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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양주(南楊州)의 수락산(水落山:641M)을 가다.
글 쓴 이 고 학 영
6월25일,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솔바람은 시원 한데...
차에 오르니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구나! 서울 근교의 산들은 인기도 좋을시고... 여러달 만에 뵙는 분도 계시고, 1년 여만에 동참하신 분도 계신다.(50명)
구미시(龜尾市)를 조금 지나니... 구름이 차차 걷히고 햇볕이 찬란하다. 대지(大地)는 짙은 녹색(綠色)으로 물들어 있어... 다가오는 사물(事物)들에 속이 다 시원하다.
아포에서 중부내륙고속국도로 내달아 선산 휴게소에서 조반(朝飯)을 드시고는 차 한잔으로 정담(情談)을 나누시니... 돋아나는 정감(情感)이 새록 새록 하다. 상주(尙州), 문경(聞慶), 괴산(槐山), 여주(驪州)를 지나 숨가쁘게 이어 달려서...
남양주시(南楊州市) 별내면(別內面) 덕송리(德松里) 부근에 이르니, 저만큼 불암산(佛岩山)의 자태가 투구를 쓴 장군마냥 우뚝 솟아 밝은 영기(靈氣)를 뿜어 내면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출발기점인 수락산(水落山) 유원지(遊園地) 입구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45분을 가르킨다. 내원암(內院菴) 방향의 금류계곡(金流溪谷)으로 오르니... 계곡은 온통 차일(遮日)로 덮여 있어 아름다운 금류계곡을 감상 할 수 없으니...
계곡을 점유하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은 무슨 특권 이라도 받으셨는가? 언뜻 언뜻 차일 틈 사이로, 앉을 자리 틈새로 흐르는 계곡물은 맑아 있어 보기에도 시원하나 접근은 쉽지 않다.
어떤 곳은 물막이 공사까지 하여 물놀이를 하는 곳도 있다. 이쯤되면 단속도 헛 구호일뿐 속수 무책이다. 오를 수 록 불법 점유상(占有商)은 줄어 들고는 있어도 거의 2킬로미터 정도 까지 이어져 있으니...
계곡의 감상미(感想美)는 달아나고, 수락산의 명성이 반감되는 기분이다. 금류계곡 중에서도 그중 절경으로 꼽히는... 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 새겨진 금류폭포(金流瀑布) 까지 노점이 점유하여 경관을 해치고 있으니... 할 말을 잃는구나...!
금류동천(金流洞天)의 글씨체는 획이 굵고 힘이 있어 조선 선조임금 때 한석봉(韓石峰) 선생의 글씨체를 모사(模寫)한 것 으로 느껴진다. 흐르는 물이 거의 없어 폭포라기 보다는 바위 벼랑이라 함이 더 좋겠고, 수량(水量)이 풍부하면 참으로 장관(壯觀) 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10 여분을 더 오르니... 우측산 중턱에는 수락산 봉우리가 바로 보이는 곳에 내원암(內院菴)이 진좌(鎭坐) 하고 있어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며 대웅전에서는 독경(讀經) 소리와 목탁(木鐸) 소리가 울려 퍼지니... 고요한 산사의 정적(靜寂)을 흔들어 주십니다. 도량(道場)의 규모는 작아서 거의 토굴에 가깝고 주위의 산세는 연화반개형(蓮花半開形:연꽃이 반쯤 피어있는 모양)이라.
젊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지(吉地)로 여겨지며, 거룩한 님의 뜻에 합장(合掌) 배례(拜禮) 드리고 물러 나오니... 일행은 저만큼 보이지 않는구나!
다시 10 여분을 앞지르기로 오르니 숨이 다 차다. 수락산장(水落山莊) 앞에는 맑은 샘이 솟아나고, 목을 축이겠다는 산행객이 줄을 잇는다. 수량(水量)이 그리 넉넉지 못한가 보다. 구경삼아 산장에 오르니... 나무철책으로 얼기 설기 역어서 고아 올린 통나무 집이다.
바닥에는 널빤지로 깔아 놓아 자연과 조화롭고, 앉는 의자나 탁자도 모두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그래도 젊은 남여들이... 중실한 멋쟁이들이... 통키타를 울리면서... 산장(山莊)의 낭만(浪漫) 이라는 것이 저런 것인가?
내게도 낭만을 즐길 벗이 있었으면... ... 야릇한 감정으로... 뒤돌아 오르니... 돌계단은 가파르고 진행속도는 더디다.
오늘따라 구윤서 회원님은 다리가 무겁다면서 후미에서 오르신다. 항상 선두구룹에 합류하여 잘도 걸으시는데... 단단하고 야무져서... 물을 부어도 새지 않을 정도인데... 연이어서 디카맨 황재덕 회원님, 입심좋고 싱글 벙글 이태만님, 산 잘탄다 조여사님, 자상하다 옥구슬님, 막내둥이 금여사님 등 등...
