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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05 - 귤과 오리발
S#1. 수영장 (새벽시간)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입수대에 일렬로 섰던 가오리 회원들이 물로 뛰어든다.
(핀수영 선수들이기 때문에 모두 오리발을 신고 있다)
시원스런 경기가 펼쳐진다. 그 중에 재명이 있다.
물론 물안경을 써서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를 따라가다 보면 턴을 하는데 중간 정도의 성적이다.
S#2. 수영장 앞 (아침)
팔랑거리며 걸어오는 옥주. 손에는 작은 보온병을 들고 있다.
수영장의 입구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더니 얼른 보온병의 뚜껑을 열어 조금 따라 마셔본다.
쩝쩝거리며 맛을 음미한다. 아무래도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봉지 설탕을 꺼내어 보온병에 털어 넣는다.
S#3. 수영장 / 풀
유리창 너머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옥주의 모습(옷 입은 상태는 수영장 입장 금지기 때문).
재명을 찾는 눈치다.
풀에서 나오는 회원들 가운데 재명은 보이지 않는다.
S#4. 수영장 / 구석
푸시업을 하고 있는 가오리 회원 몇 명 그 중에 재명도 끼어있다.
연설을 늘어놓으며 구령을 붙이는 훈련부장.
부장의 구령에 맞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회원들.
훈련부장 : 하나아.
회원들 : (팔을 굽힌 상태에서 기다린다)
훈련부장 : 니들은 지난 주보다 개인기록이 떨어진 문제아들이다.
따라서 니들은 오늘 저녁 일곱시까지 집합. 보충 훈련을 한다. 두울!
회원들 : (겨우 팔을 편다)
부장 : 기록이 떨어지는 이유는 하나. 연습 부족밖엔 없다. 하나아.
회원들 : (다시 팔을 굽힌 상태가 된다)
부장 : 기록은 땀 흘린만큼 나온다. 저 풀을 땀으로 넘치게 연습해야 좋은 성적이 나온다 이거야.
재명 : (구부린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부장 : (계속) 이 성적 가지구 봄철 지역예선 나가서 개망신 당해볼래? 두울.
회원들 : (겨우 팔을 펴는)
부장 : (빌빌대는 회원 발견) 어쭈? 안올라가지?
낑낑대며 팔을 펴는 회원.
부장 : 다시 하나!
회원들 : (구부리고)
부장 : 최재명 내가 어디까지 했지?
재명 : (바들바들 떨며 간신이 대답) 봄철 지역 예선.. 개망신까지 했습니다.
부장 : 좋아 다시 반복한다. 니들은 지난주보다 개인기록이 떨어진 문제아들이다.
니들 오늘 저녁 몇시까지 집합이라고?
회원들 : 일곱시입니다.
부장 : 두울!
얼굴이 벌개져서 기를 쓰고 팔을 펴는 회원들..
S#5. 수영장 근처
계단에 나란히 앉은 재명과 옥주.
재명의 옆에는 수영도구들이 든 가방이 있고... 오리발도 비죽 나와있고...
옥주, 커피를 따라서 건네주며 자기가 더 열이 받아서.
옥주 : 그 인간은 그거 인간두 아니야. 자기가 무슨 터미네이터 군단의 대장인줄 아는거야 뭐야.
재명 : (커피잔을 받으려다 다시 팔을 내리며) 못 들겠어. 팔이 안 올라가.
옥주 : (안쓰러워서) 그렇지? 팔이 안 올라가지? (커피를 먹여주는)
재명 : (마시려다가) 앗 뜨거.
옥주 : 어머 미안해. 너무 뜨겁구나. (커피잔의 커피를 후후 불어 식혀주며) 후우.. 분명히 그 인간 후우..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거야. 후우..
있잖어. 왜. 컴플렉스가 너무 많아서 남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느끼는 그런 정신병자들...
자 좀 식었다. 마셔봐.
재명 : (옥주가 먹여주는대로 마시고)
옥주 : (마시는 걸 보다가) 맛있니?
재명 : (웃지 않고 진지하게) 응. 진짜 맛있어.
옥주 : (걱정스레) 너무 달지 않어?
재명 : 아냐 딱 좋아. 한모금 더..
옥주 : (행복해져서 먹여주는..)
마시고 난 재명이 두 팔을 움직여보고 찡그리고 있는데.
옥주 : 재명아.
재명 : 어.
옥주 : 그거 계속해야 돼?
재명 : 뭐.
옥주 : 그거.. 핀수영.
재명 : 왜.
옥주 : 너무 힘들잖아. 너 이거 훈련땜에 맨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난대매.
인제 금방 개강인데 너 괜찮겠어? 공부도 하고 이것도 하고..
재명 : (잠시 눈을 끔뻑이며 생각해보더니) 난 말이야. 이거하구 공부하구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구 하면 이걸 할거 같어.
옥주 : 설마.. 그렇게 악마같은 훈련부장이 있는데두?
재명 : 어.
옥주 : (생각해보다가) 그럼 나하구 수영하구 둘 중에 택하라면? 그럼 어느 쪽을 택할건데?
재명 : (놀라서 옥주를 보다가 정면으로.. 눈을 끔뻑이며 생각해보는)
옥주 : (긴장해서 대답을 기다리는데)
호출기가 울린다. 재명 얼른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꺼내 본다.
재명 : 어어.
옥주 : 어딘데?
재명 : 우리 집. ..웬일이지?
S#6. 전자과 랩
(야외로... 로봇 축구 기재가 있는 곳)
로봇 축구 경기장 위에서 로봇들이 한참 달려가며 경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옆에서 박교수가 바싹 붙어서 보며.
박교수 : 옳지. 어허 참 거기 돌아야지. 돌아 돌아. 어어. 이거 멍청이들 아냐.
부지런히 옆의 컴퓨터로 가더니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주변에는 이교수와 만수와 남희가 한심해서 박교수를 구경하고 있다.
박교수 : 그래그래 이게 문제인줄 알았어.
아예 의자를 끌어다 앉더니 마우스를 움직여 뭔가를 찾기 시작한다.
만수 걱정이 되서 보다가 이교수에게 슬그머니..
만수 : 저.. 그냥 보고 계셔두 괜찮을까요?
이교수 : 글세. 설마 남의 프로그램을 자기 맘대루 고치기야 하겠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교수 키보드로 뭔가를 드립다 쳐대기 시작 한다.
만수 : 어어어.
남희 : (보다못해 박교수에게 가서) 저기 교수님.
박교수 : (계속 쳐대며) 어?
남희 : 그거 이교수님 프로그램이에요. 그렇게 맘대루 고치시면...
박교수 : (그제야 고개 들어 남희를 봤다가 이교수를 돌아보고) 아 이런.. 제가 좀 손을 댔는데요.
이교수 : (불쾌해져서 한마디 하려다가 남희나 만수를 의식해서) 저하구 얘기 좀 할까요?
박교수 : 그럼요. 하세요. 좋지요.
이교수 : 제 방으로 가죠.
박교수 : 이교수님 방으로요? (엉거주춤 일어나다가 갑자기 시계를 보더니) 아앗 늦었다.
이교수 : 뭐가요.
박교수 : 교수회의요. 안 가세요?
하더니 먼저 후다닥 나간다.
이교수 불안해져서 만수를 돌아본다.
이교수 : 오늘 회의였니?
만수 : 회의는 아니고 처장님이 잠시 보자고 하셨습니다. 박교수님이랑 함께.
이교수 : 언제?
만수 : 아무때나 시간 나실 때요.
이교수 기가 막혀서 나가고...
만수 : 남희 선배.
남희 : 아무 것도 묻지 마. 저 사람 교수 맞냐든가... 좀 맛이 간 거 아니냐든가.. 그런거라면 묻지 마.
만수 : ...아이 그런 게 아니구요.
남희 : 그럼 뭐.
만수 : 그냥 궁금해서요. 남희선배처럼 딱 부러지고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맛이 간 교수 밑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남희 : (천천히 만수를 돌아본다)
만수 : 좀 걱정이 되기두 하고..
남희 : 순수하다는 말 있지.
만수 : 순...수?
