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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민숭달팽이
1
아마 지금으로부터 삼십년은 족히 되었을 아주 오래 전 얘긴데요. 도회지의 어느 중학교 2학년3반에 시골에서 전학을 온 덕이라는 학생이 있었지요.
덕이가 그 학교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신록이 한창 짙푸른 생기를 더해가고 새 학년을 맞은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맞은 듯 들떠있었으며 따라서 학교 안은 생동감으로 넘쳐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덕이는 첫눈에도 촌티와 가난뱅이 티가 줄줄 묻어날 만큼 행색이 초라할 뿐만 아니라, 왜소하고 깡마른 체격에 얼굴마저 지지리도 못났기에 도회지아이들 눈에 대번에 띄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엔 죽은 깨가 촘촘히 박혀있고 약간 들린 들창코에 콧구멍도 백 원짜리 동전이 양쪽으로 한꺼번에 네다섯 개씩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었지요. 게다가 눈은 단추 구멍처럼 작고 옴폭하게 들어간 데다 양쪽 눈가가 축 처져있고 아프리카 토인마냥 두툼한 입술은 늘 헤벌쭉하니 벌어져 있어 옥수수 알 같은 누런 이빨이 통째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생긴 모습만으로도 그럴진대 어눌한 말주변과 행동 등으로 같은 반 아이들 눈엔 영락없이 덜떨어진 바보로 보였답니다. 그러니 가뜩이나 만만한 놀림감을 찾아 골려먹으려 들던 반 아이들로부터 당연히 환영받는 왕따가 될 수밖에요. 그리고 처음부터 덕이라는 이름 대신에‘촌놈’,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꼴깝’으로 불렸다지요.
“어이! 촌놈!”
“난 촌놈이 아닌디……. 덕이란 이름이 있는디…….”
“넌, 촌놈이야.”
“아닌디…….”
“야! 꼴깝!”
“엉?”
“이 사탕 먹고 싶지?”
“엉!”
“그럼, 나 저기까지 말 좀 태워줘.”
촌놈은 다들 익히 알고 있을 테고, 꼴깝은‘병신 꼴값한다’에서 나온 별명이랍니다. 남의 별명을 지어주는 데엔 그 누구보다도 순발력이 뛰어난 같은 반 규율부장인 순덕이와 알아주는 모범생이자 부반장인 덕만이의 작품이라더군요.
순덕이의 눈으로 보기엔 분명 덕이도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는 똑같은 사람으로서 갖은 모멸과 학대를 당하면 당연히 고통을 표현해야하고 화를 내야하는데도 보면 늘 얼굴은 천하태평처럼 웃는 모습이고 불평 한 마디 내뱉을 줄 모르니 그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상대를 조롱하는 듯 묘한 기분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덕이를 두고‘병신 육갑한다’란 말을 흥얼거리다가 어느 순간 덕이에게 촌놈이란 별명보다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순덕이는 수업시작종이 울리자 선생님이 들어오기 바로 직전의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단상에 올라가서는 덕이의 새로운 별명을 선포했던 겁니다.
“모두들 주목해 봐라. 덕이에겐 촌놈 대신에 더 그럴듯한 별명이 필요할듯하여 오랜 고심 끝에‘육깝’이란 별명을 지어냈다. 육깝이란‘병신 육갑한다’에서 나온 말로‘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일컫는 말이다. 때리면 아프다고 해야 하고 놀리면 화를 낼 줄 알아야 하는데 덕이는 늘 웃기만하니 그게 오히려 우리를 놀리려드는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이들의 우레 같은 박수갈채 속에 육깝이란 별명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병신 육갑한다’란 말보다‘병신 꼴값한다’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더 널리 통용된다는 덕만이의 의견에 따라 발음하기 어려운‘육깝’대신에 발음하기 한결 수월하고 감칠맛까지 갖춘‘꼴깝’이 덕이의 별명으로 굳어졌습니다.
덕이를 향한 아이들의 멸시와 구박은 날로 더해 갔답니다. 아무리 욕을 하고 집적거려도 덕이는 정말 어수룩한 바보처럼 울거나 화를 낼 줄 몰랐어요.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게나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이 들기까지 했으니까요.
전학 온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그런 덕이에겐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반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노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워했으며 이따금씩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내뱉는 침 세례와 혹독한 매질도 그나마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여기고 그 고통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넌 배알도 없는 놈이야. 그치? 촌놈!”
