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 이재(李縡) 撰비문
유인 반남 박씨 묘갈명(孺人潘南朴氏墓碣)
유인(孺人) 반남 박씨(潘南朴氏)는 의령(宜寧) 남도철(南道轍) 성유(聖由)군의 배위이다. 그 세계(世系)는 반남(潘南)선생 상충(尙衷)의 후손으로, 대사간을 지낸 소고(嘯臯) 승임(承任)의 7대손이다. 부친 휘 태래(泰來)는 생원이고, 모친은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유인은 예안(禮安)의 퇴계촌(退溪村)에서 태어났는데, 이 문순공(李文純公) 퇴계(退溪)선생이 그 외조모의 선조이다. 남군의 부친 휘 전(躔)은 병조 좌랑을 지냈고, 조부 휘 극표(極杓)는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유인은 21세에 남군에게 시집와서 35세에 요절하였으니 이때가 경술년(庚戌年,1730, 영조 6) 2월 12일이다. 문경(聞慶) 막동(幕洞) 간좌(艮坐)의 언덕에 안장하였다. 어린 딸이 하나 있다.
성유는 영남의 우수한 선비로 내게 공부하였다. 하루는 가장(家狀) 한 통을 갖추어 와서 그 부친의 명을 전하기를,
“우리 며느리가 죽은 지 이미 7년이 되었는데, 내가 그 효성을 생각하면 시일이 지날수록 더욱 슬픕니다. 비단 내 마음만 이런 것이 아니라, 종당(宗黨)과 이웃들도 모두 그 불행을 슬퍼하고 그 어짊을 그리워하니, 나는 그 자취가 민멸되어 전해지지 않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지금 비석을 다듬어 그 미덕을 새기는데 그대가 글을 써주십시오.”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젊은 나이에 죽고 후사도 없는 부인이 그 시아버지에게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드무니, 이것으로 충분히 유인을 알 수 있다. 유인은 4세에 모친을 여의었다. 조금 장성해서는 계모를 잘 섬겼으며 계모도 자신의 소생처럼 유인을 사랑하였다. 시집가서도 왕왕 어버이를 그리워하여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하였다.
한번은 거울을 보며 스스로 슬퍼하며 말하기를,
“우리 외할머니께서 일찍이 말씀하기를, ‘너의 모습이 네 어머니와 닮았다.’고 하셨다.”
하였다.
또 경대(鏡臺)에 쓰기를,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 얼굴도 알지 못하네. 아득한 하늘이여! 나의 죄가 무엇인가?”
하였으니, 어찌 전(傳)에서 말한, 시집간 뒤에도 부모에 대한 효성이 쇠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시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도 시부모가 몹시 편안하게 여겨 그 덕성을 칭찬하여 “우리 며느리는 말을 빨리하거나 안색이 갑자기 바뀐 적이 한번도 없었다.”라고 하였고, 또 “남을 미워하고 이기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라고 하였다. 분가하여 살 때에도 맛있는 음식 하나라도 얻으면 반드시 시부모에게 먼저 올렸으며, 고운 옷 한 벌을 지어도 반드시 시부모에게 먼저 바쳤다.
시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는 한밤중에 서서 하늘에 빌었으며, 상을 당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병이 들어 위독할 때에도 오히려 궤전(饋奠)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한으로 여겼으며, 시아버지가 마침 도성에 있어 영결을 고할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시아버지의 편지를 찾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으니, 그 효성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이처럼 더욱 독실하였다.
또 길쌈이나 침선 등의 여자의 일에 능하여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고, 성유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저는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되었으니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바이나, 남자는 포부가 커야 하니 어찌 안일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면서 늘 학문을 권하였다.
또 갑자기 성내는 것을 깊이 경계하였으니, 이는 성유에게 동래(東萊)의 소싯적 병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인이 어려서부터 《소학(小學)》과 《내칙(內則)》 등 여러 책을 섭렵하였기에 그 견식이 이러하였다. 아! 유인이 비록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이미 시부모의 마음을 얻었고 또 종당과 이웃의 마음을 얻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효의 실제가 감동시킴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인의 덕은 이와 같이 할 따름이요, 장수하고 요절함은 하늘에 달렸으니 또한 어찌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유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좌랑공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살아서는 시부모가 그 효성에 편안하였고 / 生而舅姑安其孝
죽어서는 종당이 그 어짊을 그리워하였네 / 死而宗黨懷其賢
어찌하여 사람에겐 얻고 하늘에는 얻지 못했나 / 胡得於人而不得於天
아, 유인이여 / 嗚呼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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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유인 …… 묘갈 :
이 글은 남도철(南道轍)의 부인 반남 박씨(潘南朴氏)의 묘갈이다. 반남 박씨는 1696년(숙종22) 태어나 1730년(영조6) 2월 12
일 세상을 떠났다.
[주02] 동래(東萊)의 소싯적 병통 :
동래는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심경부주》권1〈징분질욕장(懲忿窒慾章)〉에 주희(朱熹)가 친구인 여조겸에 대해서 “그는
젊었을 적에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서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언짢게 여겨 집안의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곤 하였는데, 뒷날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서 단지《논어》한 책을 가지고 조석으로 익히 보다가 ‘자기를 책망함은 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함은 적게 한다.’라는 대
목에 이르러 홀연히 마음속 생각이 한순간에 평온해짐을 깨달았으며,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갑자기 성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
였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