남희 : 저 분 눈빛을 보면 그 단어가 떠올라. 순수... 천진난만.. 이 더러운 세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
만수 : (오잉?)
S#7. 처장실
처장과 서교수. 앉아있다.
처장 : 이거 번번이 미안합니다만.. 어뜩하겠습니까. 우리 학교 찾아오는 손님들이 제일루 보고 싶어하는 데가
그 인공위성 센터라서 말입니다.
서교수 : 안내는 제가 꼭 안해도 되겠지요.
처장 : 그럼요. 교수님 연구시간을 뺏으면 안되지요. 그저 말 잘하는 제자 한명만 추천해주시면 됩니다.
서교수 : (일어서며) 알겠습니다. 그럼..
처장 : (따라 일어서며) 내일 두십니다.
소리 : (문을 노크하는)
처장 : 들어오세요.
말 끝나기 무섭게 박교수가 들어오며.
박교수 : 저희 왔습니다. (서교수에게) 어 형 와있었네. (뒤의 이교수에게) 어서 들어오세요.
(처장에게) 우리 커피 말고 다른 거 없을까요?
(경과)
처장이 손수 녹차를 놓아준다.
처장 : 녹차 괜찮겠어요?
이교수와 박교수 처장 앉아있고.
박교수 : 아 그럼요. 잘 마시겠습니다.
처장 : 두분 오시라고 한 건 다름이 아니고.. 저번에 신청하신 로봇 축구 교내대회 말입니다.
그게 학교측에서 어느정도 지원을 해드려야 하는건지..
이교수 : .... 저어 그거보다두요. 우선 박교수하고 저하고 역할 분담 문제를 먼저 얘기했음 하는데요.
박교수 : (컵에서 녹차 봉지를 꺼내느라 열심이고)
이교수 : 박교수하고 로봇 축구를 같이 맡게 되서 나도 아주 ..좋다고 생각 하고 있어요.
그런데 피차 자기 할 몫을 분명히 나누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박에게) 그렇죠?
박교수 : 그럼요. 아무거나 시켜주세요.
이교수 : 그럼 우선 4월에 있을 교내대회를 좀 맡아주실래요?
박교수 : 교내대회요?
이교수 : 일종의 예선전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여기서 우승한 팀을 여름에 있을 세계 대회에 내보낼 생각이거든요.
처장 : 우승팀에겐 연구비도 지원이 됩니다. 그게 중요하죠. 하하.
박교수 : 아하... 그런데 몇팀이나 됩니까? 교내 대회라면..
이교수 : 글세. 다 받는다면 열개팀이 넘겠지만.. 나로선 되도록 줄였으면 해요.
박교수 : 왜요?
이교수 : 당연하죠. 이건 어디까지 학과과정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니까요.
대회준비에 매달리게 되면 애들 공부하는데 지장이 막대하고..
박교수 : 무슨 공부요?
이교수 : ....공부요. 학과공부. 작년만 해도 로봇 축구대회에 매달리느라고 졸업을 못한 학생이 있었는데..
박교수 : 아니 잠깐만요. 그러니까 학과공부가 따로 있고.. 로봇 연구하는 공부가 따로 있다는 겁니까?
이교수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에요?
처장 : 자아 자아. 이제 지원 문제를 얘기해봐야겠는데..
박교수 : 어어.. 그냥 몰라서 묻는건데요. 그니까 졸업을 하는 공부가 있고.. 로봇 연구하는 공부가 따로 있는데..
음.. 하나는 중요하고 다른 하나는 덜 중요하니까..
부등식으로 만들자면 이쪽은 졸업을 위해 학점을 따는 공부고 이쪽은 그냥 공부인데..
이쪽은 이쪽보다 크다.. 이런 식이 성립이 된다는 말씀이죠? 그러니까...
이교수, 손짓으로 부등호를 그려가며 횡설수설하는 박교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보고 있다.
처장은 단념한 상태고.
S#8. 석학의 집
공중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재명. 얼굴에 불안함이 가득한다.
아침 시간이라서 청소를 하고 있는 미순과 진영.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의자를 내려놓거나...
옥주도 진영을 도와서 의자를 내려놓다가.. 다가오는 재명을 보고..
옥주 : 왜애? 집에 무슨 일 있대?
재명 : (굳어서 서있다)
미순 : 얼굴이 왜 그래? 뭐야?
진영 : 누가 아프시대요?
재명 : 아버지가..
옥주 : 느네 아버님이 왜?
재명 : 오신대.
옥주 : 뭐?
재명 : 아버지가 여길 오신대. 날 보러 오신대. (거의 죽상이다)
모두 잠시 재명을 보고 있다가.
미순 : 근데 니 얼굴이 어째 그러냐. 무슨 암선고라도 받은 사람 같잖아.
S#9. 대전 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한대가 도착한다.
내리는 손님들 중에 재명의 아버지인 용배.
손에는 한약상자와 작은 짐가방... 그리고 귤 한봉지를 들고 있다.
S#10. 버스 정류장
용배, 세상에 급할 것이 없는 태도로 서서 정류장 안내문을 읽으며 귤 하나를 까서 먹는다.
한번에 반알씩 덥석 덥석..
그러다가 지나가는 남자 하나를 잡는다.
용배 : 말 좀 물읍시다.
남자 : 예.
용배 : 여기 카이스트 가는 버스가 어느거요?
남자 : 카이스...요?
용배 : (아주 경멸하여) 카이스가 뭐요 카이스가. 카이스트.
남자 : 글쎄요.. (하더니 가버린다)
용배 기분 나쁜 듯 사방을 둘러보더니 다짜고짜 길 가운데로 나서며 손을 번쩍 든다.
용배 : 택시이..
S#11. 택시 내부
뒷좌석에 앉은 용배. 귤껍질을 봉지 안에 넣고 있다.
기사 : 아드님이 카이스트에 다닌다구요? 아이구 아주 머리가 좋은 아드님을 두셨군요.
용배 : 기사양반이 뭘 알긴 아시는구먼.
기사 : 거긴 다 박사들만 모여있다면서요.
용배 : 아무나 다 박사가 되는 건 아니고. 그 중에서도 제대로 공부를 하는 애들이나 박사가 되는 거지.
기사 : 좋으시겠습니다. 곧 박사 아버지가 되실 거 아닙니까.
용배 : 뭐 나 좋자고 아들놈 박사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기사는 더 이상 질문이 없다.
용배, 잠시 입 다물고 귤을 까다가 아무래도 더 말이 하고 싶어서..
용배 : 그 놈이 어려서부터 뭔가 남다른데가 있긴 했어요. 집안에 기계라고는 남아나는 게 없었으니깐.
시계고 라디오고 죄 망가뜨려서는 지 에미가 허구헌날 고함을 지르곤 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 임자 에디슨도 모르나.
우리가 지금 쓰는 전기두 그 에디슨 양반이 소싯적부터 손에 대는 것마다 망가뜨리다가 발명한거야.
기사 : (웃으며) 맞습니다.
용배 : 두고 보슈. 한 이십년쯤 뒤에 우리나라서 노벨상을 타게 되면 그 사람 이름이 뭔가..
신문을 잘 읽어보라구. 내 아들놈 이름이 최재명이요. 최. 재. 명.
S#12. 동아리방
민재가 뭔가를 잔뜩 들고 들어온다.
(찬합 여러개에 담긴 구정 때 집에서 만들었던 음식들... 전이며 나물 등등..)
민재 : 여어. 아직 안 죽고 다 살아있었냐?
옥주 드로잉북에 뭔가를 그리고 있고, 재명 멍청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정태는 소파에서 잠자는 자세로 누워 책을 보고, 만수와 마이클은 같이 놀고 있다가..(종이오목을 둔다든지)
옥주 : 어머 오빠. 잘 다녀왔어?
만수 : 어머어머 민재야. 너 온다구 해서 기다리구 있었다 얘.
정태 : 어서 와라.
마이클 : 민재오빠. 세배하구 왔어?
등등 각자 떠들며 인사하고...
민재 : (테이블에 가져온 찬합들을 늘어놓으며) 자아 고향에서 직방으로 올라온 고향의 맛입니다아...