“배알이 뭔디?”
“야, 이 꼴깝 봐라! 배알이 뭔지도 모른데. 진짜 촌놈이네. 우헤헤헤헤…….”
“배알이 뭔디?”
“배알이 뭐냐고? 배알이 바로 요거다, 요놈아!”
그러면서 덕이의 몸 중에서 특히 약한 코를 때리고 도망가기 일쑤였지요. 그렇잖아도 덕이는 코 속의 모세혈관이 약했던지 유난히 코피가 자주 터졌답니다. 수업시간에도 간혹 코피를 흘렸고 학교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다가도 코피를 흘렸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한테 맞아서 코피를 흘렸습니다.
덕이는 코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촌놈 특유의 검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늘 해쓱하였고 걸핏하면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양쪽 무릎과 양쪽 팔꿈치가 성할 날이 없었지요.
햇볕이 유난히 따갑고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저절로 흐르고 잠이 쏟아지는 무료한 수업시간에 반 아이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저기 봐라, 웬 거지가 쩔뚝거리며 들어온다.”
갑자기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느라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덕이도 덩달아 궁금해져서 아이들 따라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남루한 거지 하나가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운동장을 건너오고 있는 모습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덕이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얼른 고개를 숙였습니다. 물론 덕이는 여태껏 다리병신인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옷차림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더더구나 없었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다정스레 대해주는 아버지가 마냥 친구 같고 마냥 듬직하기만 하여 오히려 그런 아버지를 둔 자신이 마냥 자랑스럽기까지 했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있는 아버지가 그때만큼은 창피하다 못해 밉기까지 했다니까요.
2
덕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지내 왔습니다.
“아부지! 어무니는 어떻게 생긴 분이셨디요?”
덕이가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끝내 참지 못해 물어올 때마다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사진 한 장 박아놓지 못한 것을 그리 후회하셨습니다.
“니 어무니는 착하기로는 천상의 선녀와 같았디. 그리구 이쁘기로는 영화배우 같았디.”
아버지로부터 매양 똑같은 말을 듣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덕이는 날아갈 듯 즐거워했으며 죽은 어머니가 그리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덕이 어머니는 폐결핵을 오래 앓아왔으며 덕이를 낳을 즈음엔 더욱 증상이 악화되어 이미 말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덕이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끝내 기절하여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선생님은 산모도 아기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진단을 했으며 덕이 아버지를 심하게 나무랐답니다.
“아니, 환자의 몸이 그 지경인데 그 몸에 어찌 아기까지 낳게 하려고……. 정말 대책이 없는 사람이구먼.”
“선상님, 산모만이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는디요?”
덕이 아버지는 의사선생님 앞에 무릎까지 끓고 애걸복걸 했으나 엄청난 입원비에 엄청난 치료비를 미리 내놓지 못할 바엔 송장 치르기 싫으니 다른 인심 좋은 병원이나 찾아보라는 박절함에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일자무식에 돈 한 푼 없는 아버지는 마흔 살이 되던 해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왔던 고향보다 훨씬 규모가 큰 어느 읍 소재지에 들어선 새마을 국수공장에 아주 힘겹게 잡역부로 취업을 하게 되었지요.
아버지는 국수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을 하늘이 보살펴준 은혜요 조상의 은덕이라 굳게 믿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공장에서 역시 잡역부로 일해오던 혈혈단신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여위고 해쓱하여 애처로워 보였는데 게다가 여자로서는 드물게 과묵하기까지 하여 남들과 좀처럼 어울리려 하지 않고 따라서 웃는 모습도 말하는 모습도 남들에게 거의 보이지 않았답니다.
가을로 접어든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제법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그날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작업화에 잔뜩 엉겨 붙은 오물을 씻어낼 겸 공장 뒤 쪽에 위치한 개울가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어머니를 봤던 겁니다. 어머니는 사람의 기척에 깜짝 놀라 엉거주춤 일어섰는데 미처 닦아내지 못한 입가의 피와 손안에 들려진 하얀 수건에 묻은 피가 아버지의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에도 일하는 짬짬이 가슴을 들썩이며 잔기침을 하던 어머니를 익히 보아왔던 터라 어머니한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날 퇴근할 무렵에 공장장이 어머니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여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더란 겁니다. 국수를 만드는 식품공장이라 최근에 엄격해진 식품안전관리법이란 것 때문에 폐결핵을 앓는 사람을 더 이상 공장에서 쓸 수가 없다는 거였지요.
