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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기 2008년 9월호 입니다.
-<목 차>-
p.06 축 시 / 바다, 그 영원한 희망 --<박정선>
p.07 휘 호 / 浩浩凔凔 海人之道 --<허문옥>
p.08 발행인 메시지 / 읽혀지는 잡지, 기다려지는 ‘海技’로 --<민홍기>
p.10 등대가 있는 풍경 / 행해자의 뱃길을 밝히는 사람들 --<김동규>
p.14「海技」500호특집 / 단체장 축하 메시지 --<정종환外>
p.26「海技」500호특집 / 애독자들에게 듣는다 --<심호섭外>
p.32 특집-「월간해기」의 편집 / 육지와 바다를 잇는 ‘소통의 광장’ --<김동규>
p.36 특집-「월간해기」의 변천 / ‘海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김동규>
p.42 나의 바다와 문학⑬ / 나의 문학수련장인 바다 --<천금성>
p.46 특별기고 / 해운특성화 ‘로스쿨’제도에 대하여 --<김인현>
p.50 공모안내 / 해양부-해사안전 정책 제안 --<편집부>
p.51 해사신간 /「독도견문록」.「항해술의 발달」 --<편집부>
p.52 세미나 주제발표 / 서해안 개발에 따른 안전운항과 대책(下) --<정대율>
p.64 독자칼럼 / 백조의 일생 --<박영관>
p.66 독자수상 / 영화각본을 쓰는 재미(Ⅵ) --<최석영>
p.71 선교회소식 / 부산국제선원센터 자원봉사자 모집 --<편집부>
☆ 해 기 문 원☆
p.72 잊을 수 없는 ‘DragonAce No.1’ --<권영민>
p.73 사랑하는 아내에게 / (편지) --<배종국>
p.74 부활을 꿈꾸는 바다 / (時) --<김다솔>
p.76 뉴스리뷰 / 해양뉴스, 해기단신 --<편집부>
p.81,82,75 생활교양 / 법률상담, 세무칼럼, 새책소식
축시
바다 그 영원한 희망!
- 『월간 해기』 통권 제500호 발간에 부쳐 -
박 정 선
(시인․소설가)
묵묵히 바다는 미래를 잉태하고
사방에서 불어온 바람과 바람처럼
끝없는 세계를 향해 바다로 가는 사람들
바다를 품어 안은 깊고 넓은 사람들
물결을 박차고 날아오른 물수리처럼
한눈에 세계를 담아 꿈을 키운 사람들
반세기 푸른 생명 쿵쿵 뛰는 대동맥
어머니의 품에서 꿈꾸는 아이들처럼
조국의 미래를 위해 바다를 지킨 사람들
태초부터 역사는 바다에서 시작되고
오늘도 장엄하게 솟아오른 아침 해
또다시 오십년을 향해 응시하는 푸른 물결
※약력 : 시인, 소설가, 역사 집필가로 부산에서 활동, 심훈문학상 수상,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남일보 문학상 수상, 시집 10여 권, 장편서사시 <독도는 말한다>외, 소설집 변명, 표류 외, 장편 <수남이> 외 에세이 등 다수
휘호
浩浩凔凔
海人之道
허 문 옥
(서화가)
첫째, 월간 해기와 모든 해인(海人)의 앞날이 호호 창창 하게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둘째, 물이 한없이 넓은 모양을 호호(浩浩) 탕탕(蕩蕩) 이라고 하는데, 탕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으므로 끝없이 넓고 푸름을 나타내는 창()을 썼습니다.
셋째, 노자는 최상의 선(善)을 上善若水라 하였는데 호호 창창함에 이르면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道의 길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해인지도라 하였습니다. 즉 호호 창창 함이 해인의 도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
●서울미술초대작가전 출품(2007. 예술의전당)
●부산서예대전 초대작가
●현. 광일문화센터 서화강사
●STX포스 최규준 선장 부인
발행인의 메시지
읽혀지는 잡지, 기다려지는 海技로의 혁신을!
- 『月刊 海技』통권 500호
발간 위업을 경축하며
민 홍 기
(본 협회 28대 회장, 『월간해기』 발행인)
회원 및 해양가족 여러분! 그리고 본 협회 기관지 『월간 해기』를 애독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처서와 백로가 지나 가을의 초입이라 느끼는 데도 여전히 늦더위를 염려해야 하는 환절기입니다. 우선 해기가족 여러분들의 안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희 한국해기사협회가 창립, 발족한 지 어언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1954년 8월 그 뜨거운 염천 속에서 해운 선각자들의 예지와 중의에 의해 창설된 협회는, 지난 2004년에 이미 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지난달에는 창립 54주년을 맞아, 협회 임원진과 대의원들을 초청하여 조촐한 자축행사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달에는 본 협회 기관지인『월간 해기』가 창간된 지 만 42년째이자, 통권 500호를 맞이합니다. 『월간 해기』는 40여 년 전에 이미 온 국민에게 해양사상을 고취하여 해양문화 창달에 힘쓰고, 해양인구의 저변확대로 선진해운의 기틀을 다지며 협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회원들에게 정신문화적 양식을 제공하기 위한 취지로 창간된 이래 이 정신을 구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월간 해기』의 지령(紙齡) 500호 발간이란 위업은 국내 출판계를 통틀어서도 그다지 흔치 않은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간 해기』는 창간 이후 40여 성상을 지나는 동안 온갖 애환과 부침의 세월을 이겨내면서 오늘까지 단 한 번의 결간도 없이 그 제호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연륜을 축적해 왔습니다.
『월간 해기』는 창간 당시부터 한동안 국내 해운계 유일의 학술지로서, 해양정보 매체로서, 회원간 또는 육해상간 대화의 광장으로서 우리 해기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선원사회의 입과 귀와 눈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 해운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해운 및 선원정책 개발과 연구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함으로써 해기사들과 해기가족에게는 크나큰 위안이자 자긍심을 지켜주는 소중한 길벗이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 동안 해기작업에 기여한 역대 발행인, 편집인, 그리고 수많은 편집실무자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해기사 및 독자 여러분!
『월간 해기』는 그간 많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쇄신과 변화의 요구를 받아 왔습니다. 따라서 저는 『월간 해기』의 혁신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타성에 젖은 구관을 벗고, 대중화․현대화를 적극 연구, 검토하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 구체적인 혁신계획을 세워 내년부터는 새롭게 변모한 기관지의 모습을 선보이도록 할 생각입니다. 지면과 지질을 개선하고 융통성있게 운용하여 가독성과 친근감을 제고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그리하여『월간 해기』가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잡지, 기다려지는 잡지가 되도록 제작할 것이며 진정으로 사랑받는 매체로 육성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해기사와 독자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며, 나아가『월간 해기』의 발전을 위해 기탄없는 조언과 모니터가 되어주시길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이 시각에도 항해에 여념이 없으신 해기사들의 안전항해와 해기가족 여러분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등대가 있는 풍경
『월간 해기』통권 500호 특집
영도항로표지관리소를 찾아서
항해자의 뱃길을 밝히는 사람들
등대! 말만 들어도 낭만과 여유를 생각는 유정한 단어다. 말 속에 사람이 사는 이유가 담겨 있는 다의적(多義的)인 말이어서 더 매력 있다. 더욱이 바다와 바다, 항구와 항구를 오가는 선박 그리고 그 배를 부리는 해기사들에게 등대의 의미는 사뭇 남다르다.
등대는 대체로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등대의 처소는 다분히 청정하고 자연적이다. 뭍에서 보면 외딴 곳이기 때문이다. 층암절벽 낭떠러지 위에 있거나, 황량한 바위섬 또는 외떨어진 곶(串,Cape)이나 산정(山頂)에 위치한다. 항해하는 배에서 잘 보이는 곳이 바로 등대의 장소다.
부산의 관문이자, 부산항의 상징, 영도 등대를 가고 있다. 태종대 끝단에 있는 영도 등대는 그나마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등대 가운데 하나이다. 자동차나 버스에서 내려 태종대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아름드리 노송들이 수림의 운치를 한껏 돋운다. 등대로 가는 길인 순환 일주로를 걸으면 울창한 나무 숲에 지친 심신의 피로도 시나브로 풀어진다. 삶이 고달프고 칙칙할 때면 등대가 있는 풍경 속으로, 고적한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볼 일이다.
삽십여 분 적당하게 걷기운동이 끝나자 고개가 나타나면 바로 딴 세상인듯 드넓은 창해(蒼海)가 펼쳐진다. 한여름에도 몸을 날릴 듯한 시원한 바람, 솔바람, 바닷바람, 산바람... 일망무제의 코발트빛 바다와 짙은 녹음의 나무숲, 빗소리같은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선경을 자아낸다. 등대로 가는 길은 수많은 계단으로 연결된다. 재작년 영도등대 점등 100년(최초점등일:1906년 12월)을 즈음해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미화작업을 한 결과다. 바다헌장 기념비가 들어서고, 등탑이 신설되고 아담한 공연장, 해양갤러리(SEA & See)까지 들어섰다. 등대공간일대는 바다와 예술, 조망, 쉼터 등이 갖춰진 근사한 해양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근대적 이미지에 붙박혀 있던 등대가 21세기 해양문화 공간으로,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드디어 등대에 도착했다. 세련미 넘치는 현대식 등대 건물을 뒤로 새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다는 파랑이 제법 일고 있고, 수평선이 연무(煙霧)에 덮인 채 멀리 누워 있다. 영도항로표지관리소(영도구 동삼동 1054). 낯선 용어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이채롭다. 항로표지관리소가 무슨 말인가. 등대간판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항로는 말 그대로 뱃길이다. 표지는 표시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배가 다니는 길을 선박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빛으로 소리로 알려주거나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항로표지관리소이다. 즉 등댓불로 또는 음향으로 뱃길을 표시하고 안내하는 일이 등대의 역할이며, 등대의 업무를 보는 사람을 일컬어 항로표지관리원이라 한다. 항로표지관리원은 뱃길을 안내하는 일 외에도 등대와 모든 기기 그리고 시설물과, 인근 무인 등대의 등불이나 등표, 등부표 등의 제반 사항들을 통합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등대지기라는 용어는 점잖지 못하고 천시의 의미가 있다 해서 1988년에 이미 용어를 순화하면서 공식 용어로서는 사라졌다.
미리 약속된 등대사무소에 들어서니 젊은 등대원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41세의 김흥수(金興洙) 영도 항로표지관리소장(사진 위-오른쪽 사람)이다. 해풍에 그을리고 세파에 주름진 만년의 등대소장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젊은 소장을 만나니 되레 낯설다. 22세에 항로표지계 공직에 입문하여 등대원으로 출발한 지 20년도 안 되어 소장이 되었으니 빨라도 한참 빠른 셈이다. 강원도 평창 봉평 출신의 어린 소년이 부모를 따라 부산에 이주하여 부산사람이 되었지만, 말소리나 억양 어디에도 부산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386세대 등대원이다.
영도 등대는 전국의 어느 유인 등대 가운데서도 교통이 편리하고 근무나 생활 환경이 양호한 편이다. 까닭에 직원 4명이 두 명씩 2개조 격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직원은 김 소장을 비롯, 서정일, 김대현, 송주일 씨 네 사람 중에 오늘은 김 소장과 서정일 씨가 근무하고 있다. 영도등대는 오륙도 등대, 가덕도 등대와 함께 부산해양항만청 해상교통시설과 소속 3개 유인등대 중 하나로, 등대기지국 역할을 한다.
등대원의 일상이 궁금했다. 부산항을 입출항하는 선박의 뱃길을 밝혀주는 고전적인 일이야 이제 기계가 자동으로 다하는 일이라 그렇다치고 기타 일과가 무척 궁금했다. 등대의 일과는 무엇보다도 본연의 등댓불이 제대로 밝혀져 깜박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주야간에 두 가지 중요한 관측 업무가 있습니다. 야간에는 등대 주변의 무인표지(등)에 이상이 없는지를 살피는 일이고, 주간에는 해양기상 관측업무와 해양조사업무가 있지요. 해양기상관측은 하루 다섯 번 풍향, 풍속, 파고, 시정을 관측하여, 해운조합 운항관리실과 기상청 등 해상안전을 위해 기상 데이터가 필요한 곳에 통보하고, SMS(문자서비스시스템)를 신청한 개인에게까지 데이터가 자동 전송된다는 것이다. 해양조사는 해수온도, 염분도, 비중 등을 하루에 한번(오전 9시) 실측, 데이터를 모아 두었다가 매달 국립해양조사원과 남해해양조사사무소에 통보하는 일이다.
그러나 영도 등대에는 근년 부대업무가 폭증했다. 2년 전 복합해양문화공간이 속속 들어서면서 무척 바빠졌다. 모두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라 등대 직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단다. 항로표지협회 상주 직원이 있어도 많은 문화공간을 관리하는 데 애로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영도 등대와 협회 직원 몇 명이 직접 관리하는 문화공간이 무려 7개나 된다. 갤러리(SEA&See), 자연사전시실, 정보이용실, 해양도서실, 해양영상관, 전망대, 세미나실 등. 그러니까 도시의 다른 문화시설처럼 자료나 프로그램의 업데이트가 민첩하지 못하다. 사무실 밖을 나가려 밀폐문을 여니 세찬 바람이 불었다. 난간에 서니 수십 미터 절벽이다. 바다가 무섭게 내려다 보인다. 허연 백파(白波)가 희뜩거린다. 등대 건물을 몰아붙이는 풍력이 거세게 피부를 때린다. 이런 날이면 바람이 어느 정도일까? 아주 평범한 날입니다. 김 소장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현재를 기상관측 하면 (풍향) 북동풍, (풍속) 12m/s, (파고) 2m, (시정) 20km 로 목측이 된단다.
영도 등대의 상징, 등탑에 올랐다. 나선형의 등탑 안에는 교육용, 전시용 선박사진들이 깔끔하게 비치돼 있다. 영도 등대의 등질(燈質)은 섬백광 18초에 3섬광 광달거리 24마일(44㎞)입니다. 이것이 해도에는 W.Fl(3).18s 24m라 표기돼 있는 것이다. 날 맑을 때 불빛이 24마일 즉, 40km까지 비추니 대마도에서도 영도등댓불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등탑에서 등명기를 조작하며, 조목조목 안내해 주는 김 소장의 모습과 손맵시에서 몸에 밴 직업근성을 읽게 된다.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인 소망이나 꿈이 있다면? 이제 한 평생 등대 인생을 사는 거죠, 다른 델 눈길 주겠어요. 공직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항로표지 분야에선 일인자가 되고, 선후배 등대원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김 소장은 역시 젊었다. 전후세대인 그에게는 눈물나는 등대원의 애환과 낙도 등대원의 고립무원의 생활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현재와 해양한국의 미래만 있을 뿐이다. 하오의 직사광선이 조금씩 드러눕고 있다. 어느 새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등대는 곧 해가 사라지는 대로 불을 밝힐 것이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눈앞이 보이지 않는 농무가 내려와도 불은 밝혀야 한다.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등댓불은 켜져야 한다. 항로를 오가는 배가 있든 없든 등댓불은 깜박여야 한다. 우직한 황소처럼, 쉬지 않고 가야 한다. 그 등대를 닮고 싶다. 등대의 빛이 되고 싶다. 아니 등대가 되고 빛이 되고 싶다. 빛으로 소리로 전파로 세상을 밝히고 길을 내주는 사람,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등대지기로 살고 싶다.
■글 / 김동규(편집장․수필가)
축사
정 종 환
(국토해양부 장관)
바다는 그 깊이와 넓이만큼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오랜 세월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해양민족으로서 바다를 통해 번영의 활로를 찾아왔습니다. 해상왕 장보고로부터 해방 후 국가재건과 오늘날의 경제 고도성장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국제교역의 장이요, 든든한 성장 기반이었습니다.
해양강국을 향한 지정학적․역사적 잠재력을 가진 우리나라는 이제 조선업 세계 1위, 부산항 컨테이너 처리 세계 5위, 선박보유량 세계 6위라는 자랑스러운 기록들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루기까지 해기사 여러분의 해양강국 실현을 위한 열정이 큰 기여를 해왔습니다.
최근에 와서 바다는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해양에너지와 해양자원, 해양바이오, 관광레저 등 신(新)성장 동력 창출의 가능성에 세계의 많은 선진국이나 해양강국들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이들 분야의 개척과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양의 개척자 해기사 여러분께서도 해양강국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보여주셨던 열정과 노력을 앞으로도 이어가주시기 바라며, 창의적 발상으로 해운산업 선진화에도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에서도 여러분을 아낌없이 응원하고 지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상호친목과 소통, 나눔과 교류를 위해 제작되고 있는 「월간 해기」(月刊 海技)가 500호 발간이라는 경사를 맞았습니다. 「월간 해기」 500호는 지난 세월 여러분이 흘린 땀과 노고, 열정의 산증인이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해방과 전쟁 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러 해운 선각자들의 선견지명으로 지난 1954년 협회를 창립하여 회원들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 기술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해기사협회에도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海技士들의 아고라… 해양개척 선봉
박 현 규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월간 해기의 통권 5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해기지(海技誌)가 1966년 창간되어 지령 500호를 기록하기까지 40여년간 열과 성으로 꾸준히 펴내신 한국해기사협회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4번이나 거듭하면서도 결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제작자와 독자가 함께 이루어낸 빛나는 성과요 의미있는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기(海技)는 바다와 배를 다루는 기술입니다. 드넓은 바다를 보면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이고 길도 막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해양을 개척할 때 인간의 한계가 극복되고 무한한 가능성도 열립니다.
지금까지 해기지는 해기사들의 벗이 되어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그들의 활동상을 소개하고 애환을 담고 또 진로를 제시하였습니다. 앞으로도 해기사들의 곁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며 사기를 높여주는 해기지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해기사들의 아고라(廣場)가 되어, 그곳에서 서로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며 해양개척의 꿈을 키워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기지는 통신시설이 원활치 못하던 시절에 선원과 가족들을 이어주던 가교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 일을 계속 수행해 주셨으면 하며, 가장을 바다로 보낸 해기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도 잘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500권의 해기지는 해기사들의 현장일지요, 실록이요, 40년사입니다. 그 속에는 해기사들의 자화상이 보이고 발자취가 보이고 체취도 맡을 수 있어 반갑습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함께 해기사들의 땀 냄새가 배어납니다. 그들이 지금 어느 바다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도 알려 줍니다. 아무쪼록 해기사들의 마음의 고향이요, 기댈 언덕이요, 해양개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해기지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나라의 해운업은 더욱 발전할 것이요 우리의 후배들이 이곳에서 꿈을 실현해 나아갈 것입니다. 요즘 선원이 부족하여 해운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해기지가 해양사상 고취와 해운홍보에도 힘을 써서 젊은이들이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로 진출하는 해기인력 양성에도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월간 해기의 통권 500호 발간을 축하하오며 불혹의 나이 40세를 넘긴 중년답게 중후하고 내실있는 잡지를 계속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500고지에 오른 해기지가 1,000고지 2,000고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여 해운발전과 해기문화 창달에 좋은 결실이 있기를 진정 희망합니다.