만수 : (얼른 옆에 와 자리잡으며) 그래그래. 이런 것두 가져올 줄 알았어. 골고루 잘 싸왔겠지.
근데 요게 뭐야. 좀 더 많이 싸오지. 느네 어머님 손이 작으신가보다.
민재 : (찬합을 열려는 만수의 손을 막으며) 안돼. 형이 먼저 시작하면 남는 게 없잖아.
집에서부터 이거 들고 오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어?
정태 : 부모님 다 안녕하시고?
민재 : 어. (하면서 재빨리 침투해 들어오는 만수의 손을 막고)
옥주 : 채영 언니는 같이 안 왔어?
민재 : 올거야. 지원이 델구 온다고 했어.
만수 찬합 하나를 뺏어가 열어보더니.
만수 : 이거 뭐야. 나물이잖아. 고기는 없냐? 어? 고기. 떡국은 안 갖구 왔어?
옥주 : 떡국을 어떻게 싸와.
등등 떠들썩한데 문이 열리며 채영과 지원이 들어선다.
채영도 과일이며 떡 등이 든 봉지를 들고 있다.
만수 : 채영아아 어서 와라. 그건 뭐냐.
채영 : 다녀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오.
만수, 채영이 들고 온 봉지를 뺏어서 먼저 열어보고.
채영 : 지원아 얼른 일루 와. 만수선배 이거 오분이면 다 먹어치운단 말야.
마이클 : 와우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이에요.
옥주 : 만수오빠. 그걸 다 끌어안고 있음 어떡해?
등등 난리인데..
민재 문득 돌아보면 재명이 컴퓨터 앞에 우울하게 앉아서 그들을 보고 있다.
민재 : 재명이두 일루 붙어. 뭐하구 있어.
재명이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떠들썩하던 아이들 모두 재명이 나간 문을 본다.
채영 : 쟤 왜 저래.
옥주 : 재명이 아버님이 오신대.
민재 : 재명이 구정 때 집에 안 갔었어?
옥주 : 수영연습 있어서 못 갔거든.
채영 : 근데 아버지가 오시는데 기분이 왜 저래?
만수 : 안 먹어? 나 먼저 시작한다. (하는데 벌써 입에 뭐가 잔뜩 들어가 있다)
S#13. 학교 정문 진입로
아놀드, 약간 기울어진 속도 표지판을 바로 세우려 낑낑대고 있다.
뒤로 물러서서 바로 잡혔나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용배 : (소리) 실례합니다.
아놀드 : 에? 무슨 일이십니까?
보니까 후줄근한 잠바차림에 짐가방에 한약 상자를 든 용배.
아놀드 : 우리 학교는 잡상인 출입금지! 약장사는 더더욱 안됩니다.
나가시는 문은 (가리키며) 들어오신 쪽입니다.
용배 : (불쾌한) 내가 약장사가 아니고..
아놀드 : 약 아니라 뭘 팔든 안되는 건 안됩니다.
용배 : 나 아들 찾으러 왔소. 내 아들이 여기 학생이요.
아놀드 : (잠깐 멍해서 보다가 얼른 경례를 붙이더니)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캠퍼스 폴리스, 일명 아놀드라고 합니다.
용배 : 아..뭐요?
아놀드 :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에서 나온 겁니다. 아시죠? 미국에 그 배우.
(수줍게 웃으며) 아이들이 그렇게 불러줍니다.. 생김새는 제가 좀 나은데 그... 파워가 닮았다구.
S#14. 전자동 앞
재명 걸어나오는데 그 앞으로 와서 서는 폴리스차.
운전석에서 아놀드가 내리며.
아놀드 : 어이 최재명.
재명이 서고.. 아놀드 차 안에 대고.
아놀드 : 역시 아버지와 아들은 뭔가 통하는 모양입니다. 그... 텔레파시..라고 할까요.
문을 열며 나서는 용배.
재명 놀라서 주춤주춤 다가서며 꾸벅 인사를 한다.
재명 : 아버지. 오셨어요.
용배 : (다짜고짜 버럭) 오냐. 왔다. 아들놈이 설이 되도 콧배기도 안 비추니 별수 있어. 애비가 세배를 하러 와야지.
어디. 여기서 세배를 받을 거야? 거기 앉어. 내 큰절을 해줄테니까.
아놀드 벙해서 본다.
S#15. 강의실 복도
용배가 앞장 서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조금 뒤편으로 서서 따라오는 재명. 그제야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용배의 손에서 가방과 약상자를 받아든다.
용배 : (약상자를 건네며) 이건 니 에미가 지어보낸거다.
아예 다 짜서 봉지에 넣어놓은 거니까. 아침저녁으로 한봉씩 먹으랜다.
재명 : 예.
용배 : 데워먹을 덴 있고?
재명 : ..그게..
용배 : 있어 없어.
재명 : 있을 겁니다.
용배 : (못마땅한 듯 흘겨보고) 그래서 여기가 니가 공부하는 건물이야?
재명 : 예.
용배 : 교실은 어딨고.
재명 : (얼른 옆의 강의실 문을 열어보인다)
용배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재명을 돌아보더니.
용배 : 겨울에 불은 잘 때주냐? 안 추워?
S#16. 동아리방
아이들(만수 민재 정태 채영 지원 옥주 마이클) 한바탕 왁자지껄 웃고 있다.
테이블에는 먹고난 잔해들이 즐비하고...
만수 : 아버님 말씀이 백번 옳으시네 암. (사극 목소리) 사내가 스무살이 넘어서 그 무슨 세뱃돈인고.
민재 : 그래도 내가 누구야. 비장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드렸지.
아버님. 저는 부모님 앞에선 영원한 어린애입니다. 부디 소자를 물리치지 말아주시옵소서..
마이클 : 그래서 세뱃돈 받았어?
민재 : 받았지.
채영 : (갑자기 민재의 어깨에 살며시 기댄다) 민재씨.
민재 : 얘가 왜 이래.
채영 : (가녀린 목소리) 오늘 저녁에 나 양념통닭이 먹구 싶어요.
민재 : 어이 절루 떨어져. 에비.
채영 : 맥주도 같이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으응?
민재 : 우욱 속이 이상해. 우욱.
다른 애들 웃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용배가 우뚝 서서 아이들을 둘러본다.
아이들 뭔일인가 싶어 하나둘 일어나는데..
용배 : 여기가 무신 패거리라고?
용배 뒤에서 재명이 주춤거리며 모습을 드러내더니.
재명 : 로봇축구 동아리요. 축구하는 로봇에 대해서 연구도 하고.. 또.. 같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용배 : 같이 공부를 해?
마이클 : (눈치없이 나서며) 아저씨 누구세요. 여기 왜 왔어요?
옆에 있던 정태가 얼른 마이클의 뒷덜미를 잡아 끈다.
재명 : 저의 선배님들이에요. 아버지. 친구도 있고.
정신 차린 아이들 분분히 안녕하세요. 인사들을 하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용배. 방안을 훑어본다.
그의 시선으로 보이는 지저분하게 먹을 것의 잔해가 흩어져있는 테이블과 여자들...
옥주, 용배의 시선이 자기에게 오자.
옥주 : (얼른 앞으로 나서며) 안녕하세요. 전 재명이 친구구요. 산디과 이학년 오옥주라고 해요. 아버님.
용배 : 아버님?
옥주 : (얼른 자기 입을 막고)
용배 : (재명에게) 여기가 공부방이야?
재명 : (난처한) 아버지..
용배 : 여기 이렇게 여자들이 득실대는데서 공부를 해?
재명 : (죽을 맛이고)
용배 : 완전히 난장판이구만. 놀고먹자판이야.
S#17. 석학의 집
미순 : 그래서 여자들이 우루루 쫓겨났구만.
테이블에 채영과 지원과 옥주가 죽 앉아있다.
옥주는 우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고.
채영 : (노트를 펼치며) 말두 마요. 그 순간 난 갑자기 내가 조선시대의 기생이 된 기분이었다니까요.
미순 : 그래서 지금은 어디로 갔어. 그 부자간에. 설마 여기로는 안오겠지이?
채영 : 재명이가 공부하는 곳들을 하나씩 둘러보신대요. 재명이가 안내해드리고 있을걸요.
