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바루 레거시의 외관.
레거시는 스바루의 주력 중형세단 모델입니다. 이름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중요한 유산(遺産)'을 뜻하는 영어에서 따왔습니다. 호주 쪽에서는 레거시라는 단어의 어감이 전쟁의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리버티(Liberty)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 스바루가 일본에서 규모는 그리 큰 회사가 아니지만, 엔지니어들을 만나보면,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선배 엔지니어들의 자동차 만들기의 전통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자사를 대표하는 중형세단에 레거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마 그런 회사의 분위기와도 연결돼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바루가 한국 판매를 시작한 5월 한 달간의 실적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레거시의 경우 2.5(3690만원)가 22대, 3.6(4190만원)이 12대 팔렸습니다. 하지만 레거시는 지난 5월에 미국 시장에서만 3851대가 팔렸고, 일본에서도 꽤 인기가 있습니다. 처음 판매가 신통치는 않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스바루 차량을 2003년에 처음 타봤습니다. 일본 도쿄에 개인적으로 놀러갔을 때 도쿄 외곽에 위치한 한 스바루 매장에 미리 예약을 해서 임프레자 WRX STi라는 고성능 스포츠세단을 2시간 정도 몰아봤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대차 아반떼 만하지만, 스바루가 자랑하는 고유의 4륜구동 시스템과 배기량 2L 280마력짜리 수평대향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했고, 스포츠 주행에 알맞은 서스펜션과 휠·타이어로 세팅한데다 운전석도 계기반 버킷시트 등이 아주 멋졌습니다. 세계최고의 자동차랠리(험로주행대회)인 WRC에 출전해서 널리 인기를 얻었던 모델이기도 하고요. 당시 제 느낌으로는 정말 충격이라고 할 만큼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던 일종의 '랠리 머신'과도 같은 차였습니다. 일본에서 판매가격이 300만엔 정도로 일반인이 구입가능한 차이지만, 성능으로만 따지면 1억원짜리 유럽의 고성능 스포츠세단과 맞붙었어도 손색 없을만한 '하드코어적'인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 ▲ 스바루 레거시 3.6의 수평대향엔진. 6개의 실린더가 수평방향으로 누워 있다.
하지만 이런 멋진 성능의 임프레자 WRX는 지난 5월 스바루 한국시판 차종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국내의 까다로운 환경인증 문제도 있고, 또 실제로 이런 고성능 스포츠세단을 들여왔을 때 과연 얼마나 소비자들이 사줄지에 대한 걱정도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임프레자 WRX와 쌍벽으로 이후는 일본의 4륜구동 고성능 스포츠세단인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은 국내에 이미 도입돼 있지만, 판매는 올해 1~5월까지 26대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가격이 5950만원으로 다소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두 차량에 들어간 다양한 기술과 성능, 그리고 100엔당 1300원에 육박하는 환율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문제는 이 정도 가격에 스바루와 미쓰비시의 고성능 4륜 세단을 얼마나 인정하고 사줄 수 있는 고객이 한국에 존재하느냐일겁니다.
다시 레거시 얘기로 돌아가 보죠. 레거시는 1989년에 1세대 모델이 나온 스바루의 주력 중형세단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는 레거시 왜건형도 인기가 많지요. 4륜구동이기 때문에 험로주행도 가능하고 특히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는 이 차량에 대한 인기가 매우 높았습니다. 한국에 시판된 레거시는 2009년 처음 나온 5세대 모델입니다.
레거시의 가장 큰 특징은 이 글의 맨 처음에 언급한 대로 운동성능에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4륜구동 시스템과 수평대향엔진이 조합돼 다른 중형세단에 비해 좀 더 안정적이고 스포티한 주행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쏘나타 K5 캠리 어코드 같은 차들은 전부 전륜(前輪)구동 즉 엔진의 힘을 앞바퀴로만 전달합니다. 엔진의 힘을 바퀴로 이어주는 연결계통이 앞쪽에만 있기 때문에 엔진의 구동저항이 적고, 또 후륜구동처럼 뒤 차축으로 연결하는 쇠뭉치들이 없어도 되니 무게를 줄이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연비면에서 유리하지요. 하지만 뒷바퀴는 그야말로 앞바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만 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눈길 빗길 등 미끄러운 지면에서 뒷바퀴는 지면에 전혀 구동력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출발이나 주행 시의 안정감이 레거시처럼 4륜구동을 채택하고 있는 차량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또 레거시와 쏘나타 K5 캠리 어코드 같은 차들은 엔진 형태에서도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쏘나타 K5 캠리 어코드는 2L, 2.4L 엔진 모두 직렬 4기통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4개의 실린더가 지면에 직각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거운 쇠뭉치가 곧추 서 있다고 보니, 무게 중심이 아무래도 위로 치우칠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되면 차량이 과격하게 움직일 때 움직임을 더 과장하게 되는 단점이 생깁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좌우로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한번 상상해보시면 쉽습니다. 가방을 허리춤에 차고 움직이는 것과 머리에 메고 움직이는 것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머리에 메고 움직이는 것이 훨씬 불안하겠지요, 자동차 역시 무거운 부품이 차량의 위쪽으로 가면 갈수록 움직임이 불안해집니다.
반대로 무거운 부품이 바닥 쪽으로 깔리면 거동이 안정적이 되고, 차량을 과격하게 움직이더라도 차량이 빨리 제 위치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무게중심이 낮으면 움직임이 더 안정적인 것 외에도 겨울철 눈길 등에서 등판능력이 더 높아지는 장점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무게중심이 낮으면 차량의 모든 움직임에서 더 안정적이고 민첩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스바루 레거시 2.5의 수평대향엔진. 4개의 실린더가 수평방향으로 누워 있다.
이 같은 엔진은 전세계 양산차 가운데 스바루와 독일의 포르쉐만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엔진 피스톤이 아래위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좌우로 서로 마주보면서 누워 있습니다. 실린더가 누워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낮아 차가 더 안정적이지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미끄러운 길에서 차량의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쉽고, 또 미끄러지더라도 자세를 회복하는 것이 더 빨랐습니다.
이렇듯이 레거시는 엔진의 무게중심이 상대적으로 아래에 있는데다, 또 4륜구동이기 때문에 특히 겨울철 눈길의 언덕 주행을 반복할 때 여타 차량에 비해 매우 강점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올해 초 스바루코리아가 한 서울 근교 한 스키장 근처에 만든 눈벌판을 달려 본적이 있었는데요. 물론 스노타이어를 네 바퀴에 모두 장착하긴 했지만, 눈길에서의 차량 조작이 무척 쉽게 느껴지더군요. 또 차량의 뒷바퀴를 미끄러뜨린 뒤(또는 어쩔 수 없이 미끄러졌을 때) 앞바퀴를 조향해 의도한 방향대로 코너를 돌아나가는 드리프트의 경우 운전실력이 매우 뛰어나지 않은 경우에도 조금만 연습을 하면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첫댓글 스바루 정말 좋은차인데 뭐라 표현 할 수 가 없네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