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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일흔에 큰집 깔고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녀들한테 부담 주면서 용돈 받느니 차라리 큰집을 줄여 노후자금으로 사용하세요.”
지난 6월1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 40~70대 부부 100쌍이 모여들었다. 삼성증권이 45세 이상 부부(夫婦)들을 상대로 연 ‘은퇴학교’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현직에서 떠난 60대 대기업 임원에서부터 은퇴시기를 저울질하는 50대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계층의 부부들이 참석해 강연장을 꽉 채웠다. 이날 강사로 나선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은 “수명과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시대에 은퇴 문제는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숙제”라며 “현금 흐름이 나빠지는 은퇴 시기엔 부동산 다운사이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증권 전문가들은 은퇴 전후 부부들의 고민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보유 중인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어서 은퇴 이후 유동성 확보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두승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차장의 설명이다. “월세가 따박 따박 들어올 것 같나요? 세입자들이랑 부대끼니 스트레스로 건강 해치고, 벽지 발라주고 중개료 등 앞뒤로 새나가는 비용도 많습니다. 고생해서 연 5% 받느니 차라리 4%짜리 예금이 낫죠.”
일부 은퇴 생활자들은 시장에 매기(買氣)도 없고 헐값에 팔기도 싫으니 차라리 부동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어떠냐는 고민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칫 자녀에게 ‘폭탄’을 물려주는 셈이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증여는 세금 측면에서 현금 증여보다 유리할 때가 많다. 현재 1억원짜리 집이 5억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면 현 시점에서 증여하는 것이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증여 공식은 어디까지나 투자가치가 많은 부동산인 경우에 한한다. 만약 1억원짜리 집이 매년 가치가 떨어져 5000만원으로 고꾸라진다면 사전 증여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노두승 차장은 “개발호재가 있어서 앞으로 가치가 상승할 부동산이라면 자녀에게 증여하는 것이 맞지만, 가치상승 기대감이 없는 애물단지 부동산이라면 차라리 처분해서 현금으로 증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처분한 자금은 10년 유지 시 비과세되고 매달 일정 금액을 월급처럼 지급해주는 즉시연금에 묶어두는 것이 적당하다. 가령 2억원을 즉시연금에 맡기면 매달 약 96만원(매달 변동)이 나온다. 단 즉시연금은 보험이기 때문에 만기 전에 해지하면 손해가 큰 만큼, 전체 자산의 30%는 채권·예금과 같은 단기 상품으로 굴리는 것이 좋다.
은퇴부부_아내의 10년을 챙겨라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을 보면, 여성 100명당 남성은 69.2명이다. 여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기대수명은 76.5세인데 반해, 여성은 83.3세로 약 7년을 더 오래 산다. 평균적으로 남편 나이가 아내보다 3~4세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내가 남편보다 10년을 더 산다고 볼 수 있다. 은퇴부부의 노후준비도 이 같은 점을 확실히 인지한 다음에 출발해야 한다. 오래 사는 아내를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년 후에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동안 생활비나 의료비로 준비해둔 자금을 다 써버리고 나면, 남편이 먼저 사망한 다음 홀로 남은 아내가 돈 없이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내를 보험 대상자(피보험자)로 한 종신형 연금을 준비하자. 종신형 연금에 가입하면 피보험자는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승철 삼성생명 차장은 “7~8월부터 연금 지급액의 기준이 되는 경험생명표가 변경되면서 연금액이 줄어들 전망인 만큼, 연금 가입을 고민하고 있었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아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서둘러 가입하는 것이 좋다. 국민연금은 종신토록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가가 올라가면 연금도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남편의 종신보험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남편이 사망할 때 받는 보험금으로 홀로 남는 아내가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물은 없을 것이다.
|Tip| 은퇴부부 생활지침서
은퇴 후 5년이 편안한 노후 결정
전문가들은 은퇴 이후 5년이 향후 40년 노후를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55세에 은퇴한다고 보면, 55~59세가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설명이다.
이 시기에는 우울증이나 질병 등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은퇴사기나 사업실패로 낭패를 겪기도 쉽다. 은퇴 후엔 아픈 곳이 늘어나 의료비 지출도 늘어나고, 결혼하지 않고 부모 곁에 얹혀 사는 캥거루 자녀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해진다.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은 “퇴직자들은 은퇴 후 첫 1~2년간 퇴직금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며 몸을 극도로 사리지만 2년 정도 지나면 혹시라도 생활비가 부족한 건 아닌지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면서 “이렇게 마음이 조급해질 때 은퇴 사기꾼들의 검은 유혹에 휘말려 돈을 뜯기기 쉽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시기는 부부가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남편은 밖에서 생활하고 아내는 안에서 생활해 왔는데, 은퇴를 시점으로 부부가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면 부부 갈등이 심해지면서 황혼이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자칫 잘못하면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이끌어왔던 남편에게 친구라곤 TV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은퇴 이후 부부 갈등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배우자와 독(毒)이 될 수 있는 대화는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다른 집 남편들(아내들) 좀 봐”나 “당신은 구제불능이야”와 같은 말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 상황만 악화시킨다.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궁지로 몰아가는 말은 피해야 한다. 가슴에 두고두고 남아 불신의 씨앗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