“가방이 무겁다 무겁다” 면서... 방울 토마토를 권하시네! “먹어주는게 짐덜어 주는 거라”면서... 권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 한마디 한마디가 정(情)이 뚝~뚝~ 넘쳐 납니다. 고맙고 아름답습니다. 남산의 님들이여...!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산그늘의 솔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쉬었다가 오르고, 오르다가 쉬며 정상에 오르니...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정상은 암봉(岩峰)이라 오르기도 위험하고, 멀리서 보는 아름다움이 지척(咫尺)에서는 반감되는 구나!
조심 조심 줄을지어 오르니... 박아 놓은 철기둥의 밑부분이 패여있어 구명줄에 대롱 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라니... 이놈이 제 구실은 커녕... 되려 구명줄의 득(得)을 보려는 것인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가 없구나!
정상에 오르니 표석(標石)은 간곳 없고, 태극기만 꽂아 두었으니...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은 애국(愛國)의 상징인가? 정상의 알림인가? 바위봉에 올라 서서 사방을 조망(眺望)하니... 햇살은 내리 쬐나 불어오는 산바람이 온 몸을 서늘케 해 줍니다.
북으로는 백두대간상의 추가령(楸哥嶺) 부근에서 서남방향으로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오성산(1062M), 대성산(1174M), 백운산(903M), 운악산(935M)을 거쳐 백석이고개 부근에서 남으로 용암산(477M), 깃대봉(288M)을 지나 이곳 수락산(641M)에서 크게 솟구치고, 다시 불암산(510M)을 거쳐 아차산(348M)에서 한강으로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백두(白頭)와 한북정맥의 정기(精氣)가 겹으로 뭉쳐 있으며... 남양주시, 의정부와 구리시 일부, 서울의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 일원을 품 너르게 감싸고 있으며, 이고장 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가 돼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지근(至近)한 동쪽에는 내원암(內院菴)이 있으며, 남동쪽에 천년고찰(千年古刹) 흥국사(興國寺)와 남록(南麓)에 학림암(鶴林菴), 서록(西麓)에는 석림사(石林寺), 쌍암사(雙巖寺) 등 이 있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십니다.
특히나, 석림사 밑에는 노강서원(鷺江書院)이 있어 조선 숙종(肅宗)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廢位)를 부당하다고 극간(極諫) 하다가 왕의 격노를 사서 혹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진도(珍島)로 유배(流配) 되던 중 노량진(鷺梁津)에서 죽은 충신 정재산인(定齋散人) 박태보(朴泰輔) 선생의 위폐를 모시고 있어, 선생의 족적(足跡)은 언위백대지사(言爲百代之師:올바른 말은 백대의 스승)라는 말이 과연 허언(虛言)이 아님을 보여 주시며,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희빈 장씨의 모함으로 폐위 되었다가 다시 왕비로 복위 되었지만, 인현왕후의 파란만장한 삶을 어느 이름모를 궁녀의 역사적 고발문학으로 쓴 글이 오늘날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인간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교훈이 돼고 있습니다. 아~아~ 만고의 충신은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 인덕(仁德)을 갖춘 왕비의 삶이 만년(萬年)에 향기를 더해 줍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주위를 살피니... 도봉지맥상의 도봉산 북한산이 지척에서 손에 닿을 듯 하고, 밝은 기운을 뿜어 내는 암봉(岩峰)들이 보석처럼 찬란히 빛나고 있어 서울의 명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수락지맥과 도봉지맥 사이에는 녹색의 기운은 간데없고 마치 성냥갑을 포개 놓은듯... 정형화 된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행정상으로는 노원구와 도봉구라고 구분되어 있겠지만, 태산에서 내려다 보는 그림은 하나요 둘이 아닌데... 저 숨막히는 곳에서 우리는 삶의 보금자리를 틀고 있으니...
도봉산과 사패산(賜牌山) 사이에는 4개의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슴이 보인다.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수 년간 공사를 중단하여, 국민의 혈세(血稅)가 줄~줄~ 새던 바로 그 사건의 현장이 아니던가?
어쩔 수 없는 개발 이라면 공청회를 거쳐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반대도 찬성도 다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기 때문이다.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시 덕릉고개를 향해 나아가니... 등산로는 천갈래 만갈래요, 산행길은 얼마를 다녔는지... 반들 반들 하다.
시계(視界)는 멀지 않아 북동방향에는 이름모를 산들이 겹겹으로 싸여 있어 운악산에서 불국산 방향으로 흘러가는 한북정맥은 짐작으로만 이해될뿐 구분이 쉽지 않다. 오늘은 특별히 기억해야 될 날이라 그런지... 마음도 날씨마냥 그리 밝지 못 하구나!
