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 2. 29. 19:53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일단 이 시를 내용상 분석을 해보자면,
너를 기다리는 가운데,
절박한 심정과 설레 임과 기대감으로
작은 소리에도, 발걸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너 인줄 알고 흥분하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너는 오지 않았지만 지금도 오지 않고 있지만,
천천히 너와의 거리감을 좁혀가면서
시적화자는 희망적인 어조로
너를 만날 것이라는 예감을 있습니다.
여기서 '너'는 군부독재가 끝나고
자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어떤 날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또 마음속의 상처와 응어리가 치유되고
말끔히 해소되는 자유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에서
군부독재를 상징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비판했다면
나와 너라는 남녀관계를 소재 삼아서
정작 시인이 간절히 원하는 기다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요.
시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배경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작가의 주제의식 등을
고려해 봤을 때는 민주화!,
혹은 자유와 가장 의미가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서정적. 희망적
어조 : 간절한 기다림과 희망이 나타난 어조
제재 : 기다림
주제 :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의 설레는 기대감
출전 :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1987)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 너’이지만,
화자는 오히려
‘너’에 대한 기다림을 설레는
기대감과 행복하고 충만한 심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렇게 만남의 시간이 될 미래와,
기다림의 시간인 현재에 대하여 다 같이 축복을 내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정작 ‘너’를 만나게 될 미래보다도
그 미래를 기다리는 현재를 더 축복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라는 시간은 화자에게 있어서
‘너’가 멀고 먼 곳에서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시간이며,
또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라는 마지막 행에 나타나듯이,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화자가
‘너’와 더 가까워지는 축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림출처>행복님 (mimi1004q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