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목요일 눈물의 영성
요한복음 11장 17-44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35-36)
벨기에의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얀 파브르(Jan Fabre)는 <눈물의 역사>라는 뮤지컬을 통해 눈물의 심리적, 사회적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과거 실험, 즉 세 종류의 눈물로 그림을 그린 실험에서 싹텄습니다. 파브르는 양파를 깔 때 나오는 화학적 눈물, 기쁘거나 슬플 때 흘리는 정서적 눈물, 음악이나 그림에 감동했을 때 흘리는 영적 눈물로 각각 그림을 그렸습니다. 실험 결과 도화지에 가장 또렷한 흔적을 남긴 것은 영적 눈물이었다고 합니다.
눈물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장수하는 까닭이 더 잘 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눈물을 연약함이나 패배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 흘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감정을 억제하도록 가르칩니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과도한 스트레스와 분노, 폭음과 약물 중독 등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성경은 여러 인물의 눈물을 전해 줍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의 눈물은 그의 애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1:2)",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3:48)",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8:49)" 등이 그가 민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증언합니다. 또한 시편 저자들도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102:9)",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119:136)."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요 11:35),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눅 19:4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히 5:7).
우리는 눈물이 메마른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눈물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마른 성도가 늘고 있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교회는 눈물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회개의 눈물과 긍휼의 눈물로 세상을 적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기도+
나와 이웃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회개의 눈물과 긍휼의 눈물로 세상을 적시게 하소서. 우리의 눈물이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