지원 : (자기 노트를 채영의 것과 비교를 해보며) 이 웨이브가 인풋대로 나온 거 맞니?
채영 : (보며) 그건 빼구 합산해야 될걸.
진영 : (그들 앞에 커피를 놓아주며) 어쩐지이.. 아까 아버님 오신다는 전화받고요.
재명씨 딱 죽을 거 같은 얼굴이드마요.
미순 : 재명이가 외아들이라구 했나?
채영 : 누나가 한명 있단 소리 들은거 같은데.
진영 : 그 누나는 참말로 인생이 고달프겄네요. 안봐도 알겄는디. 아마 같은 밥상에서 밥도 못 먹을 것이구마.
미순 : 근데 옥주 넌 아까부터 왜 죽상을 하고 있냐.
옥주 : (울먹이며) 언니이.
미순 : 왜애.
옥주 : 난 죽고 싶어요.
미순 : 얼레. 니가 왜.
옥주 : 재명이 아버님 처음 만난건데 그런 식으로 보이다니.. 난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정말 울려고)
미순 채영 진영 어처구니없어 보는데
지원만 상관없이 노트를 보며 계산을 하고 있다.
채영 : 오옥주. 그러니까 니가 방금 아버님이라구 한건 장래 시아버님이란 뜻이니?
미순 : 야들이 노처녀 앞에 두고 시방 뭔소리들을 하는거야.
지원 : (고개 들더니) 계속 여기서 얘기들 하실 거에요? 내가 자리를 옮길까요?
일동 썰렁해지고...
S#18. 기숙사 앞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이다. 학생 몇이 책을 들고 기숙사로 들어가고...
그들과 엇갈려서 재명과 용배가 나서고 있다.
이제 재명은 용배의 가방만 들고 있다. (한약상자는 방에 두었음)
재명 한걸음 뒤에서 따라오다가 손목시계를 몰래 본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옆으로 붙으며...
재명 : 저어 오늘 밤 그냥 제 방에서 주무셔두 되는데... 룸메가 집에 가서 없거든요.
용배 : 뭐가 집에 가?
재명 : 룸메...룸메이트요. 아니 같은 방친구요.
용배 : 일없다. 기숙사가 학생들 자라고 있는 것이지. 일가친척들 재워주는 곳이 아니잖어.
그나저나 아무리 사내들끼리 사는 곳이라지만 어째 그리 지저분하냐.
그런 쓰레기통 같은데서 공부가 돼?
재명 : (몰래 시계 한번 더 보고) 저어.. 아버지 더 보실 데 있으세요?
용배 : 대충 다 본 거 아니냐. 교실도 봤고 도서관도 봤고 자는 데도 봤고.
재명 : 예 대충..
용배 :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재명 뒤에서 망설이다가 옆으로 따라 붙더니.
재명 : 저기 실은.. 저녁에 갈 데가 있는데.
용배 : 어디.
재명 : 공부하러요.
용배 : 다 저녁에 무슨 수업이 있어?
재명 : 세미나 모임이 있거든요. 거기 모여서 같이 리포트를 쓰는 게 숙제라서..
용배 : (걸음 멈추더니 선뜻) 그럼 가야지. 가방 이리 내라.
재명 : (죄책감에 머뭇거리다가 가방을 내어준다)
용배 : 가봐 어서. 공부하는데 늦으면 쓰냐.
재명 : ... 아버진..
용배 : 학교 안에 식당 있대매. 거기서 한술 뜨고 여관 가서 한숨 자고. 내일 아침 버스 타고 가면 된다.
재명 : (머뭇머뭇... 그러다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다) 그럼 살펴가세요.
용배 : 오냐. 어서 가.
재명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앞서 간다.
걷다가 돌아보면 저만치 보이는 용배, 선 채로 가방에서 귤을 꺼내고 있다.
재명 잠시 아버지를 보다가 다시 아버지에게로 뛰어온다.
용배 : 왜.
재명 : (가방을 다시 뺏어들며) 식당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앞서 걷는다.
용배 : 안 늦어?
재명 : 좀 늦어두 괜찮아요.
용배 귤껍질을 까 먹으며 아들의 옆을 따라 붙는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부자의 뒷모습...
S#19. 학생식당 저녁 시간
배식구 앞. 재명과 용배가 나란히 서서 쟁반에 밥이며 반찬을 올리고 있다.
용배는 이리저리 반찬을 살피며 아들의 쟁반에 자꾸만 반찬을 올려준다.
테이블.. 재명과 용배가 마주앉아 밥을 먹고 있다.
재명 슬그머니 식당 벽에 걸린 벽시계를 본다. 7시 20분이 넘고 있다.
용배, 무뚝뚝하게 재명의 반찬접시에 자기의 고기를 몇점 더 얹어준다.
S#20. 수영장 앞길
재명이 죽자고 달려온다. 헉헉대며 수영장으로 가는 입구로 뛰어든다.
그 위로 들리는 훈련부장의 고함소리.
부장 : (소리) 너 지금 반항하는 거냐?
S#21. 수영장 내부
아침에 기합받던 아이들, 풀 안에서 연습중인데...
풀장가에 선 부장과 재명.
부장 : 지금 몇시야.
재명 : (얼른 시계를 보고) 일곱시 사십오분입니다.
부장 : 아침에 내가 몇시까지 집합하라고 했어?
재명 : 일곱시까집니다.
부장 : 그런데?
재명 :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절대 안 늦겠습니다.
부장 : 너 지난 학기 학점 뭐야?
재명 : 예?
부장 : 너 공부 잘해?
재명 : ...별롭니다.
부장 : 공부도 못하고 수영도 못하고, 너 왜 여기 있는거야?
재명 : 죄송합니다.
부장 : 뭐가 죄송해 임마. 수영연습 실실 빼는 놈들치구 공부 잘하는 놈, 내 본적이 없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너같은 놈들은 인생을 사는 태도부터가 틀려있단 얘기야.
요령이나 살살 피면서 남의 탓이나 하구, 재능이 없어 어쩔 수 없단 소리나 하구. 내 말 틀려?
재명 : ...맞습니다. (울고 싶은 심정)
부장 : 너 오늘 왕복 오십번이야. 다 채우기 전에 돌아갈 생각 마. 알았어?
재명 : 예 알겠습니다.
그들 옆으로 열심히 물살을 헤쳐나가는 회원들...
S#22. 석학의 집 앞 야외. 저녁 8시 무렵
민재, 채영, 정태, 지원이 걸어오고 있다.
지원과 채영이 노트를 같이 보면서 뭔가 얘기를 하고,
옆에서 민재가 노트를 뺏어 보며 떠들고...
그러는데 정태가 한 곳을 본다.
정태 옆의 아이들을 툭툭 치면.. 아이들 바라보는 곳에 용배가 혼자 걸어가고 있다.
민재 : 재명이 아버님이잖아.
채영 : (재빨리 지원을 잡아끌어 가며) 니들 빨리 우리랑 떨어져. 여자 옆에 붙어 있지 말라구.
채영, 지원을 끌어서 저만치 비키고..
민재 얼른 용배에게 달려간다.
민재 :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저 아까 인사드렸던 재명이 선뱁니다.
용배 : 오...그래.
정태 : (다가와 꾸벅 인사하는)
민재 : 재명이는요.
용배 : 어 바쁘다고 갔다.
민재 : 지금 돌아가시는 겁니까? 벌써요?
용배 : 아 여관이나 가서 한숨 잘까해서..
민재 : 에이 별일 없으시면 재명이 수영하는 거 구경하다 가세요.
용배 : (굳었다가) 뭘 구경해?
민재 : (정태에게) 재명이 지금 수영장에 있지?
정태 : 어 오늘 일곱시부터 연습이라고 했는데.. (용배에게) 저희가 안내 하겠습니다.
민재 : (아무 사정도 모르고) 재명이 그 녀석 아주 유망주에요.
거기 부장이 재명인 메달감이라구 아주 달달 볶는가보던데요.
재명이 정말 대단합니다. 매일 새벽마다 꼬박꼬박 일어나서 수영연습을 하는데..
