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18 셋째주말 법문.
급수난두 박소단 하면 절수뢰파 자승두 하며 나~
맥연승단 란회피 하면 직득통신 혈병류 니라 나~
물살 빠른 여울에 작은 배를 대면
간절히 굳게 줄을 잡아야 하며
문득 줄이 끊어지고 회피하기 어렵게 되면
곧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것이니라.
고봉화상이 선요에 대중에게 보이기를
만약 이 한 가지의 기특한 일을 논할 것 같으면,
사람사람이 본래 갖추었으며 개개인이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주먹을 쥐고 손바닥을 펴는 것과 같으니라.
온전히 조그만 힘도 쓰지 아니하여도 다만 심원이 어지럽고 의마가 혼란해서[심원은 8식, 의마는 7식] 삼독무명을 멋대로 행하며 망령되게 사람이니 나니하는 상에 집착하는 것은 물을 얼음에 뿌려 더욱 두터워져서 자기의 신령한 빛을 막아서 결단코 나타날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에 생철로 만들어진 놈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면 역시 가벼워서는 아니되니라.
곧, 모름지기 큰 뜻을 발하고 큰 원을 세워서 망상 번뇌를 끊어 심원과 의마를 죽여 제거하기를 물살 빠른 여울에 배를 정박하는 것과 같이 두렵거나 얻고 잃음과 사람이니 나니를 따져 돌아보지 않고, 잠자고 밥먹는 것을 잊으며, 생각과 걱정을 끊어서 밤낮으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속하며 생각과 생각이 서로 이어져서 다리를 굳게 고정하고 어금니를 굳게 물고 밧줄[화두]을 굳게 잡아서 다시는 조금도 어긋남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너의 머리를 취하고, 너의 손발을 끊으며, 심장과 간장을 깎아서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진실로 버려서는 않되느니 이 속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조금 공부할 기미가 있게 될 것이니라.
슬프다! 말법 시대에 성인이 계셨던 당시와 멀어져서 속된 무리들이 많아 마침내 깨달음의 문이 있음을 믿지 않고 다만 이쪽에서 천착(궁리)하며 저쪽에서 계교하니 바로 넉넉히 계교하여 이룸을 얻고 천착하여 성취함을 얻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눈빛이 떨어질 때(죽음)도 이로써 힘이 되겠는가?
만약에 이로써 힘이 된다면 세존께서 설산에서 6년을 고행하시고,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을 면벽하며, 장경 스님[설봉의존의 제자]이 일곱 개의 방석을 떨어뜨리며, 향림스님[운문문언의 제자]이 40년에야 바야흐로 한 덩어리를 만들었으며, 조주 스님[남전 스님의 제자]이 30년 동안 잡되게 마음을 쓰지 않았으니, 어찌 모름지기 이 수많은 고생을 찾아서 했겠는가?
다시 한 무리 들이 있어서 십년 이십년 되도록 공부를 하되 일찍이 그 들어가는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다만 그가 숙세에 선근이 없어서 뜻이 견고하지 못하고 반신반의하며 혹 일어나고 혹 넘어져서[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하다 말다 함] 희롱하여 가고 옴에 세속의 물정은 점점 익어가고 도의 생각은 점점 생소해져 종일토록 한 때라도 선정을 잡아서 한 덩어리로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니라. 이와 같은 자는 곧 넉넉히 희롱해서 미륵 부처가 하생하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만약 참되고 순수하게 수행하는 납자라면 멋대로 행동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 일언반구라도 들어서 다시는 헤아리고 논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이렇게 믿으며 주재를 지어 선정을 얻어서 외롭게 형형하며 가파르게 성성적적하며, 붉게 옷 벗고, 깨끗하게 물 뿌린 듯하여 다시 위망과 득실을 묻지 아니하고, 이렇게 정진해 가면 문득 줄이 끊어지고 넘어지게 될 것이며, 끊어진 뒤에 다시 살아나서[백척간두진일보, 대사각활] 본지풍광을 볼 것이거늘 어느 곳에서 다시 부처를 찾을 것인가? 또 한 게송을 가지고 대중에게 들어 보이겠노라. (위)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다만 성성하게 뜻을 붙여서 의심해 가는 것이 귀하니
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끊어지는 곳에 의심이 도달하면
금까마귀가 한밤중 하늘에 사무쳐서 날아갈 것이다.