해기인들의 동반자, 해운입국의 견인차
강 종 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그동안 우리나라 해기사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해 온 월간 [해기]지의 500호 발간을 모든 해운인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해기]지를 발간하는 한국해기사협회는 우리나라 해운력이 척박했던 한 때인 1954년 설립되어 한국 해운의 발전을 견인하였고, 이와 함께 1966년 8월 지령 1호를 낸 [해기]는 해운산업 발전과 해기인들의 영욕의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왔습니다. 지령 500호를 발간하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변함없이 해운인의 곁을 지켜온 [해기] 발행인과 편집진의 그간의 노고에 치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우리 해기인들은 국적선이 없던 시절부터 외국적선에 진출하여 국가경제발전의 핵심요소인 알토란 같은 외화획득과 선진 해운 노하우를 이땅에 전승하여 무역입국․해운입국의 기틀을 다져왔습니다. 또한 한국해기인들의 우수한 기량을 바탕으로 국위선양을 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해기인들의 각고의 노력은 대한민국의 해운․항만․물류산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해기인들의 노력은 연간 2,500억 달러의 외화획득, 선대규모 세계 6위를 자랑하는 국적선대의 안전운항을 총 책임지고 연간 8억 톤의 수출입화물을 운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바다는 교통운송로로뿐만 아니라 무한한 자원 획득과 안보차원, 미래 삶의 터전으로서 소중히 하여야 할, 꼭 지켜야 할 곳입니다. 여기에는 해기인들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발전과 기술혁신, 그리고 사고방식의 변화는 지속적인 해기인의 양성과 활동에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의 바다 경시풍조, 승선생활의 애로, 저임금의 개발도상국가 선원의 인해전술식 진출, 편안함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정서와 겹쳐 우수 해기인력 확보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선원인력 복지향상, 근무여건 개선, 사회에서의 적절한 대우,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경제의 중요한 축을 돌리고 있는 전문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켜 새로운 해운입국을 통한 선진국으로의 진입과 국가발전의 기치를 높이 들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지금도 5대양의 험난한 풍랑위에서 피와 땀과 정열을 바쳐 일하고 있는 4만여 해기인들과 육상에서 해운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모든 해운인들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지난 500호를 발간하는 동안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해기]지는 해기인들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고, 또 숙원문제도 해결하고 발전을 리드해가는 견인차가 되어줄 것을 기대합니다. 거듭 「해기」지의 지령 500호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한국해운의 발자취요 해기전승의 파수꾼
이 진 방
(한국선주협회 회장)
우리나라 해운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해운관련 정기간행물 「월간 해기」의 통권 500호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해운산업 발전과 「월간 해기」의 제작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신 한국해기사협회 관계자들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해기사협회가 지난 1966년 해기사들의 권익증진과 대외홍보 등을 위해 첫 호를 발행한 이후 42년 가까이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월 정기적으로 발행되어 온 「월간 해기」지는 한국해운의 발자취이자 해기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월간 해기」지는 협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로서 한계를 뛰어 넘어 해상에서 근무하는 해기사 뿐만 아니라 선원들이 가장 즐겨 찾는 애독서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해기」지는 내용에 있어서도 해기와 관련된 전문지식과 해운뉴스, 그리고 해사문화와 사회소식 등을 적절히 배합한 탄탄한 편집으로 해운업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 월간지로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 1만부 가량을 발간하여 세계 각국의 항만에 기항하는 한국상선대와 외국상선대에 승선중인 우리 해기사들에게 배포되는 「해기」지는 발행부수 측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늘 신선한 정보와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해기사들의 동정을 세밀하게 전파하는 「해기」지는 정보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해기사를 비롯한 해상직원들과 해운회사간에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는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해상에서의 선박 안전운항을 위한 각종 제안들을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해기사들의 자질향상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해운홍보와 함께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하여 왔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간 한국해운의 발전과 해기전승에 크게 기여해 온 「해기」지의 역할에 대해 무한한 박수와 성원을 보냅니다. 이제 500호의 위업을 달성한 「해기」지는 앞으로도 우리나라 해사문화를 선도하고, 해기사를 포함한 해상직원과 해운기업간의 화합과 결속을 이끌어 내는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다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해기」지의 500호 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우리 해운산업이 국민적 지지기반 위에서 다시 한번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는데 「해기」지가 앞장서 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해양가족의 소중한 눈과 귀의 역할을
이 귀 복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우리나라 해기사의 권익증진과 대외홍보를 위하여 42여 년간 한 번도 결간 없이 발행된 월간 [海技]지의 통권 5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아울러 통권 500호가 발행되기까지 해운산업과 해양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맡은 바 사명을 다 하여온 한국해기사협회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해기사로서 항구에 입항하여 우편물이 전달되면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가족 편지이고, 그 다음 챙기는 것이 [海技]지일 정도로 월간 [海技]지는 동문들의 소식과 입항한 항구의 정보, 해운뉴스, 해기논문 등이 게재되어 있어서 해기사들에게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주었고 특히 승선 생활 중인 이들에게는 주변 세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눈과 귀의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월간 [海技]지가 통권 500호 발행을 맞았다는 것은 벌써 나이가 반백년이 되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해기사들도 [海技]지의 역사 속에 많은 변화를 맞았습니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해기사들은 황금기를 거쳤고, 그 후 필리핀, 중국 등 제3국의 해기사들이 세계 해운시장에 대거 진출하고,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게 되어 한국 해기사들의 대우는 육상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보다 점점 열악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 현실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선주들은 임금이 싼 제3국의 해기사들보다는 능력 있고, 성실한 우리나라 해기사들을 확보해야 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어 해기사들의 대우도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월간 [海技]지가 500호 발행을 맞이하여 새롭게 변신하는 계기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해기사들이 필요로 하는 소식들을 위주로 다양한 내용들로 구성하여 원고의 양도 더욱 많이 늘리고, 인터넷을 통한 [海技]지 전자회보 발행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海技]지가 진정 새롭게 변신하기 위해서는 해기사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할 것인 만큼 해기사들의 관심과 [海技]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 같이 [海技]지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그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하게 월간 [海技]지를 발행해온 한국해기사협회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다시 한 번 월간 [海技]지의 통권 500호 발행을 축하합니다.
내항선원 안정화의 동반자가 되길 기원
정 유 섭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월간 해기」의 통권 5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66년 창간 이래 4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해기사들의 권익신장, 해양사상 고취 및 해양문학의 발전, 그리고 일반사회의 소식 등을 전하는 전문 매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에 대해 연안해운을 대표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일찍이 해기사는 전 세계적으로 해양개척의 선구자로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역사의 주역으로서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해기사도 해운시장이 열악한 60년대부터 해외로 진출하여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왔으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해운산업이 함께 급성장 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해상운송을 통한 물자수송은 날로 증가하고 있어 한국해양대학교와 목포해양대학교, 부산과 인천해사고등학교,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단기과정 등에서 1년에 1,400여명의 해기사가 양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안해운의 선원 부족난은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조합은 올해를 내항선원 수급 안정을 위한 원년으로 삼고 <내항상선 수급 안정화 대책>을 수립하여 내항선원의 안정적 공급 기반 마련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항선원의 적극적인 양성 및 원활한 수급을 위해 한국해양수산연수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였으며, 내항해운에 적합한 해기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개설, 교육생 장학금 지원, 교육생과 업체간의 취업 설명회 개최, 선원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복지제도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합에서는 현재 조합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사항들이 「월간 해기」를 통해 해기사들에게 널리 알려져 내항선원의 안정화를 비롯하여 연안해운과 해기사가 함께 발전하는 동반자적인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월간 해기」 통권 500회 발간을 축하드리며, 한국해기사협회와 해기사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月刊 海技』의 誌齡 500號를 祝賀하며
김 경 석
(한국해양수산연수원장(대행))
2만여 우리나라 선원들을 비롯한 선원가족과 관련 단체에 매월 9,800부를 발행하고 있는 우리 『海技』가 닻을 올린 지가 지금부터 42년 전인 1966년, 이제 지령(誌齡) 500호를 맞게 되었다. 흔들리는 船上에서도 읽던 글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시절, 읽혀지던 많은 잡지들이 사라지고 생겨났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던 애독지가 바로 『海技』였다.
『海技』는 지금까지 해기사들의 길잡이와 친구의 몫을 훌륭하게 하여 왔다. 『海技』는 우리나라 해기사들의 해외진출의 역사가 일천(日淺)하던 때에 현장에서 취득한 기술을 서로 공유할 수 있게 하였고, 신기술과 국제협약에 따른 새로운 규제를 빠짐없이 소개해 왔다. 특히, 선원들뿐만 아니라 선원가족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여, 긴 외로움이 쌓일 때 마다 청량제(淸凉劑)의 역할도 하였다.
짐작하건대 해기사 치고 『海技』를 안본 사람이 없을 것이며, 그로 인하여 크고 작게 위로와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나라 해운인력의 양성과 성장의 견인차 역할에 대한 『海技』의 몫은 두고두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海技』가 지령 500호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선원들의 벗, 해기사의 길잡이, 해운기술의 전파자로서 남긴 공헌이 지대함을 부인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이처럼 잘 이끌어 온 『海技』관련자들의 노고를 충심으로 치하하고 싶다.
저는 승선 중에는 『海技』의 애독자로, 현 직장에 근무 중에는 투고자의 입장이 되기도 하면서, 이제 『海技』의 팬이 된 사람이다. 부족하지만 이러한 자격으로 『海技』에 바라는 희망사항이 있다. 그 하나는 선원직이 기피직종으로 되어버린 현 시점에서 감소하고 있는 우리나라 해기사와 증가일로에 있는 외국인 해기사의 역할 분담과 우리나라 해기사의 비전(vision)을 재설정하는 논의의 중심에 우리 『海技』가 서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작은 하나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더 나은 정보전달방법을 마련하여 『海技』의 배달 기간과 수취 장소의 제약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海技』가 걸어온 지금까지의 발자취처럼, 앞으로도 계속하여 좋은 잡지를 내어 500호에서 1,000호로, 1,000호에서 2,000호로 이어지는 長久를 빈다.
선원권익․사회적 지위 향상의 견인차
방 동 식
(전국해상노련 위원장)
친애하는 해기사 동지 여러분! 해방 이후 혼란속에서 해기사의 권익보호와 친목도모를 위하여 창설한 (사)한국 해기사협회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우리나라 해운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월간해기는 해기사협회의 목소리가 되어 한국 해운의 중심단체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하였으며, 해기의 통권 500호 발간은 해기사 뿐 아니라 10만 선원 모두에게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10만 선원을 대표하여 월간 해기의 통권 5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해양개척의 역사 속에서 세계 6위의 해운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은 해기전승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해기사의 권익증진과 복지증진, 기술향상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해기사 협회의 업적이며,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해기인력 자원 보유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해운발전과 역사를 함께 해 온 해기사협회는 1966년 8월 1일 월간해기를 창간함으로써 해양관련 정보제공과 해양세력의 유대강화 및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큰 기여를 해 왔습니다. 창간 이후 단 한 번의 결간도 없이 발행된 해기는 10만 해상 근로자들의 충직한 벗이 되었고, 반백년 동안 함께 성장해 온 해기사 회원들에게 해기능력 제고와 해양사상 고취 및 해양문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전문 매체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월간 해기의 500호 발간은 해양관련 정보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해양세력의 유대강화, 해운의 성장동력으로써 해기사들의 근원적인 힘이 되는 대단한 업적이며 우리 해운의 밝은 미래, 나아가 국가발전에도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함께 선원의 편의를 도모하고,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을 위하여 다양한 정책활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 해상노련은 선원의 권익을 대변하고 사회적인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해기사협회와 더욱 공고한 유대관계를 갖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것입니다.
21세기 신 해양 시대를 맞이하여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실현과 일류 해운강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기사협회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해기의 통권 5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해운과 해기사회의 등대가 되길
정 영 섭
(한국선박관리업협회장)
1966년 創刊된 이래 지난 40여년간 단 1회의 缺刊도 없이 海技士를 위한 월간지로서의 使命을 充實히 다해 왔으며 韓國海技士協會와 海技士의 歷史를 記錄하며 오늘날까지 꾸준히 發展을 거듭해 온 월간 海技 通卷 500호 紀念 發刊을 眞心으로 祝賀드립니다. 돌이켜보면 6.25의 傷痕이 채 가시기 전인 1954년 8월 몇몇 先覺者들이 뜻을 모아 大韓海員協會란 名稱으로 韓國海技士協會를 創立하였고 196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海技士의 海外就業이 시작되고 우리나라의 船腹量이 增加됨에 따라 韓國海技士協會는 名實 공히 우리나라 海技士의 球心體로서 韓國 海運의 發展에 主導的인 役割을 擔當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 海技士들의 權益增進과 對外弘報의 필요성에 따라 월간 海技지의 창간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海運의 不毛地였음에도 不拘하고 國家의 財政支援으로 우수한 海技士들을 양성하였고, 양성된 선배 海技士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맡은 바 職務를 충실히 遂行함으로써 外國의 船主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海外就業이 계속 擴大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벌어들인 外貨 收益은 어려웠던 우리나라 경제에 큰 힘이 되었고 또한 外國의 先進海運技術을 우리나라에 전파하는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6위의 海運 先進國으로 발돋움 하는데 크게 寄與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韓國海技士協會는 항상 우리나라 海技士 發展을 先導하면서 海運環境 變化에 能動的으로 對處해 왔으며 특히 國際海事機構에서 마련한 STCW協約에 따른 敎育을 施行하고 證書를 發給함으로써 韓國海洋水産硏修院이 設立되는 礎石을 놓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월간 海技지는 발간 목적에 부응하며 수요자의 만족을 위해 더욱 노력함은 물론, 海技士 立場에서의 政策 提言을 적극 보도하는 政策 先導 機能 등도 강화함으로써 해기사들로부터 확고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월간 海技 通卷 500호 記念 發刊을 계기로 한층 더 성숙된 모습으로 海技士 社會의 저널리즘과 海技士의 미래를 열어 나가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할 때 그 의미도 倍加될 것입니다.
끝으로 韓國海技士協會의 발전에 전력을 다하시는 민홍기 회장님과 任職員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월간 海技지 통권 500호 記念 發刊을 계기로 韓國海技士協會의 恒久的인 發展과 월간 "海技"지가 우리나라 海運과 海技士 發展의 燈臺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祈願합니다.
한국 해기사의 명예와 자존심, 海技
구 대 서
(부산해사고등학교장)
존경하는 해기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나라가 해운국으로서 그 첫 걸음마를 내딛게 된 1966년 8월 1일 열악한 해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뜻있는 해운의 선각자들이 계신 덕분에 「海技會報」誌가 철필로 작성, 등사하여 타블로이드 2면으로 창간한 이래, 1971년 10월 「海技會報」誌에서 季刊誌 「海技」誌로, 다시 1972년 月刊誌로 발전을 거듭하여 국내외 해운업계의 동향과 소식을 안내하는 해기 가족의 등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2년을 하루같이 해기사의 오랜 친구로서 우리 해기사와 해기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고 망망대해 긴 항해에서 고국의 향수를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海技」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海技」誌는 한국해기사협회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한국해기사협회가 우리나라가 오늘과 같은 우수한 해기인력을 세계 해운 시장에 당당히 그 위세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한 공로는 실로 필설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해기사협회는 「海技」誌를 통하여 크게는 우리나라 해운 정책의 방향 舵로서 해운산업의 목표를 제시하고 해운 관계자의 해운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여 왔으며, 작게는 해기사에게 꼭 필요한 해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의 해양사상 고취를 위하여 해양소년단 창설, 해양문예 작품 모집 등 다양한 해양문예 행사를 개최하는 등, 그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모두는 오늘 500호로 출간되는 「海技」誌에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해기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영원한 바다의 가족입니다. 지금도 오대양 육대주에서 어렵고 힘든 해상 근무 여건을 극복하고 한국 해기사의 명예와 자부심으로 묵묵히 주어진 직무에 임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오늘의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여러분들과 언제나 동고동락하여 온 「海技」誌를 주춧돌로 삼고 한국해기사협회를 대들보로 삼아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큰 일꾼으로 더욱 성장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며, 아울러 오늘 역사적인 의미로 새롭게 다가오는 「海技」誌 500호 출간을 50,000여 해기사와 해기 가족과 여러분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해기 가족 여러분들의 안전 항해와 우리 해운과 함께 「海技」誌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海技」誌 500호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50년 9월, 제1000호를 기다리며
허 용 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장)
1966년 8월 해기회보로 나온 월간해기가 이제 500호를 맞이한다니 새삼 놀라웁고 대견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우리나라 바다 역군들의 현대사 한 가운데를 누비며 함께 달려온 월간 해기의 500호 발행을 모든 선․후배 동료 해기사님들과 함께 기뻐하고 축하드리며, 여기까지 오도록 큰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을 협회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월간해기의 창간 연대인 60년대 후반은 상꼬(Sanko Line. 三光), 라스코(Lasco)......등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외국선사들로 한창 해외 송출길이 열리면서 우리나라의 기라성 같이 유능한 선장님, 초사(C/O의 일본식 호칭), 삼항사님을 따라 아프상(Apprentice Officer의 App와 씨(氏)를 합한 일본식 호칭)까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메고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나가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의 경제개발 붐과 함께 값비싼 달러를 벌어들이는 귀한 몸들로서의 해기사..... 해운계에서는 어디를 가나 급료를 몇 달치 가불까지 해주면서 서로 모셔가기 경쟁을 하던 그 시절, 정말 귀한 몸들이셨지요. 바로 그 기세를 타고 해기회보가 태어 난 것 같군요. 단군님의 개국이래 가장 해기사가 날리던 시절.
이제는 제가 미리 가본 미래로 Back to the Future하여 월간해기 제1000호가 되는 대략 서기 2050년으로 가서 월간해기의 표지에 실린 글을 미리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랬습니다. 60만 TEU급 전자동 컨테이너선 원격제어로 말라카해협 통과 중....는 그해 5월호에, 쌩쌩해운회사 선대통제실에서 1급항해사 20명이 약 120척의 선대를 원격제어 운항중... 는 그 해 6월 998호에,
서울 한강 용산터미날에서 50만톤급 남극행 슈퍼크루저 취항식 거행되다는 999호에
30만톤급 초고속 스텔스 함정 1급항해사가 최초개발은 1000호의 Headline이더군요.
이를 모두 감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해기사들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수준의 Mariner들이었습니다. 다시 30년을 거슬러 2020년경으로 가보니 해기사들 모두가 3개국에 능통하고, 70세의 노 선장님이 컴퓨터의 도사이고, 해기사 출신 국회의원도 무려 16명이나.....무엇보다도 해기회보 월간발행부수는 120만부......영광된 미래의 실현에 월간해기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합니다....... 2050년 9월에 뵙겠습니다.
한국해기사회의 대변인, 비판자 역할을
오 공 균
(한국선급 회장)
역동적이고 만물이 결실을 맺는 축복의 계절을 맞아 「월간 해기」의 통권 500호 발행을 한국선급 임직원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해기사 여러분, 그리고 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해기」는 나아가 해사산업 전체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시기를 기대 합니다.
해사언론계에 「월간 해기」와 같은 정보매체가 존재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제화 사회 그리고 정보화 시대에 있어서 해기사, 선원 및 관련업계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며, 독자들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여 관련업계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번에 통권 500호를 맞는 「월간 해기」는 국내외 새로운 정보와 동향에 대한 신속한 보도 뿐만 아니라 관련업계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변인 역할과 공정하고 건전한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항상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초심을 잃어버리지 마시고 벽돌을 쌓는 마음자세로 굳건하고 튼튼하게 천년의 역사를 이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독자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해양정보매체로 성장 발전하시기를 기원하면서 한국선급 발전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다시 한번 통권 500호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메시지
월간海技 통권500호 기념 / 애독자에게 듣는다
육지로 열린 창(窓), 해기지
나의 외항선원 시절 거친 바다의 바람에 실려 다닐 때 해기지는 바다에서 육지로 열린 창이었다. 거기에는 뭍의 소식이 갈피마다 애잔했고, 이 곳 바다의 사연은 뭍으로 뭍으로 파도치고 그랬었다. 승선 근무 중인 후배 해기사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도 해기지의 이러한 공명은 여전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항해자라면 해기지가 전하는 뭍의 소식 바다의 사연에 눈과 귀를 모은다는 것이다.
나의 승선 시절에 해기지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문예란에 올려진 문예작품들이었다. 그것은 건조한 갑판 생활에 풋풋한 향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해마다 개최된 문예작품 공모를 통하여 발표된 작품을 읽는 일은 승선 생활의 고단함에 피로회복제가 되어 주었다.
해기지에 문예공모전이 없어진 것은 애석한 일이다. 문화 예술 활동이 수월치 않은 선원들에게 축제처럼 치러지던 문예공모전이 사라지자 본지를 통해서 작가 또는 해양작가의 꿈을 키우던 선원 문학도들은 그 꿈을 접게 되었다. 본지의 문예란에 글을 올리거나 문예공모전에의 참여는 선원의 의식 수준을 한껏 끌어올리는 해양문화 콘텐츠였으니 말이다. 바라건대, 본지에 문예작품공모전이 부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을 통해서 해양과 선원이 사회적으로 다시, 그리고 정당하게 평가되어서 이 사회의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부의 한 자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 나만의 순진한 꿈일까?
세상에 많은 잡지가 있지만 통권 500호를 맞는 월간지, 흔한 일이 아니다. 무려 반세기에 가깝게 우리 해기가족들의 귀와 눈이 되어 주었다면 이는 우리의 손으로 그 전통을 계승 발전할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해양사상 고취가 되고 선원들의 사회적 위상 또한 긍정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심 호 섭
(부산해사교 교사․시인)
고급 기초정보를 많이 소개하길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보면 대자연이 보여주는 장엄함에 숙연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다 위에 해가 뜨고 해가 집니다. 밤이 되면 해가 떠난 그 자리에 달과 별이 메웁니다. 지구가 태양계에 존재하는 한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같은 문제라도 육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해상에서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에 나는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부산항에 입항한 일본 Eastern Shippin「 소속인 2만 톤급 Sanko Moon호에 실습생으로 승선했습니다. 가방을 매고 갱웨이를 올라가니 갱웨이 끝에서 키가 자그마하고 빵모자를 쓴 노인이 나를 내려다보시더니 말씀하시더군요.
너 기관부 실습생이지? 배타지 말고 집에 돌아가라고.
한국해양대학 기관과 2기이신 홍종만 기관장님이셨습니다. 승선 중에 기관장님께서 나를 친자식처럼 귀여워하셨습니다. 내가 1기사일 때 회사에서 배로 배달된 해기지를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홍 기관장님께서 승선 중에 의원 순직하셨다는 짤막한 기사 한 줄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해기지를 보다가 또 가슴을 쥐 뜯고 통곡했습니다. 학교 동기생인 제오마린 소속의 오키드선 호의 기관장 이병화 군이 오만 앞바다를 항해 중에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을 읽고 그랬습니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은 아무나 바다로 불러내지 않습니다. 허나 삼지창으로 한 번 찍은 사람은 오래토록 바다에 붙들어 놓는다고 합니다. <월간 해기>의 지령 500호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바다 사나이로서 영원히 해신의 품속으로 가버린 홍종만 기관장님과 이병화 군에게 이 자리를 빌어 삼가 명복을 빕니다. <월간 해기> 발행의 주 목적이 승선 근무중인 현직 해기사들을 위함이니 좀 더 고급 기술정보를 많이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해기지가 지령 500호를 맞이하였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행 기
(외항선 기관장)
<해기>의 500회 출간을 축하하며
나는 해기를 즐겨 읽는다. 많은 읽을 거리 가운데 해기를 좋아하는 것은 거기에 뱃사람들의 호흡과 육성이 배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매일 밥상에 미역이나 김, 갈치 등 해산물이 올라와도 뭍사람들은 뱃사람들의 노고나 생활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는 배타적이다.