56년전의 동족상흔(同族傷痕)을 남긴 이데올로기의 전쟁은 반 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 까지도 이어져, 통일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한민족은 언제나 하나되어 선조님들의 활동무대 였던 광할한 대륙을 누비고 다닐 수 있을런지...
천지신명(天地神明)님과 일체 조상님들의 음우(陰佑)가 계시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조국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영(護國英靈)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옵고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비옵나이다.
시계는 13시를 조금 지나 있어 시장끼도 더해 오는데, 산행객이 워낙 많아 점심 장소를 정하기도 마땅치 않다. 여기 저기로 나뉘어져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점심을 드신다. 싱그러운 유월의 솔향기를 마시며 대자연의 품에 안기시니... 이보다 더 편할 수 가 있겠는가?
오후 일정에 불암산(510M)을 더 올라야 하니 A코스로 진행 하시는 분들은 서둘러 서둘러 떠나신다. 덕릉고개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오르도록 계획되어 있으나,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하산길을 가늠키가 쉽지 않구나.
A코스로 20여명이 등산중에 있고, 나머지 30여명은 B코스를 선택하여 흥국사로 집결 하는데...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하산 기점이 서로 다르니... 진행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회원님들에게 하산 기점을 안내 할 요량으로, 최대장과 필자는 불암산을 오르다 말고 다시 흥국사로 향한다.
덕릉(德陵)고개 마루에는 수도권을 방어하는 ㅇ ㅇ 부대가 있어, 얼룩무늬 병사들이 단독군장 모습으로 초소에 근무중이다. 국토방위의 임무는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 합니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요, 수뇌부를 지키는 일인데...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되지요.
10여분을 더 나아가니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능(陵)이 있슴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조선 14대 선조임금(1567~1608)은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소생 덕흥군 이초의 셋째 아들이며, 등극한 이후 부친인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아래로 쓰고 사액(寺額)을 덕흥사(德興寺)라 고쳐 부르다가, 인조 4년(1626) 흥국사(興國寺)라 개칭(改稱) 하였다고 하며... 덕흥대원군의 능호(陵號)를 덕릉(德陵)이라 하시니, 인하여 덕릉고개라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흥국사 경내를 향하여 500여M를 걸어서 오르니, 달구워진 아스팔트 열기에 발걸음도 무거웁다. 일주문은 건립(建立)한지 오래지 않아 고색(古色)어린 멋은 느끼지 못하겠고, 천왕문(天王門)은 보이지 않으며... 높은 축대위에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개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멋은 없다.
도량(道場)내에는 불사(佛事)가 진행중이라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전각이 많고, 대웅전 맞은편에 불자님들의 수행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ㄷ 자 형의 전각이 너무 가깝고 높아 답답하게 느껴진다.
우백호는 잘 감싸주고 있으나, 좌청룡은 멀고도 허(虛)하다. 안내판에 흥국사(興國寺)는 신라 26대 진평왕 21년(599)에 화랑도오계(花郞徒五戒)로 유명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창건하여 수락사(水落寺)라 했다 하며...
조선 말엽에 남호(南湖) 영기대사(永奇大師:1820~1872)의 아미타경(阿彌陀經)과 연종보감(蓮宗寶鑑)을 판각(板刻)으로 보관하고 있으며...
스님은 주로 화계사(華溪寺)와 봉은사(奉恩寺)에서 설법 하였고, 봉은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화엄경(華嚴經) 81권을 목각하고 판전(板殿)을 세워 봉안 했다 하신다. 이때 판전의 글씨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쓰셨다고 전해온다.
영기(永奇)스님은 어릴 때 문둥병에 걸렸었는데... 불력(佛力)으로 치유(治癒)되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고, 경전을 사경(寫經) 할 시는 일자(一字) 3배(三拜)의 정성으로 하였다고 하신다.
천년의 고찰(古刹)이요, 사바세계의 명성에 비하면 사세(寺勢)는 그리 대단치 않으며, 도량의 넓은 터에 비견하면 너무 빈 공간이 많아 허술한 느낌마져 든다.
하기사, 불법(佛法)에 동서남북이 따로 없고, 그 규모가 크고 작음에 연연 하는 것은 아닐진데... 정성을 다해 예배(禮拜)를 드리니... 단(壇)위의 진여불(眞如佛)이 염화(拈華)의 미소(微笑)로 다가 오신다!!!
불암산(佛岩山)을 종주하는 님들을 기다리며, 별내면(別內面) 덕송리(德松里)에 이르니... 태릉(泰陵)으로 넘어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불암산은 우뚝 솟아 장군의 기상일세!