때문에 병이 짙은 데에다가 나이도 이미 아버지와 동갑인 마흔을 맞은 어머니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득하여 그렇게 혼자 사는 자취방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고 개울가에 앉아 울다가 끝내 각혈까지 하게 된 겁니다.
그날부터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동정이 어느덧 사랑으로 바뀌고 그렇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가까워졌다는데 처음엔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랑을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건강이 그러하니 아버지한테 괜한 짐이 되리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그러한 행복도 그나마 찰나와 비교될 만큼 아주 짧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으로 조금씩 차도를 보였고 혈색도 제법 돌았습니다. 그리고 기침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각혈 또한 줄어들었기에 병이 나아가려는 증상이라 여기고 신혼의 꿈속에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증의 환자들한테서 가끔씩 보이는 일시적인 현상인 것을 전혀 배운바 없는 무식한 그들로서는 알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의사선생님의 우려와는 달리 무사히 덕이를 낳았지만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이라 끝내 회복을 못하고 얼마 후 저 하늘나라로 불리어 갔습니다. 어머니를 졸지에 잃은 아버지의 상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가슴에 안긴 갓 난 덕이를 보고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덕이는 젖동냥과 미음으로 갓 난 시절을 보내고 비록 몸은 약골로 보였지만 큰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덕이는 커가면서 어머니가 있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누나나 형이 있는 아이들도 부러워하였습니다.
가끔씩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고모가 와서 밑반찬도 만들어주고 빨래도 해주지만 늘 집에서는 아버지와 단 둘만이 있다가 아버지마저 일을 나가면 늦게 돌아올 때가 많아 외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덕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인근에 있던 새마을 국수공장에서 야간작업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다가 느닷없이 덮친 뺑소니차에 치여 오른쪽 다리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비좁은 농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미처 피할 새가 없는 아버지를 들이받고는 그대로 달아났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간 채로 한 길 아래의 논두렁으로 굴렀으며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에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되었더라면 어머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갈 뻔 했답니다.
아버지는 그런 불편한 몸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일을 나가셨지만 그 뒤로부터 불과 네 달 만에 국수공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우선 아버지가 다리 한 짝이 없는 병신이라 남들 보기에 볼썽사납고 그로 인해 작업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잡역부라 퇴직금이 있을 리 없고 평상시의 두 달 치 급료를 더 쳐주는 것도 지난 12년간 꾸준히 회사를 위해 몸바쳐온 그간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회사 측에서 특별히 배려해준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일로 낙담을 하지 않고 하루도 거름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일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대개 빈손으로 들어올 때가 많았지만 일이 있어 손에 몇 푼이라도 쥐게 되면 저 멀리부터 콧노래가 들려오고 손에는 덕이가 좋아하는 호빵이며 만두가 들려있기 마련입니다.
시골에선 그런 불편한 몸으로는 농사일은커녕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모의 권유로 도회지로 올라오게 된 거랍니다.
아버지가 도회지로 옮겨 온 뒤로 하시는 일은 노상에 좌판을 깔아놓고 도장을 파는 일인데 도장 파는 일을 오래 전부터 해오던 고모부로부터 기술을 배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몫 좋은 곳은 버젓하게 가게를 차린 도장집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아버지는 눈치껏 자리를 옮겨가며 좌판을 펼쳐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도장 파는 기술이 비록 서툴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들어올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은 얼마 벌었다’, 또‘오늘은 얼마를 벌었다’라며 그날그날 벌은 수입을 덕이에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덕이는 그런 아버지가 있어 굶주리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마냥 고맙기만 합니다.
3
아버지는 덕이 담임선생님이 덕이 편으로 몇 번인가 수업료 독촉을 해왔기에 얼마간 마련한 돈을 들고 담임선생님을 직접 뵈러왔던 거지요. 덕이를 생각하면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학교를 찾는다는 것이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덕이가 밀린 수업료 때문에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없을까봐 더 마음에 걸렸던 겁니다.
아버지는 학교 현관을 거쳐 교무실을 찾아갔습니다. 덕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그런 용기는 나지 않았던 겁니다.
남루한 차림새에 목발까지 짚은 사람이 불쑥 들어서자 교무실에 남아있던 몇몇 선생님들이 인상부터 찡그렸습니다. 학부모라기보다 구걸하러온 걸인으로 여겼기 때문이지요.