그 배타적인 바다를 가까이 느끼게 해 주는 책이 해기다. 해기가 통권 500호를 맞았다니 놀랍고 반갑다. 내가 못 읽은 해기가 엄청 많겠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못 읽은 해기의 바다 냄새가 궁금하다. 바램이 있다면 해기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매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표지 디자인은 한번 바뀌었으면 한다. 표지의 광고도 -이해는 가지만-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내용면에서는 전문, 기술 용어에는 주를 달아주면 좋겠다. 또 다양한 기획 기사가 아쉽다. 필자의 전자 우편 주소를 밝혀주면 궁금한 게 있을 때 묻기 좋을 것같다. 해기의 생일을 축하하며 무궁한 발전을 믿는다.
유 연 희
(소설가)
40여년의 경륜과 개성을 발휘
선현(善賢)의 말씀에 따르면, 내외적으로 충실히 공부한 인생 40년은 덕(德,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착한 언행)이 이룩되는 시기라고 합니다. 창간 42년 통권 500호의 역사를 자랑하는 월간 해기지는 꾸준한 노력으로 그 개성의 덕을 완성하였습니다.
오늘도 육해상에서 열심히 생활하시는 전현직 해기사님들과 그 가족친지분 등이 살아오신 삶의 잔잔한 애환의 기록과, 선원․선박․해운에 관한 전문분야의 해기 지성(海技知性)들이 남기신 유익한 정보는, 해양문인들의 다채로운 문체와 더불어 해기지만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월간 해기지의 발전을 위해 그간 40여년의 성상(星霜)을 유유히 항해하는데 함께하신 분들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해기지가 풍상의 세월을 거치면서 통권 500호의 발간을 자축할 수 있게 된 것은, 해기지의 탄생 시에서 지금까지 노심초사 열심히 일해 오신 해기사 협회 임직원 여러분의 성실한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위업(偉業)이었음도, 아울러 거론하고자 합니다.
전문 학술지이자 문예지인 본 해기지가 지난 40여년의 경륜과 개성을 바탕으로, 회원의 저변확대나 기타 출판지와의 정보공유․공동발행을 포함한 각종 업무제휴 등도 신중히 고려하면서, 묵묵히 다양한 기항지를 향해 쉼 없는 항해를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월간 해기지 통권 500호의 발간을 경축 드립니다.
이 영 재
(인천해양항만청 선박검사관)
한국선원들의 바다 메시아
시대를 앞서가며 창의력과 생동감 넘치는 편집의 추진력으로 대한민국 선진일류해양에 큰 족적을 남기는 「해기」 통권 500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대 외화 가득산업으로서 당당히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중추역할 해운산업에 종사하며 WTO, FTA에 의한 시장개방 가속화등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서 역경과 고난을 함께한 해기사와 선원여러분이 보여주었던 불굴의 의지와 저력에 힘이 될 수 있도록 전문 학술지로 또는 체험의 귀중한 정보를 전하던 선봉장 「해기」는 바다의 메시아였습니다. 기쁨과 위안을 주며 그동안 바다사회에서 입과 귀와 눈의 역할 수행했던 「해기」가 통권 500회 맞으며 개혁과 다양화를 탐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소득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좀 더 신속한 신해양에 대한 학술정보의 전달,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와 해양인들의 복지후생에 관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해기사와 선원들에게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도록 하는 입술의 견인차 역할도 해야 합니다. 40여년 해양개척의 역사 속 한국해기사협회 기관지로서 그 가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며 작은 흠집도 있었을 것입니다. 작가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시간은 과거로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흘러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따름입니다. 문제는 영광된 앞날입니다. 「해기」 그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중화와 현대화를 추구한다 합니다. 지향하는 그 변화는 명분보다도 실사구시 실용이 심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양문화의 지속적인 교류로 갯바람에 지친 뱃사람 영혼의 쉼터도 되어야 하고 삶의 질도 높여야 합니다. 진일보한 「해기」가 전하는 세계로 도약하는 즐거운 소식․희망 있는 소식으로 푸르른 꿈들이 영글어지길 몽상합니다. 해기사와 선원들과 바다 메시아의 위대함을 흠모합니다.
이 윤 길
(시인․선장)
해기지, 가족과 선박의 훌륭한 가교
제 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과 더불어 월간 해기지가 벌써 500회 생일을 맞이했다니 먼저 축하드립니다. 월간 해기지에는 해운전망, 해기사를 위한 건강상식, 생활교양, 해양가족 애로사항, 해양 정보 등등이 있어 늘 유익했고, 해양문예란을 통해 해양가족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저도 해양가족이야기 코너를 읽으면서 기회가 생기면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남편과 가족이 함께 동승하게 되어 선상체험을 해기지에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기지에 실린 것은 동승체험과 아울러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2001년 겨울에는 아이들과 함께 심천 항에 들러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았고, 홍콩 항에서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2004년, 2005년 두 차례 걸쳐 여름방학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서부해안의 가장 큰 항구인 롱비치와, 우리 교민이 많이 사는 LA, 물의 도시 시애틀, 그리고 세계적 미항 샌프란시스코를 견학했습니다. 금년 들어서는 일본의 산업 도시 요코하마, 전통 일본을 느낄 수 있는 사카이 나고야 항도 둘러봤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남편과 가족들이 짧은 시간 (배 일정이 잡혀 있는 관계로)알뜰하게 세계 각국 항구를 두루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각 나라의 문화를 느끼면서 배운 점들은 실생활에 접목하여 나름대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해기사 선원가족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단법인 한국해기사협회 월간 해기지여! 세월과 함께 연륜이 더욱 깊어져가는 해양 전문지로 우뚝 솟길 기원합니다. 화이팅!
천 순 이
(주부․최수웅선장 부인)
해기사 국제화를 선도하는 專門誌
먼저 국내 최고의 해양전문지로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월간해기의 통권 500호를 축하합니다. 1980년대 초 필자가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해상생활을 하면서 처음 월간해기를 대하던 때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는 언론과 통신의 발달이 미흡한 시대로 선박에서 신문, 잡지 등을 접하기 어려웠으며, 특히 한국에 기항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어려움이 더하여 다행히 선진 외국항에 입항하면 대리점 혹은 선식업자를 통하여 철지난 잡지, 신문 등의 소식매체를 접하고 소중하게 읽어 내려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해상승무원들에게 각인되고 읽혀진 월간해기는 그야말로 소중한 보석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보고 싶은 동창들의 소식, 동료해기사들의 활동상, 해운계의 동향과 해운정책의 방향 등의 유익한 정보를 이를 통하여 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하여 정보제공자로서 월간해기의 역할은 급격한 변화를 강요하게 되었으며 그간의 많은 역할들은 e-mail, internet, 위성방송, 휴대폰 등을 필두로 한 새로운 정보매체에 바통을 넘겨야 할 때가 되었으며 이는 해기지가 새로이 변화된 패러다임에 맞추어 그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이 시점에서 우선 생각해야 할 점은 소비자인 고객을 만족시키고 새로운 소비자를 창조하며 그 저변을 확충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월간해기가 기존의 주요 독자층인 해기사 및 해기유관단체에서 조선, 해운, 물류종사자 등으로 수요층을 확대하는 방향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첨단 해기관련기술이 요구되는 LN「운반선, LN「-RV, FPSO, FRSU, 해양탐사 및 시추설비 등의 건조/운항정보를 우리해기사들이 해기를 통해 얻을 수 있도록 우수한 연구자와 연구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발굴, 지원함으로써 해기인력의 첨단화 국제화를 선도해 나가는 종합전문지로 다시 태어나야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조치로써 해당분야의 전문가 Pool의 확보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 번 42년의 통권 500회를 축하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배 병 덕
(한해대 교수․한나라호 선장)
통권 1,000호를 예약기대 합니다
전문직업인인 우리 해기들의 자랑스런 사적단체인, 한국해기사협회가 창립 54주년을 맞이하였으며, 본 협회 기관지 월간해기가 창간한 지 만 42년째이자, 통권 500호를 맞이하게 된 것을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통권 500호까지 이끌어 오신 역대 회장님들 및 편집인들의 노고와 그리고 원고로 참여해 주신 해기사 회원님들의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목표는 미래 가치창출이라고 합니다. 미래란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현 시점 보다 더 좋은 세상을 포괄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세상이나, 경영시스템도 그 중심에 사람(people)의 향기가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의 42년(통권 1,000호)을 준비하는 해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월간해기는 우리 해운산업의 발전과 해운 및 선원정책 개발과 연구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반도 해양국가이면서도 해양사상이 부족한 우리 국민들에게 해양사상을 고취시키거나, 해기사문화(?)를 전파하는 일에도 많은 지면을 할당하여 해기지를 우리 회원 및 가족들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우리 공동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음 세 가지 자본을 갖춰야 한다고 석학들이 설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물적자본이며, 둘째는 일상적 삶에서 각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적능력인 인적자본, 셋째는 인간사이에 쌓인 신뢰나 규범, 가치 그리고 네트워크 즉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체나 조직안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인 사회적 자본입니다. 따라서 해기사협회가 해기사들의 관념속의 조직이 아니라 해기사들의 생활속에서 숨쉬고 함께하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더욱 발전하길 기원하며, 월간해기가 그 중심에 서서 지식기반 근로자인 해기사들의 network의 진정한 HUB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해기사들의 사회적 자본 형성에 기여 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정 우 천
(조광해운(주) 전무이사)
월간 해기의 편집
사람과 사람, 선박과 가정,육지와 바다를 잇는 소통의 광장
「月刊 海技」 42돌 지령 500호 변천사
「月刊 海技」가 창간 42돌, 통권 500호를 맞았다. 「月刊 海技」는 1966년 8월 창간 이후 반 세기에 가까운 42년이란 세월을 지나는 동안 해양인구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선박운항 관련 신기술 도입, 해기사의 자질 향상, 해양문학인의 발굴 및 해양문화의 창달 등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지난 1980년 釜馬 사태 때의 비상계엄 하에서는 권력의 삼엄한 검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응해온 일화와 전통도 갖고 있다.
초창기 海技士들의 發展相과 활약상 소개
「月刊 海技」는 1966년 8월 1일 월간지 [해기회보] 타블로이드판 신문으로 창간 이래, 1971년 10월 계간지 [해기]잡지 창간, 1972년 9월 1일 신문 [해기회보]와 계간지 [해기] 통합, [해기회보](통권 68호) 간행, 1974년 7월 20일 [월간해기](통권 90호), 1980년 5월호의 계엄사령부의 검열일화, 1992년 1월 통권 300호 발간, 2004년 8월 4일 『해양문예 입상작품집』 발간, 2008년 9월 20일 통권 500호 발간 등 월간 해기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독자와 함께 하며 42년의 역사를 달려 왔다.
「月刊 海技」지는 그동안 국내 10만여 해기사는 물론, 한국 해기사들의 발전 모습과 활약상을 소상히 소개함으로써 범 해양인들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소속감을 크게 고양해 왔다. 해양계 및 일반 국민들에게는 발행처 해기사협회와 한국 해기사를 정확히 알리는 한편, 독자들에게 해기사, 외항선박, 선원사회 그리고 바다와 해양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쌓는 데 가교 역할을 해 왔다.
「月刊 海技」는 창간 당시부터 한동안 국내 해운계 유일의 학술지로서, 해양정보 매체로서, 선박과 가족 사이에, 회원 또는 육해상간의 대화의 광장으로서 우리나라 해기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다. 「月刊 海技」는 선원사회의 입과 귀와 눈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뿐인가. 우리 해운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해운 및 선원정책 개발과 연구에 적극적으로 기여함으로써 해기사들과 해기 가족에게는 크나큰 위안이자 자긍심을 지켜주는 소중한 길벗이었다.
협회가 출범한 지 10여 년이 지나서, 협회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한 것이 바로 1966년도 협회 기관지, 월간 「海技」지의 창간이었다. 機關紙 발간은 협회가 창립 당시부터 계획했던, 숙원사업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海技」지는 창간 이후 해기사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관지로서, 해운계를 主導하는 海事專門誌로서 기본 성격을 고수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STCW, MARPOL등 국제협약 제․개정 弘報
「月刊 海技」는 우리 해기사들의 해외진출이 시작되던 무렵에 창간함으로써 해외 선진기술을 알리고, 항해 조선 운용 및 박용 기술의 보급과 각종 국제협약 등 국제조약 및 규제내용을 신속하고 상세하게 소개했다. 1912년 4월 12일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태어난 SOLAS(해상에서의 인명안전 조약), 1967년 3월 18일 토리캐년호 좌초사고 뒤 출범한 MARPOL 73/78(해양오염방지협약)와 STCW(선원훈련, 자격증명, 당직기준에 관한 국제협약 1978), 1989년 3월 24일 액손 발데즈호 좌초사고 뒤 탄생한 OPA(해양오염법,1990), 1995년 7월23일 씨프린스 좌초사고 후에 태어난 한국해양오염방제공단, 해양사고의 빈발로 태어난 PSC(항만국통제)와 ISM code(국제안전관리규약), VTS(선박관제시스템)등 해상에서의 선박운항의 안전과 관련한 제반 국제 규칙과 규제의 제정 및 변경 사항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데 나태하지 않았다.
특히 협회는 기관지 창간 이후 계간 격월간 등으로 발전시켜 가다 통권 90호를 발간하면서 또 한번의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기관지를 월간지로 대 혁신함으로써 1974년도 「월간 海技」 통권 90호 발간 기념으로 해양문예작품모집 행사를 창안하여 연례행사로 정착시킨 것이다.
海洋思想 보급과 海洋文化의 저변확대
해양문예공모 행사는 협회 설립목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海洋思想 보급과 海洋文化의 저변확대를 위한 사업으로, 1974년 첫 회 이후 1995년도 18회까지 지속하는 동안 해양계 및 일반 국민들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킨 행사로 각인되었다. 본 협회의 해양문예를 통해 작가의 꿈을 키우고, 나아가 문학에 입문하고, 지금까지 문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만 해도 부지기수에 이른다. 1974년 초회 소설 당선자인 金文弘, 수필 당선자 金光子 시인을 비롯해서, <문학평론가> 장석주, <소설가> 김문홍, 김외숙, 정경수, 옥태권, 김성호, 김종찬 <시인> 김광자, 허영선(제주), 권태원, 강세화, 정시우, 박재수, 박병재, 이금남 <수필가> 박봉옥, 김동규, 장일경, 손일하(작고)씨 등이 문단에서 활동 중이다.
협회는 2004년 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출판으로, 해양문예작품공모 역대 당선작을 집대성하여 해양문예작품집, 「등대찾기」를 발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거친 波濤와 맞서 망망대해를 헤치며 忍苦의 항해를 극복하고 돌아온 해양한국의 주역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척박한 외해의 바다를 개척하고, 세계속의 한국해운을 일궈낸 일선 해기사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인내, 패기, 근면성을 바탕으로 한 해양가족들의 열정과 감동이 오롯이 녹아 있다.
협회는 「月刊 海技」지의 발간과 함께 해양문예 행사가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국제화․선진화를 앞당기고, 나아가 汎國民의 해양사상의 고취 및 해양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소금끼 절인 지난날의 이야기들로 가득찬 이 작은 목소리들이 異國의 바다를 항해하는 해기사들에게 힘이 되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21세기 신해양시대에 주역이 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어 정신적 문화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月刊 海技」지의 지령(紙齡) 500호 발간의 위업은 국내 출판계에서도 그다지 흔치 않은 놀라운 사실(史實)이 아닐 수 없다.
◆ 詩人․記者 출신 초중기 편집 주도․체계화
그간 「月刊 海技」지의 제작에는 숱한 사람들이 스쳐 갔다. 지금까지 「月刊 海技」 작업의 팀장 또는 핵심 실무자에는 초대 편집장 해양시인 김성식(金盛式;1942-2002)선장과 조연로(趙然魯)선생(현재 부산경상대학 교수)에 이어 1970-80년대 박응석(朴應奭 ; 1939- )시인, 조수은(趙守銀;1937-1993) 前 국제신문 사회부장(부산매일 편집부국장 역임)등이 편집을 주관하며 월간 해기의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나가게 되었다. 그 뒤로 李貴子(전 국제신문 교열부 기자), 安東錫(현재 대구 거주), 玉泰權(소설가), 崔正基(전 일간공업신문 편집부국장) 제씨가 1991년도까지 편집장을 역임했고, 1992년부터 金東奎(필자)가 편집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月刊 海技」는 창간 이후 40여 성상의 지령을 쌓아오는 동안 온갖 애환과 부침의 세월을 이겨내면서 오늘까지 한 호의 결간도 없이 그 제호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연륜을 축적해 왔다. 「月刊 海技」는 오랜 세월 해기사의 가정은 물론, 일선 외항선에 보급되고 있는 유일한 정기간행물로서 사람과 사람, 선박과 가정,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소통의 광장이었다.
「月刊 海技」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고 있다. 지면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고, 특집호를 발간하여 협회 주요 이슈와 해운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회, 세미나, 심포지엄 등을 통해 심도 있고 정확하게 알리는 데 주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편집 스타일을 연구 모색하고 해운 각계의 다양한 정보와 아이템을 취재, 발굴하는 등 독자들에게 늘 신선하고 양식이 되는 해기인의 교양지로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해양가족이 소통하는 「海技」로 재도약
「해기」지가 지령 500호를 지나오는 동안 전술했듯이 해양인구의 저변확대, 신기술 도입, 해기사들의 자질향상, 해양문인 발굴 등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권력의 삼엄한 검열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대응도 해 왔다. 그러나 「해기」의 독자는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해 왔다. 복덕방을 연상시키는 잡지에서 탈피하라, 협회의 발전을 위해 잘못된 것을 과감히 비판하라, 뱃사람만 보는 잡지에서 탈피하라, 획일적인 편집과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라, 제발 좀 투자를 해서 컬러풀하고 화려하게 스마트하게 만들어라, 지면과 지질을 혁신하라…. 독자들의 눈은 매서웠고 예리했으며 요구사항은 강렬했다.
기관지는 기관지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그동안 선배 편집 실무자가 이룩한 「해기」의 성격을 살리면서 앞으로는 읽혀지는 잡지, 기다려지는 「해기」를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전 해양인이 소통하는 海技로 거듭날 것이다.
■글/金東奎(「月刊海技」 편집장, 수필가)
「월간해기」 주요 연혁
◉1966. 08 .11 월간지 「해기회보」 타블로이드판(2면) 신문으로 창간.
◉1967. 01. 24. 문공부 등록번호 라-856호 허가.
◉1967. 07. 01.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증면 발행.
◉1971. 10. 30. 계간지 「해기」 잡지 창간.
◉1972. 09. 01. 신문 「해기회보」와 계간잡지 「해기」를 통합하여 통권68호 월간 「해기 회보」로 탈바꿈.
◉1973. 06. 20. 지령 77호. 해기원협회에서 사단법인 해기사협회로 발행처 변경.
◉1974. 07. 20. 지령 90호. 제호를 「월간해기」로 변경
◉1976. 01. 20. 통권 108호부터 현재의 제자(題字) 「월간해기」 사용.
◉1989. 07. 25. 통권 270호부터 잡지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내용과 편집구성 변경.
◉1992. 01. 통권 300호 발간.
◉2004. 08.「해양문예 입상작품집-등대찾기」 발간.
◉2008. 09. 통권 500호 발간.
월간 해기의 변천
『月刊 海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월간해기(月刊海技)지가 2008년 9월로 통권 500호를 맞이한 것은 가히 해운사적인 업적이다. 『월간해기』의 역사가 한국해기사의 역사이며, 한국해운의 발자취이다.
온 국민에 해양사상을 고취하여 해양문화 창달에 힘쓰고 해양인구의 저변확대로 선진해운의 기틀을 다지며 협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회원들의 정신문화적 양식을 제공해 온지 만42년 1개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화해온 세월동안 월간해기는 회원들의 자질향상에 필요한 국내외의 최신기술과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을 환기 시켜왔다. 그리고 해상에 흩어져 지내는 회원들과의 단결과 가족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구심체가 되도록 회원의 소식을 비롯, 종합적인 해사관계 공동의 광장으로 활용하여 왔다.
월간해기는 창간 당시부터 한동안 해운계 유일한 학술지로서, 정보지로서, 대화의 광장으로서 우리 해기사의 「입」과 「귀」와 「눈」의 역할 뿐아니라 온 해양인의 필독서(必讀書)로서 그 위치를 굳혀왔다.
1. 연혁
1954년 창립시의 사업계획에 의하면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기관지 발행항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듬해인 1955년 5월 7일의 이사회에서도 기관지 발간에 대한 결의를 했었다. 이같이 협회가 창립된 이후 수차에 걸쳐 기관지 발간을 시도했으나 재정 등 여러 주위여건이 여의치 못해 보류되어 왔다. 초창기에는 정규적인 기관지를 발간치 못하고 알림사항이 있을 때마다 16절지에 등사로 밀어 각 선박의 회원들이나 선사에 전달했다. 이때의 내용은 인사동정을 싣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1966년 5월 18일 협회가 부산지방법원에 사단법인 등기를 완료하고 난 뒤인 동년 8월 1일 다소의 무리를 무릅쓰고 타블로이드판 2면의 월간지 「해기회보」를 창간함으로써 기관지다운 기관지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이 창간호를 내는데까지는 당시 이운하 상무이사의 노고가컸다.