용배 : 이런 망할 놈의 자식 같으니.
민재 : (놀랐다) 예?
용배 : 그놈의 수영질을 아직두 안 그만뒀단 말이야? 내 이 녀석을 그냥..
자네들 앞장 서. 어디야 그 놈의 수영장!
민재 : (쫄아서) 네... (정태를 흘깃 보면)
정태 : (아이그...해서 모자를 푹 내려쓴다)
S#23. 수영장
연습 중인 가오리 회원들 오리발을 놀리며 물살을 가른다.
풀가에 서서 다그치는 훈련부장.
훈련부장 : 강수호, 턴 빨리 하구!! 야!! 김종수! 빌빌 댈래? 더 팍팍 못 치고 나가?
선수들, 도착하고 스톱워치를 끊는 훈련부장.
물안경 벗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재명 훈련부장을 올려다본다.
훈련부장 : (고개 저으며) 택두 없어. 아까보다 더 늦어 어떻게 된 게.
(모두에게) 자, 전부 올라와! 한번 더 돌자!
재명, 화가 나는지 손바닥으로 수면을 친다.
그 때 수영장을 쩡쩡 울리는 용배의 목소리.
용배 : (소리) 이 놈의 자식. 이리 못 나와!!
재명 반사적으로 풀가로 얼굴을 숨겼다가 살그머니 눈만 내어서 보면
용배가 신발을 신은 채로 씩씩거리며 들어서고 있다.
부장이 얼른 용배 앞을 막아서며.
부장 : 어떻게 오셨습니까?
용배, 부장을 밀쳐버리고 풀가로 오며 어리둥절해 있는 회원들을 둘러보며.
용배 : 이리 당장 못 나오냐!!
재명, 죽을 맛으로 기어나온다.
나오자마자 용배, 재명의 귀를 끌어 잡고 나간다.
재명 오리발을 신은 상태라서 잘 걷지도 못하고.
부장이 다시 막아서며.
부장 : 죄송하지만 무슨 일인지요.
용배 : 댁은 뭐하는 사람이야?
재명 : (귀를 잡힌 채) 아이구 아버지 잠깐만 이거 좀 놓구..
부장 : 재명이 아버님 되십니까? 전 재명이 선뱁니다. 여기 가오리 훈련 부장이고...
용배 : 옳지. 부장인지 뭔지래니까 내 말해두겠는데 이 놈. 내 아들놈. 오늘부로 당장 여기 그만둘거야.
그러니 그리 알고. 다시는 이 놈이 물가에 얼씬도 못하게 해. 알겠나?
부장 : (뭐라 말을 해야할지)
용배 : (재명을 끌어 가며) 선배애? 선배가 됐으면 후배놈이 공부를 제대로 하게 끌어줘야지.
뭐 먹고 살 일 났다고 물장난질에 꼬드기는게야!
(멈추더니 풀가에서 구경하는 다른 회원들에게) 자네들두 마찬가지야. 학생이 학교에 왔으면 공부를 해야지.
자네 부모들은 이따위루 자네들이 물장난이나 치구 댕기는 거 알구 있어?
재명, 오리발을 벗으며 깡총거리며 용배에게 잡혀 나가고..
입구에서 보던 민재와 정태, 얼른 비켜주고..
물가의 다른 회원들 아무 말 없이 보고 있는..
S#24. 수영장 입구 계단 밑
보온병을 들고 서서 안의 소리를 듣는 옥주.
안에서 들리는 용배의 소리.
용배 : (소리) 당장 옷 갈아입구 나와. 내 문가에서 지키구 있을거니까.
옥주 후다닥 돌아서서 숨을 곳을 찾다가 그냥 벽에 얼굴을 박는다.
입구 문이 벌컥 열리면서 용배가 나와서 옥주의 뒤를 지나간다.
옥주 걱정스러운 얼굴로 용배가 가는 뒷모습을 몰래 본다.
S#25. 탈의실
재명이 말없이 옷을 입고 있다. 그 옆의 민재와 정태.
민재 : 야. 정말 미안하다. 느이 아버님이 그렇게 수영을 반대하고 계신 거 내가 꿈에두 몰랐잖어.
짜아식 미리 힌트라두 좀 주지. 그럼 내가 방정맞게 그런 소릴 안했을 거 아니야.
정태 : 어이 기운 내. (수건으로 재명의 젖은 머리칼을 닦아준다)
재명 : (정태의 손길을 뿌리친다)
정태 : 마. 미안하다구 하잖아.
민재 : 재명아. 우리가 같이 가줄까? 어?
재명 말없이 락카의 문을 쾅 닫는다.
(사실 재명은 둘에게 화가 났다기 보다 아버지의 행동에 챙피하고 화가 나있는 상태)
가방을 챙기는데....그런 재명을 보다가...
정태 : 어이 최재명. 내가 볼 때 너 좀 한심한 거 알어?
민재 : (정태에게 하지 말라고 눈짓)
정태 : (아랑곳없이) 야. 너 나이가 몇살이냐. 그 나이에 그래. 아버지 몰래 숨어서 수영을 해왔던거야?
사내자식이 당당하지 못하게.
민재 : (정태에게) 넌 이 순간에 또 무슨 설교냐.
정태 : 기운 내라고 하는 소리지. 남자는 말이야. 자기 아버지를 이겼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구.
재명 나가버린다. 문이 쾅 닫기고.
정태 : (진지하게 민재를 돌아보더니) 방금 내가 한 말 멋있지 않았어?
민재 : 으이그...
S#26. 수영장 입구 계단 밑
재명이 나오는데 구석에 있던 옥주가 얼른 재명을 막아선다.
재명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보는데,
옥주 계단 위의 눈치를 보며 얼른 재명의 팔을 끌어 구석으로 가서.
옥주 : (낮은 소리) 아버님 너무 화나셨더라.
재명 : 알어. (그냥 가려는데)
옥주 : (계속 잡아서)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구 빌어.
재명 : (잡힌 팔을 빼내는)
옥주 : 나 밖에서 다 들었어.
재명 : (정말 챙피해서 화가 나는)
옥주 : 아버님 말두 일리가 있지 뭐. 공부하면서 수영연습까지 하는 거 너무 힘들잖아.
재명 : 됐어. 그만해.
옥주 : (다시 재명의 팔을 잡아) 아버님두 다 니 걱정해서 그러시는거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구 그러구. 알겠다구 그러구.
재명 : (벌컥 팔을 뿌리치더니) 너하구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알아서 할거니까 그만둬.
옥주 : ...뭐?
재명 : 에이.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남은 옥주 멍해져있다.
S#27. 연구실 앞 복도
물론 어두운 시간.
용배 복도를 쿵쿵 울리며 빠르게 걸어오고 있다.
그 뒤를 용배의 가방을 들고 쫓아오며 재명 정말 괴로와서..
재명 : 도대체 아버지 왜 그러세요.
용배 : 도대체 왜 그러냐구 묻고 싶은 건 바로 나야. 도대체 너 이 애비를 언제부터 속이기루 작정한게야.
재명 : 잘못했다구 했잖아요.
용배 : 언제부터..대체 몇개나 되는 거짓말을 해온게야?
이 놈의 학교에선 그렇게 가르치드냐? 못 배운 애비는 속여두 된다구 가르쳐?
재명 : (용배를 붙잡아 겨우 세우며) 그냥 저한테만 화내시면 되잖아요.
용배 : 화를 내? 니 눈엔 고작 이 애비가 화를 내는 걸로 보여? 이 애비 가슴은 시방 찢어지구 있어.
S#28.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와 박교수, 만수와 남희가 모여있는 중.
만수가 한아름의 논문들을 들고 와서 테이블에 놓는다.
남희는 받아서 정리하고...
이교수 : 이게 전부니?
만수 : 예. 98년 논문까집니다.
이교수 : (박교수에게) 여기 학생들이 로봇 축구에 대해 써냈던 논문들이에요.
디스켓으로 필요하면 그것두 있을텐데.. (만수에게) 있지?
만수 : 예. 찾아올까요.
박교수 : 아니 됐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로봇 축구를 하는 팀들에 대한 정보같은 거 없을까요.