“학교엔 당신 같은 사람이 구걸하러 올 데가 아닙니다.”
젊은 선생님 한 분이 아버지가 미처 말문을 열기도 전에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그같이 말했습니다. 가볍게 밀었다지만 아버지는 중심을 잃고 큰 원을 그으며 뒤로 발랑 자빠졌습니다. 다행히 복도가 넓은데다 마룻바닥이어서 다치지는 않았으나 대신 목발이 부러졌습니다.
아버지는 크게 무안을 당했으면서도 오히려 송구스럽다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조심스럽게 찾아온 용건을 말했습니다.
“2학년 3반 학생인 덕이의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담임선생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를 밀어냈던 선생님은 크게 당황하고 자신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행색이 그러하니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며 마침 수업이 있어 자리를 비운 담임선생님을 수업이 끝날 때까지 30여 분간 교무실 한 쪽에서 부러진 목발을 고치며 기다렸던 겁니다.
아버지는 담임선생님을 뵙자 얼마간 준비해 간 돈을 내놓고는 무조건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행색이 낡고 추레한 몰골이었으나 어질고 순박해 보이는 얼굴, 맑고 뚜렷한 눈빛은 그의 진실함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평소에 덕이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담임선생님도 그때부터 덕이에게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다녀가신 뒤로 어떻게 알았던지 그 걸인차림의 목발 짚은 사람이 덕이 아버지란 것을 아이들은 다 알게 되었고 따라서 아이들의 놀림은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절뚝거리는 병신흉내를 내고 덕이의 옷을 자꾸 잡아 찢어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습니다. 덕이는 자신을 괴롭히거나 옷이 찢기는 것보다 아버지를 놀리는 것이 더욱 싫었습니다.
그런 아이들 가운데 순열이란 아이가 유독 덕이를 괴롭혔는데, 순열이 어머니는 학부모회 회장을 맡고 있는 아주 잘 사는 집 아들로 덩치도 덕이 보다 곱절은 될 만큼 컸고 힘도 무지하게 세었습니다. 아이들은 순열이를 대장으로 하여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였지요.
순열이는 마치 덕이를 놀려먹는 재미로 학교에 오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목발 하나를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그걸 짚고 다니면서 과장되게 절뚝거리며 교실을 누비고 다니는 겁니다.
‘쩔뚝! 쩌얼뚝!’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순열이가 그리도 우습고 재미있던지 책상을 마구 두드려가며 웃고 난리였답니다. 그런데 순열이가 더욱 기발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선뵈려는 욕심 때문인지 목발을 짚고 히죽거리며 덕이 앞에 마주섰습니다. 교실 안은 순간 조용해졌지요. 무슨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려는가 싶어 아이들 목젖은 침을 넘기느라 꿈틀거렸고요.
순열이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쭈욱 둘러보았습니다. 그 표정엔 짓궂은 장난기가 잔뜩 서려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경기에 임한 선수에게 응원을 보내듯이 순열이한테 서로 응원을 보내려고 그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파이팅!’을 외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봉긋이 오므린 입술에 대었다가 그를 향해 날려 보내는 일종의 사랑표시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열렬한 응원에 고무된 순열이가 덕이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순간 덕이는 손안에 감춰놨던 연필 깎는 도로코 칼로 주저 없이 순열이의 얼굴을 내리 그었습니다.
‘……!’
예리한 칼날은 순열이의 이마에서 코를 지나 윗입술까지 길게 칼자국을 남겼고 곧이어 붉은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리고 순열이의 옷은 물론 교실바닥까지 순열이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뜻하지 않던 광경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빠 놀리는 놈 있음 가만 안 놔둘 끼다.”
비록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지만 반 아이들 모두는 덕이의 말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 안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순열이는 병원으로 실려 나가고 순경들이 찾아오고 덕이는 순경에게 덜미가 잡힌 채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엔 덕이 아버지가 허겁지겁 경찰서로 달려왔고 곧이어 순열이 아버지며 어머니며 삼촌이며 이모되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경찰서로 쫓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손발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 위험한 아이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야 해요.”
그날 오후 늦은 시각에 학교 교무실에서는 덕이에 대한 성토가 한창이었습니다. 순열이 부모님은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학부모들과 모든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로 덕이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덕이를 소년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덕이 담임선생님만은‘피해자는 순열이가 아니라 오히려 덕이’라면서‘소년원엔 절대로 보낼 수 없노라’며 극구 반대의사를 표명했지요.