이때 신문의 편집을 맡은 사람은 부산상선고등학교와 항공대학출신으로 총무부 일을 보고 잇던 신중혁씨였다. 재정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회보발간을 하다보니 그 어려움이란 말할 수 없겠지만 특히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을 뒷받침 해준 부은 당시 천경해운 김국진 전무였다. 계속 3호까지 발간하는 동안 공보부에 정기간행물 등록신청을 했으나 그 당시엔 비록 비매품의 기관지인긴 하지만 정기간행물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로 몇번이나 등록서류가 반려되곤 하다가 1967년 1월 24일 공봅 등록번호 라-856호로 허가를 받았다.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이후 협회의 활동과 사업등이 늘어나고 활성화되자 1967년 7월 1일 회보 6호부터는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증면 발행했다.
한편 신문형태를 가진 기관지회보를 계속 발행하면서 1971년 10월 30일 계간지 「해기」도 창간하게 되어 신문과 잡지를 함께 발행하게 되었다.
이는 회원들의 투고가 늘어나고 각종 자료등을 게재할 지면이 극도로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협회가 재정적으로 다소의 여유가 생긴 탓이기도 했다. 이 계간지의 편집은 당시 시인으로 활동중인 김성식 선장이 맡았었다.
계간지 「해기」는 4․6배판으로 본문 내용만 118면에 달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지면을 많이 차지하여 신문에서는 싣기 곤란한 논단, 각종 통계자료, 소설, 회원문예투고 등이었다.
계간지 「해기」는 창간호에 이어 72년 1월 25일 제2호, 72년 4월 30일 제3호, 72년 8월 1일 제4호까지 발간되었다.
그러다 7년동안 꾸준히 발행되어 오던 월간지 「해기회보」는 1972년 8월 1일 창간 6주년을 마지막으로, 9월 1일부터는 계간지 「해기」와 통합, 월간지 「해기회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해운계의 동정, 협회 알림 등을 주로 다루던 「해기회보」가 그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온 협회와 해운계의 여건에 비해 너무 초라하여 4․6배판 잡지로 변신하게 됨에 따라 계간지 「해기」도 자연 흡수하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합해 월간잡지로 발간된 첫 「해기회보」는 본문 내용만 59면의 분량이었다.
신문형태의 회보를 잡지형태로 바꾸기 위해 1972년 9월 19일 문공부에 등록변경 신청을 하여 1주 뒤인 9월 26일 같은 등록번호 라-856호로 변경인가를 받았다.
이후 꾸준히 발행된 월간지 「해기회보」는 1974년 7월 20일 지령 90호를 맞으면서 기관지로서의 체제는 물론 전문지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제호를 「월간해기」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976년 무진년 새해에 제24회 국전대통령상 수상작가인 서예가 古泉 배재식 선생으로부터 「海技」의 제자(題字)를 새로 받아 그해 1월 20일 지령 108호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2. 해양문예작품 모집
1974년 7월 20일 「해기회보」가 지령 제90호를 맞으면서 당시 국가정책이기도 한 문예중흥에 발맞추고 또 지령 90호를 기념하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해양문예작품 현상모집을 실시했다.
시, 단편소설, 수필 부문으로 나누어 첫 공모를 시작하였는데 회원 뿐 아니라 일반인들로 부터의 호응도 높아 첫해에는 짧은 공모기간에도 불구하고 응모작품수는 시 128편, 수필 33편, 소설 21편이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소재가 해양으로 한전되어 투고자의 범위가 좁고 해양문학이라는 영역 처녀지인 까닭도 있었지만 해양을 재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작품 수준은 낮았다는 것이 당시 심사위원들의 의견이었다. 초회 심사위원으로 소설가 요산 김정한(樂山 金廷漢), 향파 이주홍(向破 李周洪)선생 등이 맡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응모 작품의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하여 4회째는 시 부문에 2명의 당선자를 내기도 했다. 제6회째부터는 해운항만처에서 이 행사를 매년 3월 13일 해운의 날 행사의 일호나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의에 따라 해운항만청과 한국선주협회가 후원하여 3월에 시상을 하게 되었고, 제7회부터는 3회부터 모집하기 시작한 바다의 생생한 체험을 토대로 한 해양수기 부문이 반응이 좋아 이에 비중을 두어 모집하기 시작하여 바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1992년도, 제17회부터 해양문예는 5개 관련단체가 공동(해기사협회, 선주협회, 선박관리업협회, 한국해운조합, 전국선박관리선원노동조합)으로 행사비용을 출연하여 시행키로 합의함으로써, 상금을 크게 올릴 수 있었고, 훌륭한 작품을 발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행사는 18회(1995) 한 회를 더 시행하고, 해운 환경 및 재정운용상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닻을 내리고 말았다. 당시 주된 이유로는 관련단체가 상금과 행사비용을 계속 마련하기가 곤란했고, 더군다나 해운항만청에서 유사한 공모행사를 준비하는 단계여서 해양문예의 전통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중단됐다.
1995년 제18회를 치르기까지 그동안 협회 해양문예작품모집에 입상을 계기로 제1회 소설부문에서 당랑(螳螂)으로 당선한 김문홍씨를 비롯 20여 명이 지금도 계속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역대 해양문예 입상자 목록
■ 제1회 (1974년)
●시
(당선) 바다로 가는 노래 윤수천
(입선) 航海 朴峰玉
●수필
(당선) 자랑스런 航海士 弟夫에게 金光子
(입선) 바닷물에 비쳐 보고픈 나의 自畵像 金永任
●소설
(당선) 螳 螂 金文弘
■ 제2회 (1975년)
●시
(당선) 바다를 위한 아침소묘
최영희
(가작) 출항아침 김종순
海洋記 정인성
파도 송인성
●수필
(당선) 나의 바다 김정희
(가작) 아빠의 연륜에 기대어
손한순
무너진 기대 정희선
●단편소설
(당선) 해당작품 없음
(가작) 홍련암 日記 이정원
K보승의 미소 박상식
■ 제3회 (1976년)
●시
(당선) 바다 四重奏 李 湳
(가작) 바다를 주제로 한 세가지 연주 成斗秀
●수필
(당선) 해당작품 없음
(가작) 바다, 큰 물이랑의 나라
정숙례
바다 片想 박수자
再會 김외숙
●단편소설
(당선) 바다의 눈 張周杓
(가작) Q船의 조난 위기설
朴三龍
●수기
(당선) 해당작품 없음
(가작) 調理師 十年의 哀歡
김병묵
颱風 李東鎭
어느 實習生의 日記 吳鎬振
■ 제4회 (1977년)
●시
(당선) 밤배없는 나루터 김봉철
무인도 김영진
(가작) 파도, 제주바당 허영선
제주해협 고영완
●단편소설
(당선) 어떤 귀항 서재철
●수기
(당선) 실습 4개월 김선운
■ 제5회 (1978년)
●시
(당선) 바다의 復活修業, 조용한 凱旋 장석주
(가작) 다섯개의 바다 練習
김선응
몇 개의 바다를 지나서 元貞烈
●단편소설
(가작) 巨大한 流氷 權泰元
見習船員 趙水海
●수기
(준당선) 신들린 갈매기 金知卓
(가작) 마도로스의 手記 유호길
입항에서 입항까지 김선운
海情超極 이준기
■ 제6회 (1980년)
●시
(당선) 바다위에 내리는 비 外 2篇
양 원
●단편소설
(가작) 돛 그늘 全載輝
별신굿 文興道
●수기
(당선) 어느 아웃사이더의 수기
유호길
■ 제7회 (1981년)
●시
(당선) 바다의 風習 外 1篇
成晋根
(가작) 航海 外 1篇 朴鎭榮
●수필
(가작) 처음 바다로 가던 날
김태은
●수기
(준당선) 黃金의 바다 卜鎭云
■ 제8회 (1982년)
●시
(당선) 海圖에서 外 1篇 尹盛根
(가작) 海溢의 뿌리 外 2篇
姜南玉
水夫, 새우의 잠 外 1篇 백인학
●수필
(가작) 내 추억의 바다 이 용
●수기
(가작) 바다빛깔의 삶 金倫煥
바다이야기 趙奎南
홧센장 朴周坪
■ 제9회 (1983년)
●시
(당선) 나의 全生涯를 적시는 파도 이재규
(가작) 저녁 바다에 서서 심종철
●수기
(당선) 뱃고동 소리 김진정
(가작) 실습, 뱃님에의 첫길
옥태권
식인상어와 환상 정경수
■ 제10회 (1984년)
●시
(당선) 기다림의 끝 장정희
(가작) 빈 배로 서면 안우규
●수필
(가작) 記憶 속의 바다 김주선
달빛의 은총 문정배
●수기
(가작) 우리끼리만의 얘기들
조규남
세 번째 바다 현대송
■ 제11회 (1985년)
●시
(가작) 出港記 함정수
(가작) 썰매 강세화
●수기
(당선) 바다가 육지라면 김동규
●항행기
(가작) 움직이는 땅 권기용
외인부대 용사들 현대송
■ 제12회 (1986년)
●시
(가작) 바다에 얽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김홍렬
標的의 바다 박병남
●수필
(가작) 바람속에 서다 이춘자
●수기
(가작) 조난아닌 조난 김길동
말래카의 야화 한의균
이란을 향해 김 철
■ 제13회 (1987년)
●시
(당선) 항해기 조윤형
(가작) 바다(1) 김낙현
●수필
(당선) 큰 바다 얼굴 장일경
●수기
(당선) 갈매기의 비밀 송운종
(가작) 바다의 초상 최호정
바다야 사랑하는 바다야 이대성
■ 제14회 (1988년)
●시
(당선) 겨울 歸船 정영민
(가작) 마음 航海 윤기후
●수필
(가작) 흐르는 연습 김홍렬
船內 교회 손일하
●수기
(당선) 페르시아灣 유감 김현수
(가작)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홍중표
■ 제15회 (1989년)
●시
(가작) 항해일지 이금남
상공 포구에서 이종한
●수필
(당선) 살아있는 소리 김홍균
(가작) 수평선 그 너머엔 김동호
뱃사람과 인연 이상삼
●수기
(가작) 타이푼 8521 김태조
(선외가작) S호의 불협화음
조충환
■ 제16회 (1990년)
●시
(당선) 섬 정시우
●수필
(당선) 개밥바라기 김성호
●수기
(당선) 魔의 紀行 박종현
■ 제17회 (1992년)
●시
(당선) <종이배를 띄우고>의 2
박재수
(가작) <항해일지>의 1 박병재
●소설
(당선) 등대찾기 김성호
(가작) 混流海域 김종찬
●수기
(입선) 열이틀간의 휴가 김정애
콜롬쿠바 밀항자 김정남
해상수첩Ⅱ 강경희
춥고 배고픈 꿈을 위하여 장일경
■ 제18회 (1995년)
●시
(입상) 겨울출항 이석재
바다지기 박병재
●수필
(입상) 달빛항로 최광태
상수도 공사 김영옥
●소설(수기)
(입상) 부활의 바다 장일경
3. 검열일화
해운단체의 여론을 리드하던 「해기」지의 역할을 여실히 드러내 준 한 예가 1980년 5월호 「해기」지에 게재됐던 김성재(金晟在) 당시 천경해운 기관장의 제언 「해원노조의 기형적 조직형태 더이상 지탱할 수 있을까」의 사건이었다.
부마(釜馬)사태로 인해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 비상계엄이 선포됨에 따라 이후 모든 간행물은 계엄사령부 보도실의 검열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김성재씨의 글이 계엄사령부 보도실로부터 전문을 삭제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글의 내용은 선원노조는 해기사의 임금을 차라리 손대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 노동조합원의 참여가 어떻게 교묘히 배제되고 있는가 / 노조가 집행부 간부들의 전유물화 되어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겠는가 / 노조의 폐쇄적인 운명은 시정되어야 /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보다도 소비예산이 더 많은 것이 아닌가 / ITF선원복지기금의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되지 않을까 / 인사의 무원칙 난맥에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등의 소제목에서도 짐작되듯이 당시 선원노조의 운영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협회로서는 당시 해원노조의 개혁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 이 글을 게재 의의에 비추어 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하고 당시 편집부 박응석 부장이 계엄사령부 검열담당관을 찾아가 게재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결국 그 검열담당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검열번호 885호(80. 5. 22)로 몇 줄만 삭제하여 발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4. 편집자의 변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나치로부터 해방을 이룩한 드골 정부는 조국을 배신한 언론인들과 문필가들을 가차없이 숙청함으로써 프랑스의 정신을 바로잡고 역사의 진로를 옳게 닦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언론을 통해 저지른 범죄를 어떤 범죄보다 무겁게 다루었다. 6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전 국민에게 생중계 방송되는 가운데 <뤼마니테(L′humanité)>의 르네 앙드레이유 편집장이 드골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중 장시간에 걸쳐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롯한 국내외정책에 비판을 가하고 자신의 의견까지 피력한 후 우리는 이렇게 보는데 대통령의 견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앙드레이유가 질문을 마쳤을 때는 제한시간이 다 지나버려 드골이 대답할 여유도 회견을 더 계속할 시간도 없었다. 드골은 오늘 귀하의 기자회견에 감사한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 것이 아니라 앙드레이유가 회견을 한 꼴이 되었다는 뜻이다. 회견을 망쳐놓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응한 드골의 답변 역시 여유와 재치가 있어 멋있어 보인다. 언론인이 대통령에게 보인 무례할 정도의 대등한 자세,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의 언론도, 「해기」지도 진정한 여러분의 입과 귀와 눈이 될 것이다.
■자료․정리/김동규(편집장)
나의 바다와 문학⑬
나의 문학수련장인 바다
천 금 성
(해양소설가)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68년 그 해, 나는 지구상 남반구의 한겨울인 6월에서 9월까지의 서너 달 동안 남위 40도선의 인도양을 항해하고 있었다. 그 어장에서 우리는 비교적 고가(高價)인 날개다랑어를 잡았는데, 그쪽 해황(海況)이라는 것이 여간 불량하지 않아서, 어기가 끝나는 날까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마스트 중허리만큼 부풀어 오른 파도는 언제나 갑판을 기웃거리고 있었고, 열대 해역에서나 봄 직한 스콜 같은 물보라가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는 가운데 도대체 어디서 발원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해명(海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막을 두들겨대는 그런 몹쓸 악천후의 연속이었다.
● 죽음이 넘실거리는 남인도양
그 사이에 어느 일본선 하나는 파도를 잘못 올라타 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선원 모두가 실종자 명단에 등재되는 참화를 입었고, 또 어느 유조선 하나는 끊임없이 굴러오는 파도의 허들을 이틀 동안이나 타넘다가 더 이상 견디지를 못 하고 허리께가 분질러지면서 엔진룸 쪽 선미부는 침몰하고 선수부만 고개를 내민 채 떠다니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케이프타운 기상청의 통보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말 그대로 사생결단 식의 고기잡이에 종사했던 것이다.
자고로 해양기상이라는 것은 위도가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더욱 극성스러워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서너 달 동안 우리가 맴돌았던 남인도양의 한겨울 철이야말로 바로 그 같은 상황을 실체적(實體的)으로 확인시켜 준 현장에 틀림없었다. 도대체 고기값이 조금 나간다는 고급 물고기는 무슨 억하심정으로 꼭 그 같은 몹쓸 바다에서만 회유하는지, 나는 통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항해에서 나는 문학에 접근하는 기회를 얻어냈으니 그걸 두고 행운의 항해를 했었노라며 웃어넘겨야 할까. 지금껏 내가 평생의 업(業)으로 삼아 온 해양문학(海洋文學)의 모태(母胎)가 방금 말한 남위 40도선의 황량한 남인도양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그 항해가 너무도 끔찍하고 야만적이어서, 그 악몽을 떨쳐내기 위한 방법으로 틈날 때마다 차근차근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써나갔는데, 그게 곧 인도양 출어 이듬해인 196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작품의 뼈대가 되었던 것이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마치 모래알처럼 얼굴 어디라고 없이 마구 우벼 때리고 있었다. 그는 다만 그것만을 의식할 따름이었다. 하늘을 치솟는 파도, 파도, 파도 …….
바로 이 서투르고 설익은 문장이 응모작 《영해발부근(零海拔附近)》의 도입부인데, 이게 무슨 유별난 문학일 것이며, 여기에 무슨 심오한 예술(藝術)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정작 심사를 맡은 김동리․황순원, 두 분 선생님은 무척 전율스럽고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내가 만약 악천후의 대명사인 그곳에서 앨버코르(Albacore)라는 이름의 날개다랑어 조업에 종사하지 않았더라면, 장담컨대 나의 문학은 아예 미수(未遂)로 그치고 말았거나 혹은 불발탄(不發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 해양문학은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이 없고서는 처음부터 어렵다(불가능하다)는 게 그 정설(定說)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견해는 세계문학사에서 문명(文名)을 떨치고 있는 유수한 작가들을 상고(詳考)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 고래 대신 해양문학을 포획한 멜빌
1841년 1월 어느 날,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 뉴 베드포드라는 항구에서 한 척의 포경선(捕鯨船)이 닻을 끌어올린다. 겨우 1백 톤 남짓한 그 배는 추진력을 오로지 닻에서 얻어내는 범선(帆船)이었는데, 그 배의 출항 목적은 어획물인 고래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선을 하는 일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고래기름 한 가지로 등잔불을 밝혔는데(고래기름이 석유로 대체된 것은 그로부터 18년 후인 1859년 미국인 엔지니어 E. L. 드레이크가 지하유전 굴착 방법을 개발한 훨씬 다음부터의 일이다), 그리하여 경유(鯨油)로 만선을 하기만 하면 선원 누구라도 큰돈을 벌 수 있어서, 나중에는 선장도 되고 선주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을 만큼 고래잡이는 매우 위험한 모험을 수반하고 있었다.
아쿠슈네트라는 선명(船名)을 가진 바로 그 배에 스물두 살의 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사업 실패로 의지를 잃은 아버지가 죽고, 형마저 가게 문을 닫는 처지가 되자 궁핍에 찌든 그는 잠시 뉴욕과 영국 리버풀을 왕복하는 정기선에 두세 달 급사로 승선한 게 경력의 전부일 만큼 완전 초짜배기였는데, 그의 승선 목적은 포경선의 본업에도 걸맞게 오로지 돈을 버는 일이었지, 그 체험을 바탕으로 돌아와서 무슨 글을 쓰겠다는 식의 생각은 꿈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 항해를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지구상 가장 큰 동물인 고래를 채 서너 마리 잡기도 전에 그는 포경어업이라는 것이 너무도 공포스럽고 끔찍하다고 여겨 마침 식수를 보충하기 위해 남태평양 마르케서스 군도의 누쿠히바라는 섬에 기항함을 기화로 무단하선을 결행, 이 배 저 배를 떠돈 끝에 4년 만인 1844년 10월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빈 털털이로 귀국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몇 달간의 승선 체험을 근거로 두어 편의 식인종(食人種)을 소재로 한 짧은 글을 썼는데, 그게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자 다음에는 아주 본격적으로 고래잡이 소설인 《MOBY DICK》을 출간함으로써 오늘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등 최고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10대작가의 반열에 끼어들게 되었다(영국작가 서머세트 몸에 의함). 그는 다른 어부들과는 달리 고래를 잡는 대신, 고래보다도 더 거대하고 위대한 해양문학을 포획했던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독자 여러분들은 우정 그 작가의 이름을 거론치 않더라도 그가 누구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의 작가와 비슷한 또래의 스웨덴 청년 하나(노르달 그리그)가 역시 선원으로 나섰다(1921년). 처음부터 모험을 즐겨한 그는 무료하고 단순한 항해에서 별다른 흥미를 얻어내지 못 하자 중국에서 하선을 자청한 다음 그 몇 년 후에는 모스크바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스페인으로 하는 식으로, 내란 속의 각 나라를 20여 년 동안이나 떠돈 끝에 마흔 살을 갓 넘긴 1943년 드디어 영국공군 소속기로 독일 상공을 날다가 산화(散華)하고 말았다. 그런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작품이라면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것은 당연히 자신의 행동과 모험을 기록한 《배는 제 길을 간다》였던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로드 짐》《태풍》《나시서스 호의 검둥이》《청춘》 등 일련의 해양소설을 쓴 영국작가 J. 콘래드나, 《인간의 대지》를 비롯, 《남방 우편기》《야간비행》《싸우는 조종사》 등 일련의 항공소설을 쓴 생텍쥐페리 등 작가가 종사한 직업이 각각 무엇인가도 여러분들은 쉽게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이다.