수려(秀麗)한 암봉(岩峰)의 산기슭에는 천년고찰 불암사(佛岩寺)와 석천암(石泉菴)을 품고 있으며, 그 남록(南麓)에는 조선 13대 명종의 능침(陵寢)인 강릉(康陵)과 그의 모후(母后)로 섭정(攝政)을 보면서 불교중흥정책을 폈던 문정왕후(文貞王后)를 묻은 태릉(泰陵)이 있고, 인근에 대한체육회 선수촌과 체육대학, 삼육대학, 화랑대(육군사관학교)가 있습니다.
불암사(佛岩寺)는 신라 41대 헌덕왕(憲德王:809~826) 16년(824)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羲陽山派)를 일으켰던 지증법사(智證法師)가 초창(初創)하고, 나말려초(羅末麗初)에 도선(道詵)이 재창(再創), 조선초 무학(無學)이 삼창(三創) 하였다고 하며...
이절은 서울 근교의 4대 명찰의 하나로 세조때 왕성(王城) 사방에 왕실원찰(王室願刹)을 하나씩 정할적에 동불암(東佛菴)으로 꼽혔던 것이다.
경내(境內)에는 영친왕모(英親王母) 엄비(嚴妃)가 세운 수성전(壽星殿)과 요사 등이 있고, 판고(板庫)에는 석씨원류(釋氏源流) 212매의 목판(木板)이 보물 212호로 지정 보관되어 있으며, 이는 인조 16년(1638) 왕명으로 역대 승려의 법통을 이어온 경전을 판각 하게 한 것으로,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와 이절에만 보존되는 귀중한 것이다.
이토록 문화사적 가치가 높은 천년도량(千年道場)의 향기를 다 느낄 수 없슴이 못내 아쉽구나!
노원구 공릉동 육사(陸士) 건너쪽 숲속에 중종(1506~1544)의 계비(繼妃)로 명종(1545~1567)을 낳은 문정왕후(文貞王后)의 능침(陵寢) 태릉(泰陵)이 있고, 이웃한 동쪽에 13대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를 묻은 강릉(康陵)이 있으며, 이를 합하여 태강릉(泰康陵:사적201호) 이라 한다.
문정왕후(1501~1565)는 중종의 계비로서, 인종(1544~1545)의 어머니 장경왕후(章敬王后)가 대군을 낳은지 7일만에 산후 끝으로 돌아가시고, 인종은 계모 문정왕후 밑에서 자라 여러 차례 죽을고비를 넘기고 나이 30세에 왕위에 올라 8개월 보름만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昇遐) 하시고(문정왕후의 독살설이 있슴), 문정왕후가 낳은 명종이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8년간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다.
그동안 윤임 등을 사사(賜死)하고 동생 윤원형으로 하여금 실권을 쥐게 하는 한편으로 태고 보우스님을 신임하여 과감한 불교진흥정책을 썼으며, 성격이 포학(暴虐)하고 심지어는 어린왕을 매질까지 하며 어전에서 욕설을 하는 정도 였다고 하니...
그런 세도가(勢道家)도 나이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명종 20년(1565) 창덕궁 소덕당(昭德堂)에서 65세를 일기로 승하(昇遐) 했으며, 묻힌 태릉(泰陵)은 풍수적으로 무후지지(無後之地)의 흉지(凶地)라고 한다.
원래 그런 자리라는 풍문도 있고 하여 명종은 반대 하였으나, 명종의 외삼촌이자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무엇에 홀린 듯 적지(適地)라고 우겨 그렇게 결정 되었다고 하니,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셈이다.
이후 명종의 대는 끊어지고 후사(後嗣)를 보지 못하니... 조선왕조 건국이후 처음으로 왕비 혈통의 왕통 계승이 끊어지는 사건이 되었다.
유한(有限)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으며, 범부(凡夫)와 대부(大夫)의 삶도 결코 다르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불암산의 산자락에는 화랑대(육군사관학교)와 대한체육회 선수촌, 체육대학, 삼육대학 등 등 이 있어 나라의 동량(棟梁)들을 길러 내시니...
이처럼 불암산(510M)은 낮지만 높으게 느껴지고...
그 산자락은 좁지만 천하(天下)를 품을만 하도다...!
아~ 아~ 수려(秀麗)한 님의 자태(姿態)에... ...
반하지 않을이가 뉘 있으리요...!
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님의 곁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어라...!
단기 4339년(서기2006년) 6월 25일
서울, 남양주시 수락산(水落山:641M)을 가다.
첫댓글 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님의곁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라.....가슴에 담아 갑니다~^^*
옥구슬님... ... ... 구슬님... ... ... 슬님... ... ... !!! ㅇ ㅇ ㅇ 요!!!
회장님! 참석못해 아쉬웠는데 늘~산행후기를 읽고나면 제가 꼭 다녀온사람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금나와님! 7월 산행에는 꼭... 항상 건강하세요!!!