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이래로 많은 서구 문화가 수입되고 유행해 ‘한국화’됐지만, 비교적 최근 안착한 것 중 하나가 디저트 문화다. 식후에 차와 함께 먹는 작고 달콤한 먹거리를 일컫는 디저트는 유럽 기반의 문화권에선 일상적인 식습관으로, 우리가 식후에 들이는 숭늉이나 과일과는 달리 독립적이고 완결된 음식 문화의 하나로 발전해왔다. 조금은 낯선 이 디저트 문화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폭넓게 퍼지고 있다. 근래 몇 년 사이 서울 시내에만 해도 20~30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한 수십 곳의 디저트 카페(식사는 판매하지 않고 오직 디저트만 판매하는 카페)가 생겼고, 거기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디저트 카페들이 잇달아 정식으로 문을 열면서 이 작고 예쁜 먹거리는 무시하기 힘든 커다란 시장을 개척해냈다.
▲ 페이야드의 애플타틴(왼쪽) /폴의 타르트레트 프레지에 (오른쪽)
여전히 우리 사회엔 ‘잘 차린 한 끼 밥상보다 더 비싼 작고 달콤한 먹거리의 가치’에 대한 회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시하기엔 이미 디저트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음식엔 그 음식이 만들어진 곳의 문화가 담기는 법. 숱한 디저트 카페들 가운데 단지 고급스러운 먹거리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문화까지 함께 들여와 눈길을 끄는 세계적인 카페 브랜드 2개가 지난해 서울에 문을 열었다. 바로 뉴욕의 디저트 카페 ‘페이야드’와 프랑스의 베이커리 카페 ‘폴’이다.
페이야드 뉴욕 현지의 맛 그대로, 신세계백화점 3곳 입점
페이야드(Payard)는 지난해 3월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라이선스를 가져와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뉴욕의 대중적인 디저트 카페다. 뉴욕 맨해튼의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했던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들이 “뉴욕 최고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 바로 그곳이다. 덕분에 정식으로 들어오기도 전 이미 국내 여성 고객들의 기대치가 높았다. 프랑스인 프랑수아 페이야드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온 전문 페이스트리 셰프로 1997년 가문의 이름을 걸고 오픈한 베이커리 숍 페이야드를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의 디저트 레퍼토리를 선보여 미국 내에서도 ‘올해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여러 번 선정된 경력을 갖고 있다.
▲ (왼쪽부터)페이야드의 대표적 디저트 만자리 초콜릿 타르트와 시실리안 /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는 장인(匠人)이자 아이디어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페이야드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부산 센텀시티점 등 세 곳에 입점해 있다. 각 지점의 셰프 3명은 오픈 전 뉴욕 페이야드 본사에 2개월간 체류하며 페이야드로부터 직접 고유의 레시피와 기술을 배웠다. 페이야드 전 지점을 총괄하는 성재환 점장은 “그렇기 때문에 미세한 재료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뉴욕 현지의 맛을 재현해낸다”고 전한다.
페이야드는 신세계백화점 매장 오픈 당시 여느 백화점처럼 지하층이나 꼭대기층의 식당가가 아니라 VIP 전용층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매장과 나란히 배치돼 화제에 올랐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2층을 총괄 마케팅하는 허창영 팀장은 이 이례적 배치에 대해 “최근 각광 받는 뉴 럭셔리(new luxury) 문화와 유행을 선보이는 VIP층에서 고객들의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미 유명한 브랜드의 힘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디저트 개개의 예술적 디스플레이와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명품관 전체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세간에 이른바 ‘명품 베이커리’로 재인식되면서 매니아층도 두꺼워졌다는 것이다. 페이야드 신세계 강남점에선 최근 내부에 별도 공간을 마련, 간단한 식사 메뉴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 신세계 강남점 내 페이야드 매장./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폴 100% 유기농 재료 사용 ‘프랑스 국민빵집’
역시 지난해 문을 연 폴(PAUL)은 1889년 시작돼 무려 120년의 전통을 가진 정통 프랑스 베이커리 카페다. 5대째 가업을 잇고 있어 프랑스에 가본 많은 사람이 알 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엔 이제야 첫 매장이 들어섰지만 이미 전세계 25개국 453개 매장이 분포해 있다. 프랑스엔 그중 326개가 있다. 가히 ‘프랑스 국민 빵집’이라 할 만하다.(폴은 프랑스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최초의 식음료 브랜드이기도 하다.) 폴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철학이 확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내 전용 농장에서 생산된 유기농 밀가루를 비롯, 100% 유기농 재료만 사용하는 건 기본. 지방과 소금 함량을 최소화한 ‘웰빙 빵’을 표방한다. 프랑스 현지에서 세계 결식아동을 돕는 후원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인정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경험한 박정하(26)씨는 “폴은 프랑스의 가장 대중적 베이커리이면서도 이미지가 좋기로 유명한 브랜드”라고 전했다.
▲ (왼쪽부터) 크루아상과 요거트, 밀페이유 초코./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1층에 위치한 카페는 마치 파리의 폴 매장에 들어선 것처럼 독특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본사에서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담당한 벽난로와 빈티지풍 가구로 꾸민 내부는 여의도 인근 회사원과 주민들의 발길을 절로 멈추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폴 마케팅팀 조나영씨는 “폴은 프랑스 문화와 함께 하는 베이커리”라며 “빵이나 디저트 맛도 중요하지만 프랑스의 진정한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에도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 직원이 프랑스 현지 연수를 거쳤고 페이야드와 마찬가지로 현지 트레이닝을 거친 셰프들이 현지와 동일한 레시피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바게트처럼 흔한 빵도 정통 프랑스식으로 즐길 수 있으며 샐러드와 샌드위치, 크레페 등 간단한 메뉴로 정통 프랑스식 식사도 맛볼 수 있다.
▲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1층 폴 매장 /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페이야드와 폴은 각각 뉴욕과 파리 현지에서 대중에게 폭넓게 사랑 받는 카페다.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묵직한 전통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있긴 하지만 가격이나 분위기 측면에서의 진입장벽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오면서 다소 높아진 가격대와 함께 고급의 이미지가 형성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만나 보기 힘든 맛과 분위기를 제공하는 이 두 브랜드는 현재 예상을 웃도는 성장을 보이고 있다. 폴은 압구정과 서래마을에 2호점, 3호점을 차례로 오픈할 예정이고 페이야드 역시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성재환 페이야드 점장은 “처음엔 ‘밥보다 비싼 디저트’를 파는 카페의 성공 여부에 대해 내부에서도 회의적 시각이 있었지만 예상 외로 성공을 거두면서 문화란 만들어가는 것임을 체감하고 있다”며 향후 디저트 카페가 더욱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폴 02-2070-3000.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1층 페이야드 02-310-1980.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6층, 강남점 2층, 부산 센텀시티점 지하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