● 서재를 박차고 모험의 길로 들어선 작가들
근대 들어 모든 장르를 통틀어 우위를 차지한 소설문학의 출발은 뭐니뭐니해도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그 근간이었다. 누가 그걸 부정하랴. 그리하여 적군의 포성이 가까워지는데도 아랑곳 않고 서재에 틀어박혀 독서에 탐닉한 A. 프랑스나, 마찬가지로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오로지 크로와세 별장에만 칩거한 플로베르의 문학이야말로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는 없다고 비평가 알베레스는 꼬집는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양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사회가 복잡다기해지면서 그 같은 문학적 순교(殉敎)는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리하여 앞서의 허만 멜빌이나 생텍쥐페리 말고도 독일의 융거․영국의 T. E. 로렌스․미국의 헤밍웨이․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등이 스스로 목숨을 건 모험의 대열에 합류하였다고 알베레스는 《20세기 지적모험(知的冒險)》에서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흔치 않은 모험가들이 생산해낸 작품이야말로 곧 체험문학의 진수(眞髓)이며, 빛나는 행동주의 문학의 전범(典範)이라 단정 짓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 신문사에서 공모한 해양 소재의 응모작을 훑어보던 중 필자는 매우 기가 막히고 당치도 않은 몇 가지 묘사(혹은 용어구사)를 발견하고 이만저만 경악하지 않았다. 키(혹은 조타륜)를 핸들로, 선수(船首)를 기수(機首)로, 스크루를 프로펠러로, 그리고 바닷새를 철새로 잘못 기술한 것 등이 그 예다. 왜 이 같은 오류(誤謬)가 횡행하는가. 그들 설익은 작가 지망생들이야말로 저 신비스러우면서도 외경(畏敬)스러운 바다라는 대자연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상상력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평생을 두고 배를 탔다. 멜빌은 호주머니에서 은화(銀貨) 대신 먼지가 풀썩거릴 때면 바다로 나가는 게 옳다고 실토하였거니와 나는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한 소재채집을 목적으로 선원수첩(船員手帖)을 활용했다. 가령 단편소설 《바이킹의 후예》는 대서양 북위 67도선 상의 아이슬란드를 방문한 견문록(見聞錄)이며,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어느 섬 원주민들의 결혼 풍속도를 그린《토판》 역시 참치 선망선에 편승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추크라군에서 얻어 들은 리포트인 것이다. 그렇게 몇 달간 바다를 다녀오면 나는 반드시 몇 편의 글을 쓸 수 있었다.
따라서 틈만 나면 불쑥불쑥 항해 길에 오른 나의 문학적 배경은 당연 바다일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 나에게 불현듯 문학세계로의 접근을 가능케 한 남인도양 날개다랑어 어장이야말로 나에게는 치열한 문학수련장이자 다시없는 문학적 모태(母胎)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작가 약력
●해병대 사병 복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2년, 1978년 선장으로 승선
●창작집 『허무의 바다, 『인간의 욕망(전3권)』,
『가블린의 바다』(제2권) 외 다수
●제19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前 한국해양문학가협회 회장
특별기고
해운특성화 로스쿨제도에 대하여
김 인 현
(前 선장․부산대 법과대학 교수)
I. 서
오랜 논란을 거쳐 우리 나라에서도 내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제도가 도입된다. 필자는 현재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해운특화 로스쿨의 주임을 맡아서 여러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필자는 또 해운인이기 때문에 해운특화와 해운계가 어떻게 상호보완 관계에 놓일 수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하여온 바도 있다. 이제 곧 첫 관문인 리트(LEET)시험이 8월로 다가왔다. 많은 분들의 문의도 있고 하여 로스쿨 제도 및 필자가 몸 담고 있는 부산대학교 로스쿨에 대하여 몇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II. 새로운 제도의 특징
새로운 법조인 양성제도는 현재의 법학교육 및 사법시험제도와 여러 점에서 다르다.
우선, 로스쿨을 졸업한 자에게만 시험의 응시기회가 주어진다. 현재의 제도하에서는 누구나가 사법시험을 거쳐서 법조인이 될 수 있다.
둘째, 로스쿨을 졸업하면 사법연수원에서 2년 교육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변호사가 될 수있다. 현재는 사법시험을 합격하고서 2년의 연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셋째, 로스쿨은 전국 20개 대학에 설치되어 입학할 수 있는 학교가 제한되었다. 이것은 현재 모든 법과대학에서 법학교육을 시키는 제도와 달라진 점이다.
넷째,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비법학도에게도 문을 열어두었다. 비법학도가 30%이상 반드시 선발되어야 한다. 로스쿨이 설치되는 대학에는 학부과정에서 법학과가 폐지된다. 그렇지 않은 대학은 법과대학이 존재한다. 따라서, 장차 로스쿨에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자와 다른 학부출신들이 공존하게 된다.
다섯째, 전문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각 대학마다 특화하는 전공을 두게 되었다. 이것은 현재 일반적인 모든 법학과목을 전공하는 학부의 과정과 다르다.
III. 우리 나라 해운 법률시장 현황
그간 우리 나라는 해운이 세계6위 규모, 조선이 세계1위 규모, 무역이 10위 규모로 경제력이 외형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해운을 뒷받침하는 해운 법률문화는 이러한 성장과 함께 발전하지 못하여왔다. 이러한 더딘 발전은 해운과 관련하여 영국법이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보험도 영국법을 위주로 관행화되어왔던 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해운의 국제적인 성격상 외국인들이 해운시장에 개입되기 때문에 중립적인 영국법이 선호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970년대 해양대학을 졸업한 송정관 변호사가 해상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면서 그 신기원을 열었다. 여전히 영국의 변호사에 의존하던 한국의 해운관련 법률시장은 유록상, 채이식 변호사를 비롯하여 김&장, 한미등 대형 로펌의 해상변호사들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업무영역을 넓혀나가기 시작하였다. 해상법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법학교수진들은 1970년대부터 배병태, 임동철, 박용섭 교수등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한 해기사들을 한 축으로, 서돈각, 손주찬, 송상현등 일반 법학출신 교수들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독자적인 해상법학을 이 땅에 정착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세대 변호사와 학자들이 등장한지 30년이 지나 2세대가 활동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우리 해상법 교수와 해상변호사의 규모는 해운산업의 확장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다. 해상법(혹은 해사법) 교수의 숫자도 10명 남짓으로 정체상태이다. 해상변호사의 숫자도 또한 30-40명 선에서 정체상태이다. 대형 로펌에서조차 해상변호사는 첨단을 걷지못한다는 이유로 충원이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국으로 향하는 해운시장의 법률 수요를 차단하고 한국에 정착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해운산업의 확장과 조선 산업의 발전은 법률수요의 확대를 가져올 것임에도 해상변호사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해상법 교수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법률 수요가 영국계 변호사의 힘에 의존을 한다든지 아니면 수요가 잠재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해운에서 발생하는 법률수요를 한국에서 일정한 비율로 처리하기 위하여는 우리 해운관련 법문화의 수준이 일층 업그레이드되어, 수요자들이 한국법정을 선호하게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법정이 선호되기 위하여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i) 양질의 우수한 해상변호사가 배출되어야 한다. (ii) 우리 나라의 해상사건관련 법원의 판결과 중재판정의 내용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iii) 이러한 한국법의 내용이 잘 정리되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 (iv) 업계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로 한국법정을 선호하여 주어야 한다. 부연 설명하자면, 양질의 해상변호사에는 적절한 비율의 해기사 출신 혹은 해운업계 출신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해상사건은 특수한 해상의 사실관계를 잘 알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질의 해상변호사가 변호사가 되어 우수한 판사와 같이 좋은은 판결을 이끌어내고, 법학교수나 연구원들이 좋은 논문을 작성하고 우리 나라의 판례를 정리하고 외국에 소개하면서 한국 법정의 우수성과 안정성을 한국 시장은 물론 외국 시장에도 알려야 한다. 업계에서도 영국 일변도의 법률문화에서 우리 나라에서 처리가 가능한 것은 한국에서 처리되도록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필자는 위와 같은 생각을 오랫동안 하여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0년 경부터 한국 P&I 클럽이 생겨서 법률 보험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채이식 교수와 같은 해상법 학자가 국제해사기구의 법률위원회 의장이 되어 한국해상법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IV. 해운특화 로스쿨 입학과 교육
이러한 찰나에 마침 2009년부터는 로스쿨이 출범하게 되었고 나아가 해운과 물류에도 특화하는 로스쿨이 생겨났다. 부산대학교와 인하대학교는 금융, 해운통상과 물류에 각각 특성화하겠다고 발표한 바있다. 부산대학교의 해운통상 특화는 해상변호사 배출을 목표로 한다(전체 정원에서 몇 명이 특화과정의 학생이 되는 지는 정한 바가 없다). 이외에도 국제거래를 특화하는 학교도 있기 때문에 몇몇 학교에서도 해상변호사가 배출될 것으로 생각된다(반드시 해운특화 로스쿨에서만 해상변호사가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특화 학교에서는 그 분야를 더 강조하여 교육하므로 전문화된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해운업계에게는 호재중의 호재임에 틀림없다. 해운계 출신들은 새로운 제도하에서 현재의 사법시험에 비교하여 상당히 쉽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제도를 잘 활용하면 해운계출신 변호사의 양산체제가 구축될 수도 있다. 새로운 로스쿨 제도는 특히 사회과학에 관심과 적성이 있는 해기사 출신이나 해운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신천지를 열어주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스쿨에서는 입학이 곧 변호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물론 3년 교육 후에 변호사 시험을 거쳐야하지만, 70%정도의 합격률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입학 시험이 곧 변호사 자격 시험이 되는 것과 같다. 입학시험에서의 과목은 법학과목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법학적성검사(LEET), 영어, 학부의 성적으로 1차 시험이 구성된다(1차 시험에서는 부산대학교는 정원 120명의 4배수인 480명을 선발함)(1차 원서접수 2008.10.6.부터). 그리고, 2차 시험에서는 자기소개서 제출, 면접, LEET 논술로 구성된다. 해운에 특화하는 학교에서는 해운을 특화한다고 하였고 특화담당 과목과 교수가 있기 때문에 학생이 없을 수가 없다. 따라서 2차 시험에서는 가능하면 해운관련배경을 가지는 학생들이 입학하도록 합리적인 배려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어떻게 1차 시험을 통과할 수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법학적성검사는 학원 등을 통하여 점수를 올려야할 것이고, 영어는 평소에도 꾸준히 준비를 하였을 것이므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부산대학교는 토익 750점 이상만이 입학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진다. 면접시험에서 해운관련 기관에서의 경력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해기사로서 1항사 1기사 정도의 경력이면 해상변호사가 되기에 만족스런 해기 경력이라고 생각된다. 해운관련 기관에서 근무한 경력도 해상변호사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 고려가 될 것으로 본다(입학시험 일정 등은 부산대학교 홈페이지 참조바람).
입학하고 나서도 해운특화 학교로서 부산대학교는 민법, 형법등 일반 기초법률과목 이외에 해상법(영어강의), 해상보험법(영어강의), 국제해운물류법(영어강의) 그리고 실무적용 과목을 배우게 된다. 3학년이 되면 해운회사, 해상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실무교육을 한다. 부산대학교는 법무법인 세경, STX 팬오션, 한국 P&I, 한국선주협회, SK 해운, 한진SM, 중앙해양안전심판원 등과 협정체결을 통하여 변호사 실무교육체제를 갖추었다.
V. 장래의 수요
현재 40여명에 이르는 해상변호사 규모에서 예컨대 한해 약 5명 정도의 신규인력은 충격없이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장차 해상변호사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는 상당하다고 본다. 선박회사, 보험회사, 조선회사 등에서 사내변호사가 필요할 것이다. 대형선사에서 법무보험담당 직원을 로스쿨에 공부시켜 다시 사내변호사로 근무하게 하는 방안도 나올 것으로 본다.
예컨대 한해 5명의 해상변호사가 배출된다면, 10년이 지나면 50명의 해상변호사가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현재 해운계출신의 해상변호사가 1-2명에 지나지 않는 현실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법원의 판사, 해상변호사, 국토해양부의 공무원, 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관, 해운회사의 사내변호사, 대학의 교수들로서 자리하면서, 한국해운과 물류업계, 조선업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하드웨어적으로 우리 나라 해운과 조선산업의 성장은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해운조선 관련 법률분야까지 성장하여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러 준다면, 이는 더욱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없다. 이제 우리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상선대학 출신 해상변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젊은 인재들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해기사 출신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해운특화 로스쿨에 진입하게 되면,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해기사들이 배출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장차 수십년 동안 이 분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海技 직업의 매력화도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를 비롯한 39명의 교수들은 부산대학교 로스쿨이 해운특화 학교로서 세계유수의 해운특화 로스쿨과 경쟁할 수있는 체제의 구축에 노력하고있다. 특히 이번 가인가에서 서울대학교 다음으로 많은 120명의 정원을 배정받음으로써 동일하게 120명을 배정받은 고려대, 연세대 등과 최고의 로스쿨을 다툴 수 있는 유리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부산대학교 해운특화과정은 선장출신으로서 실무경력이 있는 필자를 비롯하여, 해운업계에서 선박운항, 해상보험, 해운경영분야에서 저명한 분 3분을 겸임교수로 모시고 있고 곧 실무에서 해상법 교수를 한명 더 초빙할 예정이다. 그리고, 해상법 연구과정 등도 로스쿨에 둘 예정이다. 또한 학문으로서의 해상법이 또 필요하기 때문에 박사과정도 그대로 존치한다. 이번 6월 12일 부산대학교에서 개최되는 국제해상법학술대회에 세계 해상법의 중심지인 영국의 사우스햄턴 대학의 갸스킬 교수가 와서 발표도 하고 부산대학교 해운특화 로스쿨의 출발도 축하하여 준다. 이 자리가 우리 나라 해운특화 로스쿨의 큰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기사 출신은 물론이고 해운 물류 조선분야에 종사하는 훌륭한 인재들이 로스쿨에 입학하여 해상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해운특화 로스쿨이 어느 정도의 축복과 선물이 될 것인지는 해운업계와 그 종사자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고 지원하는 가에 달려있다. 해운특화 로스쿨은 이미 대강의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공모안내
해사안전 정책제안 공모요강
국토해양부에서는 유관단체와 공동으로 해사안전 분야에 종사하시는 임직원 및 현장근무자의 해사안전정책에 대한 참신한 정책제안을 공모합니다. 해사안전 업무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의 적극적 참여를 바랍니다.
2008. 8. 28
국토해양부장관
◈ 공모명칭 : 해사안전 정책제안
◈ 공모기간 : 2008년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 제안분야 : 해사안전정책 전반에 관한 사항
●해상교통안전 분야 : 항로, 정박지 등 수역시설의 안전, 관제, 해양교통시설, 사고예방 관련 시스템 및 제도개선
●선박안전 분야 : 선체, 기관, 안전설비, 안전관리시스템 등 선박관련 Hardware 및 Software 개선사항
●인적과실방지 분야 : 해양사고 원인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운항과실, 무리한 운항 등 인적과실 방지대책
◈ 제안내용
●해양안전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정책제안, 제도개선 또는 기발한 아이디어
●기존 수행중인 업무의 효율을 제고하거나 업무수행자의 근무분위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실무적 제안
●해사안전 관련 범국민 대상 또는 국가적 규모의 이벤트 켐페인 또는 행사 아이디어
●해사안전 R&D 관련 제안(선진형 해사안전 시스템, 첨단 응용기술 개발), 해사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 방안 등
●기타 해사안전 조직, 제도, 예산 등과 관련 개선제안 등
◈ 공모자격 : 국토해양부 직원, 관련 업․단체 임․직원 및 해상근무자
◈ 접수처 : (427-712)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 88번지
정부과천청사 4동 국토해양부 해사안전정책과
(전화 : 02-2110-8585, e-mail : feelling@mltm.go.kr)
◈ 발표 : 당선자는 2008년 11월 10일 개별통지 및 국토해양부(www.mltm.go.kr) 홈페이지 게재
◈ 우수제안자 포상(상장 및 금액상당 상품권 수여)
●대상(1명):국토해양부 장관상(100만원)
●우수상(4명):한국선주협회장상, 한국해운조합회이사장상,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상, 한국선급회장상(각 50만원)
◈ 응모요령
※ 제출하는 양식은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으며 A4용지 5매 이내로 작성 요함(첨부자료가 있을 경우 본문 포함 10매 이내로 작성)
※ 기타 자세한 문의사항은 국토해양부 해사안전정책과(02-2110-8585)로 문의하여 주시면 상세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해사신간
『세상을 바꾼 항해술의 발달』
청소년에게 바다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해양과학문화 대중화를 위해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기획․제작한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별 찾기에서 인공위성항법까지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항해술의 과학과 역사를 담고 있다. 고대인과 콜럼버스․마젤란․쿡 선장 등이 항해할 때 하늘의 천체와 바람과 해류 등 자연현상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나침반․자이로컴퍼스․시계․레이더가 왜 항해에 필요한지 그 기초 원리를 풍부한 삽화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풀이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방위를 파악하는 방법, 배의 속도를 측정하고 물의 깊이를 재는 방법, 해도와 나침반으로 배의 현재 위치를 아는 방법 등 지난 5,000년 동안 발달해온 항해술의 원리를 배움으로써 과학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별빛과 새에 의지하며 뱃길을 찾던 고대 항해술에서 추측항법․쌍곡선항법․GPS인공위성항법․잠수함의 관성항법까지 지난 5,000년 동안 발달해 온 항해술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준다.
목포해양대학교 김우숙 교수와 해양연구원 이민수 책임기술원이 공동 저술했다.<김우숙 이민수 지음/지성사/8,000원>
주강현 박사의 『독도 견문록』
우리가 우리 것으로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없어져 버림이 낫지 않을까? 더 경망한 생각이다. 해양문명사가로 통하는 주강현 씨의 근저(近著) 『독도 견문록』에 나오는 안개에 잠긴 독도의 한 장면이다. 해양사와 민속학, 문화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독도 문제를 국지적인 한일 관계사의 맥락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고, 해양 제국의 논리가 적용된 해양사의 문제로 본다. 저자에 따르면 독도가 세계에 리앙쿠르로 알려진 까닭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하여 멋대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의 와중에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편입시킨 일본의 행위 또한 여타 해양 제국의 약탈 수법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한 것이며, 기존의 역사적 연고권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이다.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울릉도에 할애함으로써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즉 누가 독도를 일상적인 생활 터전으로 삼았는가를 누차 강조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등의 고문헌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관련 신문기사들을 다수 발굴, 재정리하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1920~30년대 울릉도 풍경 사진, 시마네현 어민들의 강치잡이 사진, 러일전쟁 관련 자료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진들도 많다.<주강현 지음/웅진지식하우스/512쪽/2만5000원>
주제발표② l 제23차 해양사고방지세미나
서해안 개발에 따른 안전운항
위해요인 분석 및 대책(下)
정 대 율
(인천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
목차
Ⅰ. 서론
Ⅱ. 주요 항만의 현황 및 개발계획
Ⅲ. 선박의 안전운항 위해요소 및 대책
Ⅳ. 결론
Ⅲ. 선박의 안전운항 위해요소 및 대책
(2) 항해계기를 충분히 이용하여야 한다.
당직 항해사는 Radar 및 ARPA를 작동하고, 무중신호를 울리며, 항해등을 켜야 한다. 또한 VHF를 잘 청취하고, 불가피하게 상대선박을 호출하고자 할 경우에는 AIS 정보를 활용하여 해당 선박을 직접 호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부적절한 VHF교신은 피항조치의 시기를 놓칠 수 있으며, 주위의 다른 선박들과 충돌의 위험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3) 긴급 피항지를 선정해 두어야 한다.
선장은 항해계획 수립시 항해중 짙은 안개가 끼거나 낄 우려가 있을 경우 안개가 걷힐 때까지 인근의 안전한 장소에 투묘하여 대기할 수 있도록 긴급 피항지를 선정해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긴급 투묘중일 때에는 주기관은 준비상태(Stand-by)를 유지하여야 한다.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연안수역에서 통항선박이 제한된 시계 등 기상악회시 긴급 피항할 수 있는 수역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며, 향후 우리나라 연안수역에 대한 전면적인 관제가 실시될 경우 제한된 시계시 통항선박들의 긴급 피항 등을 유도한다면 선박의 안전운항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4) 안전한 속력으로 운항하여야 한다.
선박은 무중시 주기관을 준비상태로 두고 안전한 속력으로 낮추어야 한다. 안전한 속력을 지키는 것은 적절한 경계를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불가피하게 충돌할 경우 그 손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의 장점이 있다.
