祭再從叔防意齋運鵬文
1. 原文
嗚呼痛哉!至痛無聲,至哀無辭。我何以聲,我何以辭。惟我無狀,早失怙恃,所依仰以喘息者,惟公之若己子而眷愛之也。
余自少從事科業,往來京洛,凡二十餘年。幸得一科名,庶幾可以少報平昔之恩。去歲春間,作遊泮之行,公於道路之費,極力備送,且曰:「吾家財力已盡,汝之年歲漸多,今若虛歸,則無復望矣。」臨別之際,愀然回顧曰:「復見,復見。」余當時竊疑其言,不意此別,遂成千古不復相見之訣也。尤可痛者,幸於今春帶恩而歸,諸父咸同慶賀,而公獨冥然不知。抑亦泉下有知,與在世諸父同其慶悅乎。言念及此,哀情益深,不能成文。謹具一盃之奠,庶幾歆格,伏惟鑑納。
德峯先生文集卷之四
2. 역주
◇再從叔: 재종숙. 아버지의 사촌 형제 또는 그에 준하는 촌수의 남성 친족.
◇防意齋: 재종숙 운붕(運鵬)의 호(號).
◇怙恃: 부모를 뜻하는 고전적 표현.
◇京洛: 서울을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 여기서는 과거·관직 공부의 중심 공간.
◇科業: 과거시험 준비 및 응시 과정.
◇遊泮: 성균관 유학 또는 과거 응시를 위해 상경하는 행위.
◇愀然: 슬픔과 근심으로 얼굴빛이 변하는 상태.
◇泉下: 저승, 사자(死者)의 세계.
◇歆格: 제사가 정성스럽게 받아들여짐.
3. 번역문
아, 슬프고도 애통하도다. 지극한 슬픔은 소리도 없고, 지극한 애통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어찌 소리로 이를 전하며, 어찌 말로 이를 다할 수 있겠는가. 나는 불초하여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의지하여 숨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공께서 나를 자식처럼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과거 공부에 종사하며 서울과 개경을 오가기를 이십여 년이나 하였다. 다행히 한 번 과거에 급제하여, 평생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였다. 지난해 봄, 과거를 보기 위해 성균관에 올라갈 때 공께서는 여비를 있는 힘을 다해 마련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집 재력이 이미 다하였다. 네 나이도 점점 많아지니, 이번에 만약 헛되이 돌아온다면 더는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작별할 때 공은 근심 어린 얼굴로 돌아보며 말하였다.
“다시 보자, 다시 보자.”
나는 그때 그 말을 의심하였으나, 뜻밖에도 이번 이별이 결국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결별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더욱 애통한 것은, 이번 봄 다행히 급제하여 돌아왔는데 여러 어른들은 모두 기뻐하였으나, 공만은 이미 세상을 떠나 그 기쁨을 알지 못하신다는 점이다. 혹 저승에서도 이를 알고 살아 있는 여러 어른들과 함께 기뻐하셨을까. 이 생각에 미치자 슬픔이 더욱 깊어져 글로 다할 수 없다. 삼가 한 잔의 제사를 올리오니, 부디 흠향하시고 살펴 받아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4. 부주
본 제문의 저자 이진택(李鎭宅, 1738~1805)은 조선 후기 영조~순조 연간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자는 양중(養重), 호는 덕봉(德峯), 본관은 경주이다. 그는 이진원(李晉遠)의 문하에서 학문을 수학하였으며, 채제공·서유방·홍양호·정약용 등 당대의 주요 문인·정치가들과 교유하였다. 이러한 교유 관계는 그의 문장이 단순한 향촌 문사적 수준을 넘어, 후기 조선의 학술·정치 네트워크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문집에 수록된 제문·행장·전(傳)류 문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 유교적 윤리의 내면화
◇ 친족 관계를 중심으로 한 효·의·은의 구조가 정서적으로 밀도 있게 표현됨.
◇ 경험 서사의 구체성
◇ 과거 응시, 상경, 경제적 지원 등 현실적 생활 세계가 상세히 서술됨.
◇ 사후 인식과 기억의 문제화
◇ 생전 관계가 사후 단절로 전환되는 순간을 핵심 정서로 삼음.
◇ 본 제문은 이러한 특징이 집약된 사례로, “은혜-여행-결별-사후 인식-제의”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조선 후기 친족 윤리의 정서적 심화를
보여준다.
출처 : 명문경주이씨종친회카페 ㅣ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