이교수 : ....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다 알려 드릴 수 있어요.
알려 드릴 수는 있는데 근데 아까 우리 하던 얘기 말이에요.
박교수 : 에? 아까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었죠?
이교수 : 그 부등호 얘기. 학과공부와 다른 공부와의 부등식.
박교수 : 아아 그거... (멈추고) 근데 우리 아직 저녁을 안 먹고 있는 거 같은데요.
이교수 : (만수에게) 우리 아직 저녁 안 먹었니?
만수 : (얼른) 예 아직 못 먹고 있습니다.
박교수 : 매운탕이나 섞어찌게... 이런 거 어떨까요.
하는데 요란한 노크소리가 들린다.
만수 : 예에.
만수가 미처 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열리는 문.
용배가 재명을 끌고 들어선다.
용배 : 저는 이 놈의 애비되는 사람올습니다. 그런데...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여기 교수님은 안 계십니까?
이교수 : (일어서며) 제가 교순데요.
용배 : 에? (이교수를 아래위로 보고) 여기 대학에서 내 아들을 가르치는 교수님 말입니다만..
우리 애는 기계 공부를 하는 앱니다.
이교수 : 제가 재명이 지도교숩니다. 아버님이시라구요.
용배 : (의심스러워 재명을 보고) 이 여자분이 교수님 맞어?
재명 : (너무나 챙피해서) 아유 아버지. 저희 교수님이세요.
용배 : (할수없이 납득하고 박교수까지 합해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여기 학생애들이 있는데서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박교수 : 저도 교순데요. 안녕하십니까.
용배 : (좀 더 의심쩍어지고 재명에게) 어째 느이 학교엔 여자 아니면 애들같은 교수밖엔 없냐.
재명 : (사라지고 싶은 심정)
이교수 : 무슨 문제가 있으신지요.
용배 : 문제요. 예 문제가 있어서 왔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이놈 좀 잘 좀 이끌어 주십사고 제가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S#29. 채영과 지원의 방
옥주가 쿨쩍거리며 울고 있다.
채영 한심해서 보고 있고. 그 옆에서 지원은 노트를 보고 있다.
채영 크리넥스를 꺼내더니 건네준다. 옥주 코를 풀어가며 운다.
채영 : 아 고만 좀 울어. 그게 뭐 그렇게 길게 울 일이야.
옥주 : 언니는 그 순간의 내 심정을 몰라.
채영 : 글세 얘기 다 들었잖아. 니가 재명이 걱정을 해줬는데 재명이가 화를 내면서 그냥 가버렸다구.
옥주 : 그냥 가버린 게 아니구. 날더러 그랬단 말야. ...(흉내) 너하구 상관없는 일이야.
(다시 울음이 북받치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채영 : 사실 너하구 상관없지 뭐. 그야 재명이하구 지네 아버지 하구 문제지.
옥주 : 정말 언니하군 말 못해. (다시 징징 우는)
채영 : (지원에게) 얘 좀 그치게 할 수 없니? 놔두면 밤새 저러구 울겠다. 어.
지원 : (펼쳐 놓고 있던 노트를 단념하여 옆에 덮어놓고) 재명이가 잘못했어.
옥주 : 그치? 언니. 걔가 잘못한거지?
지원 : 애가 너무 어려서 그래. 어린애들의 특징이 그런거잖아.
딴데서 기분 나빴던 일을 상관없는 사람한테 와서 분풀이하고. 그걸 한마디로 유치하다고 하는거야.
옥주 : (말을 듣다보니 울음이 그쳐서 지원을 보며) 그게 왜 유치해.
지원 : 유치하지. 지네 아버지한테 야단맞구 왜 너한테 화를 내니? 뭐야. 어린애두 아니고.
옥주 : 그야... 내가 자꾸 귀찮게 하니까 그렇지.
지원 : 그럼 그래놓고 우는 너도 유치한 거고.
옥주 : (화가 나는데)
채영 : (얼른 중간에 들어 앉으며) 자아 자. 떡 남은 거 있는데 떡 먹을까? (테이블의 떡 그릇을 여는)
옥주 : (발딱 일어서더니) 내 방에 갈거야.
채영 : 떡 안 먹을래?
옥주 쿵쾅거리며 나가버린다.
채영 : 정말 울음이 그치긴 그쳤네.
지원 : (다시 노트를 펴는) 이거 다음 챕터도 정리했니?
채영 : (감탄해서) 지원이 넌 정말 머리가 좋은 거 같어.
S#30. 이교수 연구실
남희가 차를 세잔 놓아준다.
이교수 박교수와 마주앉은 용배.
재명이는 저 뒤에 서있는 상태. 만수도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고.
용배 : 저는 그야말로 배운 게 없는 놈입니다. 나이 사십에 코딱지만한 공장 하나 마련했고.
평생 해온 일이라는 건 선반일입니다. 기계를 가르치신다니 선반일이 뭔지는 아시겠지요?
이교수 : 예. 압니다.
용배 : 아들놈이라고는 저 놈 하나 있습니다. 제 아들놈 놓고 이런 말 하기는 부끄럽습니다만
저 놈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 들었습니다.
지 나이 열살 때부텀 동네사람들이 고장난 라디오만 있으면 다 들고 오고 그랬습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그저 저 놈이 언젠가 노벨상을 탈 정도루다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교수 : 저어.. 노벨상에는 공학 분야에 주는 상이 없는데요.
용배 : ...없어요?
박교수 : (얼른) 노벨상만큼 훌륭한 다른 상들이 있습니다.
용배 : 예에... 하여간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저 놈이 지금 제일루 중요한 때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 오리발 수영인가 뭔가에 미쳐서는 지 공부를 놓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제가 이 놈 옆에서 지켜주질 못하니까 여기 계신 교수님들이
부모된 마음으루다가 저 놈을 좀 잡아주십사구요.
이교수 : (재명 쪽을 보는)
용배 : 다시는 그 놈의 오리발 달구 물 속에 못 들어가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저 놈이 이 애비는 못 배운 사람이라구 맘대루 속입니다만,
여기 계신 교수님들이야 많이 배운 분들이니까 함부로 속이질 못할 거 아닙니까.
재명 정말 괴로운 심정, 답답한 심정...
용배 : 그저 그것만 부탁드립니다. (테이블에 두손을 짚고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저 놈 좀 단단이 잡아 주십시요.
이교수와 박교수, 엉거주춤하게 용배의 정면을 피해 비스듬히 앉으며 서로 마주본다.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
S#31. 연구실 앞 복도
용배가 앞장 서 걸어오고 있고.
그 뒤에 재명이 화가 난 상태에서 따라오고 있다. 여전히 부친의 가방은 들고 있음.
S#32. 복도 휴게 공간
걸어온 용배, 의자에 앉는다.
재명 불퉁해서 한쪽 끝에 서있다.
용배 : 앉어. 서서 시위하지 말고.
재명 : (의자의 다른 쪽 끝에 앉는)
용배 : 됐다. 이제 니가 할 일은 그 놈의 오리발 수영 그만두고 공부만 하면 돼.
재명 : (중얼거리듯) 핀수영이에요.
용배 : 뭐라고?
재명 : (좀 크게...) 오리발수영이 아니구 핀수영이라구요.
용배 : 너.. 말하는 투가 뭐냐. 아직 미련이 있다는게야?
재명 : .....
용배 : 그리구 그 동아린지 패거린지 그애들하고도 너무 몰려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
그게 어디 공부하는 애들 같이 보이든? 그저 남자구 여자구 없이 우우 몰려다니면서 떠들어대구..
재명 : (못 참고 불쑥) 그만 좀 하세요.
용배 : ...뭐야?
재명 : 그 몰려다니는 패거리 중에서 제가 제일 공부를 못한다구요.
아버진 제가 무슨 천잰줄 아세요? 아버지가 자꾸 그러니까 정말.... 숨이 막힌다구요.
(너무 소리를 지르지는 말 것. 평소의 재명이가 자제력을 잃고 있을 뿐... 좀 버벅대면서..)
용배 : 이 놈이가... 애비한테 거짓말을 해대더니 이젠 맞먹자구 들어?
