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 6. 13. 14:45
이재정 “남북 경제합의 다 버렸다, 그게 무슨 실용이냐”
입력: 2008년 06월 12일 09:23:49
6·15 1차 남북정상회담이 어느덧 8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6·15는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0·4 2차 정상회담은 그 후속이 초라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악화일로를 걷는 남북관계에 따른 결과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 추세와는 정반대여서 더욱 기이하게 보인다.
실제 지난 100일 동안 남북간 이미 합의된 내용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지고 진전된 게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정상선언도 사문화되었다.
총리 회담을 통해 추가로 세부합의된 사항은 말할 것도 없다.
통일부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옥수수 5만t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북한으로부터 무시당했다.
당시 노 대통령을 수행한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을 만났다. 그의 퇴임 후 첫 인터뷰였다.
말은 조심스럽게 했지만, 그는 무척 실망하고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분명한 것은 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점”이라며 “남북 경제에 대한 합의 등을 버리면 그게 무슨 실용이냐”고 토로했다. 촛불집회에도 나가 보았다는 그는 “정부 정책이 ABR(Anything But Roh·노무현 정부와 반대라면 뭐든지 좋다) 아니냐”고 비판했다.
● 이명박 정부는 6·15 공동선언은 물론이고 10·4 정상회담도 사실상 부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현 정부가 대북 관계에서도 실용주의적 접근을 한다고 하면, 오히려 10·4 공동선언과 총리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해 나가는 것이 가장 실용적인 거죠. 10·4 선언은 남북관계발전법이 정한 바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고 대통령이 공포함으로써 발효 절차를 다 밟은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건 정치적 의도에 따라 또는 정권적 차원에서 무시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것이에요. 여·야가 합의해서 만든 법으로 발효된 선언이 무시된다면 앞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겠습니까. 남북간에도 그렇고 국민에 대해서도 그렇고. 10·4 선언은 유엔이 지지했고 남북 겸임대사들의 모임인 ‘평양클럽’도 지지했어요.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했던 10·4 선언을 통일부가 업무보고에서도 일절 얘기하지 않고 대통령도 이 선언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남북관계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대북 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십니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되자마자 통일부를 폐지한다고 하는 기본방침을 듣고 앞날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남북간에 그동안 쌓아온 결실들은 다 어디로 갈 것인지 우려했어요.
제가 재임 때 통일부 폐지 문제를 놓고 열심히 활동을 했던 것은 단지 부처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남북 정책이 무시되거나 실종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에요.
나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남북관계와 관련해 한 일이 있다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가능한 길이 있고,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보여준 것 아닙니까.
특히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발전법 규정에 따라 남북관계발전 기본 5개년 계획을 지난해 12월에 고시한 것은 대단한 발전입니다.
국민들에게 앞으로 5년간 우리가 이런 목표로 이렇게 간다고 발표했던 것이죠.
지금 그것도 다 실종 상태에 있어요. 또 안타까운 것은 총리회담 합의사항이에요. 국회 비준동의를 받으라고 해서 국회에 제출했는데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습니다.”
● 장관 재직 시에 개최했던 2007년 10·4 정상회담의 결과물들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난해에 단천 광산을 포함해서 북쪽에 있는 광산 세 곳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공동조사까지 완료했어요.
이건 우리한테 이득이 되는 겁니다. 특히 북은 아연광이 좋은데, 우리는 아연을 100% 남미에서 수입하고 있어요.
우리가 북의 아연광을 개발하면 경제성도 있고 상당한 혜택을 볼 수 있는 거죠. 이게 실용입니다.
우리나라 기업 발전에 대단한 기회를 줄 수 있는 거예요. 개성공단도 그렇습니다.
2단계가 825만㎡(250만평)인데 개성공단은 경공업 업계에 큰 희망을 줘요.
해주공업지구는 우리 중화학 공업에 기여할 것이고. 조선 산업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에는 배를 만들 자리가 없다는 것 아닙니까.
남포와 안변 두 군데에 조선산업단지를 만들기로 하고 현지조사까지 다 끝냈어요.
그런데 이런 논의가 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개성공단은 1단계는 잘 진행되고 있지만, 2단계 준비작업이 안 되고 있어요.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합의한 것도 진전이 안 되고. 인터넷 설치하는 것까지 다 합의했는 데도. 2007년 11월 1차 총리회담 때 마지막까지 가장 힘들었던 게 3통 문제 합의였어요. 한덕수 총리가 밤을 새우면서도 그것만큼은 꼭 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했었죠.”
●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어떻습니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남북회담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파워포인트로 보고를 한 사안입니다.
북쪽에서도 파워포인트 보고를 듣고 우리가 작성한 문서를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고 했어요.
서해라는 지역은 남북 간에 우발적인 충돌이 가능한 곳이에요.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지금처럼 핫라인을 통해 서로 사전에 연락을 하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지상처럼 완충지역을 만들고 우발적인 충돌이 없도록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런 시도를 한 게 바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였어요. 노 대통령이 고심해서 제안한 회심의 작품이었죠.
대통령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실무회담 단장으로 백종천 안보실장이 갔던 것이고. 그런데 지금 너무 아까워요.”
● 통미봉남(通美封南) 상황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북측이 통미봉남을 했다고 평가하진 않습니다. 북측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상당한 기간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선거 때 ‘비핵·개방3000’을 내놨을 때도 구체적으로 이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북측의 입장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해요.
나는 어떤 형태로든 이른 시간 내에 남북 당국자가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명분을 양측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명분이 어떤 명분이 됐건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을. 지난번 뉴욕 필 공연도 그렇고 쌀을 보내는 문제도 그렇고, 우리가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이 정도의 인도적인 지원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의 구체적 제안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 남북관계에 훈풍을 불어넣을 명분이 현재로선 없는 겁니까.
“10·4 정상회담 중에 김 국방위원장이 흔쾌히 받아들인 것 중 하나가 백두산 관광이고, 다른 하나가 남북 공동응원단이 철도를 이용해 베이징올림픽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김양건 부장에게 직접 이 부분을 합의문에 반드시 반영시키라고 지시까지 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어요. 철도는 처음 시작이 가장 중요한데 베이징올림픽이 아주 적절한 기회였거든요.
한 번 가면 두 번 세 번 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처음 시작이 어려운 거죠. 이건 양쪽 군부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이고. 내 임기 동안 건교부에 철도에 대한 현지실사를 서두르자고 해서 두 차례 현지실사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철도 문제를 빨리 추진하는 게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겁니다.”
“남북철도 열려 대륙까지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