 나이만 자꾸 쌓여서 신경질도 못 내겠고 그렇다고 신경질 하나도 못 내면서 살 수는 없고 세월 가는 거 멀뚱히 쳐다보며 더럽다고 할 수도 없으나 곱다고는 더 말하기 거북하고 날이 하루 이틀 빨리 가 나이 드는 것 글쎄 그러려니 하고 민망해도 나이 안 든 것처럼 세월 며칠 속이고 나이 몇 살 속이고 꼭 몇 년 전 젊은 어느 날에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면 어떨까? 친구야!
참고로 아래 그림은 위의 시인데, 요사이 전국적으로 그리고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칠곡의 다섯할머니 그러니까 칠곡할매 글씨 체 중에서 "칠곡할매 추유을체"로 쓴 것을 캡처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사셨던 할머니들 께서 한글을 쓰게 되시면서 쓴 글을 칠곡군 등에서 서체로 개발하여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 중 입니다. 정감있는 글씨체, 여러분들도 사용해 보시기를 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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