재명 : 거짓말도 뭐 하고 싶어서 한줄 아세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아버진 듣지도 않잖아요.
용배 : 그래서! 그래서 애비 속이구 오리발 수영을 계속 하는게야?
재명 : 좀 하게 해주세요.
용배 : 뭐가 어째.
재명 : 저 인제 어린애 아니에요. 스무살이 됐다구요. 내가 하구 싶은 거, 해야 되는 거 그쯤은 안다구요.
제가 무슨 유치원생두 아니구 챙피하게 왜 학교까지 와서 이러세요.
용배 : 챙피해...? (더 소리치려는데 마른 기침으로 목이 막혀오는)
재명 : (부친의 상태를 눈치 못 챈 상태로 계속) 수영부도 그렇지만 교수님한테까지 어유 정말..
그러다가 문득 부친을 돌아본다.
부친 힘들게 나오는 기침을 억제하고 있다.
재명 당황하는데..
용배 손을 뻗어온다.
재명 벌떡 일어나 다가가지만, 용배, 재명을 뿌리치고 옆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끌어가 연다.
기침을 하며 가방에서 귤을 꺼내는 용배. 급하게 귤을 까면서 기침 사이사이로 힘겹게 하는 말.
용배 : 챙피해.. 그래 챙피하겄지. 이런 애비가..
재명 어쩔줄 모르고 그 앞에 서있다. 손을 뻗으려다가 말고..
용배는 귤을 까서 기침을 하며 꾸역꾸역 먹고 있다.
S#33. 교문 쪽 밤
가방을 든 용배가 혼자 걸어나가고 있다.
이만치 뒤에서 재명이 서서 바라보고 있다.
S#34. 기숙사 부근 밤
재명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걸어오다가 멈춰선다.
고개를 숙이고 우두커니 서있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근처의 공중전화가 눈에 뜨인다.
S#35. 그 공중전화 앞
재명이 전화를 걸고 있다.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잠시 후..
재명 : 어. 나야. 안 잤니? .....아깐 미안했어......
(옆에 등을 대고 기대선다. 괴로운 얼굴로 하늘을 보며) 응 아버진 가셨어.
..옥주야. 지금 내 기분이 어떤가하면 있지. 나를 몇 대만 패줬으면 속이 시원할 거 같애....
너 지금 나와서 나 좀 패줄래?
S#36. 야외극장
혹은 다른 어떤 고즈녁한 곳.
잔뜩 끼어입은 옥주가 뭔가를 잔뜩 안고 총총 걸어온다.
저만치 재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다.
옥주 그 옆에 가서 앉는다.
재명 그 자세 그대로.
옥주 말없이 가져온 목도리를 재명에게 둘러주고, 보온병의 뚜껑을 열어서 커피를 따르더니 건네준다.
옥주 : 마셔. 뜨거운 커피야. 몸이 좀 따뜻해질거야.
재명 : (시무룩하니 받아 마신다)
옥주 : 맛있니?
재명 : 응.
옥주 : 너무 달지 않어?
재명 : 아니 딱 좋아.
옥주 : 응...
재명 커피잔을 두손으로 감싸고 한모금 더 마시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재명 : 우리 아버지 귤 많이 드신다. 왜 그런지 아니?
S#37. 여관 방
용배 들어서서 불을 켠다. 좁고 누추한 여관방이다.
용배 가방을 내려놓고 밭은 기침을 하며 잠바를 벗는다. 그 위로 재명의 소리.
재명 : (소리) 선반 일을 하면서 마신 쇳가루 때문에 목을 버렸거든.
약도 약이지만 귤이 좋다고 해서 늘 귤을 잡숴.
S#38. 야외공원
나란히 앉아 있는 재명과 옥주.
재명 : 우리 아부지, 무좀도 심해. 고질병이야. 작업장에서 작업화란걸 신는데 말야,
신발 코를 이렇게 쇠로 만들어놨어. 작업하다 발가락 찍혀도 다치지 말라구.
S#39. 여관방
용배 앉아서 맨발의 발가락에 무좀약을 정성스레 바르고 있다.
그 옆에는 귤이 든 봉지가 껍질과 몇개와 함께 놓여있고.
재명 : (소리) 그걸 10년 넘게 신으면 쇠독이 오르면서 발가락이 엉망된다.
우리 아버진 발가락 열개가 다 무좀이야. 한번 쇠독 오른 무좀은 평생 못 고친대.
S#40. 캠퍼스
무릎에 얼굴을 얹고 있는 옥주. 울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중이다.
그 옆에 앉은 재명.. 커피의 나머지를 다 마시고.. 컵을 보온병에 꼽고... 드디어 결심한 듯.
재명 : 옥주야 나 있지. ... 내일 마지막 수영을 할거야.
옥주 : (고개를 반짝 들고 보는)
재명 : 마지막으로 딱 한시간만 더 수영하구... 그 담에는 안할거야. 절대루 안할거야.
(생각해보다가) 음.. 한시간 말구 두 시간만. 마지막이니까 두 시간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뭐.
옥주 : 그치만 너...
재명 벌떡 일어서더니 팔운동을 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멈춰서 돌아보더니.
재명 : 너 내일 아침 아홉시 쯤에 수영장에 올래? 그땐 연습 끝나서 아무도 없거든.
너 와서 내 마지막 핀수영 구경해봐.
옥주 : (고개를 끄덕인다) 응 꼭 갈게.
재명 : (속이 시원한 듯 심호흡을 하고) 가자. 춥다.
옥주 : (끄덕이며) 응.
옥주, 대답은 했는데 금방 일어나지는 않고 재명을 보고 있다.
S#41. 이른 아침 캠퍼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어떤 체육부의 회원들이 달리기를 하며 교정을 돌고 있다.
S#42. 수영장
수영부가 구령도 우렁차게 연습 전의 체조를 하고 있다.
S#43. 여관 방
출발 준비를 마친 용배가 가방을 들고 방을 한번 더 둘러보고 문을 나선다.
S#44. 여관 앞
용배 문을 나선다. 길로 내려서 걸어가려다가 멈춰선다.
저만치 앞에 추운 듯이 동동거리며 서있는 옥주.
용배 어디서 본 듯해서 자세히 보는데... 마침 고개를 돌리던 옥주와 시선이 마주친다.
옥주 잠깐 놀란듯이 보다가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한다.
옥주 : 안녕히 주무셨어요.
용배 : 너는..
옥주 : (겁나지만 그래서 더 씩씩하게) 최재명의 친구인 오옥주라고 합니다.
용배 : 그래. 여긴 웬일이냐. 처녀애가 여관 앞엔 왜 서있어.
옥주 : 아저씨를 기다렸습니다. 두시간이나 기다렸는걸요.
용배 : 두시간?
옥주 : (손을 모아쥐고) 그래서 지금 너무 추워요.
S#45. 근처 찻집
옥주, 뜨거운 물잔을 두손으로 모아쥐고 호호 입김을 불어 식히다가 눈을 들어 보면.
용배가 빤히 보고 있다.
옥주 슬그머니 찻잔을 도로 내려놓고.
용배 : 그래. 두시간씩 기다려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옥주 :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로 하고) 혹시 지금 바로 가셔야 되는 게 아니라면
재명이가 수영하는 거 보고 가시란 말을 하려고 왔습니다.
용배 : (금방 얼굴이 찡그려지는데)
옥주 : (얼른) 오늘 마지막 수영을 한다고 했거든요.
용배 : ...뭘 해?
옥주 : 마지막 수영이요. 재명이는 오늘 두시간만 수영을 하고 이제 다시는 안할거래요.
처음에는 한시간만 할려고 했는데 마지막이니까 두 시간은 괜찮을거라고 하면서..
저도 괜찮을거라고 했어요. 재명인 수영을 너무 좋아하니까..
마지막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을거라구 생각해서..
용배 : (말없이 보고 있는)
옥주 : (반응이 없는 용배 때문에 점점 주눅이 들면서) 저기... 재명이 수영하는 거 디게 멋있어요.
아저씨두 보시면 진짜 멋지다구 생각하실거에요.
저기.. 저는 가끔 재명이가 나보다 수영하는 걸 더 좋아하는 거 같아서 삐질때도 있는데요.