“덕이는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해왔습니다. 특히 순열이가 아이들을 충동하는데 앞장서 왔으며 일부러 이 목발까지 준비해와 아이들 앞에서 덕이 아빠의 절뚝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어 보기까지 했기에 덕이의 분노를 샀던 겁니다.”
덕이 담임선생님은 말하는 도중에 순열이가 가져온 목발을 증거로 들어보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이 중간에 끼어들며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그런 난장판이 없었습니다.
“따돌림을 받을만하게끔 멍청하여 따돌림을 받은 거 아니겠어요?”
“절뚝거리는 병신을 따라 흉내 내는 것이 뭔 죄가 됩니까?”
“하여튼 촌것들이란 배우질 못해 더하다니깐…….”
“그 병신 아비에 그 깡패 아들이라니…….”
“선생은 도대체 누구 편이요?”
덕이 담임선생님은 주위의 소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계속 펴나갔습니다. 덕이 담임선생님도 한 때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에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여겨 법조계로 뛰어들고자 사법고시를 준비해왔었습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1차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다섯 번에 걸친 도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2차 시험에 고배를 마심으로서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따라서 참석자 그 누구보다 법 논리에 정연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대세는 결국 덕이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덕이 편을 든다며 순열이 삼촌으로부터 손찌검을 당하는 등 숱한 수모를 겪게 되었으니까요. 문제는 사건 당시 덕이의 행동동기에 고의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덕이야, 순열이가 자꾸 놀리기에 순간적으로 불끈하여 칼을 빼든 것이지?”
덕이가 경찰조서를 받을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보호자 자격으로 배석한 담임선생님이 옆에서 그리 물었습니다. 그러나 덕이는 선생님의 애타는 심정과는 달리 고의성을 인정하는 대답을 하고 맙니다.
“아닌데요. 순열이가 아버지를 자꾸 흉 보길래 순열이를 혼내주려고 칼을 미리 준비했는데요,”
덕이는 담임선생님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소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덕이를 퇴학시키고 담임선생님을 해직시키라는 요구가 교장선생님에게 빗발치듯 들어갔습니다.
교장선생님은‘덕이의 경우,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나면 그때 가서 퇴학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담임선생의 경우 자신이 관리하는 학생을 보호하려 한 행위를 구실로 해직할 수는 없다’고 설득하려했으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끔 악화되었지요.
교장실은 물론 2학년 3반 교실도 학부모들이 점거하여 몇날 며칠 농성하는 바람에 한동안은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4
담임선생님은 학부모들의 제지를 겨우 뚫고 교실 단상위에 올라섰습니다. 학부모들은 학부모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떠들어 교실 안은 그야말로 돛대기 시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만, 그만……. 이제 조용히 해 봐라. 너희들에게 들려 줄 얘기가 있다.”
선생님은 교실을 그득 메운 학부모와 아이들을 향해 조용히 해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 표정이 너무나 간절하여 난장판이던 교실 안은 조금씩 소요가 가라앉았습니다.
선생님은 교실 안의 소요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지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눈에 띄는 짐승이나 버러지 외에도 그 수효를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단다. 크고 힘센 생명체도 있지만 작고 연약한 생명체도 있지. 조물주께서 그 모든 생명체들을 창조했을 땐 그들 모두가 각기 제 나름대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가운데 전혀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단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힘이 센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이 약한 사람도 있고 잘 생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 생긴 사람도 있고 부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도 있다. 이렇듯 사람들도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으로 나눠지는 데 단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보다 강한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하소연할 데마저 없다면 약한 사람들은 억울하고 힘들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니.
따지고 보면 사람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저 홀로는 호랑이나 코끼리, 아니면 말이나 개 등 다른 힘센 동물에 비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부족하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도 힘이 약한 사람들을 힘이 센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법이란 것을 제정한 것이고 힘이 센 사람은 힘이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 힘이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도리인 것이다…….”
선생님이 여기까지 말하는 동안에도 몇몇 학부모들로부터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선 뭔 말을 하십니까?”
“시방 그런 야그를 우리더러 들으라카는 깁니꺼?”
“딴 얘기는 필요 없고 선생님은 대체 누구편인지 그것만 분명히 밝혀주시죠.”