2.2 바람의 영향에 따른 안전대책
인천항 부근에서 관측된 바람의 상세는 기상청이 발간한 기상연보(1977~2006년)의 최근 30년간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름철에는 남남서(SSW)풍, 겨울철에는 북서(NW)풍이 탁월하며, 24시간 평균풍속은 3.1m/s로서 연간 평균 2.2~3.8m/s의 범위에 있다. 또한 월별 최대풍속은 서북서(WNW)풍, 25.7m/s이며, 순간최대풍속은 2000년 9월의 남남서(SSW)풍, 32.8m/s이고, 풍향별 빈도율은 북서풍의 빈도가 8.69%로 가장 높으며 북풍, 북북서풍과 함께 24.72%를 차지하고 있고, 이 방향에서 부는 바람이 서해안 항만에 접안된 선박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람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부두를 살펴보면, 인천항의 영흥화력발전소부두, 대산항의 현대오일뱅크, KNOC, 씨텍 및 삼성토탈부두 그리고 태안항의 태안화력발전소부두 등이 섬이나 방파제 등에 의해 보호됨이 없이 외해에 노출되어 있어 겨울철에 강한 북서풍이 불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천항 남항 및 신항의 부두들도 섬들에 의해 일부 보호되고 있으나 항로에 인접해 있는 부두들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부두에 접안중인 선박들은 기상청에 의해 기상악화가 예보될 경우 사전에 선박을 이안하여야 한다. 만약 기상이 악화된 후에는 예인선에 의한 지원이 불가능하고, 또한 어렵게 이안하더라도 도선사가 하선이 불가능하게 되어 선박의 이안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현재 해상교통안전법상 소형선박에 대한 선박의 출항통제는 이루어지지만 기상악화시 대형선박에 대한 안전조치는 선박소유자 및 해당 부두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2.3 선박의 출항통제에 따른 안전대책
해상교통안전법상 풍랑주의보(해상에서 평균풍속 14m/s 이상이 3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유의파고가 3m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이상이 발효되거나 시계가 제한될 경우 출항신고 선박의 총톤수, 길이 및 항해구역을 확인하여 출항통제선박에 해당될 경우 해당 선박의 출항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시계제한은 여객선의 경우 시정 1.0km 이내일 때, 여객선 및 어선을 제외한 선박은 0.5km이내일 때 출항이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규정된 출항통제기준에 따라 선박의 출항이 통제된 후 해제될 경우 어선 및 여객선이 동시에 집중적으로 출항하면서 해양사고가 발생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어선 및 여객선의 출항으로 인해 일반 화물선의 통항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VTS에 의한 통제방송 및 교육 등을 통해 출항시 위험요소들에 대해 설명하여 관습적으로 출항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제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출항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일반 화물선의 경우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실행가능한 한 운항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3. 위험물운반선 및 대형 광탄선의 안전대책
서해안에는 대산항의 현대오일뱅크와 인천항의 SK인천정유가 위치하고 있어 대형 유조선의 출입이 있으며, 2005년부터 KNOC에서 대산항에 대형 유조선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를 포함하여 비축기지로서 지상탱크를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표 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대오일뱅크와 SK인천정유의 가동율은 최근 3년간 대체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여기에 가세하여 KNOC는 금년 중순경부터 SK인천정유에 제공하기 위해 KNOC부두에 매월 초대형 유조선 2척과 8만톤급 유조선 8척을 접안할 예정에 있다. 또한 SK인천정유는 KNOC부두에서 대형 유조선이 일부 화물을 양하한 후 직접 SK인천정유부두에 접안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대형 LNG선 및 LPG선은 <표 1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천항 및 평택․당진항에는 약 2일에 1척씩 접안하고 있으며, 유연탄 운송은 <표 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흥화력, 당진화력, 태안화력 및 보령화력 발전소 등의 부두 건설 및 증설 계획에 따라 대형 광탄선의 입출항이 증가하고 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대형 위험물운반선 및 광탄선의 경우 다음과 같은 안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1 대형 LNG선에 대한 안전대책
(1) 항로상 안전대책
인천항 LNG부두의 입출항 항로는 그 폭이 600m이고, 수심이 12m로 준설되어 선박의 교행이 가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평택․당진항 LNG부두의 입출항 항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19호 등부표 부근에서 10m 등심선을 고려할 경우 항로 폭은 300m 정도이며, 5m 등심선을 고려할 경우 400m 정도로서 일방통항만이 가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또한 접근항로상 어선 및 어망이 산재되어 있다. 인천항 LNG부두의 경우 소래포구를 출입항하는 많은 연안어선이 제3항로, 영흥도 북쪽, 남장자서 및 시화호방조제로 둘러싸인 수역에서 조업하며 항로상에 [그림 2]과 같이 어망을 놓고 있으며, 평택․당진항 입출항항로의 경우는 풍도와 영흥도의 연장선상의 동쪽수역부터 입파도, 도리도 및 제부도를 잇는 선상까지의 수역에서 조업이 성행하며 항로상에도 어망을 놓고 있다.
이러한 대형 LNG선의 항로통항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충분한 항로 폭 및 수심을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고에 따른 피해 등을 고려하여 주간에만 입출항하도록 하며, 충분한 항로 폭을 확보한 경우에도 가능한 한 일방 통항이 이루어지도록 VTS에 의한 관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VTS는 대형 LNG선으로부터 입항 및 출항보고를 접수한 경우 모든 선박이 인지할 수 있도록 VHF를 통해 해당 선박의 통항정보를 안내방송하고, 필요시 대형 LNG선에게 항로상 주위선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항로상 조업중인 어선에 대한 단속, 어망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제거뿐만 아니라 비상시 긴급지원 등을 위해 Escort Tug를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 강풍에 대한 안전대책
대형 LNG선은 흘수가 낮은 반면에 풍압면적이 넓다. 즉, 138,000CBM의 선박은 풍압면적이 8,207㎡이고, 270,000CBM의 선박은 9,700㎡ 정도가 된다. 이로 인해 선박은 입출항항로에서 뿐만 아니라 부두에 접안하여 하역작업중에도 바람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겨울철 북서계절의 영향으로 기상 악화가 예상될 경우 사전에 선박을 이안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3) 부두 접근시 안전대책
부두 접근과정에서 주기관 또는 타기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그리고 평택․당진항의 제23호 등부표 지점과 같이 부두 접근항로상 수조각이 커 조류에 의한 영향이 예상되는 곳에서 선박의 좌초 및 조류에 의한 압류를 예방하기 위해 Tail Tug를 배치하여 선속이 6노트 이하로 낮추어지는 시점부터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4) 인천항 LNG부두 출항시 안전대책
인천항 제3항로에서 출항하는 대형 LNG선은 동수로를 따라 인천항을 입항하는 선박과 북장자서 부근의 Precautionary area에서 교차상태로 조우하게 되며, 또한 인천항을 출항하는 선박과 서수도 초입에서 교차상태로 조우하게 된다. 그러므로 해당 수역에서는 해상교통안전법상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의 항법 등을 적용하여 항해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3.2 초대형 유조선 및 대형 광탄선에 대한 안전대책
(1) 만선시 안전대책
대산항에 입출항하는 300,000DWT급의 초대형 유조선(VLCC)과 영흥화력, 당진화력, 태안화력 및 보령화력에 입출항하는 광탄선의 제원은 <표 12>와 같으며 이로 인해 만선시에는 조류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으며, 공선시에는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서해안의 강한 조류의 영향으로 만선시 계류삭에 강한 장력이 걸리며, 부두가 조류의 흐름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 영향은 더욱 커져 계류삭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1999년 9월 28일 파나마 국적 광탄선 현대 스피리트호(총톤수 68,000톤급)는 유연탄 117,790톤을 만재한 상태에서 보령항 제2부두에 접안하여 작업 중 선미 우현 측으로부터 흘러오는 약 3노트의 강조류에 의해 선미측에 연결한 계류삭이 과도한 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풀려나갔고, 그 결과 선박은 보령화력부두 끝단 북서방 약 750m 지점 해역(36-24-40N, 126-29-00E)의 암초에 선박의 화물창과 기관실의 선저부가 좌초되었다.
먼저 현대 스피리트호와 같은 좌초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강조류시에는 예인선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둘째 계류삭을 조절할 때는 선수와 선미에서 동시에 계류삭을 조절하여 특정 계류삭에 강한 장력이 미치는 것을 예방하도록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장 및 1등 항해사는 화물의 하역 초기에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류삭에 걸리는 장력을 줄이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선박의 배수량을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1등 항해사는 밸러스트펌프의 가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하역 초기부터 중력에 의한 밸러스트 적재작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만선상태의 본선은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부두에 접안하였으며, 이때 본선의 계류삭은 최대의 장력이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만약 화물의 양하량과 밸러스트 적재량이 거의 같을 경우 본선의 흘수변화는 없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조석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부두에서는 매 6시간마다 계류삭을 풀어 주었다가 감아 들이는 작업을 예인선의 도움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각 계류삭에 미치는 힘에 불균형이 발생할 경우 특정 계류삭에 강한 장력이 미치게 되고, 그 결과 계류삭이 풀리거나 절단이 되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특히, KNOC부두는 VLCC을 접안할 계획에 있다. 대상 해역이 강조류 해역임을 감안할 때 계류삭은 충분한 파단력을 보유한 재질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 부두의 전용선박으로 건조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VLCC는 42mm의 wire rope가 비치되어 있어 해당 부두에 접안하기 위해 기존의 wire rope를 교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므로 접안가능한 조류의 세기를 정하여 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또한 조위변화로 인해 특정 계류삭에 집중하중이 걸리지 않도록 사전에 계산된 시간간격으로 계류삭의 장력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로 대산항 현대오일뱅크의 SBM에 접안하는 VLCC는 주로 조류의 영향을 받아 선수가 조류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강한 바람이 불 경우 선박의 선수는 조류와 바람의 합성벡터 방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선체가 조류방향으로 원활하게 향할 수 있도록 Loading Master의 지휘하에 매 6시간 마다 Tail Tug의 지원을 받으며 선체를 선회시키며, SBM과 VLCC의 선수를 연결한 계류삭 2개에 의해 선박을 지탱하고 있다. 또한 만재상태의 VLCC가 사리 때 SBM에 접안한 경우 계류삭에는 최강조시 약 80톤 이상의 장력이 걸린다. 만약 어떠한 경우도 Shock Load가 100톤 이상 걸릴 경우 계류삭의 Core가 손상되어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므로 계류삭은 교체하여야 한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때문에 SBM에 접안하는 VLCC는 필요시 언제든지 주기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하며, 접안중에는 VLCC의 선미에 Tail Tug가 배치되어 지원하고 있다. 또한 SBM에서도 하역 초기에는 본선의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밸러스트 적재작업을 요구하고 있다.
(2) 접근항로상 안전대책
대산항 입출항 항로는 도선점에서 SBM까지 약 16마일에 해당되며 장안퇴와 태안의 육안과의 사이에 좁게 형성되어 있다. 이 수역에서는 조류가 강하여 원유를 만재한 상태에서 입항하는 VLCC가 주기관 및 조타기의 고장이 발생할 경우 짧은 시간이 조류에 압류되어 좌초될 수 있다. 특히, 단일선체구조의 대형 유조선이 좌초할 경우 대형 해양오염의 발생 위험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VLCC의 입항시 신도타서의 도선점으로부터 SBM 또는 KNOC부두까지의 구간에서 Escort Tug에 의한 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VLCC 및 대형 광탄선은 대형 LNG선과 같이 적절한 VTS에 의한 관제가 이루어져야 하며, VLCC 및 대형 광탄선으로부터 입항 및 출항보고를 접수한 경우 모든 선박이 인지할 수 있도록 VHF를 통해 해당 선박의 통항정보를 안내방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특히, 보령항은 VTS에 의한 관제가 이루어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항로를 포함한 항로부근에 어선 및 어망이 산재되어 있어 선박의 안전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해양경찰에 의한 항로상 조업중인 어선과 어망에 대해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향후 VTS에 의한 관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태안항의 예인선정계지 개발
현재 태안항의 접이안작업을 지원하고 있는 예인선의 정계지는 대산항 본항의 안쪽에 위치한 삼길포이며, 이곳은 태안항으로부터 약 15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기상악화로 태안항에 접안중인 선박을 이안하고자 할 경우나 접안중인 선박에 화재가 발생한 경우 상당한 시간(약 1시간 ~ 1시간 30분 정도)이 소요되며, 즉각적인 예인선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태안항의 적당한 위치에 예인선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수심 약 5m가 확보된 예인선의 정계지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해 12월 허베이 스피리트호 충돌사고시에도 태안항에 예인선이 정계되어 있었다면 조기에 효과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태안항은 부두가 북서풍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겨울철에 수시로 접안중인 선박을 이안하여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그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선박뿐만 아니라 부두의 손상이 우려되고 있다.
3.3 대산항의 조위측정 필요
대산항은 서해안의 다른 항만과 같이 게류(slack water)에 선박을 접안하고 있다. 이때 계류가능한 시간대는 표준항인 인천항의 조석표에 의존하여 추정하여 산정하여 왔다. 최근에 대산항의 조위표는 발행되고 있으나 조류표가 발행되지 않고 잇다.그러나 대산항은 대호방조제 및 본항 건설, 장안퇴의 모래채취 그리고 인천항, 평택․당진항 및 당진화력발전소 등의 항만개발로 조류의 방향에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석표와 인천항의 조류표를 근거로 조류의 세기 등을 추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산항의 SBM 및 KNOC부두에 접안하는 VLCC의 경우 흘수가 20.5m으로 조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고, 또한 제품유 및 석유화학제품을 운송하는 위험물운반선이 자주 입출항하고 있어 위험화물운반선에 의한 해양사고 발생위험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 연안 중 VLCC가 입출항하는 여수항, 울산항, 인천항 등은 VLCC가 접안하는 인접해역에 검조소가 존재하여 조류 및 조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산항 KNOC부두는 조류의 영향을 특히 크게 받으며 선박의 접이안 및 예인선의 배치 등이 이루질 것이므로 국립해양조사원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해당 수역에서의 정확한 조위표뿐만 아니라 조류표의 발행은 매우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3.4 적절한 정박지 확보
현재 대산항 SBM에 접안하기 위해 대기하는 VLCC와 태안항․당진화력에 입항하기 위해 대기하는 대형 광탄선은 입항을 위해 도선점에 부근에 도착한 후 조석대기 등으로 대부분 대산항 입출항항로 입구 부근에서 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 선박이 정박한 장소는 공식적으로 정박지로 지정된 장소가 아니며, 인천항 및 평택․당진항을 입출항하는 선박의 항로와 근접한 거리에 위치하여 정박대기중 상태로 이들 통항선박들과 충돌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대산항의 항계 안의 A1 정박지는 2800m x 900m의 수역에 VLCC가 정박할 수 있는 수심을 확보하고 있으나 인접한 거리에 장안퇴가 자리하고 있어 VLCC의 선장들이 정박을 꺼려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보며, 간혹 선박들은 대산항 항계밖 제6호와 제7호 등부표 사이의 수역에 정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VLCC 및 대형 광탄선 등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정박지를 신도타서 부근의 일정 해역에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 경우 해도에 정박지가 명시적으로 표시되게 되어 인천항 및 평택․당진항을 입출항하는 선박의 선장 및 항해사들은 정박지를 해도에서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되어 지정된 정박지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항해하게 될 것이고, 지정된 정박지에 정박한 선박들 또한 보다 안전하게 정박당직에 임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3.5 해양오염 피해예방대책
대산항이 위치하고 있는 태안반도에는 107개 무인도를 포함하여 118개의 섬들이 산재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해안을 이루고 있는 연포,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 등 30여개의 해수욕장들이 분포되어 있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1978년 10월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충청남도, 전라북도 및 전라남도에는 갯벌, 해수욕장, 양식시설 및 섬들이 <표 13>과 같이 분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난 해 12월에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해양오염사고에서 본 바와 같이 해수욕장과 갯벌의 피해에 따른 관광산업 및 환경피해와 양식장 개수로 인한 주민생계 피해가 막대할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고려한 유출기름의 확산프로그램 개발
기름의 확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은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오일 붐을 설치하여 기름을 포획하고 이를 해상에서 회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 당시 조류 및 바람의 방향 및 세기를 고려하여 유출된 기름의 흐름방향을 예측하여 적절한 지점에 오일 붐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서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조류가 강하므로 유출된 기름의 확산에 대해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서해안 전역에 대해 유출기름의 확산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이 필요하며, 개발된 프로그램은 항만개발 등을 고려하여 최신화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2) 전문가 pool의 구성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조선산업국, 세계 8위의 해운산업국 및 세계 10위의 수산물 생산국으로서 해양수산 및 조선분야에 많은 전문가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관할해역에서 발생한 해양오염사고에 대하여 연안국으로서 사고 선박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해양오염사고 발생시 초기 방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하여 학계, 연구기관, 해기사, 도선사, 조선 및 정유업계, 항만관계자 그리고 유관단체, 등 전반에 거쳐 전문가 pool을 구성하고, 해양사고 발생시 전문가 pool에서 적격자를 선정하여 적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분야별 전문가들이 주기적인 모임 및 발표를 통해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개발하고 그 대응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다양한 장비의 개발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의 경우에는 파공된 화물창에서 원유가 중력에 의해 유출되고 있었으나 기상악화로 인해 원유가 파공된 위치까지 유출될 때까지 거의 초기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기상악화시에도 방제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방제선 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며, 선체 파공시 대응할 수 있고 조류가 강한 서해안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오일 붐을 포함한 다양한 장비의 개발 및 배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4) 다양한 비상대응시나리오 개발 및 교육훈련 필요
선박에 의한 해양오염사고는 기상 및 해상상태뿐만 아니라 발생장소 및 시간, 보유장비 및 동원가능한 인원 등에 따라 그 대응방법이 다양하다. 그러므로 기상악화시 대응을 포함하여 다양한 비상대응시나리오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터미널 종사자 및 인근 지역주민에 대해 해양오염사고시 대응방법에 대해 교육훈련을 시키며, 이들이 참여한 비상대응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여 비상대응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5) 인접국가간 지역협력체제 구축 강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양오염사고시 초기 방제가 매우 중요한다. 그러므로 인접한 중국 및 일본뿐만 아니라 싱가폴 및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평소 오염방제기술 및 장비에 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비상상황 발생시 상호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신속한 방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4. 기타 안전대책
4.1 해상교량 건설에 따른 안전대책
서해안 주요항만에서는 영종대교, 서해대교 및 압해대교 등이 완공되었고, 현재 인천대교 및 목포대교가 건설중에 있으며, 장래 인천항의 제3연륙교(청연대교), 군산항의 군장대교 그리고 전라남도의 300여개의 유인섬들과 육지 또는 섬을 연결하기 위한 여러 교량들의 건설이 예정되어 있어 교량의 건설이 선박의 통항에 또 다른 위험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현재 목포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목포항 용두부근 수역은 파일설치공사가 진행중이며, 매일 아침 작업자를 운송하는 통선들이 용두와 북항개발지구간을 운항하며 항로를 횡단하고 있고, 또한 부선을 선미예인하는 예부선의 통항이 잦고 있다. 이로 인해 매일 이른 아침 10여척의 여객선이 동시에 출항하는 피크시간대에는 용두 부근 수역에서 해양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항만 및 주요 항로를 횡단하는 해상교량의 건설을 계획할 경우에는 해당 항만의 장래 개발계획과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확보하기 위해서 해상교량의 건설 전후뿐만 아니라 건설중 선박의 안전운항대책이 포함된 선박의 통항안전성 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4.2 도등 설치
당진화력발전소 부두의 경우 제1부두 건설시 지향등(Directional Light)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향등은 항로중앙에서 일정 거리이상 벗어나야 압류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점이 있으며 당진화력발전소 부두의 접근 항로에서는 횡방향 조류의 영향으로 압류될 위험이 크다. 이에 제2부두 건설시 지향등보다 도등(Leading Light)을 설치하는 것이 안전한 통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어 도등의 설치를 제안하였으며, 이를 반영하여 설치 운영하고 있다. 평택․당진항의 접근항로에도 당진화력발전소 부두와 같이 INI Steel의 육지에 지향등이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제19호 등부표 구간에서 항로 폭이 좁고 창조류시 제21호 등부표와 제23호 등부표 사이의 구간에서 조류에 의해 좌측의 천소에 좌초될 우려가 높으므로 지향등보다 도등을 설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4.3 영산강 하구둑 개방에 따른 안전대책
목포항의 경우 여름철 홍수 조절을 위해 영산강 하구둑을 개방할 경우 대불부두에 접안중인 선박의 계류삭에 강한 장력이 걸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인근 해역에 정박대기중인 선박은 닻줄이 끌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산강 하구둑 개방시에는 그 사실을 전 선박에게 알려주어야 하며, 정박중인 선박은 닻 끌림에 주의하여야 하며, 대불부두 접안선박은 필요시 예인선의 지원을 받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4.4 관공선의 VHF 청취 및 항법 준수
운항중인 모든 선박은 반드시 VHF 채널 16을 청취하여야 하며, 이에 추가하여 개항에 입출항고자 할 경우 해당 항만의 지정된 관제주파수(Working Channel)를 청취하는 것은 강제사항이다. 개항의 항계 안 및 부근에서는 항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세관정, 도청지도선, 어업지도선, 해양경찰의 경비정 및 해군의 함정 등 다양한 관공선이 운항하고 있으며 이들 관공선들은 항로를 통항하는 일반선박과 같은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관공선들이 업무의 특성 등을 사유로 반드시 준수하여야 할 VHF. 채널 16과 각 항만의 관제주파수(Working Channel)의 청취를 이행하지 않거나 항법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해상교통관제실 및 다른 통항선박들과의 원활한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해양사고의 위험이 높고 통항 선박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관공선은 개항의 항계안에서 통항 중 반드시 VHF. 채널 16과 각 항만의 관제주파수(Working Channel)를 청취하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규정된 항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Ⅳ. 결 론
서해안은 인천항 등 8개의 개항이 자리하고 있고,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며 태안해안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수산양식이 발달되어 있다. 또한 이들 항만에서는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하고, 인천, 황해 및 새만금․군산 경제자유구역 등이 포함되어 있어 최근 항만시설 개발 및 대형교량 건설이 진행되고 있거나 계획되는 등 서해안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형 LNG선, VLCC, 대형 광탄운반석 및 예인선의 운항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앞에서 언급한 선박의 안전운항 위해요인과 이에 대한 대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서해안은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낮은 곳이 많으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섬들 사이로 항로가 설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항로상 수조각이 큰 수역 및 천소에서의 선박좌초에 주의하여야 하며, 만조시에 선박의 통항이 집중되면서 항로상에서 입출항선박간에 교행이 수반되고 불가피하게 추월이 이루어지고 있고 등부표의 확인이 어렵거나 이동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선장 및 항해사는 이에 주의하여 항해하여야 한다. 또한 항로의 수심은 조류, 조력발전소의 가동 및 하구둑 개방 등으로 인해 변화할 수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수심을 측량하고 필요시 준설을 실시해야 한다.