그래도 재명이가 수영하는 거 보면 기분이 좋아요.
왜냐면...음.. 왜냐면.. 재명이는 수영하는 거 무지 좋아하니까...
재명이가 좋아하는 건 저도 좋으니까.. 음.. (말이 막혀서 용배의 눈치를 본다)
용배 : (아무 표정없이 보고 있다가) 학생 이름이 뭐라구 했지?
옥주 : 옥줍니다. 오옥주. 산업디자인학과 2학년입니다.
용배 : 그래..
용배는 더 이상 말이 없이 물잔을 들어 마신다.
옥주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서 불안하고.
S#46. 캠퍼스 중앙로 아침
아놀드 뒷짐을 지고 선 자세로 오고가는 사람들이며 차량을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보는 곳.
용배가 예의 가방을 들고 걸어들어오고 있다.
아놀드 재빨리 다가가서 경례를 붙이며.
아놀드 : 어서 오십시요. 간밤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용배 : 예. 그럭저럭 잘 잤습니다.
아놀드 : 재명이하곤 연락이 되셨는지.. 아니면 제가 찾아볼까요.
용배 : 아니 됐습니다. 바쁘실텐데 일 보세요.
아놀드 : 예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아놀드 경례를 붙여주고..
용배 고개 숙여보이고 몇걸음 가다가 돌아온다.
용배 :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아놀드 : 아 질문입니까.
용배 : 여긴 학생이 수천명은 있다고 들었는데..
아놀드 : 예 칠천명 정도 됩니다. 정확한 숫자는 저도 잘 모릅니다. 휴학에 자퇴가 수시로 발생하니까요.
용배 : 그 수천명 학생 중에 수위양반이 어떻게..
아놀드 : 잠시.. 전 수위가 아니고 캠퍼스 폴리스입니다. 교내경찰이란 뜻이지요.
용배 : 아 예.. 그 경찰 양반이 어떻게 우리 아들 놈을 아는지요.
아놀드 : 재명이요? 아 하하 재명이야 유명하지요.
일단 그 녀석이 고물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다가 저에게 딱지를 끊은 것만 해도 벌써 몇번째냐...
(겨우 스톱을 하고) 죄송합니다. 뭐 그거뿐만 아니고..
재명이가 작년 지역 예선 나갔을 때 저도 응원을 나갔었습니다. 오리발 신구 하는 수영 그거요.
용배 : 핀수영이라고 합디다만.
아놀드 : 좌우간 그 때 캬아... 정말 아까왔습니다. 진짜루 손톱만큼의 차이루 재명이가 이등을 했잖습니까.
재명이가 손톱만 쪼끔 더 길렀어두 (손을 뻗어 텃치하는 시늉을 해가며) 일등을 하는건데.. 햐아...
용배 : 예에.. 그랬군요.
아놀드 : 아니 그때 응원 안 오셨었습니까? 다른 선수들은 가족들이 다 응원을 왔었는데.
S#47. 수영장
가득찬 물... 그 위로 아침 햇살이 일렁이고 잔잔하게 고여있다.
한쪽 끝에 재명이 혼자 서있다. 잠시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 들어 보는 곳.
풀의 반대편 끝에 수영복에 셔츠를 걸친 차림의 옥주가 서있다.
한손에는 스톱워치를 다른 한손에는 호루라기를 들고.
재명 물안경을 내려쓴다. 심호흡을 하고 준비자세...
옥주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재명 물로 뛰어든다.
물 속으로 돌고래처럼 나아가는 재명. 어느 순간 물을 박차고 나오며 수영.. 힘차게 턴을 하고..
옥주 재명을 따라 풀사이드를 걸어가며 시계를 들여다보고...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팔을 뻗어 나아가는 재명.
S#48. 수영장 유리창 밖
유리창으로 보이는 수영장의 재명과 옥주.
용배,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수영을 하는 재명을 따라가듯 고개가 옆으로 움직여가고...
잘 안보이는지 용배, 두손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유리에 코를 박다시피 하고 본다.
S#49. 수영장 내부
힘차게 헤엄쳐온 재명이 팔을 주욱 뻗어 텃치를 한다.
동시에 옥주가 스톱워치를 누른다.
재명 헉헉대며 물속에 얼굴을 담그었다가 나오고.. 안경을 벗고.. 옥주가 내밀어주는 시계를 본다.
우와... 좋아하는 재명. 옥주도 따라서 좋아하고...
재명 악수라도 할 듯 옥주에게 손을 내민다.
옥주 잡아서 흔들어주려는데 재명 그대로 옥주를 끌어당겨버린다.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지는 옥주.
이만치 용배의 시선 정도에서 웃고 장난치는 그 둘이 보인다.
S#50. 수영장 입구
재명이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으며 나온다. 옥주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박교수 : (소리) 최재명.
보면 박교수가 앞에 서있다.
재명 : 어 교수님.
박교수 : ...어때 마지막 수영은 잘했어?
재명 : 예 ....근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박교수 : 좀 전에 아버님을 만났거든. 아버님이 얘길 해주시더라. 너 여기서 마지막 수영하고 있다고.
재명 : 어 아버지가.. 어라. 아버진 그걸 어떻게 아시지.
박교수 :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고. 그냥 아버님이 나하구 이교수님을 만나러 오셨었다는 얘길 해주러 온거야.
재명 : (난처..) 또 찾아가셨어요?
박교수 : 어. 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 어제 하셨던 말씀은 다 취소하신다고.
재명 : .....예??
박교수 : 가만있자. 한가지가 더 있었는데.. 아 그래. 너 무슨 보약 받은 거 있다며?
재명 : (아직 어리둥절해서 보는)
박교수 : 그거 꼬박꼬박 챙겨먹고, 이왕 시합에 나갈거면 이등 말고 일등을 하라고 하시더라.
재명 : (믿기지 않아서 입을 헤 벌리고 보고 있는)
박교수 : 뭘 그렇게 멍청이 보고있어? 아버님 이십분 전 쯤에 가셨어. 잘하면 배웅할 수 있지 않나?
재명 갑자기 들고있던 가방을 등에 메며.
재명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재명 달려간다.
마악 입구에서 나오던 옥주가 바라보았을 때 재명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S#51. 캠퍼스 중앙로
헬멧을 쓴 재명이 탄 오토바이가 달려간다.
아놀드가 엇 하고 보았을 때 오토바이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아놀드 몇걸음 따라 뛰다가 멈춰서 선글라스를 벗고 보더니..
아놀드 : 최재명.. 벌점 2점.
S#52. 도로
오토바이를 탄 재명이 달려오고 있다.
지나쳐가려던 재명, 급브레이크로 선다.
재명이 헬멧의 가리개를 벗으며 보는 곳. 옆에 과일가게가 있다.
S#53. 대전 버스 터미널 앞
재명의 오토바이가 도착한다.
급히 내려선 재명... 오토바이가 쓰러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S#54. 고속버스 승하차장
달려온 재명 버스마다 행선지를 살피며 계속 달린다.
그 중의 한 버스가 막 출발해가고 있다.
재명 그 버스로 달려든다. 움직이는 버스 옆에서 겅중겅중 뛰며 창문 안의 사람들을 확인한다.
그러다 그 중에서 앞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용배를 발견한다.
재명 : (창문을 쾅쾅 치며) 아버지.
용배 돌아보고 놀란다. 창문을 열려고 하고 잘 안 열리고..
재명 버스를 따라 뛰면서 등에 맨 가방을 벗어 그 안의 검은 비닐 봉지를 꺼낸다.
용배 결국 창문을 못 연다.
재명 따라뛰며 봉지를 열어보인다. 귤이 가득 들어있다.
용배 창문 안에서 보고... 웃음이 피어오르더니 끄덕인다.
재명 결국 멈춘다.
버스는 저만치 속도를 높히면서 가고 ...
헉헉대며 가는 버스를 보고 선 재명.
버스가 방향을 바꾸면서 유리창 안의 용배가 보인다.
용배는 재명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재명 헉헉 보고 있다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다.
그러다 고개를 드는 재명. 씨익 웃으며 팔소매로 눈물을 스윽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