만약 이 일에 수행하는 극칙을 다해 마치고자 한다면 마치 허공 속에 꽃을 재배하며 물속에 달을 건지는 것과 같이 하라.
곧 네가 손을 내릴 곳이 없으며 네가 마음을 쓸 곳이 없으니 가끔 이런 경계가 나타남을 만나서는 열에 다섯 상이 물러나는 북을 치니(일마침) 정히 이것이 집에 이르는 소식임을 특히 알지못한 것이니라.
만약 곧 처음과 같은 이라면 문득 손을 내릴 수 없는 곳과 마음을 쓸 수 없는 때에 나아가서 마치 관우가 백만 대군 가운데서 살고 죽음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곧 안량을 취하는 것[관우가 조조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오나라 백만 대군을 팔마단기로 뚫고 들어가 원소의 부하 장수인 안량의 목을 베어온 일]과 같이 하여야 하니라.
진실로 이와 같은 재주와 지략과 이와 같은 사납고 영리함이 있다면 반드시 손가락을 튕기는 사이에 功(애씀)을 멈추고 짧은 시간에 성인을 이룰 것이니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넉넉히 그대가 참선해서 미륵 부처가 세상에 내려오는 때가 되더라도 다만 이는 장상좌[오래 앉아만 있는이]일 뿐이니라.
죽을 날이 금방 이르니 대중은 성실히 깨어 있어야 하느니라.
얼굴을 보고 근기에 맞게 제접하고 배우는 납자는 선지식의 얼굴을 보고 간파해야 하나니 문득 눈동자가 부딪쳐 눈이 멀게 되면 무른 진흙 속에 가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신안(국사)가 하루는 설봉선사를 참배하니, 설봉선사가 그 인연이 익어졌음을 알고 갑자기 일어나서 멱살을 잡고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이냐?"하자 신안국사가 확연히 깨닫으나
또한 깨달았다는 마음까지도 잊어버려서 다만 손을 들고 흔들 뿐이었다.
설봉선사가 말하기를 "네가 도리를 짓느냐?"
신안 국사가말하기를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
설봉이 이에 어루만져 인가하셨다 함~
영운 지근선사가 위산 대원 선사의 아래에 있을때 복숭아꽃을 보고서 도를 깨닫고 게송으로 말하기를
30년 동안 오면서 검을 찾는 객이
몇 차례나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돋아났는가
한번 복승아 꽃을 봄으로부터
바로 지금에 이르러서 다시는 의심이 없도다.
그 사실을 위산선사에게 이르니 위산선사가 말하기를,
"인연으로부터 깨달아 사무쳤으니 영원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잘 보호하고 간직하라."하였다 함~
앙산스님이 하루는 향엄스님을 보고 이에 묻기를
"요즘 사형의 견처가 어떠하오?"하니
향엄이 이르기를 "나의 견처에 의거할진데 한 물건도 감정에 해당함이 없소."하자
앙산스님이 말하기를 "그대의 견해가 오히려 경계가 있구려."하니 향엄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다만 이와 같거니와 사형은 또 어떠하오?"하자
앙산스님이 말하기를 "그대가 어찌 한 법도 감정에 해당함이 없는 것을 능히 아는 것이 없으랴?"하였다 함~
동산 양개화상이 운암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옵니까?” 하니
운암화상이 양구하고서 말하기를 “다만 이것이니라.”하자
양개화상이 머뭇거리며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하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 진대는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하니
양개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는데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화상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으로 말하기를
저것이 지금 곧 나이나
나는 지금 곧 저것이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함에 계합하리라.
동산 양개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세간에 어떤 물건이 가장 괴로운가?”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하자 동산선사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이 가사를 입고서 큰 일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괴로운 것이니라.”하였다 함~
거금정시아 이니 아금불시거 이니라 나~
응수심마회 하면 방득계여여 이니라 나~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