둘째 서해안은 안개의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겨울철에는 3한 4온의 특성을 보이며 탁월풍인 북서풍이 강하게 분다. 그러므로 선박은 무중시 안전항해에 주의하여야 하며, 강한 북서풍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는 부두에 접안중인 선박들은 기상악화가 예상될 경우 사전에 선박을 이안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또한 안개 또는 기상악화로 선박의 출항이 통제된 후 해제될 경우 어선 및 여객선이 동시에 집중적으로 출항하면서 해양사고의 위험이 높으므로 이에 대한 통제와 지도가 필요하며, 일선 선장 및 항해사들이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실행가능한 한 운항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서해안은 항만개발 및 수도․경기권의 수요급증으로 모래 및 골재운반용 예부선의 운항이 활발하고, 최근 대형 교량의 건설과 선박조선소의 호황으로 예인선에 의한 대형 크레인 및 선박블록의 운송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예부선은 조종성능이 열악하고 저속력으로서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만조시를 전후로 하여 순조를 타고 입출항하여 항로상 운항시 일반선박의 교통정체 및 통항방해가 발생하므로 인천항 서수도 항로를 따라 입항하는 예부선에 대해 적절한 대체항로 개발을 고려하고, 예부선 종사자의 자격요건 강화 또는 별도의 교육 실시가 필요하며, 출항전 예향검사 수검과 긴급피항지를 고려한 예향계획 수립 그리고 조종특성이 제한받을 경우 조종제한선에 해당하는 등화와 형상물을 표시하여야 한다. 일반 선박들은 예인선열을 만날 경우 사전에 적극적으로 피한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서해안은 수도․경기권 및 충청권에 LNG, LPG, 기름 및 전기 등을 공급하기 위해 많은 화력발전소, LNG․LPG 저장소 및 정유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형 LNG, LPG선, 광탄선 및 VLCC가 입출항하고 있다. 특히 대형 LNG, LPG선 및 VLCC는 해양사고 발생시 그 피해가 심각하므로 입출항항로 통항시 Escort Tug를 배치하고, 접안작업중에는 강조류시 예선의 지원을 받고, 기상악화가 예상될 경우 사전에 이안할 수 필요가 있다. 또한 대산항은 VLCC의 안전한 입출항을 위해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조위표뿐만 아니라 조류표도 발행하는 것이 시급하며, 적절한 정박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장안서 부근해역은 인천항, 평택․당진항 및 대산항의 관제범위에 포함되며 있으나 단지 입항예정보고 접수 등 일부 관리만 시행하고 있어 선박과 해상교통관제실간의 의사소통 등에 혼란과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에 해상교통관제를 관할할 책임있는 운영당국을 결정하고 관련 해상교통관제실간 운영연계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독자칼럼
백조의 일생
박 영 관
(前 해기사․신선양로원 봉사자)
시골 농가에서 7남4녀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나는 학창시절 학비를 내지 못하는 어려움에 많이 처했다. 그럴때마다 교무실에 불려가서 온갖 창피를 당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목포해양대학교에 들어갔다. 어린마음이지만 빨리 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승선하여 소원대로 돈을벌어 월급을 보내드렸는데 연가 받아서 집에 갔더니 아버님께서 네 돈을 다 써버려 미안하다.하신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셨는데 자식 돈 쓴게 뭐가 미안할 일인가? 부모는 문서없은 종이라고 하던데 수많은 노력과 수고로 자식을 길러 주시고도 미안해 하시는 부모님의 심정을 자식들이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 했었다.
이렇게 10년간 승선 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벗삼아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나 자신도 모르게 일년 365일 중 360일은 술 독에 빠져 있었고 담배는 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결과 26세의 젊은 나이에 반절 죽었다는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5년이란 세월동안 계속 배를 타면서 질병과 상관 없이 술과 담배를 계속했다.
그결과 176cm의 키에 몸은 바짝 말라서 60kg 이었고 얼굴은 새까맣게 죽을 상 이었다. 더이상 승선생활을 할수없어서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좋은마음 품고 식이요법을 하면서 좋은공기, 좋은물을 마시면서 농사도 짓고 행복하게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죽을 목숨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어 생명이 연장 되었으니 보람된 일을 하면서 남은 여생을 알차게 보내자 결심하고 지금까지 고려인돕기운동, 부모효도하기운동, 대안학교봉사, 지금은 양로원에서 봉사하고 있다.
대안학교(마근담 농업 학교)에서 수 년 동안 봉사하면서 얻은 것은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홍보관의 일도 하면서 학교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께 친환경농법과 부모효도를 이렇레 설명하였다.
부모는 대통령이나 목사나 법왕보다 훨씬 더 높임과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에게 몸과 생명을 전달해 주신 보이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임니다.라고했는데 제가 양로원에 가서 봉사할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는데 지금 경북 울진군 서면 왕피리 산골 오지마을에 있는 신선양로원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곳에 가서 보니 노인 30여명 장애인 2명 봉사자 20 여명이 살고있는데 주거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시설을 증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을 바라볼때 나의 미래상을 보는것 같다.
나도 늙으면 노인성 질환에 걸려 저 어르신들처럼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현재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자문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 하고 있다. 다늙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어르신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석선 (石仙)선생님의 <백조의 일생>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나는 나의 노년기를 생각하면서 어르신들을 후회없이 친 부모님처럼 섬겨야 겠다는 마음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옛 말이 있는데 정말 실감이 난다. 끝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신선양로원을 증축하는데 십시일반으로 우리 해양인들의 아름다운 정성을 모았으면 합니다. 독자 및 해기사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다립니다.(필자:011-9584-7061, 경북울진:054-783-8302)
백조의 일생
백조는 오직 새끼 위해 알을 품다가
젊은 날의 앞가슴 예쁜 털도 다 빠져 버렸고
백조는 이제 갓난 새끼들 위해 멀리 고기를 잡으러 떠났다네
(중략)
새끼들만 먹이고 자기 배 제대로 채우지 못한 엄마 백조
이렇게 여러 날 동안 새끼를 키우고 나니
엄마 백조는 마를 대로 마르고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버렸다네
그러기를 한 배, 두 배, 세 배 새끼를 차례로 키우고 나니
엄마 백조는 기진맥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네
(중략)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엄마 백조는
평생을 자식 위해 먹지 못한 텅 빈 배
그러나 가슴은 자식 위한 사랑 한 아름 가득히 안고서
만족한 미소 짓고 앉아 있는
거룩한 백조 엄마의 모습이여
이것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백조 천사의 거룩한 일생이라오.
독자수상
영화 각본을 쓰는 재미(Ⅵ)
崔 錫 泳
(선장․원로해기사)
영화 각본을 쓰는 재미에는 역설적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영화의 끝 장면을 Happy Ending(행복하게 끝나는 얘기)으로 할 것인가, 또는 Sad Ending(슬프게 끝나는 얘기)으로 할 것인가를 무려 4년을 고민하고 있는 필자 같은 경우에는 재미가 아니라 고역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본 건 영화, YATSUE(八津江, 야쓰에)의 Story line(이야기 줄거리)을 간단히 기술한다. 세계 2차 대전 말기, 1944년 남자 주인공 최유정은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일본 육군 11연대의 입대한다. 전우, 후지무라 히데오(藤村 秀夫)의 누님, 야츠에(八津江)를 소개받는다. 유정과 야쓰에는 이쓰꾸시마(巖島) 신사에 가서 사랑을 맹세한다. 붉은 색 도리이(鳥居, 일본신사의 상징)가 유난히 아름답다. 다음 해 1945년, 유정과 히데오는 우수한 사병으로 뽑혀 규슈(九州) 미야사키 현(宮崎縣) 고바야시(小林)의 굴 파는 부대에 전속된다. 민간 근로 봉사 대원 중 와다나배 아쯔꼬(渡邊 厚子)라는 천하일색의 처녀와 히데오가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굴이 무너져 유정은 늑막염으로 히로시마 육군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야쓰에의 기지로 유정은 도-조(東城, 히로시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 중환자 수용 병원으로 전원 된다. 여기에서 김재식(金在植)를 만나게 된다. 김재식은 당시 보성전문학교(현재 고려대학)재학 중, 소위 학도병으로 끌려 왔다. 고향은 황해도 해주이다. 도-죠고여 서무과에 근무하는 야스노 도미꼬(安野富子) 약혼녀가 있다. 도-조에 도착 일주일 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1945년 9월 6일, 오전 8시! 사상자 부지기수!
여담 : 매년 9월 6일에는 일본 내각 총리대신을 위시하여 고관대작 들이 히로시마 평화 공원에 모여 위령제를 지내는 바 왜하니, 일방적으로 여러 조문들이 이 무고한 시민이 무참하게 살상 되었느냐, 은연중 그는 미군의 원자 폭탄을 투하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몰고 가느냐 말이다. 원자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자가 누구인가 라고 양심적으로 충고하는 일본인도 있을 법 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 군국주의가 오족 협화와 동양 평화를 위한다는 교묘한 선전을 하며 그 오족을 침략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양심적인 일본인도 다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헌법 구조에 [일본은 영구히 무력을 포기한다.]라는 글귀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필자가 2남을 대동하고 일본 동경의 궁성, 야스꾸니 신사(國 神社), 히로시마 평화 공원, 이쓰꾸시마 신사, 도-조 당시육군 병원(현고등 여학교 교사) 등을 구경하였다.
본론에 들어간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야쓰에 일가 전멸한 것으로 추측 하고, 최유정은 귀국하여, 한국 해양대학에 들어간다. 1950년에 졸업하고 이소윤과 결혼한다.
6/25 사변 발발, 한일 해운 협정으로 유정은 한일 항로선에 승선, 일본 신문, 라디오를 이용하여 야쓰에를 수소문 하였으나 무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성립, 김재식은 소위 반공 포로 교환으로 석방되어 부산에 최유정을 찾아와 유정 선박에 밀항으로 가고시마(兒島)항에 입항하였으나, 불행이도, 입항 선내 검색에 발견 되어 유정과 함께 수상서에 수감된다. 두 사람 모두 일본 약혼녀와 상봉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인간만사 새홍지마라 했다. 와다나베 아쯔꼬가 지방 신문을 보고 면회를 와서 야쓰에가 구레(吳)에서 아들하고 영어 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야스노 도미꼬(安野 富子)는 오노미찌오(尾道) 여학교 서무과에 근무하고 있다고 알려 준다.
유정이 구레에 와 보니 연적 매- 대위(31세)를 상면하게 된다. 매- 대위는 인물도 훤출하고 미국 변호사 면허 소지. 현재 구레 병참 기지 장 헨리 대좌의 부관으로 근무 중. 대좌 부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반대로 영어를 배우는 야쓰에에게 반하여 열정을 다하여 짝사랑을 하고 있음. 한편 김재식은 오노미찌에 가서 야스노 도미꼬가 남편과 너무도 정답게 담소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남자답게 그녀의 참다운 행복을 빌어 주고 되돌아온다.
그 후, 야쓰에는 매- 대위 도움으로 주한 미 8군의 선무 반원으로 초청을 받아 아들 관이와 함께 전주(全州)에 온다. 야쓰에는 본처 이소윤을 제외한 모든 식구의 귀여움을 받는다. 일본 무사가에서 열녀, 효녀의 덕 교육에 매진한 야쓰에 인지라, 특히 백부모님의 사랑은 지극하다. 그러나 큰 어미 소윤이 하고는 도저히 양입할 수 없어 아들 관이를 떼어 놓고, 전주를 떠나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 대학원 영문과에 입학한다. 헨리 대좌의 본가가 워싱톤 주 벤쿠버에 있는 지라, 거기서 장녀 엘리냐 양과 함께 기거하고 같은 포-틀랜드 대학에 다닌다.
2년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성 준비를 하는 시기에 사복차림을 한 매- 대위가 포-틀랜드 대학에 나타나 왕복 비행기 표를 내놓으며 오-클랜드 자기 집에 초대한다. 수차례 사양하였으나 결국 응했다. 대위 집에서 조촐한 환영 파티를 베풀어 준다. 심야 야쓰에의 침실에 나타난 매-는 한사코 자기 청혼을 받아 달라고 청한다. 야쓰에는 거절 왈,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처녀가 단 하룻밤이라도 외관 남자와 동침을 하면 그 처녀는 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 대위는 반 강요 쪼로 Yes!라고 대답하라고 대어든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전주 어느 병원에서 관이가 아버지가 위독하니 어머니, 빨리 오세요!라는 장거리 전화를 한 것이다. 떠나기 직전 야쓰에 왈 대위님, 오래 사세요.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 하고 떠난다.
야쓰에가 전주에 도착하였을 때는 유정은 퇴원하여 혼수상태로 야쓰에를 알아보는지 관이를 선장으로 만들라고 유언을 하고 숨을 거둔다. 과연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리점 매너드(Maynard)씨 왈, YATSE는 일본 영화이니까 개작하여 미국취향으로 해피엔딩으로 해라. 그러면 자기가 거래하는 영화 회사가 300여사 있으니 팔아 보겠다. 라는 것이다.
●參考 : 시나리오 한편(100분) 한국에서 3000만 - 5000만, 시나리오 한편(100분) 일본에서 ¥300만 - 800만, 시나리오 한편(120분) 미국에서 $10만 불 - 50만 불 정도.
●결론 : 만고에 열녀 효녀 야쓰에를 영상산업 흥행을 위하여 재혼 시킬 수 있는 것인지 독자 제현의 고견을 바라는 바이다.
선교회소식
부산국제선원센터 자원봉사자 모집
매년 60개국의 선원 100만명 이상이 드나드는 부산항에서 민간 외교관의 값진 봉사의 길이 있습니다. 해양인이라면 승선 중에 여러 나라 항구에서 국제선원센터의 사랑과 도움을 기억하실것입니다. 이제 부산에도 아름다운 국제선원센터가 있어서 외로운 나그네들에게 낯선 항구에서 사랑의 손길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 봉사의 기쁨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삽니다. 나의 도움을 받은 선원들의 감동어린 눈망울을 보면서 우리 몸과 마음은 건강해지고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저희들은 카도릭, 성공회, 개신교 성직자들과 봉사자들이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하실 수 있습니다.은퇴하신 해기사와 선원가족을 환영합니다.
●선원센터봉사/ 오전10-오후9시 사이 자기의 좋은 시간에 봉사할 수 있으며, 특히 오후 5시-8시 사이에 휴게실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선원안내, 청소, 정리 등으로 돕습니다.
●방선봉사/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을 방문하여 선원센터안내, 쇼핑봉사, 관광봉사, 차량봉사, 상담, 예배 등으로 돕습니다. 매일 오후 2시-4시까지 봉사합니다. 저녁 팀과 주말 팀도 모집합니다.
●성탄꾸러미 나누기/ 성탄절에는 바다위에서 외롭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여러 나라 선원들에게 사랑의 성탄선물꾸러미를 만들어 산타크로스가 되어 그들의 몸과 마음을 녹여줍니다.
●등대국제교회/ 매주 일요일 오후 6시에 중앙동 선원센터에서 영어예배가 있습니다. 선원들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은혜가 넘치는 예배입니다.
부산국제선원센터
(Open/월-금10am-9pm, 토-일 5pm-9pm)
●주차:승용차는 주차타워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외 차량은 가까운 주차장을 이용바랍니다.
●전화:051-468-0166, 010-8775-9322(최원종 목사)
海技文苑산문
UNFORGETTABLE DRAGON ACE NO. 1
권 영 민
(우림해운 선장)
1993년 따뜻한 봄날 울산의 어느 조그마한 항구에서 우현이라는 이름을 명명(命名)받고 바다로 나온 그녀는 어느덧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강산이 한번 홀딱 바뀌고, 반정도 바뀔 즈음에 이역만리로 시집을 가게 되었단다. 좋게 말해서 시집가는 것이지 거의 팔려가는거나 다름없다. 유행가 가사(세월이 야속하더라 가는 당신이 무정하더라)의 한 구절의 신세가 되어버린 그녀는 그동안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 보면 정말 파란 만장 정도가 아니라 수십 만 장도 넘을것 같다.
원래는 이번 시집이 처음이 아니라 2002년도 한번 팔리고 이름 또한 우현에서 용(DRAGON)으로 바뀌었는데, 용도 보통 용이 아니라 최고(ACE)의 용이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둘째, 셋째도 아닌 첫 번째(NO.1)가 되었으니 그 위상이 가히 짐작이 갈만하다.
그리고 고향의 동네 가까운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출가외인 아니라 출가내인의 생활을 하면서 묵묵히 비바람과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톡톡히 자식 노릇을 해 왔으니 참으로 기특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그녀와 같이 생활하다 지나쳐 갔는가,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도 드디어 올것이 오고 만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중국 양쯔강 유역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세상에 우리 그녀 보고 너무 늙었다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몸은 60이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인데 현실이 너무 야속했다. 우리는 이때부터 그녀와 언젠가는 또다시 긴 이별을 할것이라는 예감을 처음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의 파란 바닷길에 하얀 궤적(軌跡)을 남기면서 힘차게 나아가기만 하였으니, 세상사의 모든 일을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하는 자세로 일관하는 우리의 그녀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한번의 시집살이에 희생되어 지칠대로 지친 그녀가 원래의 우리에게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정말 멀리 머얼리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생겼다. 어느날 선을 보러온 외국인은 잠시지만 그녀의 자태에 홀딱 반했는지 보고 간지 얼마 안 되어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계약을 끝냈는지 어쨌는지 지금은 우리 그녀의 마지막 항차 출발지에서 이방인 두사람이 올라와 부산까지 동승하고 있고 역시 이사람들도 그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아! ……
언젠가 우리가 그녀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할때면 그녀도 우리를 생각할까?
나는 절대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선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게 도와준 고마운 그녀는 나의 가슴속에 남아 바다에서 나의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녀에게 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그냥 잘가라고 할까! 아니면 항상 건강해야해라고 말해야 되나, 정말 멋지게 한마디 하고 싶은데 설마 헤어지는 당일날 한마디도 못하고 묘박지에 놔두고 밋밋하게 되돌아 오면 안 되는데 정말 큰일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다.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녀가 누구인가 말 그대로 씩씩한 그녀가 아닌가! 오히려 헤어지는 우리에게 서로의 갈길을 묵묵히 가르쳐 주는 그녀가 아닌가! 언제 어느곳에서도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오로지 앞으로만 전진하고 있을 그녀가 아닌가! 정말 사랑했었고, 그래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녀여 이젠 안녕!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 종 국
(SJ탱커 1항사)
어느 6월의 아침에 꿈속에서 온다는 어머님 말씀에 일어났을 때에는 날보러 오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소. 짧은 단 7일간의 신혼의 꿈도 뒤로하고 출항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날 때에는 두빰에 흘러내린 눈물 느낄 수 있었소.
눈물! 무얼 뜻하는지 알 순 있지만 결혼은 현실이기에 무정하게도 집을 나섰지요. 실망시켜 미안하고 그동안 고생시켜 더욱 미안스럽소. 많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준비도 없이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 항상 배를 타는 관계로 의미있는 기념일을 매년 홀로 외로이 보내야 하는 고독.
수많은 날 기다림의 연속 만남과 이별. 또다시 만난다는 기대와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속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어도 이길 수 있었고 혼자만의 힘으로 아들과 딸 바르고 착하게 잘 키워서 모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소. 그것은 극진한 정성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아내의 생일 자녀의 생일날도 기러기 아빠없이 변변치 못한 선물도 못해 주었고 나의 생일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우리가족을 향해 사랑하고 있었소.
나의 가장 사랑하는 귀여운 딸 배소정 사춘기 때에는 아빠 멀리하는 심정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젠 기러기 아빠 소중히 여겨줄 때 서운했던 마음 사라지고 잔정 많고 마주칠 때의 미소 아름다웠소.
우리가족의 소중함과 화목 느낄 수 있었소.
바다와 육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아내. 당신 기뻐할 때 나 기쁠 수 있었고 슬퍼할 땐 못난 사람 마음 아팠소. 항상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기를 ….
30주년 결혼 기념일 2008. 6. 25.
海技文苑 詩
부활을 꿈꾸는 바다
김 다 솔
(시인)
그때 그 바다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해변으로 떠밀려온 파도는
여기저기 남루한 발자국들을 지우고
모래알처럼 깔려있는 기억들
그리운 언어들이 뛰어놀던
유년의 모래성을 삼켜버린 파도
거친 물결 가르며 달려오던
만선의 깃발 기다리며
빈 그물 엮어가는 어부들의
소금기 묻은 소망들이
밀물져 오는 그 바닷가
갯바위에 올라서면
한서린 원혼들의 소리인양
세찬 바람이 분다
하늘 높이 치솟는 파도
그 파도의 높이만큼 일어서는 힘
수만 갈래로 부셔지는 물보라가 있기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려는 바다
바다는
아! 부활을 꿈꾸고 있구나
★시인약력
●대구 출생
●1991년 제11회 대통령배독서경진대회 수상
●1993년 『문예한국』 등단
●2002년 월간 『문학공간』 등단
●현, 부산시인협회 사무국장
●시집:『궁항리 바다』
뉴스리뷰 / 해양뉴스
아시아해적 퇴치 국제공조 강화한다
해적 및 무장강도 피해를 막기 위한 제2차 아시아해적퇴치협정(ReCAAP) 특별이사회가 14개국 책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8월 28, 29일 이틀간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렸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해적사고는 114건이었으며, 유형은 선박침입(71건), 피랍(12건), 피격(11건), 침입실패(20건) 등으로 집계됐다. 피해 선원은 포로 190명, 피랍 6명, 사망 7명, 실종 7명 등 총 210명이었다. 해적은 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해역에서 출몰하는데, 올해 상반기엔 소말리아(24건)와 나이지리아(18건) 인근 해상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소말리아 아덴만에서만 19건이 집중 발생해 최다 발생지역 오명을 썼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라고스항 묘박지에서만 12건이 발생했다. 아시아 지역은 올해 상반기 45건이 발생해 지난해(49건)보다 해적 출몰 횟수가 줄었다. 인도네시아 해역에서만 13건의 사고가 집중됐다. 이번 ReCAAP 이사회에선 해적사건 정보 공유 및 해적 퇴치를 위한 네트워크 결성 등을 논의했다.
