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누가복음 7장 18-23절
백부장의 하인이 백부장의 믿음으로 낫는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시었습니다. 그때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였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 죽은 자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여서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말씀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여서, 예수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었습니다. 이것을 본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말하였습니다.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예수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었습니다.
1. 메시야에 대한 세례 요한의 질문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7:18-20)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알리었습니다(18절). 마 9:14; 요 3:26 등으로 비추어 보건대 요한의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따른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위시한 열 두 제자들처럼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르지는 못했으며 세례 요한의 제자 출신이라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을 통해 그들이 감옥 밖에서 되어가는 일들, 특히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 세례 요한에게 수시로 알려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그 제자들 중 둘을 불렀습니다(19절). 그 당시 세례 요한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저지른 불륜의 관계를 책망하고 또 그가 저지른 모든 악행에 대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다가 헤롯에 의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부정에 대한 요한의 책망을 괘씸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많은 백성들이 그의 교훈과 회개의 세례에 동조하며 따르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정치적인 위상(位相)에 도전이 된다고 판단하여 그를 투옥하게 되었습니다(3:18-20). 이로 인해 옥에 갇힌 요한은 제자들을 통해 외부의 소식을 들으며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곧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관심이 그 누구보다 컸을 것입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통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라고 질문을 하게 합니다. '오실 그이'는 메시야를 의미하는데 이 칭호는 시 40:7; 118:26; 단 7:13등에서 유래합니다. 원문에 의하면 '당신'(쉬)이 강조적으로 나타납니다. 한편 요한은 감옥에 있는 동안 예수님의 메시야성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즉 요한은, 예수님께서 진정 메시야라면 빨리 어둠의 세력을 멸하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옥에 그대로 머물렀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기까지 했습니다. 바로 이때에 요한은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정말 메시야인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미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나오실 때 성령을 통해서 메시야이심을 깨달았습니다(마 3:13-17).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보고서도 제지하기는커녕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며 오히려 예수님께로 적극적으로 인도하였습니다(요 3:30). 따라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알고 있는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의심하여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그가 메시야인지를 다시금 확인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물론 오랜 옥살이에 지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의심이 일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요한은 유대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헤롯과 같은 악한 세력을 제거하여 이스라엘에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줄 메시야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요한의 제자 파송이 예수님의 권능과 명성을 시기하는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게 하여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보기도 합니다(Clavin, Jerome). 어쨌든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은 그가 참수형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의 사역에 충실했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오해하거나 의심했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인정하셨으며 그의 사역을 극찬하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가 세례 요한의 질문을 전했습니다(20절). 요한의 보냄을 받은 두 명의 제자가 예수님께 나아가 요한의 지시대로 질문하였습니다. 여기 사용된 의문형은 화제에 주목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러한 용법은 신.구약을 걸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창 32:27; 33:5; 삼상 24:16; 요 1:19,25; 4:11,12; 6:5 등).
2. 사역을 통한 예수님의 답변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7:21-22)
요한의 제자들이 질문하던 그 때에, 예수님께서 질병과 고통과 악귀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도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시었습니다(21절).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유는 먼저 그들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유한 대가나 칭송을 받으려하신 적이 없으며 어떤 특별한 조건을 제시하기 이전에 병마에 신음하는 인생에 대한 연민 자체 때문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치료 행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그곳에서는 애곡하는 것이나 질병이나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종말론적 암시가 들어 있고, 따라서 이러한 치료 행위에 나타나는 그의 이적적 권능을 통해 그가 메시야임을 증거하시고자 하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22절).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왔을 때 병고치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는 현재 시제로 '너희가 듣고 보는 것'으로 말하는데(마 11:4) 여기서는 부정 과거형으로 말합니다(NIV역은 완료형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누가가 여기에서 과거형으로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병고치는 일과 지금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시차를 분명히 하려는 정밀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입니다.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사 35:5,6; 61:1). 이 여섯 가지 표적들은 모두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이적으로 유대인들이 구하는 것들이었습니다(고전 1:22).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는 것을 피하고 이와 같은 표적들을 언급하심으로써 자신이 메시야임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본절과 관계된 구약의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경이 보며”(사 29:18; 35:5)은 마 15:31; 막 10:46-52에서 성 취되었고, “앉은뱅이가 걸으며”(사 35:6;61:1)은 마 15:31; 행 3:6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문둥이가 치유되며”(사 61:1)는 눅 17:14; 마 8:3에서 성취되었고, “귀머거리가 들으며”(사 29:18; 35:5)는 막 7:34,35; 눅 9:25-27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며”는 눅7:14,15; 눅 8:54; 요 11:43,44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며”(사 61:1)는 눅 4:18에서 성취되었습니다.
3.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음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7:23)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에게 말씀하신 후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3절). '실족하다'(스칸달리조)는 동사는 '걸어 넘어뜨리다', '함정에 빠뜨리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미끼를 놓은 덫에 어떤 목표물이 걸려 결국 죽게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는 사단이 쳐놓은 덫에 걸려 넘어져 죄를 범하고 결국은 영혼이 사망에 이르고 마는 결과를 나타냅니다. 그런 뜻에서 이 말은 신약에서 '죄를 범하게 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본 구절의 의미는 그 누구든지 자신을 오해하거나 정죄하여 거절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바로 알고 받아들이면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복'은 세상에서의 일시적이거나 육적(肉的)인 복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원한 축복을 뜻합니다. 한편 본절이 직접적으로는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 바, 세례 요한을 위시한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가졌다고 하여 예수님을 무작정 배척하거나 경원(敬遠)시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복음에 귀 기울이라는 경계와 당부의 말씀으로도 이해됩니다.
적용: 예수님으로 인해 복을 누리는 삶
예수님은, 메시야에 대한 세례요한의 질문에 대해서 당신의 사역을 통해 답변하신 후에,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자는 실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메시야(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메시야(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구원자로 오실 분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왕은 하나님 백성의 통치자이며, 제사장은 하나님 백성의 죄를 하나님께 대신 고하여 죄사함을 선포하는 자이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선포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이땅에 오셔서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왕으로 하나님 백성을 통치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예수님만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예수님만이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나옵니다(롬 10:17).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태초에 성부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창조사역을 하시고 생명의 빛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이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보이셨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