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면 청량마을 시암제
영원면 흔랑마을 이안순댁의 우물
생명수를 지켜라
마을우물에는 사연도 많고 정보도 많은 공간이었다.
밤새 일어난 모든 일들이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온 마을에 퍼졌고
채소를 씻으러 와 한줌 나누어 먹는 인심의 공간이기도 했었다.
우물에서만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물을 퍼갔고 아무리 욕심껏 퍼 간다고 해도
누구하나 손가락질 하는 법이 없는 평등 분배의 공간이었다.
‘우물에 침 뱉지 말라’ 는 격언도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자신이 그 물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우물이 있었기에 그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곳에 물이 없었다면 그 마을이 있었겠는가?
우물과 함께 형성된 각 마을에서는 7월 칠석날이나
음력 2월 초하룻날 등 적당한 길일을 택해
물을 품어내고 새로운 물을 솟아나게 했었다.
이날만은 온 마을이 술맥이를 하며 잔치를 벌이기도 했었다.
이처럼 선조들은 우물에서 대동단결을 도모했고 우물에는 저마다의 문화가 살아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솟아난 물에도 감사의 마음을 표했었다.
이처럼 마을의 우물은 유형 무형의 어떤 문화재보다도
먼저 생겨난 보물이었던 것을 우린 모르고 있었다.
우물은 마을이라는 공간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옛 고부군지인(瀛州誌)에 고부군 7원천(七源泉)이 소개되고 있다.
七 源 泉
1 영원면 풍월리 경산우물
2 덕천면 가정리 가정우물
3 덕천면 망제리 천곡우물
4 고부면 덕안리 예천우물
5 고부면 입석리 세칭 만가정우물
6 소성면 원천리 원천우물
7 소성면 정동 정동
그중 시암실이라고 불리는 천곡우물(샘)의 기록이 눈에 띈다
영주지(瀛州誌)에 의하면 "망제봉 석벽하에 맑은 물이 흘러 샘을 이루니
세칭 약수라 하여 해마다 단오일이면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라"
다른 기록에는 이 천곡약수는 온갖 피부병을 치료한다고 기록되었다.
이렇게 유명한 우물(샘)이었기에 마을 이름도 천곡(泉谷)이고
시암실 또는 시람실로 불리기도 한다.
선조들은 이미 마을의 우물을 기록으로 남겨
마을에 솟아난 그 물의 소중함을 후세에게 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위에 적힌 기록을 더듬어 그 우물들을 답사해보니
현재 식수로 사용은 하지 않더라도 보존된 우물이 3곳밖에 없었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수돗물 보급되자마자 우물은 쓰레기통으로 변한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영원면 청량마을은 매년 음력2월 초하룻날 아침이면 시암제를 지낸다.
시암제에 풍물소리 장단은 엉망일지라도 그 마을어르신들의 염원만은 진지한 시암제다
기독교인들이 많은 마을인데도, 주민들이 마을 우물은 이용하지 않을지라도
그 솟아난 샘물에 감사하며 정성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일년동안 고였던 물을 퍼내고 새로운 물로 채우게 하는 것이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 법이다.
주변의 다른 마을의 우물이나 샘들은 이미 적절하지 못한 물질로 메워져 있다.
침만 뱉은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우물과 샘을 바라보면서도 당연하다는 듯 생각한다.
누구하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과 20여년 전 만해도 온 마을사람들은 우물의 물을 먹었는데 펌프식 우물의 과정을 거치고
수돗물이 보급되면서 이용가치가 없어진 우리의 우물에는 침을 뱉듯 환경은 더 나빠져 갔다.
그렇다고 지금 수돗물을 안심하고 먹는 것도 아니다.
수자원은 자꾸 오염되고 어려워져 가는데
정말 물은 물 쓰듯 하면서도 정작 마시는 물은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근래에는 수돗물조차 믿지 못해 정수기를 이용하여 식수를 해결하면서도
자기반성이 없는 오늘날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본다.
먼 후일에는 식수를 수입해 먹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2년전 정읍지역에 조류독감이 유행하여 많은 가금류를 살처분 했었다.
이 생매장된 가금류의 추출물이 지하수를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그 해당지역을 가 보면 매몰 후에 상수도 공사를 무료로 해주었다.
이젠 인접마을들은 앞으로 수 십년이나 수 백년 동안
지하수를 식수로 이용하지 못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계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생활도 배려하는 정책도 아쉽다.
가축의 대량사육과 환경문제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농가들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어디 농가뿐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영역이 그에 해당된다.
공장 폐기물 농약 가정 오폐수 쓰레기 등 모든 것이 오염원이다.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많이 줄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다.
세계는 지금 물부족으로 많은 인류가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마음놓고 지하수를 마시는 나라는 극히 드물었다.
그 지하수가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있다.
조상대대로 마시고 살아 온 우물의 청정수를 누가 오염시켰나?
바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오염시킨 것이다.
불과 20여년만에 우리가 저지른 죄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정읍이 샘골이라고 자랑하지만 내놓고 자랑하며 마실만한 우물하나 있는가?
어쩌다 우물복원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가끔은 들리지만 화려한 돌에 문양을 새긴
조형물에 불과한 것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 우물을 재활용하면서 환경문제로 접근해야
올바른 복원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 우리가 저지른 폐해를 우리의 자식 손자가 다 짊어질 것이며
그들은 우리에게 역사의 죄인으로 평가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고 맑은 물 먹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우물과 샘에 맑을 물이 솟아나와 그 물을 마시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꼭 우물이나 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수원 보호지역이나 하천에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로
우물처럼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조상대대로 마셔왔던 우물에 우리가 침 뱉었다면
지금부터라도 환경을 깨끗이 하고 보전에 관심을 갖고
우리의 후세들이 그 물을 안심하고 먹는 날까지 노력하면
이미 환경문제는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전국에 샘골로 소문난 우리 井邑이
생태 환경 문화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우물 지키기에서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