대우조선 인수의향서, 포스코․GS․현대重․한화 4파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포스코와 GS, 현대중공업, 한화의 4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8월 27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시한인 27일 오후 3시 현재 포스코와 GS, 현대중공업, 한화가 서류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단독 참여는 접었지만 군인공제회를 등에 업은 성동조선해양을 비롯해 국민연금, STX조선, 삼성중공업 등은 컨소시엄 참여 등으로 입찰에 참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은 인수의향서 제출 기업들의 투자 적격성을 확인한 뒤 9월 둘째 주에 예비입찰을 받을 예정이다. 예비입찰에는 경영 계획과 컨소시엄 구성 등을 통한 자금조달 계획, 인수금액 등을 제출하지만 구속력은 없다. 예비 입찰자들은 추석 직후부터 전산을 통해 재무제표와 각종 문서들을 살펴보며 실사를 한 뒤 10월 중순 본 입찰에 참여해 구속력 있는 가격과 향후 경영 계획 등을 제출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10월 중 우선 협상자를 발표한 뒤 현장까지 방문하는 상세 실사 등을 거쳐 연내 최종 매각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강종희 원장, 해양종주국 프로젝트 적극 추진
강종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신임 원장이 해양종주국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8월1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간 강 신임 원장은 영국이 과거 세계의 해양종주국이었다면, 21세기 해양종주국은 해양개발과 관련된 기술을 선도하고 동시에 세계 해양정책 조정자의 위상을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해양종주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양개발 기술과 해양산업을 전략적으로 연계하는 한편 유엔 해양정책회의 등 국제기구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지금까지는 육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지만 앞으로 육지보다는 해양을 중심으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이른바 해양기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물류중심화 전략과 관련, 지난 10여년 동안 끝이 없이 논란을 벌이고 있는 물류중심화 전략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됐다면서 우리나라의 컨테이너 중심항이 어디가 돼야 하는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 원장은 평소 부산신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컨테이너 항만 시스템이 재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 강 원장은 농업과 함께 정부와 국민에게 항상 부담을 주고 있는 수산업도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 원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KMI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인사와 예산, 조직, 연구환경 등의 분야에서 강력한 리모델링 작업을 추진하고 도덕적 해이와 비효율적 인사 등이 사라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KMI는 오는 2012년 부산으로 이전, 해양클러스터의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부산일보)
한진重 초대형유조선도 만든다
한진중공업이 초대형 독을 갖춘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힘입어 초대형 유조선(VLCC) 신조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부산 영도조선소의 비좁은 부지 탓에 그동안 손댈 수 없었던 VLCC를 수주, 수빅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4일아랍에미리트의 에마라트 마리타임사로부터 VLCC 2척을 3억3000만 달러에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수주한 유조선은 국내 하루 소비량을 한 척에 모두 실을 수 있는 32만 t급 초대형으로 길이 333m, 폭 60m, 깊이 30.5m에 달하며 속력은 16노트다. 이중선체 구조로 수빅조선소에서 건조하게 되며 2011년 6월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한진중공업은 지난달 27일 홍콩 씨링크사로부터 180K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1척, 그 다음날에는 독일 MPC스팀쉽사로부터 벌크선 2척을 총 2억8000만 달러에 수주하는 등 벌커와 탱커 5척을 잇따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수빅조선소는 지난 7월 초 신조 1호 선박을 성공적으로 인도한 뒤 한달여 만에 2호선을 진수시킨 바 있으며 벌커 및 VLCC 등 초대형 선박 건조가 가능한 독을 갖췄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수빅조선소 완공으로 그동안 추진해 온 선종 다변화 전략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며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를 연계 운영해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 등 경쟁력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의 수주 잔량은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를 포함해 총 93척, 82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두 조선소의 3년치 이상 일감이다. (국제신문)
국제물류대학 대학원생, 1달간 로테르담서 공부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교육기관인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의 해운물류학 석사학위 과정생들이 국제교환프로그램 이수차 한 달간 로테르담에서 공부하기 위해 9월 5일 출국했다. 10월 5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국제교환프로그램에서는 한국에서 이수한 화물관리론(Cargo Operation Management) 시험을 치르고, 항만설계 및 관리(Port Design & Management) 과목을 수강하는 것을 비롯하여 로테르담과 앤트워프 등의 선진 해운항만 시설을 견학하게 된다.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의 김성준 교수는 해운물류학 석사학위 과정은 로테르담과 광양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본교에서는 국제교환프로그램을 통해 로테르담과 광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서로 교환하여 수업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히고, 내년에는 로테르담에 등록한 학생들이 광양에서 공부하고, 광양에 등록한 학생들은 로테르담으로 공부하러 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 측은 국제교환프로그램 이수를 위해 로테르담에서 머물러야 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항공료와 기숙사, 시내 교통비를 전액 지원하여 학생들이 학비 이외의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제물류大 제2기 최고경영자 과정
교육인적자원부가 인가한 최초의 외국교육기관인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 한국 분교(STC-Korea)는 9월 2일 저녁 7시 본교 6층 대강의실에서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의 백옥인 청장의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개발 현황과 전망 강의를 시작으로 제2기 최고경영자 과정을 개강하였다. 지난 8월 한달 간 수강생을 모집한 결과 여수, 순천, 광양, 하동, 남해 등 등 광양만권 인근의 최고경영자, 고위 공직자, 중소기업 임직원 등 30명이 수강을 신청하여 선진 지식을 배우려는 열기가 이 지역에 충만해 있음을 보여주었다.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이 두 번째 개설한 이번 과정은 우윤근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허남석 포스코 광양제철소장, 최희국 국토해양부 해운정책관, 최장현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이사장, 송영수 순천광양상공회의소장 등의 초청연사를 모시고 총 13회에 걸쳐 특강과 질의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참가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덜란드 현지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 제1기 최고경영자 과정은 국토해양부, 전라남도,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광양시,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이 후원하였다.
부산해경, 경비함정 공개 현장체험 행사실시
부산해양경찰서(서장 김현순)는 8월 25일 15:00~17:00까지 부산시내 초등학교 사회교과 나들이 체험표현연구회 어린이 및 교사 30여명을 초청 21세기 해양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등 경비구난함 태평양호(3200톤)에 승선 현장체험 공개행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행사는 안전하고 깨끗하고 희망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해양경찰의 역할과 해상치안 활동상을 담은 VTR을 상영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현장학습 위주로 이루어져 어린이들에게 바다에 대한 궁금증 해소와 함께 해양경찰의 활동상을 소개하는 등 바다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STX그룹, 유럽 조선시장 공략 본격화
유럽 최대 조선사인 아커야즈 경영권을 인수한 STX그룹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아커야즈 본사에서 첫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 회사의 사명을 STX유럽 ASA로 변경했다고 4일 밝혔다. STX그룹은 이번 사명 변경을 시작으로 주요 계열사 및 야드 명칭도 순차적으로 STX그룹의 상징성을 갖도록 바꿀 계획이다. STX그룹 관계자는 STX유럽 출범을 계기로 크루즈선 및 해양 플랜트 부문을 그룹 주력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됐다며 노르웨이와 프랑스 핀란드를 유럽 지역내 3대 전략거점으로 선정하고 지역별 특화 전략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총에 참석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아커야즈는 크루즈 해양플랜트 방위산업 원천기술을 보유한 잠재력 있는 회사인 만큼 확고한 리더십과 생산효율성 향상을 실현해 하반기 실적 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국제신문)
해양수산개발원 제6대 원장 강종희 박사 취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제6대 원장에 강종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원장이 선임되었다. 2008년 8월 29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제62차 이사회에서 통과되면서 이같이 결정됐다. 해양․수산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해양수산개발원(KMI)의 신임 강종희 원장은 서울대 해양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 무역대학원을 거쳐 영국 리버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물류연구본부장, 한․미 해양정책공동연구센터장,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 해운항만분과위원 등을 역임하고 대한상사중재원 해사중재인, 한국해운신문 고정 칼럼니스트로 현재 활동 중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책연구원장 교체 인사에서 내부 인사가 원장에 발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용백 씨, 동아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
김용백(金容伯) 천경해운 노동조합위원장은 2008년 6월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논문, <韓․美 FTA가 우리나라 雇傭環境 變化에 미치는 影響에 관한 연구>(지도교수 鄭亨一)로 8월 21일 경영학 석사학위(人事組織 전공)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韓․美 FTA가 2008년 상반기에 체결된다는 가정하에 고용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용문제의 조정방안을 제시하는 등 韓․美 FTA의 체결이 우리나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고용창출과 고용조정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고찰했다. 김용백 위원장은 부산해양고등학교 총동창회 17, 18대 회장을 역임했다.
해양사고와 늦은 태풍 등 기상변화에 주의를
중앙해양안전심판원(원장 이인수)에서 발표한 해양안전예보에 따르면 9월은 성어기를 맞아 출어선이 증가하면서 어선 해양사고가 급증하는 시기이므로 사고예방을 위한 출항전 점검 및 항해안전수칙을 준수할 것과 가을철 태풍 등 황천에 대비한 철저한 안전관리를 당부했다. 최근 5년간 9월중 발생한 해양사고는 310건으로 월평균(268건)보다 15.7% 상회하였으며, 사고 종류별로는 ▲충돌, 기관손상 각 73건(23.6%) ▲좌초 33건(10.7%) ▲운항저해 30건(9.7%) ▲침몰 23건(7.4%) ▲인명사상 19건(6.1%) ▲전복, 화재․폭발, 조난 각 13건(4.2%) ▲기타사고 20건(6.3%) 순으로 집계되었다.
해양문학가협회, 『해양과 문학』 10호 발간
한국해양문학가협회는 최근 반년간지 『해양과 문학』통권 10호를 발간했다. <특집1> 지역해양문학으로 울산지역의 안성길(평론), 정일근, 이정옥(시), 김웅(소설)의 작품이 실렸고, <특집2> 해외 해양문학 탐방-영국편에 신원철의 영국의 해양문학이 실렸다. <특집3> 이윤길 해양시에 이윤길의 시작품과 구모룡의 평론이 실렸다. 회원 및 초대작품으로 <해양시>에 권석창, 권정숙, 김명옥, 서정홍, 신익교, 이성배, 정현옥 등이, <해양소설>에 문성수, 찬금성의 작품이, <해양수필>에 곽민호, 김동규의 수필이 실렸다.
[사무실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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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담
외국 국적 선박에
승선한 선원의 재해보상
[문] 저는 일본에 본점을 둔 선박회사가 소유한 파나마 국적선의 선장으로 근무하다가 계약기간이 끝나 하선하였습니다. 하선 후 신체검사 결과 폐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후유증으로 더 이상 선원으로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주로부터 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요
[답] 질의자가 일본국 회사인 선박소유자로부터 재해보상을 받으려면 일본국 재판소에 선박소유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며, 이 경우 국제협약상 재해보상청구권은 선박우선특권으로 인정되어 선적국인 파나마의 법률이 준거법이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나라의 선원법에 의하면 선원이 승선 중에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직무상 재해와 직무외의 재해로 구별하여 선박소유자가 선원에게 상병보상과 요양보상, 장해보상 등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선원법은 원칙적으로 외국 법원에 제기된 외국 국적선에 대한 사건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우리나라 선원이 외국 선주 소유의 외국 국적 선박에 승선한 경우에는 우리나라 선원법에 의한 재해보상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해양수산부 고시로서 「해외취업선원재해보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여 우리나라의 선원관리사업자가 외국선주의 위탁 하에 우리나라 선원들과 외국 선주 사이의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위에서 본 우리나라 선원법의 재해보상에 관한 규정과 유사한 내용을 고용계약에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외취업선원재해보상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고용계약서에 재해보상에 관한 약정을 한 경우에는 외국법원에서 외국 선주를 상대로 하는 재판에서도 이러한 당사자 사이의 약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 재해보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질의자의 경우 고용계약서에 위 규정에 따른 재해보상에 관한 약정이 포함되어 있다면 일본국 선주에 대해 재해보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질의자는 승선기간 중에 폐암이 발병한 것으로 추측되나 직무수행 중에(직무수행성) 직무가 원인이 되어(직무기인성) 발병했다고는 보기는 어려우므로 직무외의 재해로 보입니다. 직무외의 재해에 대하여는 요양기간 3개월 동안 통상임금의 70%에 해당하는 상병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아울러 3개월의 범위 안에서 요양을 시켜주던지 요양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 질병이 승선기간 중에 발병했다는 사실을 질의자가 입증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무칼럼
유리지갑 근로소득자도 비과세 되는 항목이 있다
김용성 / 본 협회 고문 회계사
남일회계법인 TEL : (051) 466-3311 FAX : (051) 466-7423
신씨는 올해 하반기 드디어 부장으로 승진하여 월급도 크게 오르는 경사를 맞이했다. 하지만 월급은 50만원이 올랐으나 갑근세 등 공제금액이 많아 실제 소득은 얼마 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공제하길래 그럴까?
그 내용을 살펴보면 4대 보험료로서 국민연금 4.5%, 건강보험 2.24%, 고용보험 0.45%이며 세금으로서 갑근세가 26%, 주민세가 2.6%나 되니 합하여 35.8%가 된다. 그러니 신씨의 경우 월급 인상분 50만원에서 각종 공제 18만원을 차감하면 32만원이 실제 소득 증가인 셈이다. 물론 신씨는 고소득자이므로 갑근세가 26%이지만 월급이 적은자는 갑근세율이 8%내지 17%가 적용되므로 신씨의 경우보다 세금부담이 적을 수도 있다. 이처럼 봉급생활자가 받는 월급은 대부분 과세소득이므로 월급 인상은 즉시 갑근세 부담증가로 이어지나, 아래와 같은 비과세소득도 약간 있으므로 자세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우선, 자가운전 보조금으로서 종업원의 소유 차량을 종업원이 직접 운전하여 사용자의 업무수행에 이용하고 시내 출장등에 소요된 실제 여비를 받는 대신에 그 소요경비를 일정한 지급기준에 따라 받는 금액 중 월 20만원 이내의 금액은 실비변상적인 급여로 보아 비과세 한다. 따라서 시내출장 등에 따른 여비를 별도로 지급받으면서 자가운전보조금을 받는 경우나,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종업원에게 지급하는 것은 당연히 과세된다. 또한 직원의 출퇴근 편의를 위하여 지급하는 교통보조금은 비과세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둘째, 근로자가 학교와 직업능력훈련시설에서 받는 교육을 위해 지급받는 학자금은 전액 비과세한다. 그러나, 종업원이 사설어학원 수강료를 지원받는 경우에는 비과세 학자금에 해당하지 않아 과세된다.
셋째, 생산직 근로자로서 월정액급여가 100만원 이하인 자가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로 인하여 지급받는 수당 중 연 240만원 이내의 금액은 비과세한다. 그러나, 월정액급여가 100만원 이상인 자나 사무직 근로자의 야근수당등은 과세한다.
넷째, 외부 음식업자와 식사제공계약을 체결하고 현금으로 환금할 수 없는 식권을 근로자에게 교부하는 경우 전액 비과세되며, 식사를 제공받지 않는 근로자가 지급받는 월 10만원 이하의 식사대도 비과세된다. 만일, 연봉제의 경우 식사대가 연봉계약서에 포함되어 있고 회사의 사규등에 식사대에 대한 지급기준이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당해 종업원이 식사 기타 음식물을 제공받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월 10만원까지 비과세된다.
다섯째, 근로자 또는 그 배우자의 출산이나 6세 이하의 자녀의 보육과 관련하여 지급받는 월 10만원 이하의 금액은 비과세 근로소득이다. 맞벌이 부부가 각각 보육수당을 받는 경우에도 모두 비과세되며, 자녀의 수에 관계없이 월 10만원까지만 비과세된다.
새책소식
고객서비스부
프랑스 소설이다. 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든 건 자그마한 휴대폰이었다. 재앙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주인공이 산 지 2주 밖에 안 된 최신형 휴대폰을 택시에 두고 내리면서 시작됐다. 원고청탁을 위한 생계 수단인 휴대폰이 없어지면서 주인공은 카오스 상태로 빠져든다. 알고보니 교환불가라는 특별약정이 붙어 동일 모델의 휴대폰을 사려면 네 배 이상의 비용을 물어야 한단다.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캐나다 여행지에서 퀘벡의 현금인출기는 주인공의 신용카드-그것도 우대신용카드-를 뱉어낸다. 집에 돌아와서는 온갖 기계들이 요구하는 비밀번호가 주인공을 곤경에 빠트린다. 주인공은 까칠하게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나간다. <브누아 뒤퇴르트르 글/함정임 옮김/강/9천500원>
참 언론인이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언론의 위기가 운위되는 시대다. 활자 인구의 노령화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등 외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노골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언론이 정파이익에 매몰돼 스스로 신뢰를 깎아내리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40여 년간 신문인의 길을 걸었던 고 정달영(1939~2006) 한국일보 편집국장의 유고집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시끄럽게 구는 분위기에서,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조용했던 선배로 많은 이들은 고인을 기억하지만, 그의 글은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우리 언론, 언론인들에 대한 매서운 죽비소리와 같다. 기자란, 국어를 바로 쓰고, 바른 생각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하는 똑바로 쓰는 자라는 대목에서는 고인의 엄격한 기자로서의 자의식도 엿볼 수 있다. <정달영 지음/한울/372쪽/2만원>
한국사 오디세이
시인 겸 평론가, 소설가, 번역가인 김정환 씨가 조선시대 이후 한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함께 나온 4권에서는 이성계의 조선 건국부터 현재까지가 저자 특유의 글맛과 시선으로 재현된다. 1996년 <상상하는 한국사>(전7권)라는 제목으로 첫 출간돼 2003년 <한국사 오디세이>로 제목을 바꿔 개정판을 낸 후, 5년 만에 다시 나온 전면 개정판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신화와 삼국 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 근현대사 등 4권이다. 이전 판에서 발견된 잘못들을 바로잡고 지도 등의 자료도 보강했다. 특히 현대사 부분에서 이명박 정권 출범까지의 10년에 대한 소회가 첨가되는 등 저자의 시선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의 한국사는 정치의 언어와 문화의 언어가 서로를 탐하는, 독특한 시론이다. <김정환 지음/바다출판사 발행/전4권/각권 1만5,000~1만7,000원>
편집후기
월간 해기 기념비적인 통권 500호
■ 『월간 해기』가 지령 통권 500호를 맞이했다. 한 단체의 기관지로서 기관지를 뛰어넘는, 가히 기념비적인 위업이 아닐 수 없다. 1991년말부터 책임편집을 해온 필자로서는 감회가 말 할 수 없이 깊다. 어려웠던 시절을 되새기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 오고, 뜨거운 감정이 꿈틀거린다. 나도 몰래 가슴이 벅차오른다.
■ 나는 『월간 해기』와 인연이 시작된 지 1년만인 1992년에 통권 300호를 맞아 특집을 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 선배 편집장과 같이 취재하고 편집해서 특집판을 준비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 500호 특집을 준비하는 감회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벅찬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참으로 희로애락이 점철된 시간이었다. 300호 특집을 하던 그때만 해도 500호 작업을 하리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미래였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다소 권위적인 정기간행물에다가 변화가 더딘 기관지 편집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사연도 많다.
■ 그 중에 늘 독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는 것이 해기의 변화에 대한 주문이었다. 숱한 제보와 조언과 충고들을 들었다. 책이 왜 늘 그 모양이야, 제발 투자를 해서 해기지의 질을 높여라, 협회의 발전을 위해 잘못된 점을 과감히 비판하라, 뱃사람만 보는 잡지에서 탈피하라, 획일적인 편집과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라, 투자를 해서 책을 화려하게 스마트하게 만들어라, 지면과 지질을 대폭 개선하라, 혁신하라, 혁신하라…. 한마디로 독자들의 눈은 매서웠고, 예리했으며, 요구사항은 강렬했다.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들로 하여금 용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가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비판자, 조언자들이 모두 다 나의 스승이었다.
■ 나는 이십대 후반 대양을 항해하다 어느날 갑자기 배를 내려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신문편집을 공부한 적이 있다. 서울 신문로에 있던 신문편집연구원이라는 데서 신문편집 실무를 배우면서 체득한 것은 비판을 하지 않는 신문, 비판을 받지 않는 신문은 신문도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言論(신문)이라는 영역에 입문하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記者들의 세계가 무척 건조하고 전투적이었는데, 그것은 아직도 크게 수정되지 않았다. 그 사회는 내가 온몸을 던져 뛰놀기에는 뭔가 핀트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어쩌면 국도(國道)같고 지방도(地方道) 같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 정붙여 살면 거기가 제2의 고향이듯이 나도 어느새 출판과 편집이 천직(天職)인양 살아왔다. 그래도 늘 그리운 것은 항해하다 두고 온 대양의 푸른 대지다. 지중해가 그립고 카리브 해가 자주 눈에 밟힌다. 부둣가나 가정에서 부산항을 들고나는 외항선을 바라보면서, 지금쯤 비스케이 만은 조용한지 북태평양은 태평한지 습관처럼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시각에도 항해하는 해기사 여러분, 그리고 수많은 독자 여러분들과 월간 해기 지령 통권 500호를 맞는 감회와 기쁨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安全航海와 健寧을 기원합니다.<dgkim@mariner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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