그때 한 학부모로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다른 학부모에 비해 비교적 젊어 뵈는 40대 초반의 남자로 체격도 제법 크고 건장해 보였어요.
“이것들 보세요. 우리가 지금 누구 편 따위나 따질 땝니까? 그렇다면 덕이 편이냐 아니면 순열이 편이냐를 따져야 하겠네요. 참 웃깁니다. 대체 여러분들께서는 지금까지 순열이 부모로부터 얼마나 큰 도움을 받고 살아왔기에 순열이 편을 못 들어 그리 안달을 합니까?
제 경우엔 순열이 부모로부터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신세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대부분의 학부모 또한 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일방적으로 순열이 편에만 서야하는지 그 이유라도 아는 분 있으면 이 자리에서 한 말씀 해주시죠.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이번 사건은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편들며 해결하려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깁니다. 참! 저는 이 반의 학생인 정창혁 군의 아빠 되는 사람으로 외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컨테이너선의 선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침 휴가 중으로 아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나름대로 걱정되는 바가 있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겁니다.”
한동안 순열이 편에 가담하여 덕이를 처벌하자는 입장에 섰던 학부모들도 왜 굳이 순열이 편에 서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분명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단지 순열이네는 부자요 그 부모가 영향력 있는 인사인지라 편을 드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왔고 반대로 덕이네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이라 공연히 무시하고 깔보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 봐야 옳을 듯했습니다. 마치 순열이네를 편듦으로써 순열이네만큼 자신네도 잘 산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심리라 할 것입니다.
이후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누가 함부로 나서서 말을 막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차분하고도 조용한 음성으로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있었고요.
“우리는 그동안의 교육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많이 가진 사람이나 가진 게 전혀 없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평등하다는 평등의 원칙을 배워왔다. 그리고 그 원칙은 진리와도 같아서 대통령님께 물어봐도 또는 대법원장님이나 유명한 대학교수님이나 존경받는 사회 원로들께 물어봐도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러한 평등의 원칙을 덕이를 통해서 감히 깨뜨렸다. 그것은 여러분들께 그런 자격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가슴속에 은밀히 자리해온 교활한 우월주의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덕이가 분명 여러분들에 비해 모자라는 것이 많고 못 가진 것이 많더라도 여러분들 가운데 덕이의 인격을 함부로 무시하고 놀려도 될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또한 그 누구에게 놀림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 평상시에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절대악으로 지탄하지만 전쟁터에 나가서 적을 죽이는 행위는 오히려 절대선으로 추앙을 받는다.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에게 살인을 절대로 할 수 없게 한다면 결국 그 군인은 겨뤄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결국은 상대를 먼저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죽여야 할 적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들이며 친구인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전쟁을 싫어하고 사람을 죽이는데 주저하는 선량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겨냥하여 먼저 죽이기를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데 그것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며 곧 대의명분이라 할 수 있겠다.
덕이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아버지가 불구라 하여 그에 대해 놀림을 받게 된다면 여러분들 중에 그러한 놀림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몇몇이나 되겠는가. 다시 말해 누군가가 여러분의 부모님께 욕이 되는 언행을 일삼는다면 그러한 욕보임을 참는 것이 도리이겠는가 아니면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못하게 하는 것이 도리이겠는가. 참지 말아야 함에도 굳이 참는다는 것은 인내나 관용이 아니라 비굴함 내지 부모에 대한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다.
덕이의 행동을 반드시 잘했다고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힘으로나 모든 상황으로 보아 약자일 수밖에 없는 덕이의 입장에선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 일러바치면 그 후론 고자질쟁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더 큰 미움을 받게 될 것이고 아버지한테 일러바쳐 봐야 아버지의 마음만 아프게 할 것이니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밖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덩치가 자신보다 훨씬 큰 순열이는 물론 자신을 놀려대는 반 친구들을 한꺼번에 어찌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겠니?
따라서 덕이의 입장에서는 단 한번만으로도 실효를 걷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덕이가 순열이 얼굴에 칼을 댄 것은 분명히 큰 잘못이라 할 수 있겠지만 순열이를 포함한 여러분의 덕이에 대한 행위는 그보다 더 큰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덕이는 순열이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았지만 반대로 순열이는 여러분들과 작당하여 덕이에게 꾸준한 신체적 위협을 가하고 그도 모자라 그의 자존심과 인격에 큰 상처를 입혔다. 따라서 덕이의 그러한 행위는 극히 자연스런 자기방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왜 눈에 보이는 상처만 가지고 따지려 드는가. 순열이는 분명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은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인 반면에 덕이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좀처럼 치유하기 어려운 더 큰 상처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선생님은 서류철을 뒤적이더니 신문 한 장을 끄집어내어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잔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한 쪽 면을 아이들 쪽으로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동안 경황이 없어 여러분들께 알리지 못했지만 얼마 전 소년일보에 덕이가 갯민숭달팽이란 제목으로 써 보낸 글이 가작으로 당선되었다. 그 글의 내용이 이번 사건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 이 자리에서 그 글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은 갯민숭달팽이란 산문을 진지하게 읽어내려 갔습니다. 교실 안은 어떤 훼방꾼의 목소리도 잡음도 들리지 않고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여 선생님이 뒤적이는 신문용지의 미미한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갯민숭달팽이란 바다동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모님이 제게 선물하신 동물보감이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책에는 호랑이며 사자며 코끼리나 곰 등 힘센 동물들도 소개되어 있어 흥미를 끌었지만 특히 패각이라고도 하는 달팽이집을 지니지 않은 맨숭한 달팽이를 발견하고 하도 신기하여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달팽이라면 의당 달팽이집을 지닌 것만 보아왔지 그런 달팽이는 처음 봤다며 숨을 집이 없다면 천적을 만났을 때 쉽게 잡아먹히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참으로 불쌍한 동물이겠구나 하여 그때부터 갯민숭달팽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만화방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비디오를 통해 갯민숭달팽이의 생태에 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다물속에 사는 생명체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작고 연약한 연체동물인 갯민숭달팽이는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일반 달팽이들과는 달리 등에 지고 다니며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나선형 모양의 단단한 등껍질이 없습니다. 달팽이에게 등껍질이 없다는 것은 곧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패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갯민숭달팽이는 의외로 훌륭한 방어능력과 공격기술을 지녀 약육강식의 냉엄한 생존경쟁에서 자신보다 훨씬 큰 동물들을 사냥하는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갯민숭달팽이는 현란할 정도의 화려하고 눈부신 보호색으로 적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다가오지 못하게 하여 접근을 막고, 보다 강하고 끈질긴 공격자들에겐 몸에서 터피노이드라는 강한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물리치기 때문에 수많은 천적을 물리치고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천적은 청자고둥류 등 몇 종류의 고둥류에 불과한 반면에 먹이가 되는 동물들은 바위에 붙어있는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따개비류와 어류의 알까지 포식하며 심지어 해파리, 말미잘, 히드라, 산호류 같은 자포동물과 해면동물, 멍게류 등 바다 바닥에 서식하는 많은 동물들을 먹이로 삼기도 한답니다.
이렇듯 갯민숭달팽이는 단단한 패각이 없는 대신에 화려한 색채로 적을 위협하고 독성물질로 천적을 물리쳐 스스로 제 몸을 방어할 수 있답니다.
갯민숭달팽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나와 처지가 아주 비슷하여 내겐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달팽이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달팽이집을 지니지 못했듯이 나 역시 어머니가 안계시고 나와 아버지, 즉 우리 식구에겐 집도 없을뿐더러 이런 경제적인 것 말고도 친구들과 비교하여 내겐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어렵고 힘없는 사람들도 많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가운데 사랑, 이해, 관용 등 더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갯민숭달팽이가 생존을 위해 치열한 자기방어를 하듯이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할 줄 알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갯민숭달팽이에 대한 관찰을 해오면서 크게 느낀 점은 우리는 작고 힘없는 것들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라고 다짐해 봅니다.”
신문 낭독을 끝낸 선생님은 신문을 접어 다시 서류철에 집어넣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말씀하셨지요.
“덕이는 어머니도 일찍 여위고 한쪽 다리도 없는 불구의 아버지와 어렵게 살지만 이렇듯 마음에 구김살이 없으며 더불어 훌륭한 글재주까지 지녔다. 덕이가 친구의 얼굴에 칼질한 것은 분명 잘못이 크다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여러분 모두가 덕이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노리개로 삼아 덕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또한 더 큰 잘못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 상처를 덕이에게 안겨주지 않았나, 반성하길 바란다. 이상.”
그날 이후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힘입어 덕이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와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00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